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의 호위병들 홍순민(중세사 2분과) 근정전 아래 윗층 기단의 주위를 두른 난간은 동서남북 네 방면에서 계단을 만난다. 남과 북에는 하나씩, 동과 서에는 둘씩이다. 계단 부분에서는 난간이 끊어지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지점마다 돌기둥을 세웠다. 그 돌기둥 꼭대기는 밋밋하게 마무리하지 않고, 각종 돌짐승들을 앉혀 치장을 하였다. 돌짐승들은 난간 돌기둥 위뿐 아니라 근정전 전면 계단의 좌우 소맷돌 부분, 난간의 모퉁이 등 요소요소마다 배치되어 있다. 그들을 보며 웬 돌짐승이 있군 하며 그냥 지나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그 짐승들의 이름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징을 읽을 수만 있다면 우리네 전통 관념과 문화의 한 자락을 잡을 수도 있다. 근정전 기단에 있는 돌짐승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사신(四神)이다. 사신이란 중앙의 나를 전후좌우에서 지켜주는 신령스런 짐승, 곧 좌측의 청룡(左靑龍), 우측의 백호(右白虎), 전면의 주작(前朱雀), 후면의 현무(後玄武)를 가리킨다. 사신은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부터 힘과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 문화에 깊숙히 스며들어 있다. 근정전에는 윗 기단의 동서남북 계단 기둥에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제각각 자리잡고 있다. 둘째는 십이지신(十二支神)이다. 십이지란 간지(干支) 가운데 지지(地支) 열둘, 곧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가리킨다. 십이지신은 이 십이지를 형상화한 동물들 ―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말한다. 십이지는 방위와 시각을 나타내는 데 많이 쓰였다. 방위를 나타낼 때는 자가 정북, 오가 정남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시계의 수자판에 자를 12에 맞춘 다음 자축인묘 순서에 따라서 배열하면 된다. 근정전 기단에는 이런 원리에 따라서 십이지신이 배열되어 있다. 그런데 근정전에 오르는 계단 열둘 가운데 상층의 넷을 사신이 차지하였다. 그러므로 12지신을 기계적으로 배열할 수 없어서 그랬는지 12지신은 모두 있지 않으며 또 그 위치도 딱딱 제자리에 있지 않다. 아랫 쪽 난간을 따라 북쪽에 쥐, 남쪽에 말, 동쪽에 토끼, 서쪽에 닭이 제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제대로 자리를 잡은 셈이고, 형상도 뚜렷하다. 나머지 양과 원숭이도 서측 남쪽 위, 아래 계단에 그런대로 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소는 동측 남쪽 아래 계단에 있어 제 위치를 잃었고, 그 위에 있는 것은 뱀으로 보이기는 하나 형상은 좀 어색한 구석이 있다. 범은 동북방에 있어야 할 것이 남쪽 계단 중간에 있고, 용은 청룡으로 대치된 듯 하며, 개와 돼지는 이 틈에 끼지 못했다. 셋째 부류는 사자인지 해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짐승인지 이름이 분명치 않은 짐승들, 통칭하여 서수(瑞獸)들이다. 이들은 계단의 소맷돌, 또는 난간 모퉁이 기둥이나 돌출 부위에 제각각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저마다 자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잘 띄지 않는 곳, 아래 위 기단 동남쪽과 서남쪽 모퉁이, 툭 튀어 나온 돌 위에 앉아 있는 짐승들이 참 재미있다. 제각각 둘이 쌍을 이루어 하나는 고개를 돌려 근정전을 바라보고 있고, 하나는 조정 마당을 내려다 보고 있다. 임금님을 지키며, 만조백관들을 호위하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는가 보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의 옆구리를 보면 아주 작은 놈이 하나 네 활개를 벌리고 달라붙어 있다. 동남쪽 아래 기단의 것은 앞가슴에 붙어 있다. 젖을 빨거나, 가슴에 매달려 재롱을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부부인가? 맞벌이 부부가 아기까지 데리고 나와 근무를 서고 있는 것일까? 이 근정전을 지키는 짐승들은 조정 마당과 기단 난간가에 도열하였던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임금과 신료들을 호위하며 위의를 더하기 위한 '무서운' 짐승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볼 때 무서움보다는 인간미와 해학, 친근감, 포근함, 우스꽝스러움과 편안함 같은 느낌들을 받는다. 마치 민화에 나오는 짐승들같다. 문화재 훼손인 줄 알면서도 자꾸 만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런가 근정전 기단의 짐승들은 대부분 새까맣게 손때가 절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