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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논문을 말한다
데이터로 읽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일상 -<<지암일기(1692-1699)>> 데이터베이스 편찬 연구-_류인태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0.12.19 BoardLang.text_hits 5,7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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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0년 12월(통권 12호) [나의 논문을 말한다] 데이터로 읽는 17세기 재지사족의 일상-<<지암일기(1692-1699)>> 데이터베이스 편찬 연구-(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08) 류인태 1. 왜 디지털 데이터인가나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다.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한문학을 전공했지만, 전통적인 방식의 한문학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온 것도 아니다. 인문학적 호기심과는 별개로 학부 때부터 여러 방면으로 관심이 많았던 덕분에 정말 뜬금없게도 졸업 직후 IT 방면의 창업을 단행했다. 초기 아이폰 흥행의 파도를 타고 팀 창업에 성공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론칭하는 경험도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팀에서 나와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IT 방면의 창업을 경험한 인문학 전공자라는 특수한 이력 탓에 「한국 자전의 웹 구현에 관한 매체적 관점의 고찰」(2014)이라는 이종(異種)의 석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고, 이종의 경험을 한 번 하고나니 제대로 된 이종을 낳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인문학과 연계한 정보학 방면의 심화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정보학 전공 박사 과정에 진학하게 되었다. 박사 과정에서 나의 문제의식은 역사학이나 한문학과 같은 기존 전공에서 다루어져 온 주요한 학술담론보다도 오히려 ‘고문헌’ 자료를 현대에 어떻게 재매개(remediation)할 것인가의 고민에 더욱 치중해 있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다각화되어가는 현 시점에서 인문학 방면의 연구 대상으로서의 옛 기록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고민. 그저 낡은 것으로서 과거의 기록을 바라보는 풍조가 강해지고 극단적인 경우 그것을 다루는 연구자의 노력이 해당 개인의 고급 취미 활동 정도로만 여겨지는 현 시점에서의 인문학 연구 환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러한 여러 방향의 고민은 여태껏 학술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영역으로서 인문학 외부를 향한 질문으로 확대되었다. 전통적 방식의 인문학 연구 맥락에 기초하되 지금껏 시도하지 않았던 형식의 연구 결과물을 내는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그리고 그러한 시도의 가치는 또한 무엇인가. 질문이 질문을 낳고 해당 질문은 또다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낳았다. 그 가운데서도 인문학 연구 또는 인문적 사유와 연계한 형태의 디지털・데이터 환경에 대한 탐색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그리고 소위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라고 지칭하는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갖추고, 한편으로 고문헌 자료에 대한 해독과 그에 담긴 내용을 다루는 기초적인 역량을 얻음에 따라, 두 가지 방면의 이해를 결합한 형태의 새로운 연구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점차 구체화되었다.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이미 그러한 맥락의 연구가 ‘디지털 인문학(Digital Humanities)’이라는 이름으로 확산중이며, 디지털 형식의 연구결과물 또한 여러 형식으로 나와 있는 상황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고문헌 자료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인문학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갖게 되었다. 2. 디지털・데이터가 가능하게 하는 것1: 협업으로서의 역사학 연구나는 박사과정에서 협업적 성격의 여러 인문학 연구에 참여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암일기>> 해독 및 번역 연구였다. 해당 연구는 생활사, 사상사, 사회사, 미술사, 고문서 등을 탐구하는 여러 역사학 연구자들이 모여 윤이후(1636~1699)가 쓴 <<지암일기>>를 함께 해독하고 번역하는 세미나를 가지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2013년 11월부터 시작된 해당 연구는, 약 8명의 연구자가 격주 단위로 모여 <<지암일기>> 원문(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마이크로필름)을 대상으로 해독문과 번역문을 발표하고 전체 논의를 거쳐 수정하는 일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2017년 3월 초벌 번역을 마치고, 2017년 6월부터 2018년 7월에 이르기까지 1차 교열 작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하였으며, 2019년에 다시 한 번 교차 읽기 형식으로 2차 교열 작업을 진행하였다. 