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인문한국 프로젝트와 연구자의 고민 도면회(근대사분과) 1. ‘꿈의 프로젝트’ 인문한국 프로젝트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하여 정부가 또 나섰다. ‘인문한국(Humanities Korea)'이라는 이름 하에 해마다 200억 원씩 10년간 문학ㆍ역사ㆍ철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 발전을 위해 투여한다는 기획이다. 기획대로 다 집행된다면 2천 억 원에 달한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 두뇌 한국 21(Brain Korea 21)사업, 기초학문 연구 지원 사업, 누리(Nuri) 사업에 뒤이은 대형 프로젝트다. <출처 : 한겨례 신문사> 앞서 진행된 이들 네 가지 사업과 기타 학술진흥재단의 인문학 연구비 지원금도 적지 않다. 이들 사업만 해도 2007년 현재 인문학 분야에 투입된 예산이 1300억 원이다. 올해 11월 14일 발표된 인문한국 지원금 200억을 합치면 총 1500억 원이 인문학에 투입된다는 계산이다. 중앙정부ㆍ지방자치단체ㆍ민간 등이 대학에 지원했다고 하는 인문학 연구비 총합이 2003년 1051억, 2004년 851억, 2005년 900억 원인 점에 비추어 보면 올해는 그 두 배를 훨씬 넘는 액수가 인문학 분야에 투입될 것으로 추산할 수 있다. 사실 인문학을 포함하여 사회과학 분야에서 연구비 개념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부터였던 점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증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전까지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자연대ㆍ공대에 비하면 연구비 지원의 불모지대였다. 인문사회과학 석ㆍ박사 과정 재학생들은 지도교수가 어렵게 따온 얼마 안 되는 연구비로부터 용돈 정도밖에 안 되는 액수를 받아온 실정이었다. 아니면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민간의 언론ㆍ문화 재단이나 문화 단체의 연구비 지원, 그도 안 되면 중고생에 대한 과외 지도, 외국 서적의 번역, 신문ㆍ잡지에 대한 투고를 통해 간신히 연구를 지속해 왔다. 1990년대 중반부터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 지원 사업이 시작되고 BK21 지원사업, 누리사업, 기초학문 육성지원사업 등이 연달아 만들어지면서 인문학 분야 연구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금번의 인문한국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단비’와 같은 연구비 지원이라고 하겠다. 특히 인문한국 프로젝트는 사업에 참여한 연구교수를 해당 대학의 정년트랙 교수로 채용할 것을 의무화하였다. 연간 지원비 1.5억 원 당 1명씩 정년트랙 교수로 전환시켜야 하며 10년차 사업 종료 시점에 50% 이상이 완료되어야 한다고 규정하여 정년트랙 교수직 채용을 바라는 박사급 연구자들에게는 ‘꿈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총 200억 중에서 연구교수ㆍ연구원 등 인건비 지출이 70%인데, 연구교수 인건비를 20%, 즉 40억 원으로만 잡더라도 연봉 5천만원급 연구교수가 80명 임용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프로젝트가 요구하는 질적 요건이었다. 그간의 연구비 지원이 “단기 과제 위주의 연구 지원으로 급격히 팽창한 연구자 및 연구성과가 수렴ㆍ축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프로젝트를 크게 인문 분야와 해외 지역 연구 분야로 나누었다. 인문 분야에 대한 요구는 자그마치 향후 30~40년간 사회적ㆍ학문적 동향을 전망하고 일단 10년간 수행할 아젠다를 기획해 내라는 것, 해외 지역 연구에 대해서는 인문학을 중심으로 해외 각 지역에 대한 심층적ㆍ학제적 기초 연구를 토대로 총체적 접근이 구현된 지식 정보를 생산해 내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엄청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장기적 연구 프로젝트를 사업 요강이 발표된 6월부터 8월까지 단기간에 만들어내야 했다. 프로젝트를 급조해 내기 위해서 웬만한 대학교마다 교수와 박사급 연구자들이 구슬땀을 흘려가며 두어 달 이상씩 고생하였다. 2학기 강의 준비와 기타 시급한 연구 작업을 무조건 보류하고 전력 투구하여 총 153개 연구 단위가 사업 신청을 제출한 결과가 11월 14일 발표되었다. 인문 분야 대형 연구소(연 10~15억 원 지원) 6곳, 중형 연구소(연 5억~8억원 지원) 10곳, 해외 지역 연구 분야(연 5억~8억원 지원) 3곳,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받은 유망연구소 11곳(연 1억 지원) 등 모두 30곳, ‘당첨률’ 약 20%이다. <출처 : 조선일보> 나머지 123개 연구소는 쓴 잔을 맛보았다. 