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의 사회사] 암행어사 이야기 ② - 박문수 설화를 찾아서

BoardLang.text_date 2007.11.02 작성자 심재우

암행어사 이야기 ② - 박문수 설화를 찾아서



심재우(중세사2분과)



1. 조선시대 암행어사의 전설, 박문수

  조선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암행어사는 두말할 필요 없이 박문수(朴文秀, 1691-1756)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박문수하면 관직생활 대부분을 암행어사로 보낸 줄로만 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 박문수가 어사로 활동한 것은 영조 때 몇 차례에 불과하다.

  현재 암행어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전국 각 지역에서 널리 전승되어 왔는데, 박문수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박문수 관련 설화는 조선후기에 기록된 ≪청구야담(靑邱野談)≫, ≪동야휘집(東野彙集)≫, ≪계서야담(溪西野談)≫, ≪기문총화(記聞叢話)≫ 등의 야담집에 십여 편 넘게 실려 있고, 최근에 채록해 정리된 ≪한국구비문학대계≫ 등 설화집에는 삼백여 편이 전해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화에 등장하는 이야기가 모두 실존인물 박문수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박문수의 암행어사 활동 당시의 행적이 공식 기록에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설화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박문수에 관한 몇 가지 상상을 해볼 수도 있다. 여기서는 역사 속 박문수는 잠시 제쳐두고 이야기 속 박문수의 모습을 추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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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 고령박씨 종중재실. 천안시 북면 은지리에 위치한 고령박씨 종중재실. 2006년 필자가 답사할 당시 공사중이었으며, 박문수 묘는 뒤편의 산 속에 있다.
  2. 소설 속 박문수

  먼저 일제시대에 출판된 소설 ≪박문수전≫의 내용부터 살펴보자. ≪박문수전≫은 1915년에 한성서관(漢城書館)과 유일서관(唯一書館)에서 처음 간행하였는데, 그 후 1921년과 1926년에 다시 발행되기도 하였다.

  이 소설에는 암행어사 박문수에 관한 이야기가 제1회에 실려 있고, 제2회와 제3회는 박문수와 관계없는 중국 명대의 소설을 번역ㆍ번안한 것이다. 박문수의 앞 일을 내다보는 선견지명, 억울한 사람들의 원통함을 해결해주는 정의의 사도로서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제1회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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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2> 1921년에 발행된 소설 ≪박문수전≫의 첫부분

  조선 영조 때 박문수가 이인좌와 정희량의 난을 진압한 후 암행어사에 선발되어 충청도, 경상도를 거쳐 전라도 덕유산에 이르렀다. 험한 산길을 헤매다가 등불을 찾아 어떤 집에 이르니, 한 노인이 단도를 들고 젊은 아들 배 위에 올라가 ‘이 놈 죽어라, 이 놈 죽어라’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누운 사람은 반항도 하지 않고 ‘다만 죽겠습니다’ 하는 말 뿐이었다. 박문수가 자세한 사연을 알아보았다.

  노인은 글방의 훈장인 유안거이고 그 아들은 유득주인데, 유씨 가족 외에 구씨와 천씨만 살아 이곳을 구천동이라 부른다고 했다. 유안거 이웃에 천운서와 그의 아들 천동수 부자가 사는데, 천동수의 처가 행실이 좋지 못했다.

  그런데 천운서 부자가 천동수의 처와 유득주가 통간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 보복으로 내일 합동 혼례를 올려 유안거의 부인은 천운서가 차지하고, 유득주의 부인은 천동수가 차지하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안거 부자는 살아 욕을 당하기 전에 온 가족이 죽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박문수는 유안거를 안심시킨 뒤, 곧 무주 관부에 출도해 오방신장(五方神將)의 군복을 만들게 한 뒤, 땅 재주 잘하는 광대 네 명을 뽑아 그들과 박문수가 각각 신장 군복을 입고 구천동으로 달려갔다.

  천운서 부자에 의한 폐륜적인 혼례가 치러지기 직전,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오방신장이 들이닥쳐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천운서 부자를 잡아 깊은 산골로 끌고 가 죽여버렸다. 이 모두 박문수의 지략에 의한 것이었다.

  10년 후 박문수가 삼남어사(三南御史) 자격으로 다시 구천동을 찾아가니 예전에 보지 못하던 커다란 기와집이 한 채 있고, 유안거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유안거가 박문수를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하는 말이, 10년 전 천가 부자가 옥황상제에게 잡혀간 뒤 동민들이 ‘저 집은 곧 하늘이 아는 집이다’라고 하며, 이 집을 지어준 뒤 해마다 곡식을 갖다 바쳐 이렇게 잘 살게 되었고, 유안거 또한 동민들의 자제를 더욱 정성껏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박어사는 이튿날 구천동을 떠나 삼남지방을 암행하고 다스린 지 2년 후, 어사직을 사직하고 내직으로 복귀했다.

