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새 교수님 필요 없다. 한 교수님을 돌려 달라!

BoardLang.text_date 2008.10.27 작성자 한상권

새 교수님 필요 없다. 한 교수님을 돌려 달라!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달라

  1997년 4월 2일(수) 오후 2시 30분 ‘덕성여대 한상권교수 재임용탈락처분 철회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인 한영우ㆍ이태진ㆍ조동걸 교수와 한국역사연구회를 대표하여 김인걸ㆍ박종기 교수가 김용래 총장을 면담하기 위해 덕성여대를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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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추진위대표단 (한영우,조동걸,박종기,한상권,김인걸)

이에 앞서 추진위원회는 “한상권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 처분에 대해 그 경위를 파악하고, 본 위원회의 의견을 전달하고자 면담을 요청”하며, “만일 회신이 없을 시에는 4월 2일 오후 2시에 귀교를 방문하여 이사장과 총장께 본 위원회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내용의 면담요청서를 총장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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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학교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학생들 60-70명이 본부 행정동 앞에 모였다. 그러자 학교 측은 학생들이 모여 있어 추진위원회 대표단의 면담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나와 학생들은 학생회관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나 학교 측은 총장이 갑자기 회의 일정이 잡혀 외부에 출타 중이라 면담할 수 없다며 끝내 만남을 거부하였다. 며칠 후 김용래 총장은 추진위원회 상임대표인 한영우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일전의 결례를 사과하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달라고 하였다.

  김용래 총장은 1997년 3월 1일 덕성여대 4대 총장으로 부임하였다. 교내 인사로 총장을 임명해왔던 기존의 관례를 깨고 외부 인사를 초빙한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그러나 나의 해직으로 학교가 국회와 교육부로부터 압력을 받자 총무처장관과 서울시장을 지낸 거물급 인사를 총장으로 영입한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3월 18일 국민회의 소속 배종무 의원이 덕성여대 측에 인사위원회 회의록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김용래 총장은 인사위원회 회의록은 대외비라며 제출을 거부하고 버텼다. 그러나 방패막이도 한 두 번이었다. 나의 해직은 전임 총장 당시의 사안이므로 김용래 총장이 덤터기를 뒤집어 쓸 일은 아니었다.

  덕성여대 측의 재임용제 악용에 대해 사회여론이 비등하고 국회까지 나서서 교육부에 압력을 넣자, 김용래 총장은 기존의 입장을 바꿔 한상권 교수를 ‘2학기 신규임용 형식’으로 복직시키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김용래 총장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사장을 설득하면 가능하리라 생각하였다. 같은 고향사람으로 평소 알고 지내던 한영우 교수에게 시간을 달라고 한 말이 단순히 위기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빈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세간에서 왜 덕성여대가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는지를 모르는데서 나온 순진한 발상이었다. 4월 중순 이후, 김용래 총장의 변심을 눈치 챈 박원국 이사장이 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사장 측근 보직교수들은 회의석상에서 총장을 윽박지르며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었다.

  김용래 총장의 입장은 경직된 형태로 변하였고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5월에 들어서는 자신이 외부에 전화 거는 것까지 체크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총장실 비서의 양심고백으로 알게 되었다. 이와 같은 철통감시와 모욕을 김용래 총장이 더 이상 못 견디고 곧 총장직을 사퇴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학교 밖으로 흘러 나왔다.

2. 한교수가 또다시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냐

김용래 총장의 입장과는 달리 이사장 최측근인 교무처장은 강경한 입장이었다. 추진위원회 대표단이 항의 방문한 다음날인 4월 3일(목), 교무처장은 김인걸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단 방문 이후 학교가 어수선해 수업도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며 “왜 조용한 학교를 시끄럽게 만드느냐”고 항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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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김인걸 교수가 덕성여대신문에 난 교무처장의 발언에 대해 사실 확인을 요구하자, ‘신문에 난 사실을 다 그대로 믿느냐’고 얼버무리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김인걸 교수가 지적한 문제의 발언이란 덕성여대신문 호외 제1호(3월 21일 금요일 발행)에 실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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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학과 학생들은 새 학기 개강하고 나서야 한교수가 해직된 사실을 알았다. 당황한 사학과 학생들은 교무과로 몰려가 “지난 20일 수강신청을 할 때만하더라도 수강신청 계획서에는 한상권 교수님 이름으로 수업이 결정되었다”며 “단 10여일 사이에 담당과목의 교수를 바꾸는 것은 명백히 학교 측의 학생에 대한 교육권 침해”라며 항의하였다.


