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환인·집안답사기③] 고구려 유적지 답사기 권순홍(고대사분과) 여름에 가까울수록 뜨거운 태양을 받으면서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벌컥벌컥 꿀꺽꿀꺽 시원한 맥주 한잔 키이야아~ 들이키면 더위와 피곤이 달아날 것만 같은,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은 그 맛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적어도 4박 5일간 우리가 들어선 식당이나 가게에서는 맥주를 냉장보관하지 않아서 대부분 미지근하거나 심지어는 약간 뜨끈하기까지 했다. 맥주 맛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한국 맥주가 맛이 없어서 차게 마실 뿐, 원래 맥주는 차지 않게 마셔야 한다지만, 맥주는 역시 키이야아~ 시원해야 제 맛 아닌가. 전날 밤에도 어김없이 그 미지근한 맥주를 몇 병 마신 후에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부터 서둘렀다. 4박 5일 중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아침 7시 25분. 호텔을 나섰다. 집안시 동쪽으로는 계속 도로 상태가 엉망이었다. 덜컹덜컹. 전날 과음했더라면, 버스에 전이 몇 장 부쳐졌으리라. 압록강을 따라 동북쪽으로 거슬러 오르는데, 고구려 ‘적석’의 DNA가 남은 것인지 길 왼편의 바위산에는 채석의 흔적들이 많이도 보였다. 8시가 조금 넘어서야 첫 번째 목적지인 장천에 도착했다. 장천고분군은 석실봉토분들이 집중 분포한 곳으로, 모두 강상에 자리하며, 기단이 있는 경우(장천 3호분)도 있었다. 주로 5세기 정도로 편년된다고 하니, 당시의 국내성 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이지 않을까. [사진1] 장천고분군 ⓒ권순홍 장천을 터닝 포인트 삼아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 10분 후인 아침 9시. 국동대혈 입구에 도착했다. 경험자가 없어서 여기가 맞는지 긴가민가한 상태로 일단 걷기 시작했다. 아무런 안내 표지도 없었다. 불안했다. 계곡 보수(?) 공사로 여러 공사 자재들이 쌓여 있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두둥!!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가파르고 너른 길, 오른쪽은 좁지만 평탄한 길. 어디로 갈 것이냐. 핸드폰도 안 터져 나누어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사료 상에는 국동대혈에 가마를 타고 갔다는 데 왼쪽 길은 그러기에 너무 가파른거 아니냐, 오른쪽이 맞다”, “오른쪽 길은 너무 좁은데다가 저 산은 동굴이 있을만한 산이 아니다. 왼쪽이 맞다” 농담반 진담반의 가벼운 논쟁 끝에 왼쪽 길을 택했다. 그러나 확신은 여전히 없는 상태. 가파른 경사는 20여분 오르는 동안 계속되었고, “여기서 쉬고 있을테니 있으면 소리쳐라” 슬슬 낙오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결국 선발대는 가파른 경사 고개를 넘어가봤지만, 동굴은 안 보인다며 이 길이 아닌가보다고 소리쳤다. “거봐! 아까 그 길이었다니까?!” 터덜터덜 예의 갈림길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이게 왠열!! 왼쪽 길이 맞다며 현지인들이 우리가 방금 내려온 그 길로 올라간다. 수신께서 우릴 저버리신 듯. 국동대혈은 다음 기회에. 50분간의 산행을 마치고 집안시내를 향해 다시 서쪽으로 향하였다. 10시 5분. 도중의 작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모두루묘를 확인하고 다시 차에 오르려는데, 길가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 하얀 플라스틱 통이 눈에 들어왔다. 포두주란다. 한 통 사서 작은 물병에 나누어 담으면 한 병씩 돌고도 족히 남을 양이었다. 답사대장은 주저없이 고민없이 샀다. [사진2] 모두루묘 ⓒ권순홍 [사진3] 포도주 ⓒ권순홍 10시 25분. 집안박물관에 도착하여 1시간 정도 둘러보았다. 역시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유물도 많고(특히 태왕릉 출토 유물이 많다) 전시도 비교적 잘 해 놓았지만, 감시하며 따라붙는 직원이 옥의 티였다. 도록이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포도주를 곁들인 우아한 점심 식사 후, 12시 30분. 장군총에 도착했다. 역시 지금까지 봐왔던 무덤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단지 규모뿐만 아니라, 칼로 두부 썬 듯 날카롭고 거대한 돌들을 조각 맞추듯 짜 맞춘 축조기술, 카리스마를 내뿜는듯한 구도는 가히 동방의 피라미드라 할만 했다. “아 여기서는 단체사진 한방 박아야지” 잊고 있던 단체사진을 떠올리게 할 만큼 매력이 있었다. 장군총은 1,5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그렇게 있었다. 그 세월의 무게인지, 뒤쪽으로 돌아가니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다. 4년 전, 처음 왔을 때보다 더 힘이 든 듯 주춤한 모습이 안쓰럽다. [사진4] 장군총 ⓒ권순홍 13시 5분. 광개토왕비에 도착했다. 높은 문지방을 어이쿠 넘어 비각 안으로 들어서니, 먼지 자욱한 광개토왕비가 서 있었다. 바위 홈들에 먼지가 쌓이니 오히려 글자들이 잘 보이는 것 같았다. 보이는 부분을 괜히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바닥에는 비 가까이로 동전들이 던져져 있었다. 한국동전도 꽤 있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이나 광개토왕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공원 안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면 태왕릉이 있다. 