인간 개개인은 삶 속에서의 관계맺음을 통해 자신과 타자에 대해 재인식하고 서로의 주체성과 객체성을 구별하며, 이를 바탕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가운데 자신과 타자 양측의 의미를 재정립하고 내면화한다. 따라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인간 개개인의 삶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관계맺음이 이처럼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처럼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간 관계맺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흔히 ‘외교’ 또는 ‘국제관계’라고도 표현되는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맺음은 타국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음으로써 자국 내에서 집단의식과 세계관을 정립 및 공유하고, 이를 내면화하며 정치 ․ 경제 ․ 문화적 변화를 경험하고 추동하는 행위이다. 이 때문에 특정 국가의 정치체제, 경제구조, 사회 구성원들의 정체성 및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여왔는지 역사적 측면에서 분석하기 위해서는 국제관계라는 부분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 성과는 주로 국가 간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분쟁이나 무역, 상호 인식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고, 양측의 접촉 과정에서 상호 관계를 표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의례에 내포된 역사적 의미는 다소 경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역사연구회 중세국제관계사연구반이 이번 공동연구발표회에서 ‘외교의례를 통해 본 11-15세기 한중관계’라는 제목으로 그간 국제관계사 연구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외교의례의 전개양상과 그 의미를 어떻게 새로이 조명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발표회 시작 전부터 상당한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이번 연구발표회의 적극성은 좌석 배치를 통한 공간 구성에서부터 드러났다고 생각된다. 발표자와 지정토론자 및 청중들이 서로를 마주 보도록 마련되어있었는데, 이것이 꽤나 신선한 시도였는지 한국역사연구회 회장 정용욱 선생님께서도 개회사에서 현재적 의미가 큰 이번 발표회의 주제와 신선한 공간 배치를 바탕으로 활발한 발표 및 토론을 기대한다고 언급하실 정도였다. 아마도 외교의례라는 주제를 자칫 딱딱하고 지루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넓은 시야 확보를 통해 활발한 의견 표명과 토론이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를 ‘의례’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이처럼 사소한 형식과 절차조차 상황 및 사안에 대한 인식과 서로간의 소통에 있어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보여준 사례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본격적인 발표회는 서울대학교 정동훈 선생님의 총론 발표로 시작되었다. 「외교의례 연구의 매력」이라는 제목의 총론에서 정동훈 선생님께서는 먼저 외교의례가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가장 극명하게 표현되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의례 연구 자체의 어려움과 ‘실질적’이지 않은 부수적 요소라는 과소평가에 의해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음을 지적하셨다. 그리고 본 연구발표회의 목적은 양국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의례를 구성하고, 서로를 직접 대면하는 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이를 조정하고 합의하였는지를 중국의 사서는 물론 각종 예서 등에 수록된 賓禮 조항과 연대기 사료를 통해 검토하고 그에 내포된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음을 제시하셨다. 그 다음으로는 제1발표로 고려대학교 이바른 선생님의 「契丹의 ‘高麗使’ 관련 의례 성립과 양국 외교관계의 의미」라는 제목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바른 선생님께서는 遼史 禮志에 산재된 외국사신에 대한 각종 의례 조항을 조명하여 거란의 의례 규정 및 정례화가 시기별 각각의 사절단의 성격 및 목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음을 제시하셨다. 그리고 賓儀條에 수록된 고려 사신에 대한 세 가지 궁중의례를 분석하여 현종 13년(1022)에 거란으로의 고려 사행 종류 및 빈도에 관한 양국의 의제가 정립되었다고 정리하고, 특히 거란이 고려 사신을 北面屬國官으로 규정하면서도 실제 연회 상의 위차에서는 南面官에 포함하는 등 외교의례에서 나타나는 복합적인 양태가 거란의 고려에 대한 인식을 방증한다고 지적하셨다. 이어진 숙명여자대학교 박윤미 선생님의 제2발표는 「고려 전기 외교의례에서 ‘面位’ 문제와 그 의미」라는 제목으로 『고려사』 예지에 수록된 「迎北朝詔使儀」의 거란 사신의 南面과 고려 국왕의 西面이라는 비대칭 면위 문제에 대한 기존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셨다. 박윤미 선생님께서는 추상적인 여러 층위 관계를 의례 과정에서 시각화하는 행위인 ‘면위’의 의미에 주목하고, 의절에서 생략된 내용을 「迎北朝起復告勅使儀」와 「王太子稱名立府儀」를 통해 유추하여 의례 진행 과정에서의 면위 및 동선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셨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를 통해 고려 예제의 특수성을 강조하고 그 기원을 신라 이래의 당제 수용 및 원용의 결과로 추측하셨다. 전반부 발표가 끝난 뒤 앞서의 총론 및 두 발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지정토론자이신 국사편찬위원회 이미지 선생님께서는 이바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 『요사』 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연구사적 의의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고려 사신이 참여 가능한 의례와 전적으로 고려 사신을 대상으로 하는 의례가 혼재되어 있는 만큼 고려 사신과 관련한 의절을 포괄할 개념 및 용어의 정치화, 고려 사신에 대한 세 가지 의절 이외의 사례에 대한 대응 및 의절 성립 이전의 의례 양상에 대한 보충의 필요성 등을 거론하셨다. 