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13-14世紀 麗蒙 接境地域 高麗人 勢力 硏究』(2017. 08.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오기승(중세1분과) 본래 필자가 고려시대 대외관계사 관심을 가지면서 먼저 주목했던 것은 공민왕 시기였다. 그 결과 석사논문은 공민왕대 고려와 당시 요동 지역에 할거하던 동녕부 사이에 있었던 무력충돌을 그 주제로 하게 되었다. 공민왕대의 동녕부는 여몽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 중에서 가장 나중 시기에 등장한 세력이다. 그러한 관계로 그 존재양태와 성립배경을 짚어나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 앞 시기를 살필 수밖에 없게 되고, 이 부분을 살피다 보면 다시 좀 더 앞으로 거슬러가게 된다. 그렇게 연구의 대상 영역이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 시간적으로는 13-14세기, 공간적으로는 요동과 한반도 북부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당대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과 관련된 기존 연구는 특정 시기나 세력만을 다루는 분절적인 것이거나 전체상을 지나치게 소략하게 다룬 것들이 많았기에 이를 극복하는 고찰을 목적하였으며, 고려와 몽골제국이라는 두 나라의 관계와 각국의 내부에서 이들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이 가지는 의미와 이들이 수행한 전체적인 역할을 주목하여 밝히고자 하였다. 13세기 여몽전쟁 발발 이후, 전쟁 와중에 고려 정부의 지배에서 이탈된 고려인들이 다수 발생하게 되었다. 이들 중에는 몽골군의 인신에 대한 약탈로 인한 타율적 이탈자도 있으나, 자의적으로 고려에서 이탈한 투몽자들도 존재하고 있었다. 몽골제국은 이들 투몽 집단의 주도자들에게 직위와 권력을 부여하여 이탈한 고려인들의 집단을 관할하게 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반도 북부에서 요동에 걸친 여몽 간 접경지역에 고려인 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은 설치과정과 영역 측면에서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몽골제국이 고려의 영역을 바치며 항복했던 세력들을 병탄하여 요동의 행정 권역 아래에 두었던 한반도 북부 지역의 고려인 세력이며, 다른 하나는 압록강 너머로 흘러든 고려인들이 투몽 세력가 등을 중심으로 집단화된 요동 지역의 고려인 세력이다. 전자에 속하는 세력은 고려의 북방 영역을 떼어내어 설치한 동녕부와 쌍성총관부이다. 후자에 속하는 세력들로는 고려인 집단을 이끌고 투몽했던 홍복원을 시작으로 하는 홍씨 세력과 몽골제국에 인질로 보내졌다가 투몽한 고려 왕족 왕준을 시작으로 하는 왕씨 세력을 먼저 들 수 있으며, 심양왕 및 기사인테무르의 기씨 동녕부를 여기에 추가할 수 있다. 한반도 북부의 동녕부와 쌍성총관부는 그 영역이 고려 본국의 북방 방어지대를 장악하고 있었기에 몽골제국에 대한 고려의 대항력을 저감시키는 위치에 있었다. 또 그 한편으로는 당시 요동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던 제국 내 종왕 세력들의 영역권을 고려 본국과 물리적으로 분리하면서, 종왕들의 세력권이 한반도 방면으로 확장되는 것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후 동녕부는 고려와 몽골제국의 관계가 안정되면서 그 영역이 고려에 반환되었으나, 일부 소속 인원은 요동으로 옮겨가 정착하였다. 한편 쌍성총관부는 설치 초기를 제외하면 고려와의 긴장이 완화된 상태로 장기간 유지되었으며, 이후 공민왕대에 고려가 이를 무력으로 탈환하였다. [그림1] 『고려사』홍복원 열전 요동 고려인 세력 중 가장 먼저 몽골제국의 공인을 받아 세력화된 것은 홍복원의 세력이었다. 그는 여몽전쟁 초기에 몽골에 항복하여, 몽골에 솔선하여 귀부했다는 배경을 바탕으로 요동 지역 고려인에 대한 관할권을 받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그 세력이 커지면서 견제의 필요성이 발생하자, 왕준이 고려인에 대한 통할권을 별도로 부여받으면서 새로운 고려인 세력가로 등장하였다. 이후 양 세력 사이에서는 한동안 분쟁이 이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상호 분쟁 와중에도 각각 몽골군에 소속되어 여몽전쟁 종군이나 일본 원정 참여 등의 군공을 쌓으며 점차 입지를 확대하였으며, 13세기 말 나얀의 난에서 크게 활약하면서 14세기 초까지 요동 고려인 세력은 최고의 성세를 맞게 되었다. 각 가문의 요인들은 고려군민총관직 및 만호직을 세습하면서 요동 지역의 고려인들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요동 지역에 새로이 설치된 원 제국 행성체계의 고위직을 역임하며 그 운영 핵심에서 활약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들 세력들은 고려 본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한편으로, 요동 지역에서 인호를 장악하고 제국 중앙 측의 군사력으로 복무하면서 동방 3왕가와 같은 종왕 세력에 대한 견제역으로도 기능하였다. 