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여 무기를 버리지 마시라 - 2005년 일본과 무엇으로 싸울 것인가? - 이신철(현대사 분과) “그동안 우리가 해온 역할은 일본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에 확고한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믿는다.” “미-일동맹과 자위대 활동의 범위가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현행 헌법 해석에서 금지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하며, 필요한 조처들이 현행 헌법의 틀에서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 지 등을 조기에 정리해야 한다." 위 문장 중 첫 번째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총리가 21일(한국시각 22일) 제59차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요구한 것이다. 두 번째 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전보장과 방위력에 관한 간담회’에서 10월 4일 발표한 「미래 안전보장·방위력 비전」보고서 중 한 부분이다. 이 보고서의 요지는 일본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넓히기 위해 군대보유와 전쟁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아가 이들은 헌법개정전이라도 미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미사일방어체제(MD)의 효율적인 구축을 위해 미국에 미사일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며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무력개입의 확대와 유엔안보리 이사국 진입을 최대의 외교과제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2001년 한일간에 역사왜곡 파동을 일으켰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서 만든 후쇼사판 중학교 ꡔ새로운 일본사ꡕ교과서에 실려 있는 내용들과 너무나 빼닮았다. “경제대국이 된 일본은 보다 적극적인 국제적 역할이 기대되었다. 종래부터 증대되어 온 발전도상국에 대한 정부개발원조(ODA)는 1989년에 세계 제1위가 되고, 일본의 유엔 부담금도 1991년에는 미국 다음의 세계 제2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속에서 일본의 역할은 증대했다.” “1990년 8월 이라크군이 돌연 쿠웨이트에 침공하고, 다음해 1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다국적군이 이라크 군과 싸워 쿠웨이트로부터 철퇴시켰다(걸프전쟁). 이 전쟁에서 일본은 헌법상의 이유로, 군사행동에는 참가하지 않고 거액의 재정원조를 통해 큰 공헌을 했지만, 국제사회는 그것을 평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일본의 국제공헌의 방법에 관하여 심각한 논의가 제기되었다.” “그 후로 세계에서는 새로운 정치의 방향을 둘러싸고 모색이 계속되고 있다. 나아가 2,000년부터는 국회에 헌법조사회가 설치되어 일본국 헌법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후쇼사의 교과서 내용은 마치 고이즈미 총리와 간담회 보고서를 자세히 설명해 주는 듯하다. 이것은 후쇼사의 교과서 역사왜곡이 우익정치체력들의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 속에 진행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군대를 가질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자”는 구호를 내세워 헌법개정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일본이 유엔을 비롯한 세계무대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경제대국, 군사대국으로 거듭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일본 내 평화세력과 양심세력들의 견제를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술로 교과서 역사왜곡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의 중학생들에게 왜곡된 역사와 극우적 역사인식을 가르침으로써 미래의 지지기반을 만들어 내려는 것이다. 이들은 중학생들에게 과거의 일본침략역사는 반성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은연 중 강조하고 있다. 이들에게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 해방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나아가 조선은 스스로가 원해서 식민지가 되었고, 일본 덕분에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주장을 깔고 있다. 당연히 일본역사에 강제동원이나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교과서에서의 표현은 약간씩 순화되어 있지만,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이런 주장들은 주기적으로, 거리낌 없이 그리고 당당하게 주장되고 있다. 결국 이들의 목표는 식민지를 거느리던 과거의 ‘영화’를 오늘에 되살려보자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 호소다 히로유키 관방장관은 과거사 문제와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일본의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걸고넘어진 것에 대한 답변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 21일 제주도에서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는 중요의제로 삼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한일간의 과거사와 미래관계는 별개의 것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외교적 열세관계에 놓여 있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고충이 묻어나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은 굳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우익세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관방장관의 발언과 같은 의미로 해석되고 만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파트너십’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한일간의 과거사는 청산되었다”는 발언을 함으로써 일본 내의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평화세력들에게 엄청난 타격을 안겨주었던 것과 같은 외교행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날 자신의 발언을 수습하면서 역사인식문제를 거론했다. “역사적 진실에 대해 서로 합의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지만, 미래를 위해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합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일본의 교과서 역사왜곡을 학문적 연구와 대화로 풀어나갈 것을 제의한 것이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당장 노대통령의 이런 제의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고이즈미 총리는 전혀 그렇게 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 대한 망언을 수시로 뱉어내는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지사로 있는 도쿄도의 교육위원회는 지난 8월 26일 문제의 왜곡 교과서를 내년에 개교 예정인 중고일관교 하쿠오고 부속 중학교의 역사교과서로 채택했다. 