  이에 교무과에서는 “한상권 교수는 전부터 보류대상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해직시켰다고는 할 수 없고, 단지 기간제 재임용에서 탈락된 것이며 임기가 97년 2월까지여서 재임용탈락 통보를 3월 1일 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며 담당 교수가 10일 만에 교체된 이유를 밝혔다. 또 강사를 채용할 때 같은 과목의 강의경험이나 연구실적 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강의 질에서의 문제 등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하였다.

  한편 교무처장은 “한교수가 임기만료로 재임용에서 탈락되긴 했지만 아무 이유도 없을 순 없다”며, “한 교수와 사학과 학생들 모두 사유를 알고 있으나 그 사유가 밝혀지면 한 교수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한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된데 이어 또다시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냐”는 알 수 없는 말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교무처장의 돌출발언에 학생들은 순간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재임용탈락이 확정되면 임용권자는 ‘교수자질부족’, ‘교원품위손상’, ‘근무자세 불량’, ‘학생소요선동’, ‘연구능력 부족’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총동원하여 해직교수를 대학사회로부터 격리시키려 한다. 재임용탈락은 사회문제화 되지 않기 때문에 임용권자의 기도는 쉽게 관철된다.

  반면 재임용탈락 교수들은 법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있기 때문에 임용권자의 횡포에 맞서 싸울 아무런 저항 수단이 없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연구실을 계속 사용하거나 장외강의 또는 천막강의 등 최소한의 사회적 저항을 하여도 임용권자가 사법부에 제소하면 전과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교무처장 역시 이러한 틈새를 이용하여 학생들을 이간질시키고 있었다.


나는 교무처장의 음해성 발언을 [한상권 교수님 복직을 위한 비상대책위]에서 애교 넘치는 편지와 함께 학교 신문을 규장각으로 보내주었기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한상권 교수님께
선생님. 힘내세요. 저희가 있쟎아요.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학내 신문 부쳐 드립니다.
뒤늦게서야 비대위가 꾸려졌습니다.
늦은 만큼 열심히 움직이겠습니다.
교수님. 오실 때는 하실 거~맛있는 거
사주셔야 해요! 대신 저희 열심히 뛸께요.
선생님 안 계신 덕성은 앙꼬없는 팥빵이요, 속없는 만두
시금치 없는 김밥이랍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의 빈자리는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한상권교수님 복직을 위한
비상대책위-

덕성여대 신문을 다 읽은 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즉시 다음 내용의 공개질의서를 교무처장 앞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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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하는 “한교수가 임기만료로 재임용에서 탈락되긴 했지만 아무 이유도 없을 순 없다”라 발언하여, 한상권의 재임용 탈락에 임기만료 외에 다른 사유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귀하가 알고 있는 한상권의 재임용탈락 사유를 분명히 공개하시기 바랍니다.

  2) 귀하는 “한교수와 사학과 학생들 모두 (재임용탈락)사유를 알고 있으나....”라 하여, 본인과 사학과 학생들 모두가 재임용탈락 사유를 안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재임용탈락사유를 모르고 있을 뿐 아니라, 사학과 학생 어느 누구도 본인의 재임용탈락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본인의 재임용탈락 사유를 안다고 하는 사학과 학생의 성명을 구체적으로 거론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는 한, 귀하가 본인의 명예를 훼손할 목적 하에 의도적으로 거짓말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3) 귀하는 “그 사유(재임용 탈락사유)가 밝혀지면 한 교수에게 피해가 가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였습니다. 이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온갖 상상을 자아내도록 하는 인격 모독의 발언입니다. 본인이 각종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하는 것도 귀하가 모호한 발언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귀하가 진심으로 한상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자 한다면, 그 길은 탈락 사유를 공개적으로 명백히 밝히는 것뿐입니다.


