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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 서평
[『역사와 현실』(127호) 서평] 한국 고대 법제사의 체계적 이해 (김창석, 『왕권과 법』, 지식산업사, 2021)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3.04.30 BoardLang.text_hits 1,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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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역사랑' 2023년 4월(통권 40호) [『역사와 현실』(127호) 서평] 한국 고대 법제사의 체계적 이해- 김창석, 『왕권과 법』 (지식산업사, 2021) - 박초롱(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 이 글은 2021년 7월 22일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 주관 저작비평회에서 1. 과거 ‘율령’ 연구의 지향과 이 책의 차별성 법(法)은 강제력을 갖는 사회규범으로, 한 사회가 경험한 역사의 집합체인 동시에 해당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은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법은 시대와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소재로 역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법을 의미하는 ‘율령(律令)’은 이러한 ‘일반적 관심’을 넘어서,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보다 ‘특별한 지위’를 누려왔다. 율령은 현대의 형법(刑法)에 해당하는 율(律)과 제도에 대한 각종 규정 등을 담고 있는 령(令)이 합쳐진 것으로, 중국에서 기원하여 동아시아 각국에 전파되었다. 그런데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에서 ‘율령 반포’는 곧 고대국가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처럼 서술되었다. 예컨대 지금도 각종 개설서와 교과서 등에서 고구려 소수림왕과 신라 법흥왕대의 ‘율령 반포’를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성립의 지표로 서술하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율령’에 대한 이러한 ‘특별한 관심’은 일본의 고대사 연구에서 촉발되었다. 중국에서 진(秦)・한(漢)의 법제 관련 자료가 출토되고 송(宋)의 『천성령(天聖令)』과 같은 법전이 발견되기 전까지, 온전한 법전은 일본에서만 전승되었고 이 때문에 일본이 율령 연구를 선도해온 것이다. 특히 일본에서는 고분시대를 벗어나 수・당의 율령을 기초로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완성한 시대를 ‘율령국가’ 단계로 규정하고, 이때의 체제를 ‘율령제’로 규정하면서 율령을 한 시대를 특정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아울러 니시지마 사다오(西嶋定生)가 창안한 ‘동아시아 세계론’에서 율령을 한자, 유학, 한역(漢譯) 불교와 함께 동아시아 세계가 공유하는 4개의 문화지표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율령은 고대국가의 발전을 가늠하는 지표이자, 동아시아 세계의 범주를 설정할 수 있는 보편적 문화 요소로 중시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 고대사에서도 율령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사료의 한계에도 율령의 실체, 모법(母法)의 여부와 그 구체적 대상, 편목의 복원, 율령의 성격과 편찬 방식, 특징 등으로 그 연구를 심화해왔으며, 관련된 다수의 박사학위논문이 발표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을 보면,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율령이 차지한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율령을 고대국가 지배체제 완비의 지표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롯하여, 율령에 관한 종래의 연구관점은 한국사와 전개 과정이 다른 일본의 관점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찍부터 제기되었다. 아울러 종래에 ‘율령’에 논의가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율령 반포’ 이전의 고대법의 실상과 그 전개 과정은 제대로 해명되지 못하였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봉평비>와 <냉수리비>가,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 <중성리비>와 <집안비> 및 다양한 목간 자료 등이 발견되면서 한국 고대 사회의 법의 실체와 집행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정할만한 자료들이 축적되고 있으며, 종래의 율령 연구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김창석의 『왕권과 법: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은 과거 율령 연구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이상의 신출토 자료들을 다각도로 분석함으로써 법의 형성과 운용의 구체적 양상을 밝힌 저작이다. 