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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119호) 시론] ‘5・18 역사왜곡처벌법’과 역사의 사법화_김헌주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1.04.06 BoardLang.text_hits 14,352
 

웹진 '역사랑' 2021년 4월(통권 16호)

[『역사와 현실』(119호) 시론]

 

‘5・18 역사왜곡처벌법’과 역사의 사법화


 

김헌주(근대사분과) 




 

‘역사부정론자’에 대한 응징, 그 너머


홀로코스트 부정론에 관한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Denial)’의 첫 장면은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의 강연에 데이빗 어빙이 찾아와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데이빗 어빙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내용이 담긴 『히틀러의 전쟁(Hitler’s War and the War Path)』(1977)이라는 책을 쓴 영국의 재야 역사학자였다. 그는 립스타트가 『홀로코스트 부정하기(Denying the Holocaust)』(1994)라는 책에서 자신을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라고 규정했던 것은 자신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며 고소절차를 진행했다. 아우슈비츠에 가스실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홀로코스트는 사실이 아니므로 자신은 ‘부정론자’일 수 없다는 것이 어빙의 주장이었다. 재판의 핵심 쟁점은 데이비드 어빙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는지 여부였다. 나치독일을 전공한 역사학자 리처드 에반스까지 가세한 공방은 립스타트 측의 승리로 끝났다. 어빙이 네오나치주의자들과 협력하여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 어빙은 패소했으며 재판비용 보상 문제로 개인 파산까지 당했음은 물론, 2006년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부인 및 왜곡을 범죄로 규정한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당하기까지 했다. 600만 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류최악의 전쟁범죄를 부정했던 악당의 말로는 이토록 비참했고, 이 긴 싸움은 권선징악의 스토리로 마무리된다.주1)

그러나 어빙 체포 이후의 현실은 좀 더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어빙이 체포당한 후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어빙의 석방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면서 구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어빙의 재판상대였던 립스타트 교수도 그 연판장에 서명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립스타트의 생각이 변했을까. 아니면 긴 재판 진행 중에 어빙과의 인간적 교류가 생겼을까. 둘 다 아니다. 미국의 역사학자들과 립스타트 교수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어빙에 대한 형사법적 규제를 반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역사문제를 사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입장과는 다른 쟁점을 야기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한국은 식민지 경험, 한국전쟁, 군사정권기 고문과 학살 등의 역사적 상흔이 있다는 점에서 유럽 못지않게 역사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고 관련 논의도 활발하다. 특히 5・18에 관한 국민적 기억은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슬프게도 ‘역사부정론’에 관한 양상 역시 비슷하게 펼쳐지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5・18 부정에 관한 형사법적 규제 논의도 제기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제정과정과 그 명암에 대해서 살펴보자.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제정 과정


2020년 정기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통과되었다. 기존의 특별법에서 5・18에 관한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법이 강행된 것은 오랜 기간 지속된 5・18에 관한 왜곡이 근저에 있음은 분명하다.

극우단체와 극우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 등에서 꾸준히 제기한 북한군 개입에 의한 무장폭동설 등의 음모론은 사회 일반으로 확대되어갔다.주2) 급기야 2019년 1월 8일에는 자유한국당 주최로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공청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발표자인 지만원은 전두환은 영웅이며, 5・18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는 논지의 발표를 하는 촌극이 벌어졌다.주3) 설상가상으로 발표내용에 대해서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김진태, 이종명, 임순례 등은 지만원의 논리를 옹호하기까지 했다. 이종명은 “정치적이고 이념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고 언급했으며, 김순례는 “5・18 진실을 규명하고,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역사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김진태는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선 안된다. 전당대회에 나온 사람들이 이러니, 저러니 해도 5・18 문제만 나오면 꼬리를 내린다. 힘을 모아서 투쟁했으면 좋겠다”고 적극 선동했다. 또한 전두환의 회고록 관련 재판이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언론의 관심을 받으면서 5・18 역사왜곡에 관한 여론의 관심은 더욱 증대되었다.주4)

