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기사

웹진기사 미디어 비평

모든 사건을 머금은(含)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웹툰 "칼부림")_서원익

작성자 한국역사연구회 BoardLang.text_date 2020.08.15 BoardLang.text_hits 24,958
 

웹진 '역사랑' 2020년 8월(통권 8호)

 

모든 사건을 머금은(含)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네이버 웹툰 "칼부림" 비평 


 

서원익(대만 성공대학교 박사과정)


 

♣ 본 원고의 모든 삽화는 해당 웹툰 작가와 협의 하에 사용한 것입니다.  

들어가며


네이버 웹툰 칼부림은 2013년 12월 4일에 첫선을 보였다. 신작이 올라왔을 때, 관심이 가면 일단 클릭을 해보는 편인데, 역사를 전공하기에 더더욱 넘어갈 수 없었던 웹툰이 바로 칼부림이었다. 처음부터 본 웹툰이었지만 2013년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긴 호흡으로 달려와, 예전에 본 내용이 가물가물하기도 하여 겸사겸사 ‘정주행’을 하였다. 본래 요일마다 보는 것이 적어도 3편은 있을 정도로 웹툰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 칼부림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이른바 덕업일치의 대단히 즐거운 일이 될 것이라고만 상상하였다. 그런데 막상 열고 보니 볼 때는 재밌었지만 쓰려고 보니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2020년 7월 31일을 기준으로, 칼부림은 각 부의 프롤로그와 작가 후기, 특별편 등을 포함하여 총 4부, 271편이 올라와 있으며, 그중 본 에피소드는 265편이다.

1부가 다루는 시기는 인조(仁祖)반정(1623)에서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총 64화로 구성되었다.

2부가 다루는 시기는 이괄의 난(1624) 시작부터 이괄의 난이 실패하는 것까지로, 총 64화로 구성되었다.

3부는 이괄의 난 이후, 주인공이 조선을 탈출하여 요동에 이르는 내용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연도로 보자면 여전히 1624년(인조 2)인 것으로 보인다. 총 68화로 구성되었다.

4부는 요동으로 간 주인공이 후금(後金)으로 들어간 이후의 활약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2020년 7월 29일 기준으로 영원성 전투(1626)가 끝난 상태이며, 총 69화까지 나온 상태이다.

[caption id="attachment_8127" align="aligncenter" width="304"]<그림 1> 네이버 웹툰 칼부림의 섬네일[/caption]

웹툰이 다루고 있는 시간은 1623년부터 1626년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니, 몇십 년 몇백 년을 넘나드는 퓨전 사극이나 여타 판타지 웹툰에 비하면 소소한 시간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동안 주인공 함(含)이의 조금(?) 격한 일상 브이로그를 그림으로 그려내다 보니 다루고 있는 내용이 방대하다. 그리고 이 주인공이 보통 사람이 아니다. 관련 인물만 해도 엄청나다. 주인공은 그 시기 조선과 맞닿은 모든 지역의 사람들과 인연이 있는, 그야말로 국경 없이 사는 동아시아인의 전형으로 그려진다.

또한, 이 웹툰은 고증이 잘 되어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갑주, 도검, 활 등의 무구류 고증의 평가가 높다. 실제로 매화 댓글창에는 고증이 어떻게 되었다는 평가가 꼭 보인다. 따라서 동강진과 모문룡(毛文龍)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공부한 필자가 칼부림 전체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이번 글에서는 칼부림의 주요 내용에 대해 정리해보고 작품에 동강진과 관련된 몇 가지 역사적 상상력에 대해 적어보겠다.

[caption id="attachment_8128" align="aligncenter" width="703"]<그림 2> 왜란 때 코가 베인 노인 [/caption]

 

폭풍이 휘몰아친 4년의 세월


웹툰의 시작은 인조반정에서부터다. 기본적으로 작품은 사건의 흐름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진행이 되지만, 세부적인 면에서는 역사와 다른 부분도 있다. 먼저 주인공 김함(金含)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주인공은 김경서(金景瑞, 김응서金應瑞)와 기녀 계월향 사이에서 나온 서자로, 모친인 계월향이 겁간을 당하여 죽자, 항왜(降倭) 출신인 양부 서아지(徐牙之)의 손에서 자랐다. 그래서 주인공은 어미를 죽인 원수를 찾아 죽여 없애는 것이 삶의 전부라 할 만큼 복수에 집착한다. 매사 딱딱하고 복수밖에 모르던 함이에게 사르후 전투에 참전하였던 덕만이라는 인물이 살갑게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함이는 점차 덕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함이는 덕만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원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양부 서아지에게 원수는 요동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 석연치 않았던 과정이 덕만을 통해서 밝혀졌다.

