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앗간에서의 하루, 평양역전벽화분 벽화 전호태(고대사분과) 갈돌은 신석기시대의 식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가장 주요한 생활유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불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씨앗을 가루로 만들어 익혀 먹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단단한 씨앗 여러 개를 한꺼번에 쉽게 가루로 만들기 위해 고안된 도구가 바로 갈돌이다. 이 갈돌의 원리를 획기적으로 개량한 것이 맷돌이다. 맷돌과 함께 사용되었던 절구 역시 씨앗류를 가루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쓰임새가 높았다. 식량생산이 본격화 하고 추수한 곡식 낱알을 한꺼번에 대량으로 갈거나 찧어 가루로 만들 필요가 생기자 맷돌이나 절구의 개량이 시도되었다. 연자맷돌처럼 맷돌을 대형화 하기도 하고, 디딜방아와 같이 절구의 원리를 활용한 새로운 도구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사람 대신 소나 말을 이용해 맷돌을 돌리는가 하면, 수력이나 풍력을 이용해 방아 찧기를 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곡식가루가 주식에서 지니는 비중이 커질수록 전근대 농업사회에서 대형 방아나 맷돌의 사회적 중요성은 높아졌다. 가장 이른 시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 하나인 평양역전벽화분은 무덤칸의 평면구조와 바닥시설만 알 수 있는 상태로 발굴되었다. 도굴과 의도적인 파괴의 손길을 입은 듯 널방은 벽체와 천장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벽돌로 무덤칸 바닥을 마감한 이 무덤이 벽화고분이라는 사실은 앞방의 벽체 부분에 남아 있는 생활풍속계 벽화제재를 통해서였다. 앞방의 서쪽 감 입구기둥에 묘사된 문지기 장수의 모습과 무덤주인 장방의 끝자락 장식, 감의 바깥 서벽 남측과 북측의 도끼를 든 의장병들, 앞방 남벽 동쪽과 서쪽의 고취악대와 기마대열의 일부, 앞방 동벽에 디딜방아와 부엌, 동쪽 감 동벽의 수레바퀴 등으로 보아 애초에 앞방과 널방에는 안악3호분이나 태성리1호분에서와 같이 고구려인의 생활풍속을 알게 하는 다양한 장면이 묘사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벽화는 손상이 심하여 무덤발굴과 함께 흔적이 사라지기 시작하였고, 현재는 벽화의 모사선화만 남아 전한다. 평양역전벽화분의 앞방 벽에 남아 있던 다양한 벽화제재 가운데 앞방 동벽에 그려졌던 부엌과 발방아 찧는 모습은 보존상태가 극히 불량하여 모사선화로도 그 형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림1) 평양역전벽화분: 방앗간 사람 머리 부분의 위치와 디딜방아의 기본구조를 알게 하는 외관선의 흐름을 통해 본래의 벽화에는 한 사람은 디딜방아의 뒤쪽 발판을 밟고 있고, 전혀 형체가 남지 않은 다른 한 사람은 디딜방아 공이 부분 쪽에 쪼그리고 앉아 곡식을 한줌씩 확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4~5세기 당시 평양일대의 주민들이 사용하던 디딜방아의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법은 357년의 묵서명을 지니고 있는 안악3호분의 방앗간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림2) 안악3호분 벽화: 방앗간 안악3호분 동쪽 곁방 서면 북측에 그려진 방앗간 건물 안에는 두 사람의 시녀가 디딜방아를 이용하여 곡식을 찧고 있다. 한 사람의 시녀는 허리를 약간 구부린 자세로 오른쪽 발은 약간 내리고 왼쪽 발은 방아의 대에 올려놓은 두 팔을 들어 흔들며 앞의 시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 듯이 보이며 다른 한 시녀는 방아의 공이 쪽에 곁으로 서서 두 손에 체로 보이는 도구를 든 채 앞의 시녀의 말을 듣는 듯하다. 뒤의 시녀는 혹 체로 곡식알을 일면서 돌조각이나 모래를 골라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방아 공이 아래 확의 둘레는 네모지고 구멍은 둥글다. 체를 든 시녀의 머리 앞에 붉은 글씨로 대(碓)라고 써 있다. 안악3호분과 약수리벽화분 벽화에 보이는 것과 같은 디딜방아는 30년 전 만해도 우리네 농촌마을에서 흔히 보던 것이다. 지금도 시골 깊숙한 곳에서는 간혹 농가의 부엌과 외양간에 잇댄 공간에 자리 잡고 있는 디딜방아를 볼 수 있다. 옛날처럼 곡식알 찧기에 방아가 쓰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디딜방아가 농촌마을에는 적어도 몇 집에 하나씩은 설치되어 있을 정도로 생활에 긴요한 도구였음을 재삼 확인시켜주는 실물적 증거라고 하겠다. 안악3호분 벽화 방앗간 안에서 기분 좋게 대화를 나누며 곡식을 일고, 방아 찧는 듯이 보이는 두 시녀의 모습이 시사하듯이 하루의 먹거리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방앗간에서의 일은 즐겁다. 갓 찧은 곡식으로 짓는 한 끼 밥이나 죽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은 생각만 해도 기분을 좋게 만들지 않는가. 선으로만 남은 평양역전벽화분의 방앗간 그림의 등장인물들도 처음 벽화로 그려졌을 때에는 이런 것을 연상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