그동안 학진의 기초학문 분야 연구 프로젝트 ‘당첨률’이 15% 내외였던 것,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인문학 지원에 비하면 사정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정에서 탈락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선정 결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불거져 나왔다. 이들의 지적과 더불어 최근 학계에서는 과연 이러한 지원 방식으로 인문학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더 나아가서 현재의 학술진흥재단 중심으로 진행되는 학문 지원 방식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심각한 반성과 비판이 나오게 되었다. 2.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지원 방식을 둘러싼 논의 지난 11월 19일 학술단체협의회, 민주화를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3개 단체가 주최한 「학술진흥 및 학문후속세대 지원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서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제기되었던 학진의 연구비 지원 사업, 정부의 학문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이 총망라되어 나타났다. 비판이 집중된 문제는 학진의 등재 학술지(이하, 등재지) 정책과 권력기관화, 일률적인 연구 지원 방식이었다. 수많은 논점들을 일일이 요약할 여유는 없으므로 간략하게만 정리하자. 등재지 정책이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대한 검증과 객관화, 선별적 지원으로 학문 사회의 전근대성과 학문 생산 체계를 갱신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더 심각한 폐해가 나타났다. 연구자의 창조적이고 질 높은 연구를 저하시키고 획일화된 ‘논문식 글쓰기’를 강제했을 뿐 아니라 ‘자기 표절’과 ‘자기 복제’ 논문의 등장, 소규모 학회의 학술지, 무크지, 비판적 잡지의 소멸을 초래하였다. 학진의 연구비 지원 사업에 응모할 때는 물론이고 대학 교수 임용 및 승진 심사시에도 등재지 수록 논문 숫자가 연구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로 되어 버렸다. 이제 등재지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학회 또는 대학 연구기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어 등재지 또는 등재후보지로 인증받으려는 경쟁이 심화되었고 인문사회과학 등재지ㆍ등재후보지의 숫자는 초창기 1998년의 25개로부터 2007년 1월말 현재 820개로 약 33배 증가하였다. 과연 이처럼 수많은 등재지가 일정한 수준을 갖춘 우수한 논문들을 수록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지경까지 왔다. 학진의 학문 평가 시스템 장악은 한편으로 국제적인 등재 학술지에 목매는 한국 대학의 현실과 맥이 닿아 있다. SCI(과학논문 인용 색인), A&HCI(인문ㆍ예술 분야 인용 색인), SSCI(사회과학분야 인용 색인) 등은 모두 영어권 학계의 인용 지수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것이 한국 지식 사회에서 ‘보편적인 연구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게 되고 몇 년 전부터 연구 업적 평가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 왔다. 그러나 SCI 등재지에 게재된 한국 논문 중 절반(47.9%)은 인용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웃지 못할 비극을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자연과학이 그럴진대 적어도 한국에 관련된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학에서 영어로 연구 성과물을 발표해야만 우수한 연구라는 가정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학문의 대외 종속성을 이처럼 보여주는 현상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 전근대적인 연구 관행이나 학술지 발간 관행을 개선하기 위하여 도입된 등재지 정책은 이제 최소한의 기준으로 낮추고, 학술지 또는 학회에 대한 평가는 해당 지식 사회와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현실적ㆍ이론적 문제 제기를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진이 연구비 지원의 주체가 됨으로써 생긴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연구자들이 자기 연구보다 학진 프로젝트에 매달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상당수 학회는 학진 프로젝트 발표회 위주로 진행되면서 논쟁이 사멸되고 연구자는 대형 프로젝트 속에서 ‘논문 작성 노동자’로 전락, 