약 5년에 걸친 기간 동안 해독과 번역 및 교열을 거친 끝에 2020년 초에 번역・연구서(하영휘 외 7인, <<윤이후의 지암일기>>, 너머북스, 2020)를 발간하였다. 나는 해당 연구 모임의 일원으로서 전통적 방식의 고문헌 자료 해독 작업에 참여함과 동시에 그 결과물이 디지털 환경에서 더 의미 있게 거듭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민하였다. 그 결과 지암일기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인문학 연구에 대한 기획이 모임 내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해당 기획안을 연구계획서로 다듬어 2016년 한국연구재단 주관 인문전략연구 부속 디지털 인문학 사업에 지원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되는 결과를 얻었다. 해당 연구 사업은 기존에 진행되어 온 <<지암일기>> 해독 및 번역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으며, 공식적으로는 2016년 9월부터 시작되어 2019년 8월에 종료되었다. <<지암일기>> 해독 및 번역에 참여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여성사, 미디어학, 컴퓨터과학, 문헌정보학 전공 연구자들이 추가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연구팀이 새롭게 구성되었다. 고문헌 자료 해독과 번역에 기초한 전통적인 인문학 연구와 그 결과물을 디지털 환경에서 편찬하는 새로운 형식의 인문학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는 가운데, 나는 양쪽 모두의 이해에 걸쳐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 두 가지 연구가 유기적으로 종합될 수 있게끔 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누군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그러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당시 나는 여러 가지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전통적 방식의 한문 문헌 해독 및 번역 연구에 머물지 않을 것, <<지암일기>>로부터 저자의 삶을 생생하게 살려낼 수 있는 데이터를 산출할 것, 연구 과정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는 도구(tool)로서 컴퓨터 기술과 웹 환경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인문학 연구를 위한 본격적 플랫폼(platform)으로서 디지털 환경이 활용되도록 할 것.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물을 합산하는 형식으로서의 공동 연구가 아니라 개별 연구자들이 실제 공동의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공동의 결과물을 내는 연구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 그와 같은 여러 형식의 고민들은 실질적으로 하나의 귀착점을 갖게 되었으니, 바로 ‘디지털 환경에서 협업 연구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어떠한 방식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개인 연구에 익숙한 상황에서 협업이라는 연구 형식은 참여자들 모두에게 낯설게 다가왔고, 그에 대한 경험을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연구방법론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반복했다. 돌아보면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하지만 ‘개인 연구’를 벗어난 ‘협업 연구’로서 인문학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온 몸으로 부대껴보았다는 점에서 여러 가지로 깨달은 점도 많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여러 연구자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 아래와 같은 결과물을 웹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었다. [caption id="attachment_8333" align="aligncenter" width="640"]<그림1> 공동연구를 통해 편찬된 지암일기 DH 연구 결과물 사례 데이터로 다시 읽는 조선시대 양반의 생활 (http://jiamdiary.info)[/caption] <<지암일기>> 디지털 인문학 연구의 협업을 가능하게 했던 지점은 ‘데이터’이다. 텍스트에 담긴 내용을 어떻게 디지털 데이터로 편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데이터 설계 과정과 구축 과정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편찬과 데이터 시각화 구현 단계에 걸친 모든 과정에서 참여 연구자들의 적절한 분담을 유도하였다. 그에 따라 각자의 작업에 집중하는 가운데 산출된 각각의 결과물이 하나로 모여 종합적으로 연결될 수 있게끔 안배함으로써 공동의 결과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하였다. 현재 웹상에 공개되어 있는 <<지암일기>> 데이터베이스는, 본 연구에 참여한 모든 연구자들의 노력이 함께 들어간 공동의 연구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암일기>>에 관심을 갖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 데이터를 개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연구자 또는 대중이 자유롭게 가져다 활용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또 다른 방면의 연구 확장을 돕기 위함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확장된 연구가 진행된다면 그 또한 다른 차원의 ‘협업 연구’라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3. 