특히 한국 법제의 기원과 전개 과정을 왕권 및 국가지배체제의 발전단계와 대응시켜 일관되게 설명하려 한 점에서 기존 연구와의 차별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글에서는 책의 핵심 주장과 내용을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 아쉬움과 후속 연구에 기대하는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책의 핵심 주장과 내용 이 책은 『왕권과 법』이라는 제목과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이라는 부제를 통해 전체적인 문제의식과 선행연구와 차별화된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우선 책 제목에서 ‘왕권’과 ‘법’을 병렬한 것은 한국 고대 사회에서 법의 형성과 시행에 왕권이 핵심 동력이었던 동시에, 법제의 체계화 과정에서 고대의 왕권이 성립되었다고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또 부제에서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통용해온 ‘율령’이라는 용어 대신 ‘법제’를 선택한 것에는, 일본학계에서 비롯된 기존의 연구관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율령 반포 이전의 법의 기원과 율령 반포 이후의 변화를 연속선상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가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한국 고대의 법 문화를 주제로 2011~2018년에 발표한 개별 논문들을 재구성하고 보완한 결과물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동아시아 율령 연구를 종합・비판하여 문제의식을 분명히 한 뒤에, 한국 고대 법제의 발달 과정을 4단계로 구분하여 체계화하고, 문헌자료를 비롯해 비석과 목간 등의 새로운 출토 자료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그 구체적 작동 양상을 살피고 있다. 서론: 동아시아 율령론(律令論)에 관한 비판적 검토 제1장 고조선과 부여의 법속(法俗) 제2장 교령법(敎令法): 삼국 초기의 법제 제3장 고구려의 왕명체계(王命體系)와 교(敎)・령(令) 제4장 율령법의 기능과 성격 제5장 <집안 고구려비>에 나타난 수묘법(守墓法)의 제정과 포고 제6장 신라 중・하대 율령의 개수 제7장 복수관(復讐觀)을 통해 본 고대의 법문화 결론: 고대 법의 변천과 교령법의 의의 이상의 전체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선행연구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저자의 주장을 집약한 서론, 고대 법제의 형성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이를 집권체제의 발전 과정과 유기적으로 연결해 서술한 1~5장, 이른바 삼국통일 후 율령의 운영과 개수를 서술한 6장, 법제의 변화와 고대인의 의식・관념 변화의 관계를 서술한 7장, 저자의 주장을 다시 한번 정리한 결론으로 이루어져, 시간의 흐름에 따른 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결론에서 고대 법제의 구축 과정에서 교령법이 갖는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가 법제의 발전단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교령법이다. 이 때문에 2~5장에 걸쳐 교령법의 성립과 집행 과정, 의의를 밝히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중성리비>, <냉수리비>, <집안비>를 통해 율령 반포를 전후한 시기에 교령이 한국 고대의 행정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양상을 상세히 그려냄으로써 교령법의 실상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종래의 연구는 대개 한국 고대의 법이 불문법(不文法 혹은 관습법(慣習法), 고유법(固有法))에서 중국의 법제인 율령을 받아들여 이를 반포함으로써 성문법(成文法)으로 전환되었다고 파악하였다. 나아가 성문법은 전통적인 고유법과 중국 율령을 통해 받아들인 외래법(外來法 혹은 계수법(繼受法))으로 구성되었으리라 추정하여, 계수법의 계통을 밝히는 것에 주목해왔다. 여기에는 고유법과 계수법을 구분하여 계수법의 계통을 찾는 일본 학계의 연구방식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따르면, 신라 율령 자체의 성립과 체계화 과정을 내부의 논리로부터 파악하기가 어려워진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중국 고대 사회의 역사적 산물인 율령이라는 용어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를 강조하고, 한국 고대의 율령을 중국 율령 그 자체가 아닌, ‘중국식 율령의 형식을 빌려온 법체계’로 정의하였다. 