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털빛 다른 소들과의 대화, 안악3호분벽화의 외양간

BoardLang.text_date 2006.08.02 작성자 전호태
털빛 다른 소들과의 대화, 안악3호분벽화의 외양간

전호태(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화가의 뛰어난 눈과 손길, 마음이 창의성이라는 틀 안에 잘 녹아있다면, 구상하고 만들어나가고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이 보는 이와 공명되고 공유되면서 파장이 주변으로 번져나갈 것이고 그 작품은 명작으로 여겨지면서 긴 세월에 동반되기 마련인 망각조차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런 느낌도 의도도 없는 가운데 이미 알려지고 주어진 틀에 기계적인 손길, 능숙한 붓질이 더해져 완성된 결과물이라면 보는 이로 하여금 작가와 아무런 교감도 할 수 없게 할 것이고 범작으로 평가받으면서 오래지 않아 세인의 뇌리에서 잊힐 것이다.

안악3호분 벽화에는 어쩔 수 없이 능숙한 솜씨만 더해진 개성 없는 사람들과 화가의 뛰어난 재능을 과감히 드러낸 짐승들이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같은 화파의 화가들이 그렸지만, 자아낸 결과는 뚜렷이 나누어진다. 벽화 속의 존재들은 하나같이 손에 익은 필선으로 형태가 드러났지만 짐승의 얼굴에는 표정이 있고, 몸짓에서는 개성이 풍겨나지만,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무덤주인부부조차 어딘지 정형화 된 얼굴을 지녔고, 도끼를 어깨에 멘 호위시종들을 비롯한 그 외의 등장인물들에게서는 표정도 읽어내기 어렵고 개성도 거의 찾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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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안악3호분 벽화: 외양간

무덤의 왼쪽 곁방 남벽에 그려진 외양간의 주인공은 세 마리의 털빛 다른 소들이다. 얼룩이와 누렁이 두 마리는 고개를 숙인 채 구유 속의 여물을 먹기에 여념이 없고 다른 한 마리 검정이는 여물을 씹으며 옆의 친구들을 돌아보며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위로 활처럼 휘면서 머리 위로 솟은 두 뿔은 물소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리 맵지 않은 두 눈 끝은 우리네 농촌의 평범한 황소를 나타내려 함인가. 검정이와 얼룩이는 어깨가 두터워 힘깨나 쓰게 생겼고, 코가 두툼하면서도 짧은 누렁이는 눈도 둥글어 양순한 느낌을 준다. 얼룩이의 귀는 머리와 다른 털로 덮여 있어 마치 따로 귀털장식을 덧붙인 듯하다. 앞다리의 어깨부분과 뒷다리의 앞부분도 희누리께한 털로 덮여 있어 언뜻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기와골이 표현된 것으로 보아 안악3호분 주인은 집의 본채 뿐 아니라 부속건물들도 지붕에 기와를 올린 것 같다. 소나 말이나 주인 잘 만나 호강하는 셈이다. 이 외양간의 소들은 동벽에 묘사된 차고의 우차를 끄는 지금의 자동차 엔진과 같은 존재들이다. 안악3호분이 만들어지던 4세기 중엽경의 동아시아에서는 귀족들의 나들이 때에 마차 대신 우차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던 까닭이다. 언제부터인가 말들이 기마용으로만 쓰이게 되면서 전차를 겸하던 마차가 더 이상 자가용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안악3호분 외양간의 소들은 쟁기를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덤주인부부가 나누어 타는 두 대의 수레를 끌기 위해 연료인 여물을 먹으면서 한나절 중의 휴식 겸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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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덕흥리벽화분 벽화: 외양간

여물 먹는 소들은 덕흥리벽화분 벽화에도 보이지만 안악3호분 벽화에서처럼 개성적인 자세와 표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모습과 털빛에서 거의 구분되지 않는 덕흥리벽화분의 누렁이 두 마리는 끌던 수레에서 풀려난 채 허기진 듯 부지런히 여물 먹기에 바쁘다. 구유가 깊어서인지 허겁지겁 여물을 입에 넣기에 바쁜 때문인지 두 소의 주둥이 부분은 구유 앞 나무판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무덤주인부부를 수레에 태우고 먼 길을 다녀왔기 때문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여물도 먹지 못한 채 험한 길을 오갔기 때문인가.

약수리벽화분 벽화의 소들은 머리를 쳐든 채 여물을 만들고자 짚을 써는 듯한 자세의 두 사람을 마냥 쳐다본다. 검고 누런 털빛의 소 네 마리 가운데 머리가 뚜렷이 보이는 것은 두 마리 뿐이지만 옆으로 줄을 이루며 나란히 선 자세는 서로 다르지 않다. 코뚜레를 한 황소들의 목이 두툼할 뿐 아니라 버티고 선 두 다리도 짧고 굵은 데에서 한우 특유의 이미지가 묻어난다. 안악3호분에서처럼 약수리벽화분의 소들도 기와지붕 외양간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지만 서로를 구별시킬 정도의 표정이나 개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은 상태이다.

약수리벽화분이나 덕흥리벽화분에서와는 달리 안악3호분 벽화를 그린 화가들은 당대의 통념상 특정한 지위의 인물이나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부여할 수 없었던 개성과 표정을 나타낼 대상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소와 말들을 그리면서 화가는 알게 모르게 이런 짐승들에게 표정을 넣고, 개성을 부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외양간, 마구간에 털빛도 다르고 표정도 살아 있는 듯한 소와 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벽화 속의 검정이, 얼룩이, 누렁이에게 저들에게 표정을 넣고 있던 화가에 대해 물어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