이러한 흐름에서 2020년 6월 1일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의원을 중심으로(총 31명) 역사왜곡금지법안(이하 역사왜곡법)이 집권 여당 의원 31명에 의해 발의되기도 했다.주5) 역사왜곡법의 제정목적은 다음과 같다. “제1조(목적) 이 법은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세월호참사 등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부인・왜곡하는 행위 및 독립유공자와 전쟁범죄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및 4・16세월호참사 피해자 등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행위를 처벌함으로써, 국민의 역사의식을 제고하고 피해자들의 명예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처벌의 수위는 각 항목마다 그 형량은 다르지만 1년~7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징역과 벌금형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법은 형법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일제 식민통치 옹호단체에 내응하여 그들의 주장을 찬양・고무, 선전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처벌(안 제6조).”한다는 내용도 있다. 찬양, 고무, 선전이라는 단어는 국가보안법의 용어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법은 발의됨과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법 발의 이후 곧바로 법조계에서는 이 법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즉, (1)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 있는데 이것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 (2)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학설이 있는데 그 판단을 수사기관인 검찰에 맡기는 것은 큰 문제이다. (3) 역사왜곡금지법안 제6조 제1항의 일제의 국권침탈과 식민통치를 찬양 혹은 정당화하는 것을 처벌한다는 조항은 국가보안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주6)
역사학계에서도 비판이 있었다. 요컨대 “지금 형법으로도 문제 발언 제재가 가능해 새 입법은 ‘옥상옥’이며 관련 법이 있는 독일에서도 역사부정이 심하게 일어나는 현실이고 이는 법으로 풀 문제가 아닌 토론으로 논파하거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주7)

한편, 비슷한 시기에 더불어민주당 이형택 의원에 의해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이하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발의되자 ‘역사왜곡금지법’은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가로막는 발목을 잡는 법안이라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금방 처리될 수 있으나 역사왜곡금지법은 장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회 임기 4년 동안 끌려다닐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법이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막는 무모한 법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주8) 결국 일제 식민지시기 역사와 세월호 사건 등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한 ‘역사왜곡금지법’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5・18 역사왜곡처벌법’으로 귀결되었다.

이렇듯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정되었다. 개인적으로 이 법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에 대해 이해하고 또 5・18을 둘러싼 각종 망언들에 대해 매우 분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사법적으로 재단하는 이 법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역사 문제가 사법적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해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전문 분석과 비판


이제 법 전문을 분석하여 이 법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짚어보자.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어떤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우선 이 법은 신설법안이 아니라 기존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개정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둔다. 전문 7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은 1995년 12월 21일 법률 제5029호로 제정되었는데, 2020년 개정에 따라 제8조가 신설되었다. 따라서 정식 명칭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주9) 이하에서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으로 지칭하도록 하겠다.주10) 먼저 이 법의 제안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제안이유 및 주요내용
5・18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대표적인 민주화운동이자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슬픈 역사임. 그러나 4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5・18민주화운동을 비방하고, 폄훼하고, 역사적 사실을 왜곡・날조함으로써 국론 분열을 조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들이 있음.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은 희생자와 유족 등에게 단순히 모욕감을 주거나 그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역사인식 전파와 국론 분열이라는 더 큰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형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일반 법률보다 더욱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음.
이에 이 법의 목적(안 제1조)과 5・18민주화운동의 정의(안 제1조의2 신설)를 보다 명확히 하고,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의 진행 정지를 명시하고(안 제2조),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여 국론 분열을 방지하고 5・18민주화운동이 대한민국의 역사로 올바르게 자리매김 하도록 하려는 것임(안 제8조 신설).


제안 이유의 핵심은 ‘잘못된 역사인식 전파와 국론 분열’이라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것은 “희생자와 유족 등에게 단순히 모욕감을 주거나 그 명예를 훼손하는 것을 넘어, 잘못된 역사인식 전파와 국론 분열이라는 더 큰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지므로 일반 법률보다 더욱 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잘못된 역사인식이 과연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과 국론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된다.

