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의 슬픔
홍순민(중세사 2분과)
광화문 좌우에는 돌로 만든 동물이 한 쌍 앉아 있다. 흔히들 이 동물을 "해태"라고 부르며, 광화문 앞에 그것을 만들어 앉힌 까닭에 대해서는 서울 남쪽에 있는 관악산이 불꽃 모양을 한 화산(火山)이기 때문에 그 기운으로 서울과 궁궐에 불이 자주 나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 불을 먹는 동물인 해태를 만들어 앉힌 것이라고 한다. 풍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설명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곰곰 따져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다.
"해태"는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상상 속의 동물이다. 상상 속의 동물이니만큼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출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이 중국 한나라 때 양부(楊孚)가 지은 《이물지 (異物志)》라고 하는 책이다. 이에 따르면 "동북 지방의 황량한 땅에 어떤 짐승이 사는데 이름을 '해치'라 한다. 뿔이 하나이고 성품이 충직하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문다"고 되어 있다. 그 이후 여기에 옛날 우 임금때 법을 맡았던 신하인 고요(皐陶)가 옥사(獄事)를 다스릴 때 이 해치를 써서 죄가 있는 사람을 받게 하였다든가, 상서로운 짐승이어서 옥송이 잘 해결되면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덧붙여졌다.
그 이름도 본래는 "해치"가 가장 원명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첫 글자는 대개 "해"로 읽으며, 해 외에 解, 해 등을 쓰기도 하고, 둘째 글자는 치 외에 치 등을 쓰기도 하는데 자전에 "발 없는 벌레 치, 해태 채"로 나오므로 "해치" 또는 "해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음으로는 듣기에 따라서는 "태"가 될 수도 있으므로 우리나라에 와서는 "해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동물은 그 밖에 그 시비곡직을 분별하는 속성을 따서 법을 맡은 관원들의 상징이 되었으므로 임법수(任法獸)로 불리기도 하였으며, 그 관원들의 모자에 이 동물의 뿔을 문양으로 새겨 넣어 그 관을 해치관(해치冠)이라 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해치는 사헌부(司憲府)와 관련이 깊다. 사헌부는 시정(時政)의 잘잘못을 따지고 관원들의 비리를 조사하여 탄핵하는 대표적 법사(法司)이다. 그 사헌부의 관원들이 채관(채冠), 곧 해채가 장식된 모자를 썼으며, 사헌부의 장인 대사헌은 공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는 문양―흉배(胸背)가 동급의 다른 관원들은 구름속에 학을 수놓은 데 비해 유독 해치를 수놓았다. 이렇게 사헌부와 해치가 관련이 깊은 까닭에 사헌부 대문 앞에 해치를 돌로 조각하여 세웠던 것이다. 사헌부는 광화문 앞 육조거리의 서편에 예조, 중추부 다음에 있었다. 오늘날의 세종로 교통방송 앞 쯤이 될 것이다.
육조거리를 통해 광화문을 들어서려는 관원들은 사헌부 대문 앞에 앉아 있는 해치 앞을 지나면서 바른 행동, 옳은 말을 하도록 요구받았던 것이다. 그것이 해치가 상징하는 핵심이다. 그런데 1890년대 옛 사진을 보면 해치 앞에 'ㄴ'자 모양으로 된 두 단짜리 돌 계단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노둣돌이라고 부르는 것으로서 말에서 내릴 때 딛는 디딤돌이다. 다시 말하자면 해치의 구체적인 상징 기능은 여기서부터는 궁궐의 영역이니 모두 말을 내리라는 하마(下馬) 표지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해치는 조선왕조 궁궐의 정문―광화문 몇 십 미터 앞에서 그 나름대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렇던 해치가 지금은 여러모로 불구가 되어 버린 광화문 바로 옆에 역시 불구가 되어 앉아 있다. 그 위치가 사헌부 앞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시비곡직을 가리는 구실도 못하게 된 것이고, 바로 그 앞으로 차들이 씽씽 다닌다는 점에서는 하마 표지도 아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사람들이 그러한 상징은 인정해 주지 않고 관악산의 화기를 막는다는 엉뚱한 미신적 풍수의 의미를 덧씌워 버렸으니 해치 역시 이중 삼중으로 불구가 된 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해치의 눈망울이 그리 슬퍼 보이나 보다. 해치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본연의 상징과 의미를 알아주기라도 해야겠다. 그러면 해치는 다시 눈을 부릅뜨고 세종로, 광화문 네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시비곡직을 가리려 하지 않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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