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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건진 고려시대의 역사

BoardLang.text_date 2007.10.29 작성자 임경희

바다에서 건진 고려시대의 역사


임경희(중세사 1분과)


  지난 5월 충남 태안 대섬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주꾸미를 잡기 위해 설치해 놓은 통발을 걷어 올리다 청자 접시를 발견하였다. 산란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주꾸미가 청자 대접으로 통발 입구를 막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문화재청 산하 국립해양유물전시관 수중발굴과에 의해서 긴급탐사와 본격적인 수중발굴이 이루어졌다.

  물속에 잠겨버린 유물이나 유적을 발굴하여, 인류의 생활방식이나 역사 등을 밝혀내는 학문을 수중고고학이라고 한다. 고고학의 영역이 수중으로까지 넓어진 것이지만, 바다라는 특수 환경으로 인해서 육상고고학에 비해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고 첨단장비의 도움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중발굴을 담당하는 기관은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유일한 형편이다.

  우리나라 수중발굴은 1976년 신안선 발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4건이 있었다. 발굴지역은 서남해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의 고선박(완도선, 달리도선, 십이동파도선, 안좌도선, 대부도선)과 청자, 선상생활용품 등이 인양되었다. 이외에도 중국 선박(신안선, 진도선)과 도자기도 발굴되었다.

  이번 충남 태안 대섬 수중발굴은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수중발굴의 집약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성과가 있었다. 내년에 인양될 고려시대 청자 운반선을 비롯하여 2만 여점에 달하는 양질의 고려청자, 많은 선상생활용품이 나왔다.


사진 1) 도자기 적재 상태의 사진

  도자기는 12세기 중반 것으로 추정되는데, 순청자에서 상감청자로 넘어가는 시기의 것들이다. 수량이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양질의 청자들이다. 청자는 기종이 매우 다양하고, 청자철화퇴화문두꺼비형벼루[靑磁鐵畵堆花文蟾形硯]와 청자사자형향로와 같은 독특한 기형도 있다. 또한, 고려시대 백자도 발굴되었다. 이번 발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고려시대 목간이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14차례에 걸친 수중발굴에서 목간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첫 번째는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발굴한 ‘新安船’에서 나온 것이다. ‘신안선’ 목간에는 ‘至治三年’이 적혀 있어, 적재 유물의 연대를 파악하는 기준을 제시하였다. 또한, ‘東福寺’ ‘筥崎’ ‘釣寂庵’ 등의 명칭을 통해서 신안선이 일본으로 향하던 배였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신안선’에서 발견된 목패는 일본인 화물주에 의해서 작성된 것들로 신안선의 항로와 편년 등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이번 태안 대섬 수중 발굴을 통해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고려시대 목간이 출토되었다. 10월 12일까지의 발굴을 통해서 나온 목간은 4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이를 편의상 A~D형이라고 하겠다. 정확한 모양이나 크기 등은 생략하고 여기에서는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사진 2) 목간 A형

  A형은 앞면에는 “耽津在京隊正仁守付沙器八十□”(이탤릭체로 표시한 는 이두), 뒷면에는 “□□載船進(또는 尾)수결”이 적혀 있다. “탐진(현재의 강진)에서 서울에 있는 대정(고려시대의 정9품 무반) 인수에게 도자기 80□을 보낸다.”라고 해석되는데, 도자기 생산지가 강진임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또한 수취인은 개경에 있는 대정 인수로 그가 최종 수취인인지 아니면 중간단계에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결론은 추후에 내리고자 한다. 뒷면의 두 글자는 아직 판독이 되지 않고, 나머지 부분은 “배의 앞머리 (혹은 뒷부분)에 실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수결이 적혀 있는데, 현재까지 발굴된 목간에 적혀 있는 수결은 모두 동일하다.

  B형은 앞면에는 “□安永戶付沙器(一)裹”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수결만이 있다. “안영 호에 사기 한 꾸러미를 보낸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재 판독이 되지 않아 여기에서는 소개하지 않지만, ‘安永戶’ 앞부분에 글씨가 쓰여 있는 다른 목간이 있고 전체적으로 앞의 A형과 구조가 동일하여 ‘안영호’를 발송 주체가 아닌 수취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뒷면의 수결은 앞의 A형과 동일한 것이다. 여기에서 ‘안영’과 ‘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추후의 연구과제로 남겨둔다.


사진 3) 목간 C형

  C형은 앞면에는 “崔大卿宅上”이라고 적혀 있고, 뒷면은 아무런 내용이 없다. 아직 발굴이 진행되고 있어 비슷한 유형의 것이 발견되면 정확한 의미파악이 가능하겠지만, 현재로는 ‘대경’의 해석에 두 가지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먼저, ‘최대경’을 단순히 人名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大卿’을 관직명으로 볼 가능성이 있는데, 고려시대 관직을 일괄적으로 정리한『高麗史』 白官志에는 大卿이라는 관직명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만, 편년자료나 고려시대 묘지명을 살펴본 결과 몇몇 사례들이 보이고 있다. 이중 인종대 인물인 金義元은 동일한 시기의 관직이 『고려사』나 『고려사절요』에는 ‘대경’으로, 묘지명에는 ‘예빈경’으로 적혀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고려시대 시(寺)나 감(監)에는 卿이나 少卿이 있었는데, 소경에 대칭하여 특히 정3품 내지 종3품의 卿을 대경으로 불렀을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앞으로 고려시대 관제에 대한 연구를 더욱 진행하다 보면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D형은 청자를 묶은 쐐기목에 수결만 적혀 있는 형태이다. 여기에는 중간 부분이나 밑 부분에 위의 목간들에 적혀 있는 것과 동일한 수결이 적혀 있다. 수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확정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화물의 선적을 총괄했던 인물의 것으로 추정한다.

  이상으로 10월 12일 현재까지 발견된 목간을 내용 중심으로 분류하여 소개하였다. 앞으로의 발굴 조사를 통해서 위에 소개한 것 외에 다른 목간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현재까지 출토된 목간을 통해서 도자기를 생산하고 선적한 곳이 강진이라는 점과 개경에서의 수취인(대정 인수, 안영호, 최대경)을 알 수 있었다. 향후 많은 목간이 나오게 되면, 우리는 고려시대 청자의 유통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청자뿐만이 아니라 고려시대 상품의 유통 과정을 추정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