이에 따르면 율령의 반포는 외래법의 유입이 아니라, 전통적 법제를 율령이라는 형식에 따라 재편한 것에 가깝다. 저자는 이처럼 한국 고대의 법제는 이전 시기의 법적 전통이 유지되는 가운데 지속해서 확충・수정되었음을 주의해야 하며, 그 구체적인 형성・변화과정은 ‘신정법(神政法)-소국법(小國法)-교령법(敎令法)-율령법(律令法)’으로 단계화할 수 있다고 본다. 저자의 견해에 따라 각 단계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신정법은 신정정치의 시기(청동기시대) 통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사법 시스템을 의미하며, 신판법(神判法)으로서 제의 과정에서 시행된 처형과 사면, 주술적 처벌을 포함한다. 소국법은 소국 단위의 자체 규범으로서 신정법의 전통이 일부 존속하지만 속법(俗法)으로 변화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소국법은 여전히 종교적이고 집단적이라는 점에서 국지성(局地性)을 갖는데, 이를 일부 극복한 것이 다음 단계의 교령법이라 할 수 있다. 교령법은 부(部)체제 아래에서 교(敎)를 법적 효력의 근원으로 하고, 령(令)이라고 하는 구체적 실행명령을 통해 현실에 시행되는 법제를 의미한다. 국가의 중요정책이나 대처가 여러 부(部)의 ‘공론(共論)’을 거쳐 ‘교’로 내려지는데, 집권화의 진전에 따라 ‘교’의 주체는 점차 국왕을 단일 주체로 하게 된다. 교령법은 본질적으로는 특정사안이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표된 단행법적 성격을 가지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장기적으로 효력을 유지하는 것들이 있었다. 율령법은 이러한 기성의 교령과 판례들을 종합하여 사안별로 분류하고 이를 한 수준 높게 추상화・일반화시킴으로서 법률 조항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삼국은 중국식 율령의 형식, 즉 형률과 행정령의 구분과 같은 방식을 참고하였다. ‘장형(杖刑)’처럼 중국 율령의 구체적 내용도 일부 수용되었음이 확인되지만, 삼국이 반포한 율령의 기본은 신정법 이래의 전통적 법이었을 것이다. 교령은 본래 중국에서 황제보다 하위의 신분・직급이 사용하던 명령방식으로, 황제의 제(制)・조(詔)와 구분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한나라 이후 책봉-조공 관계를 맺은 주변국에 수용되었다. 한반도에서는 2세기 고구려가 먼저를 이를 수용한 후 제도화하였고 이후 내물~실성왕대에 신라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령법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체제 정치구조에 대응하는 법제로서, 제부(諸部)의 공론(共論)에 따라 내려진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동시에 교령법에 따른 조치는 각 부가 행사해온 사법권을 부정하고 강제로 집행되었다. 즉, 교령법은 부체제 시기의 법제이면서도, 각 부가 자체적으로 행사하던 사법권을 잠식하여 왕권에 집중시킴으로서 부체제를 해체하고 집권체제로 이행하는 흐름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한편 교령은 율령법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뿐 아니라, 율령 반포 이후에도 계속해서 내려지면서 법적 효력을 유지하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신라 중대 이후 ‘격(格)・식(式)’이 수용되기 전까지, 교령은 ‘격’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면서 율령을 보완하였고, 율령과 교령이 상치될 경우에는 교령이 우선되었다. 저자는 삼국시기에 율령이 다시 반포되지 않았던 이유를 이와 같은 율령과 교령의 상호관계에서 찾았다. 앞서 시행된 법제가 기층에서 존속하며 이후의 법제에도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한국 고대 법제의 특징이 율령 반포 이후로도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3. 책의 가치와 아쉬움, 그리고 전망 이 책이 그간 다소 막연했던 한국 고대 법제의 발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첫 번째 시도이자, 법제의 발달과 집권체제의 정비의 긴밀한 관계를 밝힌 의욕적 저작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저자가 일본이 주도해온 율령 연구의 문제점을 예각화하고, 기존 견해가 율령 반포 이후에 집중한 것과 달리 그 이전을 ‘교령법’으로 개념화하여 연구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후속 연구에 큰 자극을 주었다. 저자가 구상한 법제의 발전단계는 한반도 삼국에 공통되는 모델로서, 이 책의 서론에서 언급된 것처럼 중국과 일본 법제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의 연구사적 의의는 한국사의 범주를 넘어선다. 