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위논문『元代 중・후기 權臣 정치 연구』(2017.08.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권용철(중세1분과) 필자는 13~14세기의 몽골제국이 어떻게 세계사의 흐름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공부를 진행하다가 몽골제국의 확장과 번영보다 제국이 14세기에 들어서면서 왜 쇠퇴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졌고, 이와 관련된 연구들을 찾아나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들은 홍건적의 활동과 주원장의 등장 배경을 설명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원 제국 내부의 상황을 자세하게 언급한 연구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는 과정은 이미 상세하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필자는 당시 원의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했고, 이에 주목했던 것이 바로 원대 중기와 후기에 정국을 좌지우지했던 ‘權臣’들이었다. 석사학위논문에서 원대 후기의 권신인 엘테무르(燕鐵木兒, El-Temür)와 바얀(伯顏, Bayan)의 집권 과정에 대해서 설명했고, 이의 연장으로 박사학위논문에서는 원대 중기 이후 치열하게 벌어진 제위계승분쟁과 권신의 등장을 연결시켜서 서술하려고 계획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원 武宗의 즉위부터 주원장이 大都를 점령하는 순간(1307~1368)으로 잡았다. 이 논문을 통해 기존의 개설서에서는 아주 개략적으로 처리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시대의 정국을 세밀하게 풀어내고, 권신 정치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14세기 원에서 벌어진 복잡한 분쟁 상황을 그려보고자 했다. 1장에서는 무종이 즉위하게 되는 과정에서 출발하여 仁宗 시기의 권신 테무데르(鐵木迭兒, Temüder)가 출현하여 전횡을 행하는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무종의 즉위는 원대 중기와 후기 제위계승분쟁과 권신 정치 출현의 단초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었기 때문에 이를 서술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무종은 성종 사후의 제위계승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즉위했고, 자신의 즉위에 가장 큰 공을 세운 동생을 황태자로 지명했다. 무종의 이 조치는 무종의 近侍들과 황태자 세력 사이의 갈등을 야기했고, 이는 황태자가 인종으로 즉위하는 과정과 테무데르의 출현 등을 야기하는 요소로 작용했음을 검토했다. 2장에서는 테무데르 이후 등장하는 권신들의 권력이 점점 성장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인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영종은 비록 인종의 적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종 즉위 이후 성립된 계승 질서를 인종이 무시하고 황태자로 책립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통성의 측면에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영종의 즉위 이후에도 황제의 위상이 완벽하게 정립되지 못한 상태에서 권신의 권위가 유지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영종의 시도는 자신이 암살되는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영종이 암살된 이후 태정제가 즉위하면서부터는 태정제의 측근 신료들이 제위계승에 더욱 직접적으로 간여했던 탓에 권신의 권력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었음을 서술했다. 3장에서는 권신 권력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특히 태정제 사후 제위계승내전을 통해서 등장한 엘테무르와 바얀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필자는 엘테무르와 바얀에 대해 ‘全權 權臣’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이전의 다른 권신들에 비해서 엘테무르와 바얀이 조정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최고 직함 등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들은 권신 권력이 성장했던 배경 속에서 등장했고, 제위계승분쟁에서 본인의 군사력을 직접 활용하여 계승분쟁을 주도하면서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렇게 되면서 황제의 권위는 추락했고, 엘테무르 가문과 바얀 가문 사이에서 권신의 지위를 독차지하려는 새로운 분쟁의 양상이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 시기 원 제국을 문종-명종-순제의 황제 재위시기로 구분하기보다는 차라리 ‘엘테무르와 바얀의 집권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했다. 4장에서는 바얀이 몰락하고 순제의 親政이 시작되면서 권력을 장악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출현하게 되는 정국과 황태자 아유시리다라(愛猷識理達臘, Ayushiridara)와 기황후의 內禪 시도를 중심으로 원대 후기의 상황을 검토했다. 바얀의 조카 톡토(脫脫, Toγto)의 도움으로 全權 權臣을 몰아낸 순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확립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1340년대 말까지는 엘테무르, 바얀과 같은 인물이 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톡토가 권력 투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독단적인 정국을 운영하고 1350년대 초에 발생한 홍건적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차츰 이전의 全權 權臣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를 견제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기황후와 황태자의 영향력이 강화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측근을 내세우며 기황후와 황태자는 세 번에 걸쳐 순제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통해 정국을 장악했고, 여기에서 생긴 갈등이 지역 군벌들에게로 확산되면서 군벌들이 권신의 지위에 접근하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때의 혼란은 원 제국 조정이 신흥 주원장 세력에 전혀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 박사학위논문을 통해 원대 중기와 후기 정치사의 주요 특징인 빈번한 제위계승분쟁과 권신들의 출현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원 제국은 북방으로 물러나기 직전까지도 제위계승분쟁으로 인한 여파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었고 테무데르의 등장을 시작으로 확인되는 권신 정치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원 제국 후기의 역사를 기존 논의처럼 민족 갈등이나 계급 갈등을 위주로 설명하는 측면 이외에 중앙 조정 정치의 특성을 통해서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고 본 것이며 제위계승분쟁과 권신의 출현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앞으로 필자는 박사학위논문에서 분석했던 인물, 사건 등을 염두에 두고 이를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의 역사와 어떻게 결부시킬 수 있고 원 제국 정치 양상이 한반도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지를 검토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학위논문 작성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들에서는 고려 충혜왕의 즉위, 퇴위, 폐위 등의 과정을 원의 정국과 연결시켜 분석해 본 바도 있었고, 환관 고용보의 행적에 대해서도 검토한 바가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곡의 가정집에 원 제국의 정치 등을 서술한 기록들을 따로 정리한 논문을 쓰면서 원 제국의 여파가 고려의 기록 곳곳에 반영되어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비록 필자는 원 제국의 궁정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진 ‘동양사’ 연구자로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사와의 연계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한국사에 대한 공부 역시 필요하다는 점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차후 원 제국 중기와 후기의 역사적 사실을 고려와 조선 측의 기록을 통해서 분석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고, 원-고려 관계의 특성을 보여주는 개별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더욱 상세하게 검토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이 부족하다는 점을 항상 인식하고 있고, 부족함을 조금이라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들을 충실히 섭렵하기 위한 노력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