  4) 귀하는 “한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된데 이어 또다시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냐”라고 발언하여, 재임용탈락사유를 밝히면 본인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임을 암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귀하가 모호한 말로 탈락 사유를 은폐하고 본질을 호도함으로써 오히려 본인은 명예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귀하가 계속 진실을 밝히지 않는 한, 본인은 명예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길은 귀하가 진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공개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귀하의 현명한 결단을 거듭 촉구합니다.

물론 교무처장은 나에게 답신을 보내지 않았다. 학교 측은 ‘아니면 말고’ 식의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을 통해 나를 흠집 내려 했던 것이다.

 

3.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되지 마라

내가 학교 측으로부터 재임용탈락 통보를 받은 날은 3월 1일(토)이었다. 해직 통보서를 받은 직후, 총장, 인사위원장, 교무처장에게 전화를 걸어 재임용탈락사유를 확인하였으나 잘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다. 총장은 나의 전화를 받고 “미안해서 어떡하나”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인사위원장은 도대체 무슨 내용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계속 혼자 되풀이 하였다. 교무처장은 전화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3월 3일(월) 막상 개학날이 되자 학교에 출근해야 할지말지를 둘러싸고 고민하였다. 출근하지 않는다면 학교 측의 처분을 수용하는 꼴이 되므로, 출근투쟁을 함으로써 재임용탈락이 부당함을 알리고 맞서 싸우는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기로 최종 마음을 굳혔다. 학교와의 싸움에서 이길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직교수가 학교와 싸워서 승리한 예가 당시까지는 없었다. 특히 덕성여대의 경우 1990년 사립학교법 개악으로 교수재임용제가 부활되자, 전국 최초로 재단의 전횡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능한 교수를 재임용 탈락시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에 평교수협의회는 대학사상 유례가 없는 57일 간의 철야농성을 포함하여 78일 간의 장기간 항의농성을 이끌어 마침내 학교로부터 ‘성 교수 복직 약속’을 얻어냈다. 복직투쟁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실례로 1990년 10월 19일 덕성여대 대운동장에서는 사립학교법의 첫 적용대상자로 재임용에서 탈락된 성낙돈 교수를 지켜내기 위한 기금마련 공연 [선생님! 물러나지 마세요]가 학생 민주시민 등 1만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열렸다(덕성여대 학생은 총 5,000명이다).

덕성여대 총학생회 주최, 각 사회단체 후원으로 마련된 이날 공연에는 정태춘, 도종환, 전교조 노래패 「다리」, 노동자 문화예술운동연합「새벽」, 윤선애, 덕성여대 노래패「솔바람」,「해방울림」등이 출연했고, 화려한 조명과 완벽한 음향시설로 한층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날 공연에는 나중에 국무총리가 된 이해찬 씨와 제 17대 대통령이 된 노무현 씨도 참석하였다.

  초청을 해주지 않아 직접 표를 끊어 공연을 보러 왔다는 노무현씨, 공연이 끝난 후 견해를 피력했는데, 『이 싸움은 사회구조의 모순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단기전이 아닌 사회변혁을 향한 큰 싸움 속에서「소대」로서의 임무를 각인해 달라』는 당부의 말과 함께 농성장소로 발길을 옮겼다.(덕성여대신문 318호, 1990.10.29)