잘못된 역사인식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역사학에서 ‘올바름(正)’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20세기 후반 이후의 역사학 연구의 흐름은 모두 역사학의 현재성과 구성주의적 측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울러 근대역사학이 자부한 과학성과 객관성이라는 ‘고귀한 꿈’이 깨지고 있다는 성찰도 있었다.주11) 이러한 부분을 상기해보면, 역사학의 올바름과 잘못됨을 구분한다는 인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론의 통일 문제 역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국론은 반드시 통일되어야 하는가? 5・18에 대한 혐오 담론을 비판하기 위해 국론 통일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불필요해보인다. 국론의 통일을 막고 올바른 역사를 만든다는 논리는 국정교과서를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 당시의 논의와도 유사하다는 점만 지적해둔다.주12)

다음으로 개정법률안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자. 해당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기 위해서 다소 길지만 전문을 인용하겠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1조 중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를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 한다.
제1조의2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제1조의2(정의) ① 이 법에서 “5・18민주화운동”이란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② 이 법에서 “반인도적 범죄”란 국가 또는 단체・기관(이에 속한 사람을 포함한다)의 민간인 주민에 대한 공격 행위로, 사람을 살해, 상해, 감금, 고문, 강간, 강제추행 등 인륜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말한다.
제2조 중 “헌정질서 파괴범죄행위”를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 한다.
제8조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제8조(5・18민주화운동 부인・비방・왜곡・날조 및 허위사실 유포 등의 금지)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 신문, 잡지, 방송, 그 밖에 출판물 또는 정보통신망의 이용2.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또는 상영3. 기타 공연히 진행한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가두연설 등에서의 발언② 제1항의 행위가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과정에 관한 보도, 기타 이와 유사한 목적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다만, 정부(「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포함한다)의 발표・조사 등을 통해 이미 명백한 사실로 확인된 부분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부 칙
이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개정법률안 중 핵심은 신설된 제8조이다. 8조는 5・18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 등에 관한 처벌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1항은 각종 미디어 및 토론회 등의 공공 영역, 2항은 학문적 영역에서의 ‘왜곡’에 대한 처벌 기준을 언급하고 있다.

우선 검토해야할 점은 공공영역과 학문적 영역에 대한 구별이 과연 가능한가이다. 예컨대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모욕적 표현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은 일종의 선전물이지만, 동시에 학술서적이다.주13) 이런 경우 어떤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만약 학술서적이라서 처벌할 수 없다면 법의 무용함을 드러내는 것이고 해당 서적을 출판금지시키고 저자들을 처벌한다면, 반발심으로 인해 그들의 역사관은 오히려 음지로 더 확대될 것이다. 이 법이 실효성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또한 신문, 잡지, 방송, 전시, 토론회 등 어떤 영역에서건 역사는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역사드라마를 비롯한 미디어의 역사 활용, 신문의 역사이야기 연재,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정치적 토론 등을 생각해보면 공공영역과 학문적 영역은 분리되기 어렵다는 점은 명백해진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공공역사(Public History)’라는 개념이 논의되고 있었고 최근에는 한국학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공공역사 개념을 정립했던 로버트 켈리 교수는 공공역사를 “공공역사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미디어, 역사 유관단체, 박물관, 나아가 개인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학계 외부에서의 역사학 방법론과 역사학자 고용에 관한 것이다.”라고 정의한다.주14)

즉 공공역사학에서 언급하는 역사학의 소비 대상은 출판물과 각종 정보통신망, 박물관과 공연 등의 전시, 각종 토론회 등의 영역에 걸쳐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학의 소비대상이 학술장을 넘어 사회 일반으로 향하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영역의 역사공론장에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법률이 가져올 부정적 파장은 없을지 걱정이 앞서는게 사실이다.