많이 무너졌지만, 남은 기단과 호석 등을 보면, 장군총과 규모나 축조방식 등이 비슷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4년 전에는 묘실까지 철제 계단을 만들어 놓고 그 밑을 주변의 무덤돌들을 끌어 모아 지지했었는데, 이제 와보니 철제 계단 대신 돌계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 당시 그 철제 계단이 내 눈총만 받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진5] 태왕릉 ⓒ권순홍 13시 55분. 공원을 나와, 큰 길과 작은 하천을 건너 몇 채의 집을 지나고 나면, 임강총에 도착한다. 이 무덤은 규모면에서는 태왕릉 이상으로 보이지만, 기단석이 보이지 않았고 기왕편이 많았다. 무례와 몇 방울의 땀을 무릅쓰고 임강총을 오르니 집안의 전체 공간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차로 돌아와 포도주로 목을 축인 후, 다음 장소로 향했다. [사진6] 임강총에서 본 집안 전경 ⓒ권순홍 14시 20분. 오회분 앞에 도착했다. 이제 두시 반도 안 된 이른 시간에 철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지만, 다행히 현지가이드의 꽌시 덕에 들어갈 수 있었다. 끝내 왜 닫혀 있었던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께름칙했다. 다음 날의 복선이었을까. 오회묘 5호분 안의 습기는 4년 전보다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 당시에는 입구부터 벽면에 물방울이 맺힐 정도로 습기가 심했으나 지금은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벽화는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채색부분에는 곰팡이 같은 하얀 물질이 끼어 있었다. [사진7] 오회묘 5호분 ⓒ권순홍 우산하 고분군 내에 산재해 있는 적석총과 석실봉토분 몇 기를 확인한 후, 15시 15분. 산성자산성으로 출발했다. 차로 약 10분 후, 산성자산성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가운데에 혹처럼 튀어나온 곳이 있었다. 예전에 할아버지 댁에 가면 꼭 이런 모양의 재떨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여하튼 가운데의 혹 같은 곳에는 점장대와 병영터가 위치해 있었다. 산성 안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4년 전에는 산성 안 깊숙이 이 점장대 바로 아래에 과일 파는 아주머니가 계시기도 했는데, 이제는 유적공원화가 많이 진행되어 산성 복원도 꽤 진행되었고, 경내 정비도 많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다만, 성내에 아직 농사 짓는 민가가 한 채 남아 있었다. 마침 성내 궁전터로 가는 도중에 그 민가 있었는데, 공교롭게 그 민가의 일소 한 마리가 우리의 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좀 비켜주라” 통역자가 없어서 우린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궁전터에는 주춧돌로 보이는 돌들이 건물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사진8] 2011년 과일아줌마 ⓒ권순홍 [사진9] 산성자산성 ⓒ권순홍 [사진10] 산성하고분군 ⓒ권순홍 16시 40분. 산성 밑 국립묘지 같은 분위기의 산성하 고분군까지 둘러본 후, 전날 보지 못했던 천추총과 칠성산 211호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 차로 약 15분 후, 16시 55분. 칠성산 211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로 문이 닫혀있었다. 멘붕이 오려는 찰나,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관리인 집을 안다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수신이 국동대혈을 안 보여준게 미안하셨는지, 아까는 포도주를 만나게 해주시더니 이젠 이런 우연을 만들어주셨다. 얼마 후 그 은인을 따라갔던 현지가이드가 다른 할머니와 돌아왔다. 그 분이 관리인이었다. 보고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시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지만, 언제 또 와보랴. 칠성산 211호의 크기는 전날 본 서대묘와 비슷해 보였다. 와편이 많았고, 기단석은 보이지 않았다. 적석들은 전부 강돌이었는데, 문득 이렇게 많은 강돌이 적석총에 쓰였다면, 당시 압록강변의 경관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천추총은 강상이 아닌 평지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기단석과 호석이 보인다. 다만, 장군총과 태왕릉에서 돌들이 밀리지 않게 하기 위해 밑돌 윗면의 바깥쪽을 난간처럼 파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17시 40분. 이제 오늘의 남은 일정은 저녁식사뿐이었다. [사진11] 칠성산 211호 ⓒ권순홍 [사진12] 천추총 ⓒ권순홍 [사진13] 홈 비교(장군총, 태왕릉, 천추총 순) ⓒ권순홍 그날 밤도 어김없이 미지근한 맥주라도 한 잔 하러 길을 나섰다. 마침 저녁 식사를 한 식당이 옛 국내성의 동벽과 남벽이 만나는 지점 부근이라서, 소화 시킬 겸 산책 삼아 국내성벽 따라 반 바퀴 정도 돌고 난 후, 압록강 변에 자리 잡기로 했다. 국내성의 남벽을 따라 걷다가 성벽을 건너는 목조다리를 건너 북상하니 고구려유지공원이 나왔다. 공원에서는 음악에 맞춰 사교댄스가 한창이었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을 넋 놓고 보다가 “저기 뭐가 있다”라는 소리에 눈길을 거두었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 대형건물지를 뒤로 하고 다시 국내성 서문을 나가 통구하변을 따라 가서 압록강에 닿았다. 이 강변길에는 달빛을 받으며 산책과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간혹 팔짱을 끼고 데이트하는 커플도 눈에 보였는데, 저 강건너가 북한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14] 국내성 ⓒ권순홍 [사진15] 고구려유지공원 ⓒ권순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