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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관기] <인천의 산업과 노동> 심포지엄 참관기_이준상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6.28 BoardLang.text_hits 820
웹진 '역사랑' 2023년 6월(통권 42호)

[학술회의 참관기] 

 

<인천의 산업과 노동> 심포지엄 참관기


 

이준상(현대사분과)


 

들어가며

2023년 4월 22일, 한국역사연구회와 인천문화재단은 여섯번째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인천의 산업과 노동>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은 5개의 발표와 종합토론으로 구성되었다. COVID-19로 인해 지난 3년간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완화 덕분에 오프라인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이뤄진 오프라인 행사이기 때문일까. 한중문화관에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현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인천은 1883년 개항되어, 올해로 개항 140주년을 맞이했다. 심포지엄의 발표도 여기에 맞춘 듯 1882년부터 1980년대까지 인천의 모습을 다양하게 조망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인천의 산업과 노동이 가지는 가치를 발굴하고자 했다. 다섯 분의 선생님들께서 ‘화인 노동자’, ‘상점 상인’, ‘싸리재길’, ‘경인에너지’, ‘산업선교와 노동운동’을 키워드로 발표해주셨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인천의 사람들

하상진 선생님은 "1882년-1886년 초기 인천 개항장에 온 청인의 법적 지위 형성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항장의 발달과 중국인/청인의 법적 지위 형성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인천은 개항장으로 변모하며 ‘아시아 교역권’으로 편입되었다. 그 과정에서 청인들은 통번역을 통한 소통 문제의 해결 등에 일정한 역할을 함으로써 조선에 체류할 수 있는 합법적 권한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이들은 인천 개항장의 발달 과정에 참여하면서 ‘외국인’으로서 조선에서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하였다.

두 번째 발표자인 노상균 선생님은, “1910년대 경기·관서·관북 지역 상인의 존재형태와 동향”에서 일제 시기 조선의 근대 자본가들이 식민권력과 식민지 경제정책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나갔는지를 구명함으로써 한국 근대자본주의의 성격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중소자본가라고 할 수 있는 상점상인들에 집중하였다. 그동안 활용되지 않았던 『조선상업총람』을 통해 상점상인들의 활동과 성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조선인 자본가와 1910년대 조선의 경제상을 조명하였다.

이상의 선생님은 “일제하 조선인 상인의 거리 싸리재의 공간 구성과 사회상”을 통해 일제 강점기 싸리재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선인 상권과 거주지를 소개하고, 조선 객주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현대 인천의 산업

“1960년대 한국 에너지 정책의 변화와 경인에너지의 설립”을 통해 권오수 선생님은 석유와 전기를 중심으로 추진된 1960년대 한국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살펴보고, 그 정책의 대표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인에너지의 설립과정을 설명했다. 주 에너지원이 연탄에서 석유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의 기반을 마련하고 전력산업의 경영합리화를 꾀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민간자본이 정유산업과 전력산업에 진출하도록 유도했는데, 경인에너지의 설립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준철 선생님은 "산업선교에서 노동운동으로의 전환과 분절화-1970-1980년대 인천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에서 인천 만석동 지역을 기반으로 한 도시산업선교회의 조직화 과정과 그 논리를 규명하고, 도시산업선교회의 역사성을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산업전도가 산업선교로 전환, 산업 선교가 노동운동에 미친 영향을 밝히기 위해 목사, 실무자와 노동자의 관계, 정부의 억압정책 등을 살펴보았다.

 

나가며

개화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지역의 산업과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입체적이다. 개화기 청인들은 인천에 들어와 자신들의 합법적 권리와 사회를 구축하고, 일제 시기 상점 상인과 싸리재의 조선인들은 식민지 경제정책과 일본 자본에 대응하는 한편,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고 부를 축적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석유 중심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인천에 경인에너지를 설립했다. 만석동의 도시산업선교회는 노동자와 함께 노동운동을 했다. 이것들이 인천의 산업과 노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를 통해 인천의 정체성을 일부 엿볼 수 있었다.

다만 주제와 시대의 범위가 넓었던 만큼, 조금 더 많은 발표자들이 함께하는 심포지엄이었다면 인천의 산업과 노동에 대한 더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심포지엄의 발표들은 미처 몰랐던 인천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인천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이 자리를 빌어 발표자와 토론자 선생님들께 많이 배웠다는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