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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128호) 시론] 한일 외교・역사 현안에 대한 역사학자의 견해_임경석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8.29 BoardLang.text_hits 871
웹진 '역사랑' 2023년 8월(통권 44호)

[『역사와 현실』(128호) 시론] 

 

한일 외교・역사 현안에 대한 역사학자의 견해


 

임경석(성균과대학교 사학과)


 

1.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방안

한일관계에 풍파가 잦을 날이 없다. 외교・역사 현안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역사교과서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영토 분쟁,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문제,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 제외 조치, 초계기 갈등,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제목만 헤아리는데도 숨이 가쁠 지경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지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 사이에 왜 이처럼 현안 문제가 빈발하는 것일까.

올해 들어서 양국 관계가 크게 출렁이게 된 것은 이른 봄의 일이었다. 2023년 3월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세종로 외교부 청사 기자회견장에 섰다.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관련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11개 조목으로 이뤄진 발표문은 이런저런 미사여구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그중에서 핵심적인 것은 여섯 번째 조목이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그 재원으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큰 변화였다. 종래 취하였던 한국 정부의 대일본 외교정책의 기조를 변경하는 조치였다.

‘2018년 대법원의 확정판결’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바로 일제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이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관 13명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는 유관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하였었다. 최상위 심급의 최종 확정판결이었다. 동일한 내용의 판결이 두 차례 더 있었다. 이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해당 일본 기업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 15인에게 1억 원 내지 1억 5천만 원씩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였다. 일제 말기에 전쟁 수행을 위해 권력에 의해 동원된 인원은 700여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중에서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를 통해 등록된 인원은 21만 9천여 명이었다. 이중에서 2023년 3월 현재 생존자는 1,200여 명이었다. 확정판결로 승소한 15명 외에 법원에 계류중인 사건은 67건, 110여 명이었다.

이 판결은 역사 문제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반영하고 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성격에 관한 뚜렷한 견해를 제시하였다.“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 불법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권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다.”라는 것을 명백히 하였다. 즉 일제의 식민지 통치는 불법적인 것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어떤가. 그것은 “불법 식민지배 배상 청구 협상이 아닌 한-일 양국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였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였다. 그로 인해 한- 일 양국 정부는 일제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판단하였다. 대법원은 이런 상황을 종합해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선고하였다.” 요컨대 일본 정부가 식민지 지배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니 강제동원 위자료 청구권은 협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견해였다.

그에 반하여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일한관계의 법적 기반을 뒤집을 뿐 아니라 전후 국제질서에의 중대한 도전”이라고 규정하였다. 그 주장에 따르면, 이 판결은 1965년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다. 일본 측은 그 협정 2조 1항 및 3항 조문을 들어 피해자 위자료 청구권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해석하였다.

일본 측은 격렬히 반발하였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이 판결이 국제법에 비출 때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규정하였고, 고노 외무상은 이번 판결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어긋난다고 항의하였다. 당사자인 신일철주금도 청구권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1965년 협정을 상기하면서,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이 문제가 원고들의 패소로 확정됐음을 거론하였다.

한일 양국 간에 강대강 외교적 대치 국면이 수년간 계속됐다. 이듬해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 조처를 취하였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부품 등의 한국 수출을 제한하는 조처를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리지스트’와 ‘에칭 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세 품목 및 이와 관련된 제조 기술 이전을 수출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산업 의존도가 높은 점을 노리고, 한국에 가장 타격이 클 만한 보복 조처를 꺼내 놓은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달 뒤에는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수출 절차 우대국)에서도 제외하였다. 이러한 보복 조처는 과거 양국 관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국 정부도 맞대응 조처에 나섰다. 같은 해 9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에 일본을 제소하였다. 또 8월 지소미아 종료를 통보한 데 이어, 같은 해 11월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표명한 바 있다. 이후 지소미아는 사실상 정상화됐지만, 제도적으로는 ‘종료 통보 조건부 유예’ 상태에 놓여 있었다. 한국의 시민사회에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래 양국 간 기류가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의 문재인 정부와는 상이한 정책 기조를 선택하였다. 2023년 1월 12일 처음으로 애드벌룬을 띄웠다. 국회에서 열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제3의 기구로 하여금 피해자들에게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공식화하였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의 방안을 ‘제3자 병존적 채무 인수(제3자 변제)’ 방안이라고 불렀다. 이 방안은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 따라 배상 책임을 진 일본 측 가해 기업의 채무를 제3자인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인수한다는 뜻이었다. 또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케이티(KT) 등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수혜 한국 기업들에게서 기부금을 걷어서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뜻하였다. 정부는 이 방안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였다. ‘국력에 걸맞는 대승적 결단’이자 ‘우리 주도의 해결책’이라고 자임하였다.