인조반정 이후, 함이의 주군인 이괄은 부원수가 되어 여진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청북(淸北)지역으로 파견되었다. 작품 내에서는 이 부분을 다룰 때 이괄과 김류(金瑬)의 대립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결국, 갈등 끝에 이괄은 반란을 일으켰지만 패배하여 죽음에 이르렀다. 함이는 자신을 인정해 준 사람의 죽음을 또다시 눈앞에서 보고 말았다.

이후 이괄 휘하에서 항왜로 활약하였던 함이의 양부 서아지와 동료 고효내(高孝乃)는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역적의 몸이 되어버린 이들은 끝내 또 다른 항왜인 김충선(金忠善)의 칼에 죽음을 맞이하였다(실록에서 고효내는 국청(鞫廳)에서 처형된 것으로 나온다. <<인조실록>> 권4, 인조 2년 2월 24일 기사.). 불행하게도 함이는 여기서 다시 양부인 서아지와 서아지의 전우였던 고효내가 죽는 모습을 목격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함이는 서아지의 부탁을 받은 김충선에게 거두어 들여졌다. 이후, 함이는 영변으로 돌아갔으나 그곳에서 정충신(鄭忠信)에게 붙잡혀 동강진으로 가게 되었다. 함이는 동강진에서 어머니를 죽인 원수 정명수와 맞닥뜨렸으나 아무 일도 하지 못하였고, 동료 덕만은 정명수의 도움을 얻어 후금으로 가게 되었다. 곡절 끝에 동강진을 탈출한 함이는 요동으로 가려고 하였으나 조난하고 말았다. 조난한 함이를 발견한 사람은 조선인 니루에 속한 가달(假㺚) 타스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니루를 이끄는 사람은 한윤(韓潤)이었다. 함이는 조선인 니루에서 전공을 세웠고 친구였던 덕만과도 재회하였다. 그러나 덕만은 함이가 원수인 정명수와 같은 세력에 있다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국 승승장구하던 함이는 심양으로 가 누르하치를 알현한 동시에 자신의 아버지인 김경서와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김경서는 조선과 끊임없이 연락하는 스파이였다.

곧, 누르하치는 함이를 자신의 호위군으로 배치하였다. 이에 김경서는 아들인 함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을 도와 누르하치를 죽여달라고 하였으나, 함이는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김경서는 함이의 도움 없이 습진(習陣) 도중 항왜를 동원하여 누르하치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강홍립(姜弘立)의 밀고로 발각되었다. 이에 함이는 김경서와 연락을 주고받았음에도 사실을 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을 뻔하였으나, 본인의 손으로 아버지인 김경서를 참하라는 명을 이행하여 살아남았다. 이후 함이는 호위군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조선인 니루의 어전이 되어 전장을 누빈다.

 

작품 속 면면(面面)


○ 항왜

함이를 둘러싼 인물들 중, 중요한 사람들이 바로 항왜다. 작품에서 나오는 함이의 양부 서아지는 모하당집(慕夏堂集)에 “이괄의 장수 서아지는 비왜(飛倭)라고 불린다.(适將徐牙之素稱飛倭)”는 기록에 의거 등장한 인물이다. 고효내와 사쇄문(沙洒文) 역시 실록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항왜들이 조선에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터전을 버리고 이전한 사람들이 현지에 적응하는 것은 현대에도 어려운 일인데, 특히나 왜란의 기억을 안고 있는 당시 조선인들에게 일본인과 한데 어우러져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가 잘 알 수는 없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이 부분에도 작용하였다. 작품에서는 조선인과 항왜 사이의 있었을 법한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caption id="attachment_8129" align="aligncenter" width="543"]<그림 3> 조선인과 항왜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caption]

