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이 ‘보수주의자’인가?
오수창(중세사 2분과) 우리 사회에서 ‘진보’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제야 마침내 ‘보수’의 시대가 왔다는 환호성도 들려온다. 과연 그럴까? 보수라는 단어가 지니는 울림과 무게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도저히 자격이 되지 않는 이들이 보수를 자처하며 나서는 것만 해도 참기 힘든데, 반대쪽에 선 이들이 먼저 나서서 그들에게 보수의 이름을 붙여주는 경우도 많다.
조선중기의 정온은 광해군대부터 인조대까지 활동한 인물인데, 당시 개혁적인 정부 정책에 적극 반대하였다. 당시 추진된 정책 중에 양전, 요즘말로 토지조사사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출처 : 문화재청> 정온가의 유품
그러나 정온은 여기에 반대하였다. 헛되이 들어가는 비용이 많고 소란이 일어나 백성들이 원망을 품고 흩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서얼 허통정책, 즉 심한 차별을 받던 첩의 자손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자는 개혁안에도 반대하였다. 조선 사회가 200년 동안 국가를 유지해 온 것은 명분 때문이며, 존귀한 것과 비천한 것의 구분은 결코 흔들릴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양전은 시대적인 과제였다. 국가에서는 전란을 거치면서 어지러워진 토지의 경작상황과 소유상태를 정확히 파악해야만 했고, 그것은 백성의 처지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사업이었다.
하지만 정온의 주장은 토지를 소유한 상층 지주층 편에 선 것이었다. 본인의 잘잘못과 능력에 관계없이 앞길이 막혀있던 서얼의 처지를 개선하자는 정책 역시, 조광조와 이이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ㆍ정치가들이 오래전부터 추진해온 것이었다. 정온의 명분론이 이미 소수파의 견해가 되어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정온은 매우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신상의 편안함이나 자기 계층의 이익만 좇은 인물이었던가? 그가 조선 국가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고 간 인물이었던가? 결단코 아니다. 17세기의 인물 정온에게 진정 보수주의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근거는 다른 데 있다.
정온은 광해군대 북인 정권에 의해 위기에 처한 국왕의 동생 영창대군을 보호하고자 노력하였고, 그가 강화도에서 죽임을 당하자 책임자를 처형하고 대군으로서의 대우를 회복하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를 높이 대우해준 국왕, 자신과 학연과 당파가 같은 동료 북인들을 향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는 격노한 국왕에게 직접 국문을 받고 빗발치는 비난 속에 제주도의 가시울타리 속에서 풀릴 날을 기약할 수 없는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10년 후에 인조반정이 일어나 관직에 복귀하였지만, 청의 침략을 받게 되자 다시 가시밭길을 선택하였다. 끝까지 싸우자고 한 척화론의 의의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여러 정치인들 중에 가장 일관되고 사심 없는 척화론을 주장한 사람은 바로 정온이었다.
그는 항복이 결정되자 자기 배를 찔러 자결을 감행했다. ‘검에 엎어져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배를 찔러 실패했다’고 스스로 한탄하였듯이 목숨은 건졌으나 그 후 그는 가족과도 헤어져 철저히 은둔하였다. 척화론을 펴다 위기에 몰려 갈팡질팡한 흔적이 역력한 김상헌도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하였지만, 정온은 국왕이 내린 상전에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정온은 자기가 옳다고 배워온 바를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모든 권리와 영화를 뒤로한 채 은둔 속에 죽음을 맞았다. 신분제 완화에 반대하고 상층민의 이익을 옹호하였지만, 그것 역시 당시 확립되어 있던 원칙과 질서에 충실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출처 : 한국일보> 문간공 시호 교지
조선이 그 후 250년이나 더 계속되었던 사실을 한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17세기의 사대부인 정온은 조선 사회의 유지를 자기의 사명이라고 확신했던 것이고 그것을 위하여 일신상의 안일과 모든 기득권을 희생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보수주의자의 모습이었다.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되돌리려는 세력을 향하여 보수주의라는 이름을 도용하지 말라고 촉구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보수주의를 옹호할 생각도 없다. 그들은 일개 서생의 옹호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강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 정체를 따져보지도 않고 아무에게나 보수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동만은 비난하고 싶다. 자신들이 누구와 맞서고 있는지도 몰라서는 진보의 이름을 내걸 능력이나 자격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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