이러한 정책 전환이 어떻게 이뤄졌는가? 그동안 외교부는 ‘제3자 변제’ 로 대표되는 양보안에 대해 강제동원 피해자 및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방안을 마련하였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4차례의 민관협의회와 올해 1월 공개토론회, 외교장관의 피해자・유가족 직접 면담 등을 통해 피해자측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진실하지 않음이 드러났다.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요미우리신문」과 진행한 윤석열 대통령의 단독 인터뷰에는 상충된 진술이 담겨있다. 윤 대통령은 ‘제3자 변제’ 방안이 본인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내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강제징용 해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 (재단이나) 기금을 통한 (제3자 변제) 해결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라고 한다. 정책 전환은 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취임한 이후로 이 부분을 (대통령실 국가) 안보실과 외교부에서 진행해 왔다.”라고 말하였다.

대통령실의 측근들이 전하는 브리핑 정보도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한일관계 개선’을 외교 우선순위로 꼽아왔다. 윤 대통령에게 한일관계 개선은 자신의 외교 정책 1순위인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강화를 위해 풀어야 할 필수 과제였다. 심지어 외교부 직업 관료들이 제기하는 속도 조절론도 물리치고, 빠른 발표를 채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2. 찬반 논란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 발표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속보를 내보냈고, 국제・국내적으로 시비 양론이 거세게 맞부딪쳤다.

일본 정부는 환영의 뜻을 표하였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한국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안이 발표된 뒤, 기자들에게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려놓기 위한 조치로 평가한다.”라고 말하였다.

미국 정부도 반색하며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일본 정부의 조치에 대해 성명을 내고, “미국의 가장 가까운 동맹인 두 나라의 협력과 파트너십에서 획기적으로 새로운 장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한국과 일본 정부의 역사적 발표」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는 “민감한 역사 문제 논의의 결론에 관한 한일 정부의 역사적 발표를 환영한다”며,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그들 정부의 용기와 비전에 박수를 보내며 국제사회가 중대한 성취를 칭찬하는 데 동참하기를 요청한다”고 말하였다. 또 “미한일 삼자 관계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에 대한 공통의 비전에서 중심이 되는 것으로, 그래서 나와 국무부 고위급 동료들은 이 중대한 관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주력해왔다.”라고 토로하였다.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이 자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드러내 놓고 말하는 점이 눈에 띈다.

국내에서도 호응 조치가 뒤를 이었다. 여당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전향적인 조치라 평가하고, 이에 대해서 “일본 정부와 기업도 상응하는 전향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하였다. 재계도 호응해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입장문을 내고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양국 정부 간 합의를 계기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방안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며, “기금에 관한 논의를 포함해 모든 방안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제3자 변제 방안은 거대한 저항에 부딛쳤다. 시민사회가 움직였다. 정부안이 발표된 당일부터 그랬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의 시민단체가 항의 퍼포먼스와 시위 운동을 이끌기 시작하였다. 일본제철・미쓰비시 피해자와 유족을 대리하는 대리인단은 기자회견을 갖고서, 정부안에 동의하지 않는 피해자들을 위한 법적 다툼을 지속할 것을 천명하였다. 거리 시위도 이뤄졌다. 수만 명의 군중이 집결하는 거듭된 항의운동에는 시민단체와 야권 정당들이 공동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민중운동과 야권 정당의 연대는 1987년 6월항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국민운동본부의 익숙한 형상이 아닌가.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줄을 이었다. 3월 14일 서울대를 시작으로 한국역사연구회를 비롯한 49개 역사연구단체, 고려대, 경희대, 전남대, 동국대, 동아대, 충남대, 한신대, 창원대, 경상대, 인하대, 한양대, 동아대, 부산대, 중앙대, 경북대, 전북대, 아주대, 성균관대, 가톨릭대, 한성대, 건국대, 인제대, 숙명여대, 한국외국어대, 충청권 대학 역사교수 등 30여개 대학 교수・연구자들이 두 달 가까이 시국선언을 이어갔다. 교수・연구자들의 대규모 시국선언은 민주화 이후로는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나 볼 수 있던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현 정부의 외교정책과 국정 운영이 학자적 양식에 비춰볼 때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1960년 4월혁명 이래로 교수・지식인의 연이은 시국선언이 대규모 군중의 결집을 촉발하였음을 감안할 때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된다.

