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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회의 참관기] 어사제도로 본 19세기 조선사회_김동영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2.11.05 BoardLang.text_hits 11,412
웹진 '역사랑' 2022년 11월(통권 35호)

[학술회의 참관기] 

 

어사제도로 본 19세기 조선사회


- 19세기 어사의 눈으로 본 조선사회 참관기


 

김동영(중세2분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시기가 없겠지만, 특히 19세기는 한국사에 있어서 다양한 시각들이 공존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까지 19세기는 세도정치와 삼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500년간 이어지던 조선의 통치력이 무너지고, 서구 열강과 청나라, 일본의 개입으로 조선 사회가 혼란해지는 시기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19세기의 혼란상은 조선의 멸망과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서사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과연 19세기를 혼란의 시대로만 비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19세기의 문제들이 정말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는지, 19세기~20세기 동안 조선을 포함하여 제국주의 침탈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한 국가들이 사회 내부 모순과 부패 때문에 멸망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선배들의 추천으로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의 국가와사회연구반과 19세기학습반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난 2022년 10월 14일 한국학중앙연구원 강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어사제도로 본 19세기 조선사회”에 참관하게 되었다.

발표회는 총 3부로 나뉘어 있었다. 1부와 2부는 주제발표였고, 3부는 종합토론이었다. 1부의 첫 발표는 박범 선생님의 “19세기 암행어사 파견 양상과 성격”이었다. 박범 선생님은 19세기 암행어사의 선발 과정과 선발된 암행어사의 출신 성분, 연령대 등을 분석함으로써 19세기 암행어사의 성격을 고찰하였다. 특히 순조~철종대에 이르는 총 113명의 암행어사의 과거 급제 여부와 본관을 확인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는데, 113명 모두 문과 급제자이며, 순조대에는 장원 급제자가 13명, 헌종대 3명, 철종대 3명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장원 급제자를 파견하는 경우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또한 이미 선행연구에서 다뤄진 바 있지만 19세기 암행어사로 선발되었던 이들은 대부분 홍문록과 도당록에 등재되어 있어 어사를 수행한 전후로 홍문관 관직을 역임하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는 어사로 파견된 인물이 대부분 경화사족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 박범 선생님은 어사로 파견된 인물, 지방에 감사로 부임하고 있는 인물이 모두 경화사족이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19세기에 발생하는 어사와 감사 간의 분쟁이 가능했던 원인을 추론하였다. 박범 선생님의 발표는 19세기 어사 출신자들이 모두 당대 엘리트 관료였음과 가문 배경에 힘입어 감사와 다툴 수 있는 위치에까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발표는 이은지 선생님의 “19세기 수령 恩賞 선정의 조건과 의의-암행어사 書啓를 중심으로-”였다. 암행어사는 지방을 감찰하였던 만큼 수령을 평가한 후 평가 결과에 따라 시상과 처벌을 하였다. 이은지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한편 후술하겠지만 이정현 선생님의 발표는 후자에 주목하고 있다. 이은지 선생님의 발표 내용 중 인상깊었던 것은 19세기 수령의 은상 내용을 분류한 작업이었다. 이은지 선생님은 총 11가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은상이 이루어진 여부를 검토하였다. 특히 이 작업에서 은상할 때의 평가기준으로 田政, 軍政, 還政이 존재하였던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분류의 기준이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는 점과 삼정을 모두 평가받은 수령이 32명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19세기에 가장 큰 사회문제로 다루어졌던 삼정에 대해서 어사와 중앙정부가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목되었다.

세 번째 발표는 정규완 선생님의 “19세기 경기암행어사의 서계·별단 검토”였다. 정규완 선생님은 경기 지역에 파견된 암행어사의 활동 전반에 대해 소개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경기 지역의 특징이 발견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경기 지역은 조선초기부터 칙사를 접대하는 문제, 왕릉을 관리하는 문제가 주요 사회 문제로 거론되었다. 이를 위해 중앙 조정에서는 각종 제도를 만들어 민인을 지원하였는데, 19세기 암행어사가 감찰하여 중앙에 보고하였던 내용들도 대개 같은 범주였던 것으로 보인다.

네 번째 발표는 이행묵 선생님의 “1874년 함경도 암행어사의 활동과 구폐책”이었다. 앞서 정규완 선생님이 경기 지역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면 이행묵 선생님은 함경도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였다. 이행묵 선생님의 발표에서 주목된 점은 함경도의 환곡 문제와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함경도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19세기에 자주 등장한 문제는 환곡이었다. 호구수에 비해 과도하게 부관된 환곡은 민인에게 부담으로 작용하였고, 중앙 조정과 지방 관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환곡 문제의 정도와 해결책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 있었던 듯하다. 특히 이행묵 선생님의 이번 발표에 등장한 사징전 징수는 다소 생소하였다. 어사가 처벌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벌금을 징수하여 부족한 지방 재원을 보충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외에도 중앙에서 함경도의 환총을 감소시키는 정책을 꾸준히 진행하였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사징전의 형태는 흥미로웠던 한편 지역별로 환곡 문제를 다룰 때 차이가 보였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다섯 번째 발표는 이정현 선생님의 “19세기 전반 암행어사 서계를 통해 본 지방관 처벌 양상과 조선 조정의 인식”으로, 앞서서 시상에 대해 분석한 이은지 선생님의 발표와 반대로 처벌을 분석하였다. 이정현 선생님의 분석은 주로 조선시대 경제의 핵심이었던 삼남 지방이었다. 이정현 선생님은 암행어사 서계와 지도를 이용하여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 지역의 징계 횟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정현 선생님의 통계 분석에서 주목되는 사실은 어사의 주요 징계 대상이 되었던 지역이 모두 주요 교통로였다는 사실이다. 충청도의 태안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운에 있어 중요한 지역이 어사의 주요 감시 대상이었음을 의미하였다. 이는 부세제도 운영 과정이 주요 감찰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김동일 선생님의 발표는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염찰 권한과 형벌권 정립과정”이었다. 김동일 선생님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어사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분석한 후, 어사의 형벌권의 의미를 조명하였다. 특히 어사제도가 조선후기로 이어지면서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었고, 그 중 지방관에 대한 형벌권이 남용되는 사례들을 주목하였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앞서 이정현 선생님의 발표와도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보이는 발표였는데, 다만 19세기의 상황을 조명해주지는 못한 듯하여 아쉬움이 남았다.

“어사제도로 본 19세기 조선사회”를 참관한 후 19세기 사회의 상황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많다. 이번 발표회는 중앙의 입장을 대변하는 어사가 지방사회에 침투하여 발견한 문제들과 개혁한 내용들을 본 것이었는데, 중앙과 지방 간의 관계 조명에 앞서서 중앙은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는지, 지방은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중앙과 지방, 국가와 사회를 모두 아우르는 연구들이 축적되었을 때 비로소 19세기 사회를 보다 더 생동감 있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번 발표회를 참관함으로써 개인적으로 많은 문제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항상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중세2분과 국가와사회반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