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내일을 읽으려는 눈빛, 오회분4호묘 벽화의 괘 읽는 선인

BoardLang.text_date 2006.11.14 작성자 전호태
내일을 읽으려는 눈빛, 오회분4호묘 벽화의 괘 읽는 선인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올렸나이다.…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에게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성경』「사무엘상」 28장에 실린 선지자 사무엘의 혼과 이스라엘 왕 사울의 대화 장면이다. 블레셋과의 큰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 왕 사울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여호와께 묻지만 대답이 없자 엔돌의 신접한 여인으로 하여금 죽은 사무엘의 혼을 지하에서 불러올리게 하여 사무엘에게 이스라엘과 사울 왕실의 운명을 묻는 장면이다. 사무엘의 예언대로 전쟁은 이스라엘의 패배, 사울 왕실의 몰락이라는 불행한 결과로 마무리 된다.

역사시대 이전부터 ‘내일’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 가운데 하나였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이래의 뼈점은 신의 뜻은 무엇일까 신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를 신에게 묻고 그 답을 듣기 위해 행해졌지만 결국 그러한 행위의 목적은 내일을 미리 아는 데에 있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오늘 알고 있다면 그 좋고 나쁜 결과에 대비할 수도 있고 내일 이후를 위해 지금부터 준비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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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오회분4호묘 벽화 괘 읽는 선인

 

오회분4호묘 널방 한쪽 구석에는 한 선인이 연꽃 위에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 팔괘(八卦)를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팔괘는 원형을 이루며 표현되었는데, 괘 사이로 막대처럼 보이는 검은 선이 비스듬히 그어져 있다. 막대처럼 보이는 선의 오른쪽 끝이 가리키는 괘는 감(坎:)으로 보인다. 3시 방향의 이 괘를 감으로 보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배치된 괘를 차례로 읽으면 간(艮:), 진(震:), 손(巽:), 이(離:), 곤(坤:), 태(兌:), 건(乾:)이 된다. 방위상으로 북쪽에 감(坎:), 남쪽에 이(離:)가 오도록 괘를 둔 것을 문왕팔괘도, 혹은 후천도(後天圖)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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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문왕팔괘도

 

팔괘는 복희씨가 천문지리를 살피고 자연만물의 변화를 고찰한 후 그 원리를 알기 쉽게 도해한 것으로 전한다. 흔히 『주역(周易)』으로 더 잘 알려진 『역(易)』은 음양을 나타내는 양효(陽爻: ‘-’ 모양) 음효(陰爻: ‘- -’모양)를 조합하여 만든 8괘, 8괘를 겹쳐 만들어낸 64괘, 괘와 효를 풀이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책의 내용을 풀이한 십익(十翼)으로 이루어졌다. 본래『주역』은 우주만물의 운행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오히려 내일을 알기 위해 점을 치려면 꼭 있어야 하는 책으로 여겨진다. 조선 중기 이지함이 지어 세상에 1년 신수점 보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토정비결(土亭秘訣)』도 『주역』의 64괘를 48괘로 재정리하여 만들어진 것이다.『주역』이나 『토정비결』모두 팔괘의 조합상, 조합된 괘의 풀이에 바탕을 두고 지어졌으며, 이 책들이 오랜 시간 변함없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미래를 미리 읽어내고 싶은 민중의 간절한 소망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오회분4호묘 널방 벽화에는 모두 10명의 선인이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연꽃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선인이 표현되지 않은 사방연속무늬 속의 연꽃 형태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고, 그 변화과정이 읽혀지는 것으로 보아 선인들은 연꽃 속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불교식으로 이해하면 정토에서 연화화생(蓮花化生)한 완전히 새롭고 자유로워진 생명체들인 것이다. 선인들 가운데에는 어깨에 날개가 돋은 이도 있고, 단순히 둥근 부채만을 들고 서 있는 이도 있다. 무릎을 꿇은 채 무엇인가를 들어 올려 들여다보는 이도 있고, 컵처럼 보이는 그릇에 연꽃잎과 같은 것을 넣고 있는 이도 있다.

모든 인연으로부터, 일체의 욕망과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재탄생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선인들은 이전 삶의 습관이나 태도, 모습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벽화 속 괘 읽는 선인도 아직은 만물변화의 원리를 온전히 알려고 하거나 자신이 살던 세상의 미래를 앞서 읽으려 애쓰던 옛 습관에 매어 있는 듯하다. 막대로 짚어보다가, 이제는 눈으로만 읽고 있는 감(坎:), 만물의 근원인 물(水), 태음의 상징인 달을 나타내는 이 괘에서 선인은 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아들을 통해 새 나라를 열어가는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조가 못에서 나왔다는 연씨(淵氏) 집안 이야기가 슬그머니 세상에 번져 가는 것을 보면서 100여 년 뒤에 있을 나라의 큰 변란을 내다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