그러나 원 무종 대 이후 행성체계의 요동 내 통제력 강화와 반비례하여 요동 고려인 세력의 위상은 쇠퇴하기 시작하는데, 특히 양도내전에서 고려계 만호부가 다울라트 샤 진영에 참가하였다가 패배한 이후 위상이 크게 축소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위상 하락은 기존 고려계 총관부 및 만호부가 행성체계의 통제에 종속되면서 고려 본국이나 종왕 세력에 대한 견제역의 주도권이 행성체계로 이동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다. 심양왕은 홍씨 세력 및 종왕 세력에 대한 견제를 위해 설치되었다. 그러나 심왕으로 개봉된 이후 유명무실한 위치에 처한 관계로 심왕옹립운동 및 입성책동 등으로 고려 왕실과 대립하였으며 이후 소멸하였다. 기씨 동녕부는 원이 중원에서 밀려난 뒤 요동에서 기사인테무르가 조직한 할거세력이었다. 그 일족과 정치적 분쟁을 겪었던 공민왕은 이를 자신의 국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여 요동으로 원정군을 보내 해당 세력을 해체시켰으며, 이로서 요동 고려인 세력은 종말을 맞게 되었다. [그림2] 공민왕대의 기사인테무르 동녕부 정벌 관련된 『고려사』지용수 열전 기사 고려인 세력이 부침을 겪은 13-14세기 동안 한반도 북부 및 요동의 고려인 세력들과 고려 본국 사이에서는 대립과 소강이 반복되었으며, 각 고려인 세력들 사이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상대에 대한 우위 확보 수단으로 제국에 대한 각각의 공헌 외에 제국 중앙 인사와의 밀착성에도 크게 의존하였으며, 이를 통해 제국 체제 질서 내에서 부여되는 서열상의 우위를 확보하려 했다. 다만 이러한 세력 간 긴장관계와는 별개로 요동 지역의 고려인 세력가나 그 일족은 고려 본국 출신의 개인들에게 후원이나 편의, 혹은 개인적 교류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세력 간 구도는 14세기 말 고려 본국을 제외한 모든 고려인 세력이 정치체로서의 실체를 잃고 그 구성원 일부가 고려 본국에 흡수되는 결말로 끝나게 된다. 이는 기본적으로 고려국왕과 여타 세력의 영수들이 보유했던 지위의 속성 차이에서 비롯되는 정치적 정체성 차이와 각 세력에 대한 인식의 간극에서 기인한다. 충렬왕 및 그 이후의 고려국왕은 부마고려국왕으로서 정동행성승상을 겸하였다. 즉 이들은 카안의 친족이자 행성체제의 관료로서 제국 내부 질서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제국 외부의 속국인 고려라는 외국의 국왕이라는 중층적 정체성을 가졌다. 반면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의 영수들은 투하령의 주인이거나 행성관료이거나 이를 겸하였는데, 어느 쪽이든 제국 내부 질서에만 속하는 단일한 정치적 정체성을 가졌다. 이 차이는 양자가 주관하는 정치체의 속성에 대한 내부적, 외부적 인식에도 간극을 가져왔다. 또한 정치체로서 가지는 근거지 면에서도 고려인 세력들의 근거지가 행성체계의 통제력 아래 수렴되어 갔던 반면, 고려국왕은 제국 내부 지위만이 아니라 외국의 국왕이라는 정체성을 통해서도 고려 영토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유지했다. 그 결과 제국 내부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가졌던 여타 고려인 세력들은 제국이 붕괴될 때 그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려 본국은 제국 내에서의 지위를 잃더라도 제국 외부에 존재하는 별개의 외국으로서 개별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명을 비롯한 주변국에도 그 입장의 정당성을 인정받았기에, 고려 본국은 원 제국에 속해 있던 한 지방으로서 명에 흡수된 여타 요동 세력들과 달리 독립적인 국가로서 조공책봉의 문법에 기반한 새로운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13-14세기 동안 여몽 접경지역 고려인 세력은 한반도 북부와 요동 지역에서 고려인을 주축으로 유이민을 안집시키며 분립하였다. 이들은 제국 내부적으로 동방 3왕가를 비롯한 종왕 세력을, 외부적으로 고려 본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주로 수행하였다. 이는 고려에서의 이탈자 흡수, 한반도 북부 고려인 세력에 의한 종왕세력과 고려 본국간의 물리적 차단, 행성체계 정착에 대한 요동 고려인 세력의 협조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이들은 일본 원정과 같은 제국의 동방 경략에 동원되는 한편으로, 나얀의 난과 같은 제국 내부에서의 변란 상황에서는 제국 중앙이 그 동방 지역에서 동원할 수 있는 주요 무력집단 중 하나로 기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면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이들 고려인 세력들은 약 100여년에 걸친 기간 동안 몽골제국의 국가전략 진행이라는 대국에 있어 제국 동방의 일각으로서 그 질서의 형성과 유지에 다방면으로 일정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여원관계의 무대에서 고려인 세력을 개별 주체로 조명한 데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으나, 이 때문에 요동 및 주변 지역의 움직임을 조망하는 데 있어서도 해당 지역 고려계 세력의 부침에 주로 천착하고 있다. 그 결과 여원 접경에서 활동했던 고려인 외의 여러 종족, 세력 및 이들과의 상호작용에 대해서는 그 고찰이 미진한 바 있다. 이를 밝히고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더욱 정밀하게 분석해 내는 것은 여러 후고를 통해 완수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