  이후 조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평생 경력을 왕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을 다스린 일과 유안거의 전후 사정을 아뢰니, 왕과 여러 신하들이 모두 박문수의 도량을 칭찬했다.(≪박문수전(朴文秀傳)≫ 백합사․동흥서관,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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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3> 박문수 묘.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묘의 좌우에 무인석이 세워져 있다.

  위의 이야기에서 박문수는 구씨, 천씨들의 집성촌으로 이루어진 구천동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부부간에 생이별을 할 지경에 처한 유씨 가족을 구원해준다. 더욱이 박문수는 몰락한 선비 집안인 유씨 가족이 앞으로도 구천동에서 따돌림을 받지 않도록 지혜를 발휘했다.

  즉 유씨 가족을 괴롭히던 천운세 부자의 처형이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꾸며, 그곳 주민들에게 유씨 가족은 하늘이 보살피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이처럼 소설에서 암행어사 박문수는 곤경에 처한 백성을 구원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3. 설화 속 박문수

  소설 ≪박문수전≫의 내용은 앞서 본 것과 같다. 그럼 설화나 전설 속 박문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현재 전하는 여러 설화 속에서도 박문수는 신출귀몰하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인물로 자주 등장한다. 살인한 중을 붙잡아 억울한 죄수를 풀어주는 <홍판서 누명 벗겨 준 박문수> 이야기를 한 가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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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4> 기은박문수도서목록(耆隱朴文秀圖書目錄). 문화재관리국에서 1979년에 박문수 종가에 소장된 전적을 조사하여 목록으로 간행한 책자이다. 책에 실린 박문수 관련 문헌의 상당수는 현재 도난당하고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옛날에 홍판서가 홀로 된 며느리와 살았다. 어느 날 며느리 혼자 집에 있는데, 젋은 중이 와서 시주하라고 했다. 며느리가 시주하려고 문밖으로 나가니, 그녀의 미모에 마음이 끌린 중이 그녀를 방안으로 끌고 들어가 정을 통하려 했다. 그녀가 중의 요구를 뿌리치며 반항하자 중은 집의 기둥에 꽂혀 있던 낫으로 그녀를 찌르고 달아났다.

  홍판서가 집에 돌아와 며느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뒤에 몸에 박힌 낫을 빼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술집 마누라가 와서 그 광경을 목격하였다. 노파는 “홍판서가 며느리를 겁탈하려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칼로 찔러 죽였다”고 관가에 신고했다. 그래서 홍판서는 며느리를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때 암행어사 박문수가 이 고을 가까이 오다가 한 중을 만났는데, 명지 바지에 기름 때가 졸졸 흐르는 모습이 수상쩍은 데가 있었다. 박 어사는 그 중을 수상히 여겨서 함께 길을 걸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중은 자기가 시주를 얻으러 갔다가 주인 여자의 미모에 반해 겁탈하려다가 말을 듣지 않자 죽인 일이 있다고 했다.

  박 어사가 중과 헤어져 홍판서 집에 방문하여 홍판서가 며느리를 죽인 죄로 곧 사형에 처해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중이 거처하는 절로 사령들을 파견하여 살인한 중을 체포하도록 하였다. 결국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던 홍판서는 석방되었다.(≪한국구비문학대계≫ 강화군 내가면 설화)

  위 이야기에서 보듯이 박문수는 며느리를 살해한 죄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가난한 양반을 구출하고 살인을 저지른 중을 잡아가두는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암행어사라는 신분을 바탕으로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리고, 불법한 관리나 악인을 처벌하기도 한다.

  또한 전국을 순행하면서 나이 많은 처녀와 총각을 중매해 혼인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이처럼 상당수 설화 속에서 박문수는 절대적인 능력과 지혜를 가지고,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관리의 표상으로 등장한다.

  물론 박문수가 민중들이 바라는 영웅으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박문수 설화 중에는 간혹 박문수가 평범한 인물로 등장하거나 심한 경우 지혜가 부족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요즘의 자유분방한 젊은 친구들처럼 박문수는 여인을 유혹하다가 혼쭐이 나기도 했으며, 심한 경우 암행 중에 원두막에서 만난 처녀와 관계를 맺어 아기를 낳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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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5> 2003년 MBC 월화 드라마로 방영된 <어사 박문수>의 주연 배우들

  이처럼 박문수 설화 속에는 박문수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지만 이들 설화를 있는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현존하는 암행어사 박문수에 관한 설화는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박문수가 어사로 파견된 지역은 일부 지역 뿐이지만, 설화에서는 조선 팔도에 다 암행어사로 다닌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암행어사 이야기에 등장하는 박문수는 실존인물 박문수 한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암행어사들을 통칭한 것이다. 일반 백성들은 박문수 이름을 빌려 모든 암행어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간에 다양한 지역에서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가 구전되고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박문수는 점차 암행어사의 대명사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