열악한 상황에서도 항왜들은 전공을 세우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갔고, 함이의 성장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caption id="attachment_8130" align="aligncenter" width="768"]<그림 4> 영원성에서 함이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 사쇄문(실록에 의하면 사쇄문은 이괄의 난 이후, 경상도에서 효시한 것으로 나오지만 작품에서는 영원성 전투까지 살아남았다. <<인조실록>> 권5, 인조 2년 3월 4일 기사.)[/caption]

○ 동강진(東江鎭)

작품 속에서 동강진이라고 나오는 곳은 가도(椵島)이다. 동강진이라고 하면 가도를 포함하여 평안도 일대의 일부 도서 지역과 요동 연해 안의 도서 지역을 포함한 군진을 의미한다. 가도는 바로 그 동강진의 중심이다. 따라서 굳이 이야기하자면 가도, 동강진 혹은 가도라고 적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작품 속 동강진은 조선-명-여진을 연결하는 동북아 무역 허브이자, 세 지역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복합적인 공간으로써 등장한다. 그래서 가도는 물산이 집적하는 풍요로운 지역으로 그려진다.



[caption id="attachment_8132" align="aligncenter" width="432"]<그림 5> 작품 속 동강진[/caption]

위 그림처럼 당시 가도는 명과 조선의 상인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작품에서 등장하는 것처럼 여진의 상인들이 공개적으로 들락거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도에 상인들이 모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가도의 지리적 특징 때문이기도 하였다.

당시 동강진을 이끄는 명의 장수는 모문룡이었다. 동강진에서 조정으로 올린 기록을 보면 전공에 관한 것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스스로 올린 기록들이기 때문에 그 기록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 대조해보면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존재한다. 따라서 동강진의 군사력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경향을 받아들인 탓인지 작품 속에서는 모문룡이 후금과 작당을 하고 전공을 속였다는 내용도 보여주었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모문룡과 후금의 내통 의혹에 관한 기사들을 토대로 그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caption id="attachment_8134" align="aligncenter" width="469"]<그림 6> 동강진의 내통 의혹: 작품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후금 측에서는 이 건에 대한 것으로 정명수를 사자로 파견하였다. 후금의 사신이 동강진에 왕래한 기록은 모문룡이 홍타이지에게 화친을 청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1625년 누르하치가 동강진의 영역이었던 금주(金州) 일대를 점령한 이후 모문룡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사신이 왔을 가능성은 있다.[/caption]

이처럼 모문룡의 군사 지휘 능력은 다소 의문이지만, 어쨌든 그는 장수보다는 상인으로서의 재능이 다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모문룡의 상인 기질과 가도의 지리적 특성이 섞이자, 가도는 무역을 통해 번영 일로를 걷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이괄의 난이 끝나자 모문룡이 축하의 의미로 선물을 보내왔다고 했는데, 여기엔 상아로 조각한 여인의 나체상도 있었다고 한다. 유입 경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상아 세공품은 분명 물을 건너온 사치품임에는 분명했고, 동강진은 그런 물건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부연하자면 이 사건은 1624년의 일인데, 작품에서는 이 사건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영원성 전투가 발생한다. 영원성 전투는 1626년에 일어난 일이다. 기존의 작품 진행 속도로 보았을 때, 갑자기 2년이 훅 지나간 것 같지는 않아, 엄밀히 말하자면 시간대가 맞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caption id="attachment_8135" align="aligncenter" width="423"]<그림 7> 동강진의 총병관 모문룡, 작품 속 모문룡은 부의 상징으로 그려진다[/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136" align="aligncenter" width="489"]<그림 8> 이괄의 난을 평정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선물 (<<인조실록>>권5, 인조 2년 3월 15일)>[/caption]

사실 동강진을 왕래하는 상단 혹은 상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실체를 그려냈다. 그리고 그 상단에게 보다 큰 임무를 부여하였다.

서아지와 고효내를 죽인 김충선은 항왜이지만, 누구보다도 동아시아의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즉, 당시의 세력 균형을 깨트리는 모든 존재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로마치(室町) 막부를 무너뜨린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조선을 침범하려 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도 싫어했다. 결국, 김충선은 비밀 사조직을 운영하여 균형추를 깨려는 누르하치를 제거하고자 한다. 함이의 아버지 김경서 역시, 김충선과 소식을 주고받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김충선과 김경서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둘 사이를 엮어주는 인물들은 여러 사건에 휘말려 모두 죽어버렸다. 이들을 대신할 사람은 동강진과 무역을 하는 조선 상단의 행수였다. 이러한 설정 역시 동강진의 지리적 특성과 동강진을 왕래하는 조선 상인들이 있었다는 기록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인다.

