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과 옥녀의 공간, 덕흥리고분벽화의 하늘세계 전호태(고대사분과)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한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기우’라는 말은 하늘도 무엇인가로 채워졌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실제 동서를 막론하고 고대사회에서는 하늘도 땅 위의 세계처럼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런 까닭에 하늘과 땅 사이에는 별도의 통로가 있으며, 이곳으로는 아무나 지나다니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나무나 큰 기둥, 높은 사다리가 두 세계 사이를 잇는 통로 역할을 할 수도 있고, 허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새나 말, 사슴 같은 짐승,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이나 기린 같은 신비한 존재의 힘을 빌려 하늘세계의 입구에 다다를 수도 있었다. 영국의 동화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 한국의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은 우주나무나 하늘사다리, 하늘기둥에 해당하는 것이고, 고구려의 건국신화의 주인공 동명성왕 주몽이 하늘로 올라갈 때 그 머리 위에 올라섰다는 용이나 주몽의 아버지이자 천제인 해모수가 땅과 하늘을 오르내릴 때 탔다는 기린, 또는 다섯 용이 끄는 수레는 땅과 하늘의 소통을 돕는 신수(神獸) 및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세계 사이의 소통은 이와 같은 신수나 기둥 외에 옷과 같이 몸에 지닐 수 있는 간편한 물건으로도 가능하다는 인식이 동아시아의 동화나 전설 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런 간편한 물건의 착용이 아무에게나 허용되지는 않았다.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널리 알려진 동화에서 하늘세계의 사람인 선녀는 하늘의 날개옷을 되찾아 입자 곧바로 날아올라 하늘세계로 되돌아간다. 그것도 두 팔에 아기까지 안고 날아오른다. 후에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하늘세계로 올라간 나무꾼이 다시 어머니를 뵈러 잠시 땅위의 세계로 내려올 때에는 하늘사슴을 타고 온다. 땅위 세계 사람이었던 나무꾼에게는 선녀가 걸치던 것과 같은 하늘의 날개옷이 주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덕흥리벽화분 앞방 천장고임에는 5세기의 고구려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믿어졌던 하늘세계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해와 달 외에도 은하수와 60여개의 별자리가 천장고임 사방에 그려지고 하늘세계에 있다고 믿어지던 온갖 새와 짐승, 물고기,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 별자리들 사이사이에 묘사되었다. 이러한 존재들 사이로 선인과 옥녀들도 모습을 드러내는데, 무엇을 타거나 부리지 않은 상태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이다. (그림1) 덕흥리벽화분 벽화 : 선인과 옥녀 사람의 모습을 한 채 날아다니지 않는 존재는 은하수를 건너 1년 하루의 약속된 만남을 마친 채 이별의 시간을 맞고 있는 견우와 직녀뿐이다. 저고리와 치마, 혹은 저고리와 바지 차림의 옥녀와 선인들은 손에 번(幡)이나 당(幢)을 쥔 상태이기도 하나 연화반(蓮花盤)으로 보이는 그릇을 받쳐 들기도 한 상태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벽화 속 옥녀와 선인들이 입고 있는 옷에서 특별한 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의 한대 화상석이나 화상전의 우인(羽人)처럼 등에 날개가 돋아 있지도 않다. 이들은 하늘세계 사람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혹은 걸치고 있는 하늘옷의 신비한 힘을 덧입어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덕흥리벽화분에 묵서묘지명이 쓰이던 408년은 북중국이 오호16국시대라는 분열기를 아직 벗어나지 못하던 때이다. 한쪽에서는 불교신앙과 문화의 확산이 계속되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장철학과 신선신앙을 중심으로 한 도교의 정립과 전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왕조의 명멸, 대량유민의 발생과 이동, 교류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장생불사, 무릉도원의 삶, 정토왕생을 꿈꾸고 이룬 자들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전해지고, 저곳에서 이곳으로 들려오던 시기이다. 16국시대의 나라들과 전쟁과 화평을 거듭하며 인적, 물적 교류의 물길을 열어 놓을 수밖에 없던 고구려에도 이로 말미암은 영향이 미치지 않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덕흥리벽화분의 벽화 속 하늘세계도 이런 흐름과 떼어놓고 이해하려 한다면 이는 무리한 시도라고 해야겠다. 중국에서 도교의 체계화는 위진시대에 본격화 되고 남조 동진의 갈홍에 의해 기본 틀이 마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출현한 신선신앙 관련 서적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목천자전(穆天子傳)』,『한무내전(漢武內傳)』,『박물지(博物志)』등이다. 『한무내전(漢武內傳)』은 한무제와 서왕모 사이의 사랑과 이별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는데, 이 세상의 서쪽 끝에 산다는 불사(不死)의 관리자 서왕모를 현세의 제왕과 사랑을 나누는 아름다운 여선(女仙)으로 묘사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서왕모가 살던 곳을 『산해경(山海經)』에서는 옥산(玉山)이라 하였고, 서왕모의 음식이 옥(玉)이라고 했으니, 서왕모는 옥녀(玉女)로 불려도 무방한 신이었다고 하겠다. 신선가에서는 신선의 경지에 이른 남자를 선인, 여자를 옥녀라 부르는 경향이 있고, 체계화된 도교 안에서는 선계의 여인들을 옥녀로 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왕모를 보좌하던 아름다운 시녀들도 그런 점에서는 옥녀로 불러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세상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있다는 불사의 선계가 하늘세계의 일부, 혹은 하늘세계 자체로 인식되고 그곳에 살던 이들이 하늘세계의 주민이 되면서 선인, 옥녀도 자연스레 하늘사람으로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로 인식된 것이 아닐까. 동해 한가운데 떠있던 오신산(五神山)의 선인들도 하늘을 날아 이웃 신산들에 나들이 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땅 위의 사람들이 이런 존재들과 만나고 이런 사람들처럼 되기를 소망할수록 이들의 능력은 더욱 신비화되고, 모습도 특별해져 무용총 벽화의 선인들처럼 목이 길어지고, 귀도 삐죽이 솟았다고 믿어졌던 것은 아닐까. (그림2) 무용총 벽화: 선인 덕흥리벽화분의 선인과 옥녀는 아직 사람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전의 상태로 하늘세계를 날아다니던 불사를 얻은 사람들의 마지막 형상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