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버이날 받은 편지

BoardLang.text_date 2008.10.14 작성자 한상권

어버이날 받은 편지


한상권(중세사 2분과)


1. 아빠의 해직을 눈치 챈 딸

1997년 2월 말 나는 덕성여대로부터 재임용탈락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해직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이제 갓 중학교에 들어가 사춘기에 들어선 딸이 충격을 받을까 염려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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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임용 탈락 통지서 <ⓒ 한상권> 


막상 해직이 되니 당장 갈 곳이 없다는 점이 제일 곤란하였다. 이 고민거리는 규장각관장인 국문과 이상택 교수님께서 나를 규장각도서 해제위원으로 위촉하고 공부할 공간을 마련해 주심으로써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이상찬 선생이 근무하는 방에 책상 하나를 더 들여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었다. 당시 나의 부인도 규장각에서 古지도담당 특별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거의 매일 출퇴근을 같이 하였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딸 예선이가 나의 해직을 어렴풋이 눈치 챘다. 엄마에게 “요즈음 아빠한테 무슨 일이 있지”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란 엄마가 “왜 그러냐”고 되물으니, 아빠가 요즈음 들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예선이는 아빠가 엄마와 매일 출퇴근을 같이 하는 점이 이상하다고 하였다. 당시 우리 집은 목동이었으므로 쌍문동에 있는 덕성여대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빠 출근 시간이 자기가 학교 가는 시간보다 늦으며, 저녁에도 거의 매일 엄마와 함께 들어온다는 것이다.

또 요즈음 들어 아빠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이상하다고 하였다. 나는 넥타이 매기가 귀찮아 학교에 갈 때도 거의 양복을 입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해직이 되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신문사와 방송사의 인터뷰 요청이 있다 보니 자연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출근할 때는 양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나오고는 했다. 예선이는 나의 출퇴근 시간과 말끔히 차려입은 복장을 이상하게 본 것이었다.  반면 초등학교 5학년생인 호준이는 뉴스에 나오는 재임용탈락이 무슨 말인지 몰라 궁금해 했다. 엄마의 설명을 한참 듣고 나서는 “그러니까 아빠가 재활용 안 되었다는 말이야”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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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감사원과 교육부의 민원 회신

1997년 4월 24일 나는 “학교법인 덕성학원이 교수재임용제도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비판적인 교수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실을 고발하오니 부디 검토하여 마땅한 조치를 취해 주시고, 민원 처리 관계 법령에 의거하여 처리 결과를 회신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요지의 진정서를 감사원과 교육부에 제출하였다. 이에 대해 5월 8일 감사원장 명의의 회신이 왔다.

“귀하가 우리 원에 접수한 민원사항은 교육부에서 처리하여 귀하에게 통지하도록 하였음” 

감사원은 자신에게 접수된 민원을 교육부로 떠넘기기에 급급하였다. 용지에 인쇄된「실천하는 친절행정, 쌓여가는 국민신뢰」라는 표어가 회신한 내용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실천하는 행정”이고, 어떻게 “신뢰가 쌓여간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귀하가 제출한 민원은 심사결과 우리위원회에서 직접 조사, 조치하기는 불가능한 사안으로 판단되어 이를 교육부로 이송하였”다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의 답신이 솔직하였다.

  교육부의 민원서류 접수에 대한 중간 회신 역시 책임 회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하가 감사원 및 대통령비서실, 우리부 등에 제출한 ‘교수재임용탈락처분 부당에 관한 진정’건은 해당대학으로 하여금 객관적이고도 철저하게 사실 조사케 한 후, 그 결과를 귀하에게 조속히 회신토록 하겠음을 알려드리니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이 역시 문제의식도 분명하지 않고 해결의지도 없는 실망스러운 답변이었다. 내가 교육부에 요구한 것은 재임용탈락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조사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교수 재임용 제도를 악용한 사학에 대해 행․재정상의 제재조치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다.

교육부는 사학에 대해 행정감독권을 가진 주무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사학의 자율’이라는 미명하에 전횡과 비리를 방치해 왔다. 교육부의 이와 같은 태도는 1996년 5월 덕성여대에 대한 종합감사를 통해, 박원국 이사장의 법인세 환급금 부당전출 등 법인 비리 6건, 입시관리 등 대학 비리 22건, 총 28건이나 되는 비리를 적발하였음에도 ‘경고’ 내지 ‘주의’에 그치는 미온적인 조치를 취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박사학위 논문을 조선시대 백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식인 소원제도(訴冤制度)에 관해 썼다. 어떤 사람은 나의 재임용탈락의 의미를 해석하기를, 억울함에 관해 충분히 연구를 하였으니 억울한 사람의 심정을 체험해보라는 뜻으로 해직된 것이라고 하였다. 정부 부처의 민원업무 처리 방식을 보고 조선시대 사람도 이렇게 분통을 터뜨리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3. 큰 사람이 되어 아빠처럼 의와 지를 겸비한 지성인이 되겠습니다.

교육부로부터 중간회신을 받은 그날(5월 9일), 나는 예선이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학교에서 부모님께 쓰라고 한 편지였다.

사랑하는 아빠께…


어느덧 사방에는 푸르름이 가득한 봄입니다. 새싹이 돋고
훈훈한 바람이 부는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계절이지요.
아빠,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매일 뵈면서 새삼스레 이런 인사하기가 어색하네요. 어쨌
든 저는 큰 딸 예선이에요.

