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기분, 강서대묘 벽화의 羽人
전호태(울산대 역사문화학과)
미노스왕의 미움을 받아 자신이 만든 미궁에 갇힌 명장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새깃을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어깨에 달고 하늘로 날아올라 탈출에 성공한다. 소머리의 사람 미노타우루스를 죽인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을 생명줄로 삼아 미궁을 탈출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비록 지나치게 높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바다에 떨어지고만 아들과 달리 다이달로스는 시칠리아에 이르러 새 삶을 개척한다.
그리스 신화의 이 장면은 날개가 없으면 날 수 없다고 생각하던 서방세계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잘 드러낸다. 말도 하늘을 날려면 날개가 있어야 하고, 용도 박쥐날개와 같은 것이 어깨에 달려 있지 않으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다고 믿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천사도 비록 거추장스러워 보이지만 어깨에 커다란 날개가 돋아 있다.
동아시아의 신화전설에서 날개는 하늘을 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꼭 필요한 장치나 부속물은 아니다. 사람도 짐승도 날개가 없이도 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날개 없는 용이나 기린이 끄는 수레도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었고, 하늘의 기운을 타고 날 수 있는 선인은 그 모습 그대로 허공을 유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존재들이 다수 등장한다. 날개를 지닌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쉽게 발견된다. 무용총 벽화의 선인들은 스스로의 능력만으로 하늘을 날기도 하지만 학을 타고, 학을 말처럼 쓰며 하늘을 떠다니기도 한다. 덕흥리벽화분의 선인과 옥녀들은 날개의 도움 없이 하늘을 유영하고 있으며, 장천1호분이나 안악2호분 벽화의 천인들도 상서로운 새나 짐승의 힘을 빌지 않고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래의 덕과 자비를 찬미한다. 아마도 하늘세계의 존재들에게 ‘하늘’은 땅에 붙박여 사는 우리 인간들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듯이 날개 같은 부속물이 없어도 날아다니는 데에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곳인 듯하다. 그래도 날개가 있다면 하늘을 날아다니기에는 더 편하지 않았을까. 강서대묘 벽화의 우인(羽人)도 그런 까닭에 어깨에 날개를 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림1) 강서대묘 벽화의 우인
강서대묘 널방 천장고임에는 산화공양(散花供養)을 하는 비천(飛天), 하늘의 음악을 연주하는 기악천(伎樂天), 봉황과 같은 상서로운 새를 타고 선계(仙界)를 향해 나아가는 선인(仙人), 어깨에 돋은 날개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우인이 모두 등장한다. 강서대묘 벽화에는 하늘세계에 살거나 하늘세계에 버금가는 불사(不死)의 선계를 삶터로 삼는 사람 형상의 존재가 거의 대부분 등장하는 셈이다. 강서대묘 널방 천장고임 벽화의 세계는 불교신앙에서 비롯된 천인과 신선신앙에서 기원하여 도교신앙의 주요 구성원으로 편입된 선인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한대(漢代)에 크게 유행한 화상석, 화상전에는 다수의 우인이 등장한다. 어깨에 돋은 날개로 하늘세계, 혹은 선계의 구성원임을 나타내는 존재들이 서왕모나 동왕공, 복희나 여와 곁에서 시중을 들거나 벼락의 신이나 바람의 신 곁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인다.
(그림2) 산동 한화상석의 우인
날개를 하늘세계나 불사의 선계에 사는 자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인지 서왕모나 동왕공과 같이 이런 세계의 주관자로 여겨진 존재들도 우인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산서(山西)의 후한(後漢)화상석에서는 서왕모나 동왕공이 거의 예외 없이 어깨에 날개가 돋은 존재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 지역에서 화상석 제작을 주문했던 호강지주(豪强地主)나 제작을 담당했던 장인들에게 선계의 주관자들이 우인형(羽人型)으로 그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듯하다.
그러나 삼국ㆍ위진시기에 화상석ㆍ화상전 제작의 전통이 약화되고, 고분벽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날개 달린 하늘세계의 존재’들은 날개의 힘을 빌지 않고 불사의 세계에 살 수 있는 사람들로 바뀌게 된다. 아마도 위진시대에 이르러 신선신앙과 노장철학, 무속신앙이 뭉뚱그려져 도교라는 이름의 종교로 정리되고 재탄생하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닌가 생각된다. 물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우인족(羽人族)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세는 날개 없이도 날 수 있는 사람들 쪽으로 기울어진 셈이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 위에 있던 6세기 중후반경의 동아시아미술에서 날개 달린 선인을 만나기는 쉽지 않게 된다. 중국 북조에서 유행하던 석굴사원과 석관 장식, 남조에서 다수 만들어지던 퍼즐식 화상전묘에 등장하는 천인이나 선인은 하나같이 가벼운 천의(天衣)차림일 뿐 어깨에 날개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남북조미술을 받아들여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고 재탄생시키던 고구려미술작품 가운데 날개 달린 선인이 등장하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4세기부터 모습을 보인 우인형 선인 표현전통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고구려의 신선신앙이 독자의 관념과 전통을 유지한 결과일까. 고구려인 자신이 늘 ‘날개’에 대한 깊은 선망을 지니고 있었던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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