공공영역과 학문적 영역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2항에서 학문적 영역에 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동시에 “정부의 발표・조사 등을 통해 이미 명백한 사실로 확인된 부분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부분 또한 문제적이다. 정부의 발표・조사는 전문가들의 조사와 토론을 거친 결과이므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매번 재해석되는 것이고 새로운 사료발굴과 시대적 인식 변화에 따라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이 법률은 그 연구들의 시도가능성에 봉쇄령을 내릴 위험이 있다. 물론 5・18 부정론자들의 행태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은 사회의 병균들이라고 생각한다. 공론장의 완전무결한 ‘멸균’ 상태를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인류 역사에서 그런 적은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병균들과 적극적으로 싸우며 면역력을 키우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 헌법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고 있다.주15) 이 지점을 다시 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다. 5・18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고통을 외면하자는 주장이 결코 아니다. 그 문제는 현행 형법의 명예훼손 등의 조항으로 강력히 단죄할 수 있다. 역사왜곡의 기준을 법률로 규정하고, 사법기관의 담당자들에게 역사 문제의 심판을 맡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하게 전제되어야 할 것은 ‘역사왜곡’의 기준점 자체가 자의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왜곡’이 성립하려면 정사(正史)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기준일까. 예컨대 5・18에 관한 ‘定名’의 과정을 살펴보자. 5・18은 폭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항쟁, 민주화운동, 대중봉기 등의 다양한 명칭들로 정의되었다. 현재 교과서와 국가의 공식적 기억은 ‘5・18 민주화운동’이다.주16) 이 명명은 물론 정당하다. 그러나 역사연구에서 하나의 명칭과 역사상만 강요할 수는 없다. 실제로 5・18의 성격에 관해서는 무수한 연구성과들이 제출되어 있다. 민주화운동론(시민항쟁론), 민중항쟁론, 노동계급의 무장봉기, 인간 존엄성을 위한 저항이라고 평가하는 논의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5・18의 주체에 대해서는 범광주시민, 범민중(계급) 연합, 노동계급, 민중과 계급으로 환수되지 않는 인간이라고 정의하는 논의들이 제출되어 있다.주17) 요컨대 5・18은 민주화운동사의 서사로만 확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5・18의 역사상이 ‘민주화운동사’로만 고정되었다면, 만약 5・18 특별법이 처음 제정된 1995년에 문제의 8조가 존재했다면 이러한 연구들이 빛을 볼 수 있었을까?

이처럼 복잡한 사안을 학문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의 과정으로 남겨두지 않고 사법의 차원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과연 옳은가? 역사문제는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여 학문적・시민적 공론장의 영역에서 해소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무너질 때, 역사가 정치권력의 도구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경험한 바와 같다.

 

역사의 사법화와 공론장의 위축을 우려하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역사부정 문제를 국론 분열을 명분으로 사법화하는 것은 합리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태생부터 많은 한계점을 내재하고 있다. 이 법이 5・18을 모독하는 집단에 대한 일정한 차단장치가 될 수는 있겠으나, 우리 사회의 5・18에 대한 기억을 확대하는 공론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가 역사논쟁을 사법적 차원으로 대응하지 말고, 인권보편주의(human rights universalism)에 입각해서 보편적 인권관을 시민에게 확산시키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한다.주18)

또다른 문제는 5・18 뿐만 아니라 수많은 쟁점들이 내재한 근현대사의 모든 사건들이 정치적 변화에 따라 사법적 단죄의 대상으로 설정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던 상황에서 야당 의원에 의해 천안함 사건을 왜곡한 사람에 대해 처벌하자는 법률이 발의되기도 했다.주19) 뿐만 아니라 ‘일제찬양금지법’도 특별법으로 제정하라는 요구가 시민운동가와 광복회 등에서 제기되기도 했다.주20)

이것은 일종의 ‘역사의 사법화’ 현상이 상호 경쟁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징후라고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첨예한 대립각에 서있는 모든 역사적 사건들을 법률로 규정한다면, 과연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할까. 반공 군사독재 시기 사상의 자유가 억압되던 시절에 한국현대사에 대한 연구 자체가 금기시되었던 역사를 상기해본다면 공론장의 위축이 가져올 문제점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지금 필요한 것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사법적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적・시민적 공론장의 영역에서 더 활발하게 논의할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아울러 관련 연구를 통해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최초 발포자와 책임자를 규명한 후, 그 성과를 시민적 교육으로 승화하고 책임의 범위를 형이상학적 차원까지 확장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서두에 언급했던 홀로코스트 부정론자 어빙과의 재판에서 승리했던 립스타트가 어빙이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당한 사건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검열제가 승리했기 때문에 나는 기쁘지 않다. 나는 검열을 통해서 전투를 승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와 투쟁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와 진실이다.”주21)