아울러 저자가 율령 연구가 일본학계의 시각에 크게 의존해온 측면이 있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한 것은, 고대사 연구에 있어 ‘율령’ 외의 분야를 연구할 때도 경청해야 할 바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몇 가지 궁금증과 아쉬움도 있는데, 이는 향후 저자와 저자의 연구에 자극받은 후속 연구들이 해결할 과제일 것이다. 우선, 신정법-소국법-교령법-율령법이라는 발전단계 설정의 적합성 문제이다. 저자가 제시한 법제의 발전단계는 제정일치 단계, 제정이 분리되고 세속적 힘이 확대되어 소국이 형성되는 단계, 소국 간 복속・통합 속에서 부체제가 해체되고 국왕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단계, 국왕권 아래에 지배체제가 정비되어 안정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국가발전단계와 법제를 연결한 것이다. 이는 법제의 발달에 국왕권의 성장이 동인이 되는 동시에 법제의 발달로 왕권 확립과 지배체제 정비가 이루어졌다는 저자의 이해에 기초한다. 그리고 각 단계는 단절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이전 단계와 중첩되어 이행해갔다고 설명한다. 큰 맥락에서 보면 이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서술이다. 하지만 이상의 단계 설정은 ‘이해의 틀’로는 적합하지만 실제 이에 부합하는 명확한 사례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예컨대 신정법과 소국법은 현존하는 자료 속에서 이행 시점을 분명히 지목하기 어려워서, 한국사의 최초의 법이라는 ‘범금팔조(犯禁八條)’에서도 이미 신법(神法)과 속법(俗法)이 혼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교령법의 의미와 관련하여 후술하겠지만, 교령법에서 율령법으로의 이행도 실제 사료에서는 분명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저자가 이상의 단계 설정을 중국과 일본 법제의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데에도 적용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한 만큼, 향후 새롭게 출토될 자료 및 중국・일본의 법제와의 비교연구 등을 통해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두 번째는 단계 설정에서 사용된 용어의 일관성 문제이다.1) 신정, 교령, 율령이라는 용어는 각각 해당 법제가 제정되고 시행되는 동력과 근거를 기초로 명명된 듯하다. 신정은 신의 판단에 따른 통치를, 교령은 왕 등에 의한 명령이, 율령은 법전이 일종의 법원(法源)이 된다. 이렇게 보면 소국법은 여타의 단계들과 달리 법의 영향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아울러 율령법이라는 용어는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법을 뜻하는 대표적 용어였던 ‘율령’과 ‘법’을 병치한 조어(造語)여서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에게 자극을 받아 이후 정동준,2) 한영화3) 등이 한국 고대 법제의 발전 단계안을 다시 설정한 만큼 향후 연구자들이 이와 관련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세 번째는 교령의 실체와 의의에 대한 문제이다. 저자는 교령법은 율령법의 전(前)단계일 뿐만 아니라, 율령 반포 후에도 교령이 율령법을 보완하였고 율령과 상치될 때는 교령이 우선되었다고 하여, 교령법이 고대 법제의 핵심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2세기경 성립한 교령제가 늦어도 5세기에는 신라에 수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5세기의 고구려는 교령법을 넘어 율령법의 단계였는데, 신라가 고구려의 율령법을 수용하지 않고 교령제를 수용했던 것은 고구려에서도 율령법 시행 초기이며 신라는 지배체제가 미성숙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하여, 신라 역시 교령법 단계를 거쳐 율령법 단계로 나아간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신라의 경우 ‘교’・‘령’은 율령 반포와 거의 동시기 자료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저자는 중고기 말~중대 초 당의 율령 수용으로 신라의 법제가 큰 폭의 변화를 겪었으나 율령의 재반포 기사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인 방식은 ‘추보’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처럼 교령이 율령 반포와 거의 동시기에 등장하며, 율령 반포 후에도 교령이 기존 율령에 추보되는 것이라면, 교령법을 별도의 ‘단계’로 설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추후 사례가 확보된다면 교령과 율령의 관계가 조금 더 명확해지리라 생각된다. 