종교단체들도 행동에 나섰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4월 10일부터 서울, 마산, 수원, 광주 등지에서 시국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친일매국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 주권회복을 위한 시국기도회’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듯 비판의 수위가 예사롭지 않다. 개신교에서도 대한감리회 목사 329명이 ‘윤석열 대통령의 자진 사임과 강제징용 배상안 철회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하였고, 불교계 시민단체도 ‘범국민 시국법회 야단법석’을 개최하여 대일본 굴욕외교를 비판하였다. 민중의 분노가 여기저기서 끓어오르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끓는 물이 무쇠 솥뚜껑을 뒤집는 법이다.

 

3.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바다 방류 문제

제3자 변제방안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 미처 가라앉기도 전에 또 하나의 현안 문제가 불거졌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 문제였다. 문제의 발단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거대 쓰나미였다.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다. 냉각 장치가 마비된 탓에 1~3호 원자로의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 현상을 일으켰다. 그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던 거대한 핵 재난이 일어났다. 녹아내린 핵연료는 주변 구조물을 녹여 덩어리가 된 채 원자로 바닥에 남아있다. 880t에 이르는 핵연료 덩어리에서는 지금도 고열이 발생한다. 냉각수로 식혀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각종 방사성 물질을 머금은 오염수가 나온다.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는 복안이 공개된 것은 2021년 4월 13일이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제1원전 물탱크에 보관 중인 오염수(약 133만 톤)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법정 기준치 이하로 낮춘 뒤, 장기간(약 30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하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제1원전에 있는 약 1천 개 탱크에 오염수를 저장하고 있었으나 2022년 가을께에는 탱크가 부족해 더 이상 보관이 어렵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설명이었다.

해양 방류의 가장 큰 문제는 오염수의 안정성이었다. 일본 측의 주장에 따르면 오염수에는 세슘과 스트론튬, 요오드 등 인체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지만 이는 ‘다핵종 제거 설비’(ALPS, 알프스)를 통해 걸러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설비로도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트리튬)는 기준치의 40분의 1 이하로 농도를 희석한 뒤에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 물질 대부분을 다핵종제거설비로 거를 것이기 때문에 그 명칭을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의 안정성을 제3의 국제기관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검증에 맡기겠다고 표명하였다. 오염수 검증을 맡는 국제원자력기구 특별팀은 미국・중국・프랑스 등을 포함한 모두 11개국의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국 정부가 추천한 원자력안전기술원의 김홍석 책임연구원도 참여하고 있다. 2023년 5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서 중간 보고서를 발표하였으며, 그때마다 오염수 바다 방류 계획이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취지의 내용을 담았다. 최종 보고서는 6월말에 나올 예정이다.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세계 각국은 다양하게 반응하고 있다. 국제적으로 세가지 흐름이 형성되어 있다. 하나는 국제원자력기구 검증 결과 수용론이다.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용인하는 입장이다. 이에 속하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 각국이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는 일본의 방류 공식화 시점에 이미 잇따라 지지 성명을 발표하였다.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일본의 결정이 국제 안전 기준에 부합하다며 지지의 뜻을 밝혔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일본의 발표를 환영한다”며 “이 계획의 안전하고 투명한 이행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하였다. 주요 7개국(G7)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023년 4월 15~16일에 개최된 G7 기후・에너지・환경장관 회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후쿠시마 오염수 바다 방류와 관련해선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성 검증을 지지한다.”라고 천명하였다.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환영한다고 명시하는 문제를 놓고서는 독일이 반대하긴 하였지만, IAEA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2023년 6월말 이후에는 방류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해 5월 20일 발표된 G7 수뇌들의 공동성명에도 동일한 내용이 담겼다. 오염수 바다 방류에 대해서는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을 지지한다고 언급하였다.

또 하나의 입장은 방류 연기론이다. 태평양 섬나라 18개국이 모인 태평양도서국포럼(PIF)이 이 입장이다. 이들은 2023년 2월에 낸 입장문에서 “저장 탱크의 복잡성과 거대함이라는 특성을 고려하면 지금까지 실시된 알프스 검사량으로는 적절하고 충분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바다 방류의 안전성을 판단하기 부족하다.”라고 지적하였다. 이런 불안 요인 때문에 일본 정부에게 ‘방류 연기’를 요청하였다.