연구비 수령 건수가 연구 활동의 목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비 심사 과정에서 연구의 국가적 효용성, 즉 ‘학문의 기대 효과’란 항목을 설정한 것은 사회적인 의제를 제기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연구보다 사회적 통합 혹은 갈등 해소를 위한 연구를 강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처 : Naver 백과사전(www.naver.com)>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요구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이공계와 다르므로 집단 프로젝트 중심이 아니라 개인 과제 중심으로 지원 비중을 확대할 것, 둘째, 박사학위를 취득한 연구자에 대해 박사학위 과정에서 가진 문제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박사후과정을 3~5년으로 늘려 안정적으로 연구를 지원할 것, 셋째, ‘우수논문 사후지원’ 사업과 같은 자유연구의 사후 지원을 확대할 것, 넷째, 연구 과제 선정과 심사에 비전임 박사들의 참여를 확대할 것, 다섯째, 등재지 선정 기준을 획일화하지 말고 창작과비평 황해문화 시민과 세계 등 나름대로 연구자나 일반인에게도 인정받고 있고 학문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학술잡지들도 평가할 기준을 만들 것, 여섯째, 참여사회연구소, 수유ㆍ너머연구소 등 대학 외부 연구소에 대해서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이다. 많은 점에서 수긍이 가는 비판이었지만 그에 대한 대안은 사실 충분히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 학진이 인문사회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지 겨우 10년 남짓 되었다. 게다가 주지하다시피 학진의 연구 지원 사업은 결코 학진의 관료들 독단이 아니라 사업이 진행될 때마다 수백 명의 대학 교수를 비롯한 관련 분야 박사 연구자들이 동원되어 심사와 사후 결과 심의까지 해오지 않았던가! 10년 남짓의 기간 동안 과거 비합리적이고 관행적으로 진행되어 왔던 연구 지원 체계가 합리화, 객관화, 계량화되어 온 공로를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학술 연구 지원이 국가 재원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이상 그를 중심으로 해서 음과 양이 공존하고 그 중에 한쪽 측면만 부각되어 보이는 것 역시 당연한 현상으로 보였다. 이토록 문제가 많다고 하는 학진이지만, 주위에 있는 연구자들 중에는 그래도 학문 연구를 안정적으로 지원해 주기만 한다면 현재의 지원 방식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이 있다고 알고 있다. 연구비 지원 주체인 학진의 권력기관화, 등재지 정책, 프로젝트별 집단적 연구 지원방식 등에 대한 비판은 학진이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개선해 나가리라고 본다. 그러나, 인문학 위기의 원인이 단지 연구비 지원만의 문제였던가? 작년 이래 많은 논자들이 인문학 연구자 자신의 문제라고 진단한 맥락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인문학 연구자들은 과연 아무런 자기 비판과 반성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인가? 3.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고민 돌이켜 보면, 군사독재 등의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인문학자들은 지금보다 형편이 더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반민주와 인권 압살이라는 ‘거대악’이 있었기 때문에 인문학은 민중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위안과 이론적 전망을 줄 수 있는 연구로써 ‘선’을 확보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후 ‘민족ㆍ민주ㆍ민중’에 복무한다는 연구는 질적 수준에 관계 없이 연구자로서의 자기 정당성을 확보하게 해 주었다. 1950년대 이후 분단된 상태에서의 남한 국가 만들기 프로젝트가 ‘거대악’을 축으로 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1980년대 민중의 투쟁과 이를 지원하는 인문학 연구는 분단 국가를 새로 재편하는 작업, 더 나아가 분단 국가를 지양하고 남북한 통일 국가를 전망하게 하는 ‘지고선(至高善)’을 지향하는 작업으로 위치지워졌다. 민족과 민중에 복무할 수 있다는 열정으로 인하여 연구비 지원이라든지 제도권 학계로의 진입은 삶의 부차적인 목표로 치부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원 진학이 상당한 자기 소명감 부여 없이는 다소 부적절한 처신으로 느껴지는 상황이기도 하였다. 