그리고 박윤미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면위 및 면향의 가변성 지적을 통해 고려 예제의 특수성을 강조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도, 왕-왕태자의 관계와 사신-국왕 간의 관계를 단순치환해서 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하면서 「영북조조사의」의 공백을 「왕태자칭명입부의」라는 사료로 보충하는 것이 합당한지의 여부를 지적하셨다. 그 외에도 서울시립대학교 이익주 선생님께서 총론에 대해서 양측의 의절이 형성되는 맥락을 같은 선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시면서 외교의례라는 것이 과연 합의의 결과라고 이해될 수 있을지를 지적하시는 등, 참여하신 여러 선생님들께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셨다. 후반부의 첫 발표는 앞서 총론을 발표하셨던 정동훈 선생님의 「고려시대 사신 영접 의례의 변동과 국가 위상」이었다. 정동훈 선생님께서는 송·요·금과의 외교 의례에서 고려국왕과 사신 간의 비대칭 면위는 양자가 각각 主賓과 君臣이라는 다른 의례 관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는 양측의 예제 해석상의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음을 제기하셨다. 그러나 원대에 들어서 원 국내의 사신 관련 의례가 정비되고 고려 역시 그 적용범위에 포함됨에 따라 이전처럼 예제 해석의 이중성이 발생할 여지가 축소되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명대에는 고려를 ‘蕃國’이라는 개념 하에 명 중심의 국제질서로 편입시키고 이들에 관한 의례까지 상세히 규정하셨다. 이는 고려는 물론 조선의 빈례의 의미를 재편하여 외교 의례 편제를 새로이 정립시키는 요인이 된 것은 물론, ‘번국’이라는 조건을 마련해줌으로써 중국을 중국으로 완성시켰다는 것이 발표의 결론이었다. 다음으로는 숙명여자대학교 윤승희 선생님께서 「문종 즉위년 책봉의례에 대한 논의와 그 성격」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주셨다. 윤승희 선생님께서는 조선 건국 이래 흉과 길의 시공간이 동시에 조성되어야 하는 초유의 사태였던 문종 즉위년(1450) 책봉의례를 중심으로, 복식을 통한 희락의 표현을 조선에서 어느 수준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과정과 주요 쟁점을 검토하셨다. 그리고 최종 결정된 복식의례가 그간의 조선의 전례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명의 예제가 정해놓지 않았던 공백지대를 조선이 스스로 채워 넣고자 노력한 결과물이었다고 정리하셨다. 뒤이어 명지대학교 이규철 선생님의 「조선 성종대 외교의례 변경에 대한 논의와 대명의식」이라는 제목의 발표로 후반부 발표가 마무리되었다. 이규철 선생님께서는 성종 19년(1488)에 파견된 명 사신과 조선 조정 간의 의례 관련 갈등의 전개과정을 검토하고, 해당 의례에 관한 명분과 경험이 조선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명 사신의 의견을 따라 의례 형식을 변경한 것에 주목하셨다. 그러면서 이는 조선에서의 명의 위상이 확대되는 사실을 방증하는 동시에 명과 중화의 개념이 점점 일치해가는 대명의식의 변화를 암시한다고 주장하셨다. 후반부 발표에 대해서도 전반부 못잖은 연이은 토론이 이어져 사회를 맡아주신 서울시립대학교 김창수 선생님께서 토론하고 싶어 하시는 여러 선생님들께 발언권 순서를 정해드리느라 꽤나 고생하실 정도였다. 가장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해주셨던 선생님은 지정토론을 맡아주신 동덕여자대학교 최종석 선생님으로, 먼저 정동훈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원대에 있었던 예제의 이중성 소멸이라는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명대 예제의 수용을 이해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지적하시면서 명의 예제를 수용하는 고려와 조선의 입장 차이를 더 고려하고 조선이 찾아낸 공백지점이 내포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규명할 것을 제안하셨다. 또한 윤승희 선생님의 발표에 대해서도 조선 초 의례 정비 과정에서의 명분 반영 노력이 중화라는 명분에 대한 절대적인 추구 정도로 단순하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셨고, 이규철 선생님의 발표에 관해서는 공민왕대 수령한 「본국조하의주」와 조선의 「번국의주」가 과연 같은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명집례」와의 차이를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외교의례상의 특정 지점에서 나타나는 양보가 무슨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추가 논증의 필요성을 제기하셨다. 그 외에도 대전대학교의 장지연 선생님,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김순자 선생님, 명지대학교의 한명기 선생님, 성신여자대학교의 오종록 선생님, 경희대학교의 구도영 선생님 등 여러 선생님들께서 다양한 제안과 지적을 해주셨다. 당초 예정되었던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토론이 마무리되었을 정도로 이번 연구발표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의례에 관해 중국의 요구가 더 무게감 있게 반영된다는 점에서 의례에 관한 연구가 한국사 연구로써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의례가 과연 상호 인식을 온전히 반영하는지 등에 대해 토론이 집중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총론을 비롯한 여러 발표들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외교의례의 연구 필요성의 문제는 아직 충분히 공감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외교의례라는 주제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데 있어서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학계에서 추가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연구발표회는 앞으로의 국제관계사 관련 외교의례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진척될 것인지를 기대하게 하는 동시에, 국제관계사를 전공하고자 하는 필자에게도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할 것인가, 어떻게 그 주제의 중요성을 이해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도록 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