세 번째 입장은 사실상의 방류 반대론이다. 이 입장에 선 국가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 결과를 지켜 본다는 점에서는 다른 나라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최종 검증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는 오염수의 바다 방류에 대한 태도를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 입장을 택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태도를 변경한 경우에 속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4월 일본이 오염수 방류 방침을 결정하자, 한국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단호하게 반대한다.”라고 천명하였다. 그해 7월부터 국제원자력기구가 만든 국제 모니터링팀에 한국 전문가가 참가한 뒤에도 ‘우려와 유감’ 표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는 달라졌다. ‘우려・유감・반대’ 등의 의사 표시가 없어졌다. 그 대신 오염수 방류가 국제법・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검증하겠다는 의견 표명이 자리를 잡았다.

올해 3월 16~17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한국 전문가 시찰단이 일본에 파견됐다. 일본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 차원이 아닌 개별 국가에게 시찰을 허용한 것은 대만과 태평양 섬나라 18개국 ‘태평양도서국포럼’(PIF)에 이어 세번째였다. 그러나 대만과 태평양도서국 시찰단은 독자적인 검증을 할 수 없었다. 단지 담당관의 설명을 듣고, 오염수 탱크, 다핵종제거설비, 바다 방류를 위한 해저터널 등을 살펴보는 일정이 전부였다.

한국 시찰단도 마찬가지였다. 5월 21-2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후쿠시마 관광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웃음을 샀고, 일본의 핵 오염수 해양투기 실행에 들러리 노릇을 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사실상 용인하는 방침을 취하고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올해 5월 24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하여,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오염수가 방류되더라도 한국 쪽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검증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4. 한일간 현안 문제 격화의 원인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방안 반대운동이 올해 3-4월 한국 시민사회를 달군 반면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운동은 5-6월을 뜨겁게 하였다. 결국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내내 한일 역사・외교 현안과 그에 임하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한국인들의 분노를 샀던 것이다. 지금도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6월말 국제원자력기구의 최종 검증 보고서가 발표되고 그에 의거하여 후쿠시마 오염수의 바다 방류가 시작된다면, 아마도 전례 없는 규모의 항의운동이 솟구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제3자 변제안은 역사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성격, 1965년 한일협정의 효력에 관한 해석에 연관되어 있다. 그에 반해 오염수 방류 문제는 자연 재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사안이 복잡화함에 따라 핵 재난으로 확장됐다. 오염수 바다 방류의 안정성 여부가 문제의 초점이 된다.

양자는 상이한 기원을 갖고 있지만, 올해 봄에 들어서 격화하고 있다는 공통성을 갖는다. 도대체 한일 현안 문제가 격화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윤석열 정부의 등장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견해가 많은 것 같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다. 시야를 좀더 확장해보자. 대일본 굴욕 외교정책이 과연 윤석열 대통령의 용단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다. 미국이 중국 억제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한일관계 개선을 종용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한국 정부의 양보안을 미국의 외교적 성과로 규정한 바 있다. 한-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한・미・일 외교관들이 지난 1년간 40차례 이상 만났다고 한다. 그는 ‘한일정부 화해’ 움직임을 가리켜 중국에 대항하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례없는 속도의 전략적 재편성’이라고 표현하였다. <로이터>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일에 화해하라는 압박을 가해왔다고 직접 보도하기도 하였다.

2023년 3-6월 한국 사회를 강타한 한일 역사・외교분쟁의 근원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잇닿아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공동성명에서 “안보와 기타 영역에서 필수적인 한・미・일 삼자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은 중국을 가리켜 세계 체제 내애서 자국의 지위를 대체하려는 의도와 능력을 지닌 “유일한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도 그에 호응하고 있다. 중국을 부상을 가리켜 “최대의 전략적 도전”이라고 지목하였다.

윤석열 정부가 급하게 일본에 굽히고 들어가는 이유가 드러났다. 한일 현안 문제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라는 상위의 목적에 종속시킨 까닭이다. 달리 말하면 인도 태평양 전략 차원에서 한미일 관계 강화 정책을 착착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대서양의 나토와 같은 것을 인도 태평양에서 구축하고 싶어 한다. 한・미・일 삼각동맹, 쿼드(Quad,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 협의체), 오커스(AUKUS,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 삼각동맹)가 그에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한미일 삼각동맹은 대등한 동맹이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 미・일의 안보전략에 한국이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판의 졸로 간주될 수 있다는 뜻이다. 졸은 상위의 전략 목표를 위해서라면 버릴 셈치고 작전상 두는 돌이 될 우려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전망하는 줏대있는 행마가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