 

<미주>

주1) 이상의 재판과정에 대해서는 임지현, 2019 『기억전쟁』, 휴머니스트, 41~54쪽을 참조했다.
주2) 대표적으로 지만원, 전사모, 극우성향의 인터넷 사이트인 일베저장소 등이 “북한이 600명의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광주를 점거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며 시위를 지휘하고 계엄군을 공격했다.”는 류의 주장을 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 일일이 반박하는 것은 이 글의 취지와 어긋난다. 다만 북한개입설에 관해서는 지난 2019년에 국방부에서도 “2005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2017년 5・18특별조사위원회 등의 조사결과 및 확보자료에서 북한군의 개입사실이 확인된 바 없다. 이에 국방부는 북한 개입 의혹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언급하면서 북한군 개입설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장을 냈다는 점만 밝혀둔다. 「국방부, 5・18 북한 개입설 “근거 없는 것으로 판단”」 『머니투데이』 2019년 2월 12일
주3) 「지만원 “전두환은 영웅, 5・18은 북한군 주도 게릴라전”」 『오마이뉴스』 2019년 2월 8일
주4) 「전두환 회고록 ‘역설’…5・18 진실규명 ‘기폭제’」 『news1』 2020년 12월 5일
주5) 이하 법률 원본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http://likms.assembly.go.kr/bill/main.do)을 참조했다.
주6) 「법조계, ‘역사왜곡금지법’ 무리한 입법 우려」 『머니투데이』 2020년 6월 4일
주7) 「“말로 풀 걸 법으로?”…역사왜곡금지법에 사학자도 갸우뚱」 『머니투데이』 2020년 6월 30일
주8) 「양향자 ‘역사왜곡금지법’…‘5・18역사왜곡 처벌법’ 발목잡는 법안 논란 」 『광주데일리뉴스』 2020년 6월 2일
주9) 대한민국 국회, 2017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에디시옹장물랭, 1장
주10) 국회 의안정보시스템(http://likms.assembly.go.kr/bill/main.do)
주11) 조지 이거스, 임상우 역, 1998 『20세기 사학사』, 푸른역사, 218쪽
주12) “역사는 그 나라 국민의 혼과 같은 것인데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않고 시민으로 자란다면 혼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 (중략) 우리가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지만 이런 가치와 자기 뿌리에 대한 어떤 공감대가 있지 않으면 통합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면에서도 이 역사교육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17 대입부터 한국사 필수...수능, 검정시험중 선택」 『베리타스알파』 2013년 7월 12일
주13) 김헌주, 「‘반일종족주의’를 읽는 법」 『한국역사연구회 웹진 역사랑(歷史廊)』 2020년 1월호. 이밖에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강성현, 2020 『탈진실의 시대, 역사 부정을 묻는다』, 푸른역사 ; 이철우, 박한용 외・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기획), 2020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푸른역사를 참조.
주14) 마르틴 뤼케・이름가르트 췬도르프, 정용숙 역, 2020 『공공역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9쪽
주15) 대한민국 헌법 제22조 제1항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②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
주16) 국가의 공식행사, 교과서, 백과사전 등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을 볼 때,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명명이 현재 대한민국의 5・18에 관한 공식적 기억이라고 정의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주17) 5・18에 대한 연구사 정리와 명칭변화에 대해서는 김정한, 2013 『1980 대중봉기의 민주주의』, 소명출판, 1장 ; 노영기, 2020 『그들의 5・18』, 푸른역사, 서장을 참고했다.
주18) 이재승, 2010 『국가범죄』, 도서출판 앨피, 580쪽
주19) 「국회, 천안함왜곡처벌법은 표현의 자유 침해…5・18과 달라」 『매일경제』 2020년 12월 9일
주20) 「서울의소리 백은종 대표 “일제찬양금지법 만들라” 국회 앞 농성」 『신문고뉴스』 2021년 2월 24일
주21) http://lipstadt.blogspot.com(2008.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