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는 즐거워] 중국 환인 집안 답사기 ⑤권순홍(고대사분과) 다녀온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는 답사기를 아직도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필자의 게으름 탓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 기억을 더듬어 본다. 이번 답사의 목적은 고구려의 중심지였던 환인과 집안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적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비록 그 의도에는 문제가 많지만, 2000년대 중반 이래 동북공정의 영향으로 고구려관련 유적들이 상당히 정비되고 있는 점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갈 때마다 상황이 달라지고 있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사실 오래고 넓었던 고구려의 흔적을 찾아보기에는 4박 5일이라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 와중에 마지막 날은 귀국일정으로 심양에 머물게 되었다. 사실 중국 동북지역을 답사하다보면 이렇게 심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집안으로 바로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항공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중국 동북의 관문인 심양을 경유할 수밖에 없고, 일정상 첫날 혹은 마지막 날 심양답사에 일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번 답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지막 밤은 언제나 아쉬운 법. 술로 아쉬움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다가 느지막이 일어나 조죽으로 해장을 했다. 중국 호텔 조식에 조죽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랄까. 해장은 역시 조죽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일정상 심양에 머무는 경우에 주로 답사코스로 채택되는 곳은 심양고궁이다. 이곳은 청 초기에 건설된 황궁으로, 청이 1644년에 북경으로 천도하기 전, 약 8년간 사용되었는데, 심양시 중심가에 있고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아서 공항 출발 전 들르기에 안성맞춤이다. 건설기간이 13년이었던 것에 비해 사용기간은 상당히 짧았지만, 심양의 주요 관광지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니 본전(?)은 찾았다고 해야 할까. [사진1] 심양고궁 대정전 [사진2] 심양고궁 [사진3] 심양고궁 앞 아침 9시가 조금 지나서 도착한 고궁 앞에는 각종 기념품과 군것질거리 등을 파는 상점들의 영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고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주황빛의 기와들이지만, 그보다도 주목해야할 것은 현판들이다. 주로 파란 바탕에 금칠을 했는데, 오른편에는 한자를 왼편에는 만주문자를 적고 있다. 북경의 자금성 현판이 반대로 오른편에 만주문자를, 왼편에 한자를 적은 것과는 다르다. 문자의 우열이 반영된 것인지. 흥미롭다. 모든 현판이 이렇게 한자와 만주글자가 함께 적혀 있다. 아쉽게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궁 밖의 하마비에는 한자와 만주글자 외에도 3가지 문자가 더 적혀 있어 총 5가지 언어로 “말에서 내리라”고 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글로벌시티가 아닌가. [사진4] 심양고궁 현판 심양고궁 안에 또 하나 눈에 띄는 장소는 바로 문소각이다. 자금성의 문연각, 원명원의 문원각, 열하 피서 산장의 문진각과 함께 청대 사고전서 첫 4부를 수장하기 위해 지은 장서각이다. 사고전서는 청 건륭제 때 고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약 3,500 여종의 저작 8만 여권을 모아 엮은 어마어마한 총서이다. 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자주 만나던 그 무지막지하게 꽂혀 있던 사고전서가 보관되던 곳이라니. 어쩐지 좀 딱딱하고 갑갑해 보인다. 영인되고 디지털화된 사고전서는 전통시기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가. 나오다가도 뒤돌아 다시 보게 된다. [사진5] 심양고궁 문소각 심양고궁을 한 시간 남짓 둘러보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이 혹시 서점에 있진 않을까. 대형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사실 중국에 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화서점을 들러보지만, 한국에서도 전공서적들이 서점에 잘 없듯이 이곳에서도 반가운 녀석들을 만나긴 쉽지 않다. 여지없이 이번에도 실패하고 나니, 귀국 전 마지막 일정만 남게 되었다. 서탑은 심양 내 코리아타운이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꽤나 번화하고 한국 가게들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상권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래도 엔젤리너스커피나 미스터피자 같은 가게들이 즐비한 거로 봐서는 여전히 이곳의 한국인들에게는 쉼터이지 않을까. 재밌는 것은 롯데리아와 강남노래방 사이에 평양 무지개관이 있다는 점이다. 쉽게 보기 참 어려운 광경이다. 이곳에는 한국 가게들 뿐 아니라 북한 식당도 상당히 많은데, 중국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라니 그 수를 짐작할 만하다. 북한 식당들은 꼭 식당 문 앞에 여성 한 명 내지 두 명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와 있는데, 이미 눈치 챘는지 우리 일행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간단한 서탑 구경을 끝으로 4박 5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한 뒤, 오후 1시 반쯤 공항으로 출발했다. 중국식당의 냄새가 익숙해질 때쯤이면 이렇게 돌아가곤 한다. 매번 심양공항 면세점에서 선물을 고민하다가 조그만 판다 인형을 사가곤 했다. 2년 전 이 답사 이후로 똑같은 인형이 2개가 더 늘었다. 앞으로 몇 개가 더 늘까. 답사는 언제나 즐겁다. 다음 답사를 기다리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