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다락창고를 향한 걸음, 팔청리벽화분 벽화

BoardLang.text_date 2006.04.22 작성자 전호태
다락창고를 향한 걸음, 팔청리벽화분 벽화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창고에는 상반되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보물과 잡동사니. 삶의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당장은 쓸모없지만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것들이 집구석에 쌓이다가 문득 한꺼번에 창고로 옮겨지고는 한다. 창고 여기저기에 더미를 이루고 있는 생활의 흔적덩어리들을 우리는 잡동사니라고 부른다. 부지런히 몸과 머리를 쓴 덕에 생긴 재물, 전쟁이나 약탈, 수탈을 통해 모은 보화들이 넘쳐나 일상적인 생활공간이나 업무공간에 두기 어려우면 창고에 두게 된다. 당장은 사용되지 않지만 큰 가치를 지닌 소중한 물건들인 까닭에 창고 문은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지고 자물쇠가 채워진다. 보물이던 잡동사니이던 창고에 두어지는 것은 당장은 쓰이지 않지만, 모아둘 가치는 있는 것들이다.

평안남도 대동군 팔청리의 고구려 벽화고분은 도굴과 자연함몰로 말미암아 무덤칸 천장부가 사라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발굴조사 당시 앞방과 널방을 잇는 길이 넓고 이 통로 사이에 4각 돌기둥이 설치된 무덤칸 내부에는 곳곳에 벽화가 남아 있었다. 회벽 위에 그려진 그림들은 생활풍속 및 사신과 관련된 제재들이었다. 앞방에는 무덤주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출행도와 육고, 주인공부부의 실내생활 장면을 묘사하였고, 사이길 동벽에는 고기창고를 나타냈다. 널방에는 다락창고, 전각, 청룡, 외양간, 인물, 무덤주인의 실내생활 모습을 표현하였다. 조사보고서를 읽던 이들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앞방 동벽 행렬도 중의 교예(較藝)장면과 널방 동벽 한편에 배치된 다락창고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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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팔청리벽화분 벽화의 부경

 

높은 나무기둥을 몇 개 세우고 그 위에 작은 목재가옥을 만들어 올려놓은 이 별난 모습의 건물은 중국의 역사서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경(桴京)이다.『삼국지』편집자는 고구려인의 생활양식을 묘사하면서‘집마다 조그만 창고인 부경이 설치되어 있다’고 전한다. 일종의 고상식(高床式) 가옥 형태인 부경이 벽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후 1963년 집안의 마선구1호분, 1978년 강서의 덕흥리벽화분 벽화에서 같은 모습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고구려인이 마을을 이루어 살던 곳에서는 어디나 본채 곁에 부경을 세웠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팔청리벽화분의 벽화에도 나와 있듯이 부경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본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실재 덕흥리벽화분 벽화에는 하인이 부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역사서에는 부경의 구체적인 용도에 대한 기록이 전하지 않지만 본채에는 관청의 경우 주요한 물품이, 일반 민가에서는 여분의 곡식과 다음해 농사에 쓸 씨앗이 보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집안이나 환인일대의 민가에 남아 있는 옥미창(玉米倉), 포미창(包米倉)으로도 불리는 고상식 창고도 본래는 농사씨앗 보관용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하는데, 아마도 천 오백여년 전부터 이 지역에 전해져 내려오던 관습에서 비롯된 행위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사료용 옥수수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쓰이기도 하고, 농사에 쓰이는 온갖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곳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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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중국 집안 민가의 고상식 창고

천 수백 년전의 귀중한 물건들이 보관된 창고로 유명한 일본의 정창원(正倉院)도 고상식 창고로 그 외형은 팔청리벽화분이나 덕흥리벽화분 벽화에 보이는 고구려의 부경과 같다. 고상식 건물이 남방의 수상 주거문화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대사(東大寺)라는 사원의 부속건물인 정창원의 유래는 아무래도 북방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라, 헤이안시대 일본의 주요 관청과 사원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주요물품 보관창고로서의 정창들은 대개의 경우 정창원 건물과 같은 형태로 지어졌을 것이고, 본채의 부속 창고로 세워졌다는 사실까지 아울러 고려하면 고구려인이 부경을 세우던 관습이 일본에 전해진 결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늘날 집안이나 환인의 농촌지역에 남아 전하는 다락창고들은 건물을 짓는 자재로 목재 대신 잔돌과 흙, 시멘트가 쓰이기도 하고, 건물을 받치는 기둥 사이에도 담이 둘러져 이 공간이 가축의 우리로 쓰이거나 여분의 창고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변두리 농촌지역에도 불어오는 중국의 근대화 바람이 이천 여년을 버티어 온 고구려 생활양식의 흔적을 점차 지워나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