역사적 유물론, 변증법적 유물론, 사회주의 리얼리즘, 한국사에서의 개혁과 혁명 투쟁의 복원 등이 인문학 연구에서 중요한 기준 또는 방법론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성취하고 제5공화국 청산, 서울 올림픽 개최 등을 거치면서 ‘거대악’은 사라졌다. 게다가 한때 역사 진보의 한 단계로 인정하고 있던 사회주의 진영이 해체되고 자본주의 경제를 수용함으로써 “역사는 진보한다”라는 명제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2000년대에는 미국의 패권이 학술ㆍ문화 분야에까지 속속들이 파고 들고 신자유주의가 횡행하는 속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6월항쟁 기념관(httpwww.610.or.kr)> 상황과 구조가 변화하였지만 인문학 연구자들은 쉽사리 자기 연구의 패러다임 변화를 인정하기 힘든 것 같다. 지난 10여년 간 여전히 과거 권위주의 정권기의 ‘거대악’을 쓰러뜨리기 위하여 사용했던 연구 방법론과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연대하여 같이 나아가고자 했던 민중은 없어지고 ‘국민 대중’이 남았으며, 그 ‘국민 대중’은 오늘날 “무능한 진보보다 부패한 보수가 낫다”고까지 할 만큼 경제 양극화에 시달렸다. 과거의 민중은 속이 빤히 보이는 대통령 후보의 거짓말과 이를 두둔하는 언론재벌ㆍ재벌언론의 보도를 보면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진보적 정권’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1980년대 후반 이후에는 역사학이 진보를 위한 무기인 양 인식되었다. 과거를 알면 현재가 보이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전망을 열 수 있다고. 그러나 요즘에는 역사가 문화 상품이 되었다. 제도권 학계에서의 역사학 연구는 대중이 역사에 대해 품고 있는 관심과 괴리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한 부분을 풍요롭게 해 줄 문화 콘텐츠로서의 역사를 원하는데, 7080세대 역사 연구자들은 여전히 민족과 민중이 중요하다고 한다. 반면, 문학 쪽에서는 최근에 ‘민족문학작가회의’ 명칭을 ‘한국작가회의’로 바꾸었다. 단체 명칭 때문에 해외에서 과격한 우익 단체로 오해를 산다는 지적이 회원들 사이에서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란다. 문학 연구자들도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였다. 민족문학, 리얼리즘 등등 거대 담론보다 탈민족, 탈근대론을 연구 방법론으로 채용한 연구자들이 점증하고 있다. 철학 연구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감지되지만, 그보다는 대학 내 학문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가 더 시급한 문제로 되었다. 이에 반해 한국사 연구자들은 일본ㆍ미국발 식민지근대화론,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와 독도 영유권 문제, 친일행위 진상 규명, 친일 재산 조사 등의 과거사 정리 등 국가와 민족을 중심에 두는 연구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 <출처 : 연합뉴스> 일제 강점 전후의 한국 사회경제를 논하는 토론회나 원고 작성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한국 사회 근대화 효과나 조선총독부 관료의 고민을 논하면서 일제 강점기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했을 때 “그건 좀 위험한 발언 아닌가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마다 그런 말을 하는 분들이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소양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인문학의 사명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한 반성과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기존의 패러다임을 금과옥조로 준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인간으로서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집단과 소수자들의 처지에 서서 그들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는 전문적 학술지는 물론이고 시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형태로도 표출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는 연구자로서의 자기 생존에 얽매여 전문화에만 매달려 왔을 뿐, 사회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반성이 앞선다. 또한, 한국의 인문학이 어떻게 성립 발전하였는가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 조선시대 이래의 문사철(文史哲) 전통에 입각해 있다고 하지만, 분과 학문으로서의 인문학은 일제 강점기 전후 일본을 통해서 해방 이후에는 미국을 통해서 제도적으로 성립하였던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항 이후 한국 근대 학문의 성립과정을 볼 때 일본의 영향력은 지대한 것이었다. 