요즈음 무척이나 힘드시죠? 자세히는 모르지만 악법에
투쟁하여 희생을 해 가시면서까지 힘쓰시고 계시잖아요.
저는 그런 아빠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
면 혹시 나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쉬쉬거리는데 아빠께서는 용감하게 나서서 옳지 못한 사회
구조를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셨으니까요. 그 결과 많은 사
람들이 서명을 해주고 동참해주어 아빠도 힘이 나셨겠지만
저도 매우 기뻤습니다. 하지만 그런 대가를 얻기 위해 노력
하시는 아빠의 모습은 눈물이 핑 돌 정도였지요. 매일 밤
늦게 들어오셨고 항상 들고 다니시는 서류가방은 제가 낑낑
거리며 들어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런 어려
움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더욱 노력하시는 아빠의
모습은 매우 존경스럽고 이상적으로 제 기억속에 살아있습
니다. 더불어 아빠의 힘든 요즘 생활을 알면서도 항상 이
기적으로 나만 생각했던 저 자신을 반성할 수도 있었습니
다. 비록 지금까지는 철없이 걱정만 끼쳐드린 저였지만
앞으로는 항상 건강하고 밝고, 또 착한 딸이 되도록 노력하
겠습니다. 그래서 큰 사람이 되어 아빠처럼 의와 지를 겸비
한 지성인이 되겠습니다.

그럼 이렇게 약속드리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몸 건강히
용기 잃지 마시고 안녕히 계세요.

1997.5


아빠를 너무나 사랑하는 큰딸 예선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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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도 예선이는 아빠 해직의 충격을 잘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사춘기의 예민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어느덧 의젓하게 자라 오히려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고맙게도 해직된 아빠를 자신의 역할모델로 삼을 정도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여기에는 담임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예선이 담임선생님은 전교조였다. 목일 중학교에는 전교조 선생님이 많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와 관련된 신문기사가 나올 때마다 스크랩해서 예선이에게 건네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을 맡은 전교조 선생님들도 수업시간에 들어와 예선이에게 “네 아빠는 학교의 민주화를 위해 악법에 맞서 싸우는 훌륭한 분”이라고 말해주곤 했다.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딸에게 베풀어진 따뜻한 배려와 격려를 지금까지도 고맙게 생각한다.

4. 사람은 스스로 돕는 의로운 사람을 돕는단다.

나는 예선이의 편지를 받고 피곤함을 무릅쓰고 급히 답장을 썼다.

귀여운 나의 딸 예선이에게


예선아!


만물이 생명의 신비로움을 한껏 드러내는 5월이구나
생명은 참으로 소중하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항상 든단다.
그러나 생명이 의로움을 향해 정진할 때만 그렇겠지.

어느 철학자는 경외로운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양심이라는 도덕이라고
양심은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양분이겠지.

예선아!


사람이 살아가는 데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단다. 또
그것을 바래서도 안된다. 문제는 궂은일을 당했을 때가
되겠지. 궂은일이라 하여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왜 그 사람이 궂은일을 당했는가에 따라 오히려 더 강하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이 항상 좋은 일만 바란 적이 있었니? 오히려
역경을 맞아 그것을 극복하면서 의지가 굳어지고 신념을 확
신하며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창조력을 터득하는 것이지.

아빠는 지금 궂은일을 맞아 나의 삶을 중간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내가 아무런 가치 없이 무의미
하게 살았다면 아빠는 불행의 격류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틀림없이 아빠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주위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지. 과연 아빠의
생각은 적중했다. 전국의 2,500여명의 대학교수와 연구자들이
불같이 일어나 아빠를 성원하고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고 있지
않니. 의롭고 도덕적이며 가치 있는 삶이란 이래서 소중하단다.
평상시 잘 드러나지 않다가 역경을 당하면 그 소중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지. 이기적인 삶은 그 반대이지. 주위 사람들
이 평소에는 더없이 친한 것 같지만 일단 위기에 몰리면 서로 모른
다고 하며 흩어져 버리지. 마치 지난날의 부귀와 영화가 신기루인
것처럼 말이야. 그러한 모습을 우리는 매일 보고 있지 않니

요즈음 시끄러운 한보 청문회에서 말이야. 청문회 증인으로 나온
사람들이 정태수, 김현철과 얼마나 가까웠겠니? 서로 한번만
이라도 더 만나려고 했겠지. 그것이 자신에게 이익을 주니까…
그러나 일단 이익이 사라지니까 매몰차게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지 않니. 그런 모습을 보며 정태수, 김현철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예선아!
오랜만에 간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길어졌다. 자주
이런 기회를 갖도록 하자. 흔한 속담하나 있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부르고 싶다.
‘인간은 스스로 돕는 의인을 돕는다!’
그럼 또 만나자. 안녕.


              97.5.10


항상 예선이의 착한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아빠가

예선이의 편지 내용은 5월 말 내가 출근투쟁을 시작하면서 덕성여대 학생들에게까지 알려졌다. 학생들은 예선이 편지 내용을 대자보로 써서 붙여 놓았다. 한겨레신문 황상철 기자가 취재차 덕성여대에 들르면서 이를 보고 기사화 하였다.

이날 인문사회관을 지나가던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한 교수의 큰 딸(13)이 어버이날 보낸 편지를 볼 수 있었다.
“악법에 투쟁하며 희생을 무릅쓰고 힘쓰시는 아빠가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큰 사람이 되어 아빠처럼 의와 지를 겸비한 지성인이 되겠습니다.”
(한겨레신문 1997.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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