디지털・데이터가 가능하게 하는 것2: 비선형적 형식의 역사 정보 표현전통적인 방식의 인문학 연구는 연구를 통해 정리한 정보와 지식을 ‘글쓰기’로 표현해왔다. 그래서 여전히 전공 분야에 대한 이해와 별개로 ‘글쓰기’에 대한 역량은 인문학 연구자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학술 역량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루는 분야의 지식을 얼마나 깊고 넓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 별개로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는가의 역량 또한 연구자에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선형적 형식의 글쓰기만이 유일한 정보 전달 매개로서 다루어져 온 아날로그 환경과 달리 디지털 환경에서는 ‘전자글쓰기’ 즉 비선형적 형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 선형적 형식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글쓰기의 고정된 논증 방식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시각 미디어를 활용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롭게 정보와 지식을 기술(記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caption id="attachment_8334" align="aligncenter" width="491"]<그림2> 그래프데이터베이스 Neo4j를 이용해 정보와 정보 사이의 의미적 연관 관계를 네트워크 형식으로 출력해 살펴보는 것이 가능하게끔 구현한 지암일기 데이터베이스 (http://jiamdiary.info/data/gdb)[/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335" align="aligncenter" width="485"]<그림3> D3.js의 Calendar View Library를 이용해 윤이후의 생활 양상을 달력 형식으로 표현한 <<지암일기>> 생활(Lifestyle) 데이터 시각화 결과물 (http://jiamdiary.info/viz/lifestyle/)[/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336" align="aligncenter" width="608"]<그림4> Python의 networkx 패키지를 활용해 <<지암일기>> 등장인물 사이의 친소 관계를 촌수 단위의 네트워크로 표현한 <<지암일기>> 인물(Person) 데이터 시각화 결과물(http://jiamdiary.info/viz/person/)[/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337" align="aligncenter" width="609"]<그림5> Leaflet.js를 활용해 <<지암일기>>에 언급된 공간 데이터를 전자지도로 표현한 <<지암일기>> 공간(Place) 데이터 시각화 결과물 (http://jiamdiary.info/viz/place/)[/caption] 위의 예시와 같이 디지털 환경에서 비선형적 형식으로 정보와 지식을 표현하는 ‘전자글쓰기’는 아날로그 환경에서 전통적으로 이루어져 온 선형적 형식의 지식 기술로서의 ‘글쓰기’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두 가지 요소는 서로를 보완하는 것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컨대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굳이 글로 쓰지 않고, 이렇게 해서 보여줄 수 있으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더욱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을텐데’와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데이터 기반의 연구는 시각적 미디어를 입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정보의 직관적 제시를 가능하게 해주는데, 그와 같은 맥락에서 ‘어떻게 표현해볼까?’와 같은 질문은 인문학 연구의 창의성을 증폭시킨다. 역사학 방면의 데이터를 대상으로 시각화를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실제 구현하는 과정에 참여해본 경험은, 이후 현재까지도 여러 연구를 기획하는 데 있어서 다채로운 영감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4. 디지털 역사학의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한문학을 기초 전공으로 한 탓에 한문으로 된 자료를 더듬는 수준이나마 조금은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로 인해 조선시대 자료를 상대적으로 자주 접해 왔기 때문인지, 자연스레 내가 가지게 된 최우선의 관심사는 ‘조선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조선시대’는 나의 관심 분야이지 전공 영역이 아니다. 나는 역사학 전공자가 아니기에 세부 전공에 대한 전문적 이해를 도모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지도 않고, 한편으로 디지털 인문학 방면의 연구를 함께 수행하고 있기에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역사학 연구자들과 비교하면 해당 방면의 공부 부담 또한 덜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자유로움을 학술 연구에 있어서의 창의성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항상 하지만 역시나 어려운 것은 실천이 아닐까 싶다. 게으른 천성을 자극하는 요소로서 디지털 방면의 협업 연구를 다각도로 모색하고는 있으나, 국내는 디지털 인문학 연구 인프라가 너무나도 빈약하기에, 그러한 기회를 얻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디지털 환경의 유연함과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역사학 연구가 국내에서 많이 시도되기를 기대하며, 그 연장선상에서 <<지암일기>> 디지털 인문학 연구가 역사학계에 던지는 시사점이 작게나마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