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신화시대의 하늘세계 ①,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二頭鳥

BoardLang.text_date 2006.05.24 작성자 전호태

신화시대의 하늘세계 ①,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二頭鳥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칠월칠석 장생전에서

한밤중에 둘이 몰래 약속했네.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자고.

당의 시인 백거이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長恨歌’의 한 부분이다. 양귀비는 開元之治로 유명한 당 현종의 치세를 天寶大亂으로 마무리 짓게 한 인물이다. 盛唐時代를 연 현명한 군주 현종이 아들 李帽의 비로 궁에 들어온 양옥환을 자신의 애인으로 삼으면서 세계제국 당이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으니, 현종과 양귀비 두 사람의 만남과 사랑, 이별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역사적 드라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익조는 각각 날개가 하나뿐이어서 둘이 한 몸이 되어야 날 수가 있다는 전설상의 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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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중국 산서 이석마무장2호한묘 화상의 比翼鳥

중국의 고대 기서 『산해경』에는 比翼의 靑鳥와 赤鳥가 있다고 하며, 비익조의 본래 이름은 蠻蠻이라고 한다. 물오리 같이 생긴 만만은 날개와 눈이 하나씩이어서 두 마리가 몸을 합쳐야만 날 수 있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세상에 물난리가 났다고 한다. 대홍수를 일으키는 새가 시인 백거이의 노래 속에서는 떨어질 수 없는 연인의 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로 재해석된 셈이다. 언뜻 보면 태평성대에 나타난다는 가지가 얽힌 두 나무 연리지가 남녀 간의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된 것보다 더 큰 해석의 전변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구려 덕흥리벽화분 앞방 천장고임은 60여 개의 별자리와 온갖 하늘세계의 존재들로 장식되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 넓다고 할 수 없는 화면을 가득 채운 해와 달, 별자리, 신비한 새와 짐승들, 산야를 넘나들며 사냥하는 사람들, 일 년에 한 번뿐인 만남을 아쉬워하며 헤어지는 순간을 맞이한 견우와 직녀, 이 둘 사이를 가로지르며 하늘 이편과 저편을 나누는 별의 강. 아마 5세기에 제작된 어떤 고분벽화에서도 이처럼 상상력이 넘치고 정감이 가득한 장면 모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벽화로 남은 하늘세계의 온갖 생명들 곁에는 거의 예외 없이 墨書로 이력이 쓰여 있는데, 천장고임 동쪽 한구석에 그려진 『산해경』의 비익조에 해당하는 二頭鳥 곁에도 이름과 특징이 두 줄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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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고구려 덕흥리벽화분 벽화의 靑陽之鳥
‘靑陽之鳥 一身兩頭’. 만만처럼 물오리의 머리를 지닌 새 ‘청양’의 ‘陽’은 『산해경』의‘赤’을 대신한 것일 수도 있고 본래의 글자 그대로일 수도 있지만,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청양’은 음양조화를 염두에 둔 결과물이다. 맑을 청을 앞에 둔 글자 조합 淸陽을 봄을 대신하는 단어로 쓰는 점까지 함께 떠올린다면 벽화 속 하늘세계의 새 ‘청양’은 우주를 이루는 서로 다른 기운 음과 양의 조화를 예고하는 존재로 그려졌을 수도 있다.

백거이도 노래했듯이 칠월칠석의 견우, 직녀나, 비익조인 청조와 적조, 서로를 얽는 두 나무의 가지들은 하나 같이 사랑에 목말라 하고, 사랑을 나누어 하나 됨으로써 떨어져 지내는 동안 느꼈던 그리움을 해소한다. 마치 긴 겨울 가뭄 끝에 봄의 단비를 맞는 산천초목, 농부, 가축, 농작물들처럼 허겁지겁 하늘이 내리는 생명의 기운을 받아들인다. 물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말라붙어 가던 강줄기로 하여금 소리를 내며 흐르는 강이 되게 한다. 논밭은 질펀해지고 초목은 생기를 되찾는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생명의 봄비라도 강물이 둑을 차고 넘치도록 쏟아져 내리게 되면, 단비는 폭우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사람도 짐승도 초목도 싫어하고 미워하는 고약한 자연현상으로 여겨지게 된다. 해갈을 기대했는데, 물난리의 원인이 되고 말았으니 고맙게 여겨지고 아름답게 그려질리 만무하다. 지나친 사랑이 견우, 직녀로 하여금 칠월칠석에만 만나게 만들었듯이, 이성을 잃게 한 唐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 국가적 재난과 한 쪽의 죽음으로 맞는 이별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맛보게 하였다. 홀로 날 수 없는 외날개의 새 청조와 적조의 하나 됨에 대한 해석도 음양의 만남이 가져올 수 있는 두 갈래 결말이 늘 염두에 두어지고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덕흥리벽화분의 머리 둘 달린 새 청양이 천장고임 한 편 구석에 조용히 선 채 하늘과 땅을 채운 만물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 이유도 이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