기세등등해진 ‘새역모’는 내년의 채택률 목표를 10%로 설정하고, 정계, 교육계, 언론계, 학계에 걸쳐 전방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의 발호에는 갈수록 강화되는 일본의 우경화가 그 바탕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9월 27일 단행된 고이즈미 2기 내각의 면면은 중학교 역사교과서 채택이 예정되어 있는 내년의 상황이 더욱 어려울 것임을 전망케 한다. 일본의 안보리 이사국 진출을 지휘할 외무상에 오른 마치무라 노부다카는 2001년 문부과학상을 지내면서 문제의 후쇼사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외상이 된 직후 “개헌은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추도하는 것은 당연한 행동”이라고 옹호했다. 그의 이런 태도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10월 19일 일본 중의원 79명은 떼거리로 A급 전범들의 위폐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편으로 문부과학성과 ‘새역모’측은 2001년의 경험을 살려 이번에는 검정신청 단계에서 무엇보다 ‘보안’에 신경을 쓰고 있다. 때문에 현재 교과서의 구체적 내용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다만, ‘중학생이 보기에는 어렵다’는 여론을 반영하여 보다 쉽게 만들고, 침략행위에 대한 미화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 교과서의 검정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내년 ‘새역모’ 교과서의 채택률이 2001년의 0.039를 넘어설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그 상승폭을 얼마나 줄여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관건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새역모’ 교과서의 약진은 이미 제도적 측면에서 예고되어 있다. ‘새역모’는 2001년의 채택과정에서 벌써 자신들에게 불리한 공립학교의 학교투표제를 폐지하고, 채택권한을 교육위원회로 옮기는데 성공했다. 학교투표제란 각 학교에서 교과담당자를 중심으로 조사・연구・검토 후 사용하고 싶은 교과서를 1∼3위까지 선택하여 직원회의에서 확인하고, 희망순위를 기입한 서류를 교장이 관할 교육위원회를 통해 채택구별 교육위원회에 제출하면, 채택구의 교육위원회가 관내 학교에서 가장 선호하는 교과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한마디로 현장교사의 의견이 비교적 많이 반영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장교사들이 자신들의 교과서를 지지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 ‘새역모’측은 로비를 통해 교육위원회에 결정권을 부여하도록 제도를 고쳐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은 그런 제도 하에서도 아주 저조한 채택율을 기록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새역모’측이 스스로 전략지역으로 선택한 곳에서는 거의 대부분 3:2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를 보이며,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다른 말로 하면 2005년의 채택에서는 상당한 상승을 보일 가능성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불과 서너 달 앞으로 다가온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역사왜곡의 재현은 이렇듯 불리한 조건 투성이다. 그럼에도 아직 정부의 대응은 원론적인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2001년의 싸움에서는 2002년의 월드컵을 성사시켜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행동을 제약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이번에는 양국 정부의 한일협정 40주년 기념행사들이 장애요인으로 등장했다. 양국 정부는 한일간의 과거사는 청산되었고, 이제 미래로의 전진만이 남아있다는 입장에서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정부는 중국의 역사왜곡이라는 새로운 부담을 떠안은 상황이다. 들리는 말로는 두 문제를 합쳐서 동북아 역사문제를 같이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보이는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동북아문제를 시야에 넣을 것을 강하게 주문받은 예산 50억의 고구려재단은 아직 ‘고구려’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니다. 국회나 청와대 주변에서는 ‘한중일위원회’ 구상이 흘러나오고 있지만 구체적 대안은 없다. 동북아를 한 눈에 넣지 않으면 승산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보다 앞서야 할 것은 각론에 충실한 것이다. 총론을 만들어낼 기관을 정해놓고 그 아래에 각론을 담당할 주체를 두는 것이 옳은 길일 것이다. ‘한중일 위원회’ 같은 전장판은 전쟁준비가 끝난 다음에 벌이는 것이 순서이다. 먼저 내부의 역량을 충분히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무기와 약점을 충분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솔직히 우리의 모습은 적은 고사하고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한중일 공동의 역사전장에서 우리 편은 누구인가? 준비 없는 싸움은 순식간에 우리를 2:1의 궁지로 몰아넣을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의 총론은 옳지만 각론은 틀렸다. 일본에 대한 연구를 강화할 방안이 먼저 마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할 구체적 기구와 방안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한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우경화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과거사청산을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은 과거사 청산 없는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찬성할 것인가? 일본의 과거사문제를 임기 내에 제기할 각오 없이 2005년을 맞이하는 것은 무기 없이 전장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는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세우는 일일뿐 아니라, 일본의 우경화를 막아내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여 제발 무기를 버리지 마시라. 그리고 내년의 한일간 역사전쟁에서 우리가 보일 지리멸렬한 모습을 중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임도 잊지 마시기를.... 글머리의 사진 설명 △ 지난 2월 일본 홋카이도 아사히카와 육상 자위대 기지에서 열린 이라크 파견 자위대의 파병기념행사에 참석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파병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부대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한겨레자료사진 2004.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