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 찾기, 서울 사랑
홍순민(중세사 2분과)
도성은 광희문에서부터 주택가를 숨바꼭질하다가 스러진다. 광희동과 신당제1 동 사이를 가르고 가는 부근, 집들이 작고 허름한 동네에서는 집들 사이에 축대로나마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던 도성이 장충동1가와 신당제2동을 가르는 곳, 집들이 성채처럼 어마어마한 동네에서는 아예 집들에 깔려 종적이 끊어졌다. 그러다가 장충 체육관에서 동호대교로 나가는 동호로 건너, 동호로가 나즈막한 고개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신라 호텔 뒷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다시 의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길가에 웬 서울 도성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판 앞에서 두리번 거려도 높다란 요즘 축대만 보일 뿐 성벽은 보이지 않는다. 도성은 없이 웬 안내판만 있는가.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천천히 보면 그 축대 틈새로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성벽이 보인다. 담쟁이 덩굴에 사이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옛 돌이 잃었던 친구를 만난듯 반갑다. 정답게 손을 잡고 걷듯 좁은 찻길을 주욱 따라 올라 가니 성벽도 그 길을 따라 함께 올라 간다. 아랫 부분은 동글동글한 자연석, 세종 당시의 모습이고, 윗 부분은 1975년도에 복원한 새 모습이다. 마치 한복 바지에 넥타이 맨 것같다. 한참을 따라 올라가니 찻길은 주택가 골목길로 좁아지더니 결국 타워 호텔을 못미쳐 끝이 나고, 성벽도 거기서 끊어지고 만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나올 수 밖에 없다. 어디로 가서 다시 도성을 찾을까 망연히 서서 생각하니 지금 따라 올라온 이 길, 이 등성이도 결국 목멱산 자락이다.
도성은 목멱산을 감싸고 돌아간다. 아니 갔었다. 지금 목멱산에서 도성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충단에서 국립극장으로 올라가, 국립극장을 조금 지나서 오른쪽으로 남산공원길이 갈라진다. 그리로 들어서서 한 200미터 쯤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갈라지는 좁은 길이 서울 타워, 남산 팔각정으로 이어진다. 그 길을 따라 주욱 가다가 서울 타워 못미쳐서 길 아래 편으로 성벽이 남아 있다. 도성은 지금은 서울 타워가 높다랗게 서있는 목멱 정상을 남쪽으로 감싸고 돌아 지금 남산 식물원, 백범광장을 지나 오늘날의 소월길을 타고 내려와 숭례문으로 이어졌었다. 그러나 지금 그 지역에는 성벽이 남아 있지 않다. 아니 전혀 없지는 않다. 목멱에서 내려 오는 소월길이 퇴계로와 만나 고가도로를 이루고 있는 지역에 도성이 복원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도성은 성벽이 아니라 소월길을 받쳐주는 축대로 되어 있어 전혀 도성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 바퀴 돌아 보았듯이 도성은 그렇게 힘겹게 힙겹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서울이 이미 조선시대부터 도성을 넘어섰고, 해방 후에는 한강을 건너 원래 도성 안의 수십 배로 커진 지금 새삼스레 도성을 찾고, 도성의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더구나 도성 자리에 주택과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선 마당에 도성을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요,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돈을 들여 도성을 복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도성을 되살릴 수 있다.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이나마 잘 관리하고, 없어진 부분은 우리 머리와 가슴속에 그 모습을 재구성한다면 그것도 도성을 되살리는 한가지 훌륭한 방편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오히려 큰 돈을 들여 복원해 놓고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보다 한결 더 뜻있는 복원이 아닐까.
그렇게 도성을 복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도성을 제대로 보면 서울의 본 모습이 한층 더 훤하게 보일 것이요, 서울의 본 모습을 잘 보는 것은 서울을 잘 아는 것이요, 서울을 잘 안다는 것은 서울을 좀더 깊이 사랑하는 출발점이다. 어디 먼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이 여행이 아니다. 서울 한 복판에서 빛바랜 옛 돌을 찾는 것, 도성 순례도 훌륭한 여행이요 공부다. 이런 생각에 어렵게 어렵게 도성을 한 바퀴 돌아 보았다. 이제는 도성 안으로 들어가 볼 순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