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고분벽화] 기둥만 세워진 집, 만보정1368호분 벽화

BoardLang.text_date 2007.01.10 작성자 전호태

기둥만 세워진 집, 만보정1368호분 벽화


전호태(고대사분과)


  돌무지무덤을 고유의 무덤양식으로 삼고 있던 고구려 사람들에게 돌방무덤이나 고분벽화는 낯선 문화요소였을 것이다. 시신이 모셔진 널을 돌을 쌓아 만든 대 위에 두고 그 위를 돌로 덮어 거대한 돌무지를 만든 뒤, 사람들은 이 돌무지가 돌산처럼 그렇게 늘 그 자리에 있기를 기원했다.

구들이나 평상이 놓인 기와집이나 초가집을 거처로 삼던 산자들과 달리 죽은자들은 산자들이 만들어준 커다란 돌산을 영원한 쉼터이자 새 삶터로 삼았다.

죽은자에게도 산자들처럼 생활공간을 마련해주는 돌방무덤은 고구려 사람들로 하여금 죽은자의 혼은 생명의 본향으로 돌아가더라도 백은 무덤 안에 남는다는 생각을 굳히게 만들었다.

돌산처럼 만들어진 돌무지무덤 안에서도 미천왕은 하늘의 음악을 들으며 저 세상의 삶을 누리고 있었고, 모용선비의 군사들은 왕의 저주를 받아 이 왕릉을 파헤치던 자리에서 엎드러져 죽었다.

국내성이 불타고 환도산성마저 함락 당해 의기소침해 있던 고구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면서 기운을 되찾았고, 경이로운 눈으로 높은 언덕 위에 조성된 피라밋 형태의 왕릉들을 쳐다보고는 하였다.

고구려 왕실에서 돌무지무덤 꼭대기에 잘 다듬은 석재로 돌방을 만들게 된 것은 ‘왕릉 안에서 내세 삶을 누리는 왕’에 대한 이야기가 백성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믿어지게 된 때문인지 모른다.

무덤 안에서 이루어지는 또 하나의 삶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구체화될수록 새 삶의 공간으로서 돌방의 중요성은 커지고, 이에 따라 왕릉이나 귀족의 무덤을 돌방무덤 양식으로 축조하는 사례도 늘어나지 않았을까.

왕릉이나 귀족의 돌방무덤 안에 내세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이를 소망하게 된 것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만보정1368호분은 집안일대에서는 벽화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무덤 가운데 하나이다. 최근 평양에서 금옥리1호분, 남포에서 태성리3호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100여 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벽화고분들의 하나로 손꼽혔던 무덤이다.

이미 낙랑시대인 2세기부터 무덤 안을 벽화로 장식하는 관습이 있었던 평양지역과는 달리 고구려의 국내성일대에서는 4세기에 들어서서도 무덤 안에 무엇을 그려 넣는다는 관념과는 거리가 먼 돌무지무덤을 전통적 무덤양식으로 삼고 있었다.

여전히 국내성 일대의 고구려 사람들은 장례가 마무리 될 즈음이면 왕릉이나 귀족의 무덤 곁에 수북이 쌓인 귀중한 물품들을 나누어 가져가면서 고인의 삶을 되새기고 저 세상에서의 안녕을 빌거나, 이생에서의 인연을 저 세상으로 잇고자 자신의 몸을 칼로 찔러 무덤 곁에 엎드러져 죽고는 했다.

만보정1368호분 벽화는 이러한 전통이 빛을 바래가고 무덤양식도 돌무지무덤에서 돌방무덤으로 바뀌어갈 때에 나타난 새로운 문화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눈길을 끄는 것은 만보정1368호분 널방 안에 그려진 벽화이다. 4세기 국내성 일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문화변동의 과정을 잘 보여주려는 듯 만보정1368호분 안에는 무덤주인의 내세 삶을 보여주는 삶의 구체적인 순간들이 그려져 있지 않다. 천장부가 궁륭고임인 무덤의 널방 벽과 천장에 목조가옥의 뼈대만 묘사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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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만보정1368호분 널방 내부 투시도 

  자주빛 나무기둥과 들보로 구획된 공간들이 독립된 화면으로 쓰이기에 충분함에도 무덤주인이 내세에 누리고 싶어 했을 삶의 내용이 전혀 묘사되지 않았다.

귀족으로서의 풍족하고 화려한 삶, 바깥으로는 이름을 크게 드러내고 안으로는 호화롭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모습이 한 장면도 그려지지 않았다. 캔버스처럼 펼쳐진 벽과 천장의 나누어진 백회면들은 처음부터 빈 그대로 놓아둔 듯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돌방무덤이라는 새로운 무덤양식을 받아들이면서 고구려 사람들 사이에는 무덤의 돌방 안을 무덤주인의 새 삶터 가운데 하나로 보는 관념이 이전보다 뚜렷이 자리 잡기 시작한 듯하다.

무덤 안에 새롭게 마련된 공간이 말 그대로 내세 삶을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게 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주인 머무르는 저택의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곳으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만보정1368호분 널방 안의 목조가옥 뼈대그림은 무덤 안을 바라보는 인식의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인식의 형상화과정이자 결과물이 아닐까. 고분벽화라는 장의미술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이와 관련된 제작전통도 존재하지 않았던 고구려 국내성 지역에서의 고분벽화 출현과정이자 초기작품인 셈이다.

만보정1368호분 벽화는 말 그대로 고분벽화라는 새로운 장의미술 장르 수용의 초기 단계, 곧 고분벽화라는 ‘새집’을 짓기 위해 이제 막 주춧돌 위에 나무기둥만 세운 상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