[caption id="attachment_8137" align="aligncenter" width="473"]<그림 9> 조선 상단의 행수 정초희와 김충선과 내통하고 있던 김경서 일파[/caption]

그러나 동강진이 후금을 견제하고, 조선과 명 사이의 무역항으로 부를 안겨다 주는 순기능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주지하다시피 동강진은 접제를 이유로 조선에 끼친 해악도 상당했다. 특히 인조 책봉에 도움을 준 이후로는 그 행패가 더욱 심각했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 속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또한, 동강진은 조선 내지에 둔전을 설치하여 후금군의 침입을 유발하기도 했다.

[caption id="attachment_8139" align="aligncenter" width="477"]<그림 10> 불평을 토로하는 조선 병사, 엄청난 양의 군량이 천조(天朝)의 병사들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동강진으로 들어갔다.[/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140" align="aligncenter" width="324"]<그림 11> 조선 내지를 약탈하는 모문룡군[/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141" align="aligncenter" width="507"]<그림 12> 인조 책봉에 관여하고 있는 모문룡[/caption]

[caption id="attachment_8142" align="aligncenter" width="409"]<그림 13> 조선 경내에 설치된 모문룡군의 둔전을 습격하는 후금군[/caption]

 

나가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웹툰 칼부림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함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다. 특이한 점은 기존 역사 콘텐츠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7) 발생 이전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시기를 다루는 드라마 혹은 영화가 제작한다면 대단한 규모의 제작비가 들어갈 것이다. 아마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은 콘텐츠이기에 칼부림에서는 이런 방대한 규모를 다룰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이가 그분의 자손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역사 콘텐츠가 등장하면 주변인들에게 “이 다음에 어떻게 되냐?”. “A라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어?”, “거기서 나오는 B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으면 역사도 작품처럼 되겠지?”와 같은 질문을 많이 받는다. 특히 시대적 배경만 채택하고 몇몇 인물을 제외한 등장인물이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에 의하여 쓰인 경우,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은 더욱 늘어난다. 게다가 뭇 사람들이 해당 작품을 역사로 잘못 알게 되는 경우조차 왕왕 발생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로 청소년 혹은 콘텐츠를 통해 한국 역사를 접하는 외국인들이 된다.

역사를 콘텐츠화하여 소비 계층을 늘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작업으로 인해 역사를 곡해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고 오로지 사실만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라고 한다면, 콘텐츠로써 역사가 활용될 수 있는 길을 제한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만큼 어떠한 것에 중점을 두고 역사 콘텐츠를 만드느냐는 문제는 현재에 이르러서도 하나의 논쟁거리로 존재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시대의 역사 콘텐츠는 기록을 기둥으로 삼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것이 가장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사람이 빠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종종 역사 속에서 그 시대를 살았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는 제외되곤 한다. 당시에는 그것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제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현재 우리의 이야기인 것처럼, 과거를 살았던 우리의 기록되지 못했던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것 또한 하나의 의미 있는 작업이 되지는 않을까? 따라서 “관민이 합심하여 적을 막아내고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실록의 간략한 기사가 있다면, 그 과정을 그려내는 한편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역사 콘텐츠를 생산하는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면 상 자세히 언급하지 못하였지만, 칼부림에 나타나는 인물 묘사, 주요 대목에 등장하는 대사들에는 당시 인물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살았을지 간접적으로나마 추측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 많다. 함이를 비롯한 작품 속 인물들은 결국 굴곡진 삶을 딛고 일어선 그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특별편에 의하면 작가는 미술학원의 강사로 근무하였다고 했는데, 작가의 역사적 상상력은 전공자에 필적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아직 완결이 나지 않은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또,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분들에게 이 글은 엄청난 스포가 될 수 있겠다는 부담감도 있다. 그렇지만 모쪼록 이 글을 통해서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원성 전투가 끝난 작품 속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곧 정묘호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작품 속에서 정묘호란의 이야기가 다뤄질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지만 병자호란까지 이어진다면 대단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주인공 함이가 두 호란을 겪으며 어떤 삶을 살지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