그러나 학교 측은 복직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교수들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로 학원민주화 투쟁이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이후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교수들의 말은 절대로 믿지 말 것이며, 학내 밥그릇 싸움에는 절대 끼어들지 말자는 말이 불문율처럼 내려왔다. 나는 교수들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학생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설사 싸움을 한다 할지라도 패배한다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출근투쟁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4월 2일 추진위원회 대표단의 덕성여대 방문길을 안내하기 위해, 나는 처음으로 학교에 나갔다. 내가 학교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60-7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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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은 내가 학교를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한 교수는 이미 우리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갈 마음을 굳혔다. 한 교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학생들은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되지 말라”고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내가 출근하지 않는 사이, 학교는 나의 해직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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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나는 “나의 해직은 결코 나 한사람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대학의 고질적인 비민주성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언제 학교로 돌아와 어떻게 싸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막연히 싸워야겠다는 생각만 하였을 뿐, 구체적으로 누구와 어떻게 싸울 지까지 생각해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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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위원회 대표단의 학교방문은 사학과 학생과 졸업생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를 계기로 4월 10일 재학생 비상대책위가 출범하였다. 학생들은 나의 해직 문제를 한 과의 문제나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닌 비민주적이고 편파적인 학사행정, 교육권ㆍ교권침해, 재단중심의 왜곡된 발전논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덕성인 전체의 문제로 대응해 나가기 위해 재학생 비상대책위를 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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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자 쾌재를 불렀던 학교당국은 뜻하지 않은 재학생 비상대책위의 출범으로 아연 긴장하였다. 4.14일 학교 측이 배포한 문건「한상권 전 조교수의 재임용 제외에 관한 학교의 입장」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특히 지난 4월 2일에는 (한상권 전 조교수가) 학교를 방문하여 강의시간에 수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을 충동하여 강의실을 이탈케 하고 투쟁의식을 고취하는 언동을 하는 등 선량한 교육자로서 상궤를 이탈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에 비추어…

대표단 방문 이후 학교가 어수선해 수업도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다는 교무처장의 항의전화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4. 신의 경지에 이른 인사위원회

  4월 10일 졸업생 비상대책위는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의 부당성을 규탄하며 탈락처분 철회를 주장하는 252명의 사학과 졸업생들의 서명명단을 가지고 김용래 총장을 방문하여 입장을 밝히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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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김용래 총장이 시간을 낼 수 없다며 거부하였기에 대신 교무처장을 만나 서명자 명단을 전달하면서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문제를 따졌다. 졸업생 비상대책위가 보고한 교무처장과의 면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졸: 한상권 교수님이 왜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나?
교: 계약기간이 끝났다. 교수직은 단순 계약직으로 계약이 만료되었기에 학교에서 재임용을 안 하기로 결정했다.


졸: 한교수님이 저희 학교에서 10년을 넘게 재직하셨고 실력 있는 교수로 덕성여대에 있는 것은 학교 발전을 위해 좋은 일 아닌가? 우리 졸업생은 계약만기로 재임용되지 않은 것을 납득할 수 없다. 그 이유를 분명히 말했으면 좋겠다.
교: 우리 학교는 내규가 있다. 그 내규에는 교수에 대해 연구실적, 강의평가, 근무태도, 학교기여도를 본다. 한교수의 연구실적은 아주 좋다. 그러나 근무태도와 학교기여도에서는 문제가 있다. 인격적인 문제다.


졸: 근무태도는 무엇을 말하는가?
교: 종강을 일찍 한다든가, 또 우리학교에선 일주일에 나흘을 근무해야 하는데 학교를 나오지 않는다던가…


졸: 한교수님이 종강을 일찍 하셨나. 학교를 안 나오시고 강의를 하지 않았나.
교: 꼭 한교수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강의는 했지만 강의만 하고 학생지도를 하지 않았다던가


졸: 그럼 교수들에게도 퇴근 시간이 있는가?
교: 그것은 양심의 문제다. 물론 연구나 외부 학회일로 나갈 수는 있지만, 학생들에게서 불만이 들여왔다.


졸: 학생들에게 불만을 어떻게 확인했나?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말할 통로를 몰랐는데 그럼 사학과 학생들이 교무처장에게 직접 말을 했는가?
교: 통로를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런 불만을 들었다.


졸: 앞에서 말한 인격적인 문제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분명한 근거를 대라.
교: 인격적인 것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학교에 대한 기여도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한교수는 교수회의, 학교행사 불참 등 제반 여러 가지다.


졸: 우리 재학시 교수님은 학과장을 하시면서 학생지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도 학교기여에 속하지 않는가?
교: 맞다


졸: 그럼 처장이 말하는 근무실적, 학교기여는 지금 재임용탈락에서 근거가 되지 않은 것 아닌가. 그것을 어떻게 인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나. 또한 인격적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것인데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사람의 인사 문제를 좌우해야지 주관적 잣대를 쓰는 것은 인사권 남용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교: 인사권 남용측면도 있지만 우리학교는 학생교육을 연구보다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교수의 학생지도 미비는 재임용의 결격사유가 된다.


