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대의 조롱거리가 된 구세대의 입시제도 정용욱 (서울대 국사학과,한국현대사) 대학수학능력시험 휴대전화 부정행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이다. 이미 시험일 이전부터 인터넷을 통해 대리시험 광고가 나돌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에 대한 제보도 있었다는 보도이고 보면 교육부나 관계당국의 호들갑은 늘 그렇듯이 또 한 번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를 보는 것 같아 영 께름칙하다. 어쨌든 교육부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자에 대해 3년 동안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것으로 관련규정을 고치겠다고 하고, 또 내년 1월까지 수능시험 부정행위 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한다. 한 고교교사는 교육인적자원부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양심과 진실을 가르치지 못하고 점수따기 교육에 몰두해온 자신의 잘못을 국민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며 해당 학생들을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언론은 언론대로 이 지경까지 이른 우리의 교육 현실을 개탄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관습헌법에 따라 부정행위자들을 회초리로 다스려라”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사건의 개요야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익히 알려진 터이고, 정작 필자가 궁금했던 것은 교육적 견지에서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학생들의 반응은 의외로 격했는데 일부 학생들은 부정행위를 한 학생들의 대학수능시험 응시자격을 영구히 박탈해야 한다고 했고, 일부 학생들은 관련자들을 모두 군대나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체로 재발 방지를 위해 강경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들도 잘못된 교육제도의 피해자라는 피해의식에서 더 격한 반발심리를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할 입시제도가 그렇게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의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차마 그 이유까지 물어보지는 못했다. 학생들의 처방 가운데 백미는 서당을 만들어서 부정행위 연루자들을 강제로 수용하고,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못된 버릇을 고칠 때까지 매일 회초리로 다스리자는 것이다. 강제수용에다 체벌이라니? 문명화(?)된 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들을 격리수용하고 체벌하자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관습헌법’에 따라 그렇게 하면 된다는 매우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수능시험 부정사건 보도를 접하고 머리를 스친 첫 번째 생각은 ‘아! 우리 사회는 이제 새 세대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제도와 시스템을 조롱하는 지경이 되었구나’라는 것이었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학생들이 이러한 부정행위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고, 부정행위에 수십 명이나 되는 인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했다는 사실이다. 범죄 행위나 마찬가지인 부정행위를 별다른 죄의식 없이 공모하고 실행하는 이들의 천연덕스러움과 도덕불감증에는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따름이다. 그들의 행위와 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을 보노라면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으나 신세대는 전자전을 하고 있는데, 기성세대는 백병전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하기야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육박전이나 하고, 막말이나 해대는 것을 방송으로 지켜보면서 새 세대가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육박전보다 한 차원 앞선 전자전을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 하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교실 붕괴가 결국 시험장 붕괴, 입시제도 조롱으로 이어져 이제 대한민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입시제도로서는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원래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목적은 말 그대로 응시자가 대학에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지녔는지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행 입시제도나 이에 대한 당국의 정책은 수능시험의 본래 목적보다는 과열 입시경쟁으로 인한 부작용과 폐해를 방지하거나 최소화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이 입시제도의 본래 목적인 것처럼 본말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기존 입시제도에 대한 불만은 도처에 팽배해 있다. 국가적인 행사가 되어버린 수능시험 결과가 대학입시 사정 자료로 크게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석차도 없고, 과목별 표준편차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에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사설학원의 사정표에 의존해서 원서를 작성하고, 대학은 대학대로 기존 입시제도를 불신하면서 대학에 더 많은 재량권을 줄 것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이번 사태도 과열 입시경쟁의 폐해와 부작용 방지에만 집착하는 정부의 정책과 시험의 본래 취지인 합리적인 응시자 능력 검증 방식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입시제도 뿐만 아니라 우리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는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어버린 기러기아빠, 펭귄아빠는 이 나라의 공교육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얼마전 한 친구와 자녀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그 친구는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자식을 중국에 조기유학 보낼 것을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고 했다. 중국의 경우 공립학교에서도 영어로 수업하는 학교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좋은 것은 유학에 드는 비용이 1년에 천만 원 정도이고, 이는 한국에서 사교육에 들이는 비용보다 적다는 것이다. 자기 형편에 1년에 오천만 원은 필요한 미국 유학은 불가능하고, 어차피 성인이 되어서 만약 중국인과 사업이라도 할거면 중국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이 지경이 되었다. 자식 교육에 드는 비용의 액수가 교육기회를 선택하는 중심 요소가 되었으며, 그 외 다른 교육적 고려는 논외의 사항이 되었다. 그 친구는 결코 풍족한 살림살이가 아니고, 오히려 쪼들리는 편이지만 대한민국의 공교육 체계에서는 자식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용단을 내린 것이다. 명색이 교육자인 필자는 그 친구를 만류할 수 없었다. 수능시험 보는 날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모두 중지하라 요새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얘기를 하는 횟수가 늘었다. 필자는 이번 사태가 결코 교육계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뿌리깊은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가진 시스템이 그리 건강하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 측면에서 목도한다. 탄핵사태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대한 헌재 결정이나 모두 호미로 막을 일이지 어디 가래로 막을 일이었는가. 관습헌법이라는 기기묘묘한 논리도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지만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행정수도이전특별법이 헌재 결정으로 폐기되는 것을 보고 환호하는 야당의 행태는 또 어떤가. 국보법 문제를 보자. 한국인들만큼 글로벌 스탠다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흔치 않지만 국제인권단체나 심지어 유엔까지 폐지를 권고하는 법안을 국회의원들의 머릿수 계산으로 환치시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 우리 사회가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생긴 일들이고, 우리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이 상식과 원칙에 입각하기는커녕 글로벌 스탠다드에도 미치지 못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고 배우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배운 대로 행한 죄밖에 없지 않는가. 대책과 재발 방지책을 두고 논란이 많다. 장단기 대책이 필요하겠지만 수험생들의 부정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 소지품 검색과 전파 차단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적어도 교육적인 차원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것 같다. 이른바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교육공학적인 새 설계로 다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수능시험 부정행위가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교육제도 전반과 입시제도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본다는 차원에서 모든 논의를 출발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돌아가서, 학생들과 대화 중에 필자가 생각하는 재발 방지책을 제시했다. 수능시험일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모두 중지하라는 것이다. 당장 너무 폭력적이라는 반응이 있었고, 경제주의적 사고에 익숙한 이들은 틀림없이 경제적 손해와 사회적 혼란을 들먹일 것이다. 필자 역시 이것이 대단히 폭력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미 고사장마다 전파차단기를 설치하거나 고사장 근처의 기지국 폐쇄를 대책으로 논의하는 마당에 서비스 전면중단이라고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과 나아가 기성세대와 우리 국민 모두에게 그래도 우리 사회가 유지하는 시스템이 나름대로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고 복원하는 것보다 긴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