네 번째는 이 책의 내용을 다소 벗어난 문제이지만, 법제와 예제(禮制)의 상호보완적 관계에 조금 더 천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사에서 ‘율령제’ 혹은 ‘율령국가’ 논의가 없는 것에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율령이 크게 변화해왔기 때문에 율령이 시대사를 특징짓기에 적합하지 않은 소재라는 이유가 있다. 이에 더하여 중국의 국제(國制)에서 법제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예제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4) 중국은 한나라 이후로 법과 예라는 이원적 통치이론을 국가와 사회의 기본 운영 원리로 삼아왔다. 이는 중국에서 율령 체제의 골격을 처음 정비했다고 알려진 서진(西晉)에서 『태시율령(泰始律令)』이라는 법전과 『진례(晉禮, 五禮儀註)』라는 예전을 편찬한 이래 당(唐)에 이르기까지 법전과 예전이 짝을 이뤄 편찬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5) 따라서 법제를 통해 국왕권의 전개와 국가지배체제의 정비 과정을 살피는 작업에는 예제에 대한 이해가 동반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고구려의 수묘제는 2세기부터 이미 시행되고 있었는데, 소수림왕대의 율령에는 별도의 편목으로 설정되지 않았다가 고국양왕대에 율령에 포함되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저작비평회에서 ‘예제와 법제의 작동 층위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하여 설명한 바 있다. 국왕의 죽음과 관련된 의례는 신성한 것이었기 때문에 늦게 법제화되었다는 설명이다. 당의 국휼(國恤)에도 황제의 상장례가 포함되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일리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때 또 다른 궁금증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고국양왕 때에 법제화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고국양왕대의 왕릉 훼손 및 제사 문제 발생이라는 현실적 요인을 제시했지만, 이는 국왕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를 상정해야 하는 만큼 법제와 예제의 상관관계를 고려하며 해명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는 동아시아 삼국이 율령을 받아들이고 해당 국가 내에서 전승하며 재편하는 구체적인 양상이 복원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한국 고대국가들이 중국 율령을 어떤 방식으로 인지・수용했을까에 대해서는 단행법령의 개별적 수용, 율령 체계의 수용, 법전의 수용 등을 상정해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율령 반포의 ‘율령’을 ‘중국식 율령의 형식을 빌려온 법체계(206쪽)’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율령의 ‘체계’를 수용했다면, 무엇보다 신라가 율령을 제정할 때 편목으로 ‘모모율(某某律)’, ‘모모령(某某令)’을 설정해야 했을 듯한데, 현전하는 자료는 형률은 ‘모모형(某某刑)’으로, 행정령은 ‘모모법(某某法)’의 형태였던 듯하다.6) 그렇다면 이러한 명칭이야말로 율령 수용이 개별 법령을 받아들인 흔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는 새로운 자료의 출토와 한・중・일 고대 법제의 비교연구 속에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궁금증과 아쉬움을 제시하기는 하였지만, 이 책은 ‘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고대의 정치・사회・문화를 살핀 종합적 저작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성취라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새로운 자료의 출토와 이어질 저자의 후속 연구를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미주> 1) 이에 대해서는 한영화와 홍승우가 이미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한영화, 2019 「신라 중대의 의례 수용과 운영」, 『사림』 68, 50쪽; 홍승우, 2021 「한국 고대 율령을 새롭게 보다: 김창석, 『왕권과 법』(지식산업사, 2020)」, 『한국고대사연구』 103 2) 鄭東俊, 2013 「高句麗・百済律令における中國王朝の影響についての試論 : 所謂「泰始律令継受説」をめぐって」, 『國史學』 210. 3) 한영화, 2020 「한국 고대 법의 성립과 시기구분」, 『한국사연구』 189, 한국사연구회 4) 이근우, 1996 「日本 古代 律令國家論 : 연구사와 논점을 중심으로」, 『일본학』 15 5) 小林聡, 2005 「泰始禮制から天監禮制へ」, 『唐代史研究』 8, 唐代史研究會. 6) 김창석, 2021, 『왕권과 법: 한국 고대 법제의 성립과 변천』, 지식산업사, 211쪽 <표 7>에서 복원・구상한 신라 율령의 체계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