일제 침략에 저항하고 부정하고자 했던 민족적 연구자들일지라도 그들의 세계관은 일제가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그대로 수용했든지 그 관점을 정반대로 돌려놓았든지 둘 중 하나인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해방 이후 미국의 영향 하에서 변화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부분적인 변화에 불과했을 뿐, 전면적인 부정과 새로운 건설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학문 자체의 출발부터 서양ㆍ일본의 근대성에 붙잡혀 있었다. 우리 인문학 성립의 출발점을 발본적으로 재검토하여 갱신할 목표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는 시민 사회와의 소통, 체제에 짓밟혀 신음하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설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또 한 가지, 인문학 연구를 이어갈 후속세대의 양성, 더 나아가서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서 고민하여야 할 교육의 문제가 있다. 4. 인문학 교육의 문제 최근 고등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85%에 이르고 있다. 가히 전국민의 대학생화가 이루어진 형국이다. 그만큼 학력 수준이 높아졌지만, 대학 재학생 또는 졸업생의 인문학적 소양은 얼마나 높아졌을까?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에서 강의하는 동료 연구자들의 불만 중 하나는 “강의 시간에 무슨 말을 해도 학생들이 도대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최소한 배웠으리라 생각되는 역사적 사실이나 기초적 지식을 바탕으로 강의를 해 보았자, 그 사실과 지식 자체를 모르니 처음부터 설명하여야 한다는 불만이다. 창의적인 개성 발달을 저해한다고 하여 주입식 암기 교육을 지양하고 가능한 한 구성주의 교육이론을 바탕으로 한 수행 평가 방식으로 중고등학교 교육 방침을 바꾼 결과이다. <출처 : 동아일보> 물론 주입식 암기 교육이 창의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파벳이나 한글 자모음은 알아야 글을 읽을 수 있듯이, 인문학 공부에 기초가 되는 지식은 중고등학교에서 암기하여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암기를 통해 습득한 지식이 있어야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 강의 내용을 취사 선택하고 비교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수행 평가는 학생 스스로 직접 지식 소스를 찾아서 비교 검토하고 정리해서 제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인터넷이 극도로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원칙을 지키는 학생이 몇이나 되는가? 모두 인터넷 상 화면을 그대로 복사해서 적당히 가감 편집해서 가져올 뿐, 자기 체화하여 오는 학생은 극소수 모범적인 학생들뿐이다. 인문학의 기초는 사물에 대한 비판적 검토 능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보와 비교할 수 있는 기본 지식이 필요한데 오늘날 중고등학생에게는 이 기본 지식을 습득할 제도적 교육 장치가 없다. 강의 과제로 내준 리포트를 인터넷에서 복사해온 지식으로 메꾸고 이러한 표절을 제대로 지적하고 교정해주지 못하는 것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인문학적 연구 능력이 배양될 여지는 없는 것이 아닐까?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이러하고 인문학 연구자 또한 자기 연구에만 매달린다면 결코 후속 연구 세대를 양성할 수 없음은 물론, 자기 연구 성과물에 대한 미래의 독자도 확보하기 어렵다. 어찌할 것인가? 중고등학교 교육을 바꿀 수 없다면 대학 교육의 방식이라도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직접 읽고 자신의 언어와 문법으로 발표하고 다른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을 하게끔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 중심에 인문학 연구자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연구비라는 비료를 아무리 퍼붓는다고 해도, 인문학 독자라는 밭을 힘써 일구려 하지 않으면서 인문학 발전을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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