졸: 분명이 말하면 내규에는 문제가 없는데 교수님의 인격적인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인가.
교: 그렇다.


졸: 그럼 재임용 문제를 어디서 심사하는가?
교: 인사위원회가 한다.


졸: 구성은
교: 학과장과 보직교수들이다.


졸: 그럼 그 사람들이 타인의 인격을 심사할 수 있다고 보느냐
교: 그렇다. 왜냐하면 학장들이기 때문이다.


졸: 그것은 신의 경지이지 않은가
교:


  교무처장과의 면담에 이어 졸업생 비상대책위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학교 측에 전달하였다.

  지금까지 들은 것을 볼 때 한상권 교수 재임용탈락에 대해 어떤 개관적 기준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진정으로 학교가 학생과 학교를 위한다면 교수님이 다시 덕성여대 강단에 설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저희 서명자들은 이런 요구를 학교에 강력히 하는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문제를 제자로서 해결할 것이다.

5. 복직투쟁이 옳지만 가능하지 않다

4월 10일 졸업생들은 교무처장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교수 신규채용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에 4월 16일(수) 긴급하게 상정된 사학과 비상총회에서 재학생들은 이 같은 학교의 교수 신규채용은 명확히 한상권 교수님 복직을 막기 위한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신규채용이 이루어지는 5월 5일(교무처장의 말에 의하면) 이전에 이를 분명히 반대하는 집단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으고 4월 17일부터 5월 1일까지 전공수업을 거부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4월 21일부터 25일까지의 중간고사 역시 거부할 것을 결의하였다. 재학생들은 한상권 교수님 복직을 위한 뜻을 수업거부 시험거부로 표현하고 계속적인 선전전을 수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새 교수님 필요 없다. 한 교수님을 돌려 달라!”


  학교정문에서 잘 보이는 곳에 재학생 비상대책위 명의로 붙어있는 현수막의 글귀였다.

그러나 재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시험거부 결의는 학교당국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며칠 만에 무너졌다. 대표단 방문이후 동요하는 학생들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학교당국은 총력을 기울였다. 강의실 곳곳에 「한상권 전 조교수의 재임용 제외에 관한 학교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괴문서’가 살포되었다.

  이 ‘괴문서’에는 학교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총장 명의가 없음은 물론, 학교 직인도 찍히지 않았다. 괴문서는 한상권 교수를 재임용 탈락시킨 것이 ‘교육자로서 부적격한 인격적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학교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학과 교수는 4월 16일의 결의가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학생들에게 회의를 다시 열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4월 19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학과 학생들은 수업거부, 시험거부, 복직투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학교에 모였다. 투표 전에 졸업생 비상대책위 대표가 회의장에 참석하여 그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경과보고하려 하였으나 학교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에 의해 강제 퇴장 당했다.

  사학과 재학생 109명 중 86명이 참가하여 수업거부, 시험거부에 대해 찬반투표를 한 결과, 찬성 32명 반대 44명 기권 10명으로 수업거부, 시험거부는 부결되었으며 재학생 비상대책위도 해체하기로 하였다. 순간 투표장은 재학생 비상대책위 학생들의 울음바다가 되었다. 학교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학생들을 설득하였다.

  복직 운동은 옳지만 가능하지 않다. 학생들만 희생당할 필요 없다. 내가 한 선생을 구제하느라 수차례 노력했다. 이번만은 도저히 안 되어 어쩔 수 없었다. 가능한 일이라면 내가 왜 해결하지 못했겠는가? 나도 가슴 아프다.

  이날 나는 민교협 3차 중앙위원회 참석차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민교협 중앙위원회에서 덕성여대 사태를 보고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내가 학교 사정을 전화로 연락받은 것은 밤 11시가 넘어서였다. 이날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을 전해주는 민정이의 목소리는 흐느끼고 있었다. “선생님,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