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변은 왜 이름을 바꾸었나?
박진훈(중세사 1분과)
고려 무인집권기를 살았던 손변은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으로 배운 사람들도 손변 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하지만 고려사를 전공한 사람들에게 손변은 매우 유명한 사람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 때문이다.
오래도록 재산 문제로 소송을 한 남동생과 누이가 있었다.
일의 발단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모든 재산을 누나에게 물려주고 남동생에게는 오직 검은 옷 한 벌, 검은 관 하나, 신발 한 켤레, 종이 한 장만을 물려주었다.
억울한 남동생이 장성해서 소송을 걸었고, 누나는 유언대로 자신이 전 재산을 차지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소송이 몇 년 동안 계속되어도 끝날 기미가 없었다.
손변이 경상도 안찰부사로 부임해 와 두 남매를 불러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머니께서는 먼저 돌아가셨다.”
“그때 너희들은 몇 살이었느냐”
“누나는 이미 시집을 갔었고 동생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
손변이 다 듣고 나서 남매를 타일렀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균등한데 어찌 다 커 결혼한 딸에게는 후하고 엄마 없는 어린 아들에게는 박하였겠는가? 생각컨대 어린 아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면 누나가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적어져 동생을 잘 돌보지 않을까 염려한 것이다. 따라서 아들이 성장하면 관청에 나가 소송하도록 입고 갈 검정 옷, 쓰고 갈 검정 관, 신고 갈 신발, 소송장을 작성할 종이를 물려준 것이다.”고 하였다.
누나와 동생이 그 말을 듣고 감동하여 서로 부여잡고 울었다.
그래서 손변이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남매에게 주었다. 위 일화는 고려시대의 상속관행이 균분상속이었을 증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이 일화를 통해 고려시대 상속제도, 나아가 사회성격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되었으며, 따라서 고려시대 전공자라면 한번쯤 이 일화를 생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재산을 상속받기 필요한 소유권이전등기 신청서
하지만 손변의 원래 이름이 손습경이었다는 것은 고려시대 전공자들도 잘 모르는 사실일 것이다. 아마 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므로, 사회체제의 성격과 그 변화의 요인 등 거시적인 문제를 우선적으로 살피는 연구자들에게 이러한 소소한 점은 눈에 잘 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왜 손습경에서 손변으로 이름을 바꾸었을까? 원래 이름인 습경(襲卿)을 뜻풀이하면 ‘벼슬을 계승하다, 경(卿)을 잇다’는 뜻이다. 관료로서의 출세를 바라는 뜻이다. 반면 변(抃)이라는 이름은 ‘손뼉치다’라는 뜻이다. 아마 부모님이 지어주었을, 그리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의미하는 습경이라는 좋은 이름을 버리고, 그는 왜 ‘손뼉치다’라는 다소 엉뚱한 이름으로 바꾸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일화가 주목된다.
(손변은) 아내의 계보가 왕실의 서족(庶族)에 연계되었으므로 대성(臺省)·정조(政曹)·학사(學士)·전고(典誥)에 임명될 수 없었다. 아내가 손변에게 “당신은 나의 계보가 천한 것으로 인해 유림(儒林)의 청요직(淸要職)에 오르지 못하니 나를 버리고 세족(世族)에게 장가드십시오.”라고 하였다. 손변이 웃으면서 “나의 벼슬길을 위하여 30년 조강지처를 버린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것이요. 하물며 자식까지 있지 않는가?”라고 하고, 듣지 않았다.
손변의 아내는 왕실의 핏줄을 타고 났지만 신분제 사회의 관행상 떳떳한 핏줄은 아니었다. 정실 자식이 아니라 서자의 피가 섞인 것이다. 이러한 결격사유는 결혼한 손변에까지 적용되었고, 손변은 대성·정조 등 관료라면 누구나 열망하는 중요 관직, 청요직에는 올라 갈 수 없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아내는 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관료로서의 출세가 막힌 손변의 고뇌를 아내는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출세를 위해 고생했던 시절의 아내를 버리고 지체 높거나 부잣집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들이 꽤 있었다. 손변의 아내는 손변도 그들처럼 자신과 이혼하고 대갓집의 지체 높고 하자 없는 핏줄을 타고 난 여성과 결혼하여 출세 가도를 달리라고 권유하였다. 다른 여자와 새로 결혼하도록 권유하는 손변의 아내 마음은 어떠했을까? 애틋한 마음 한편으로 찢어지는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손변은 웃으면서 이를 거절했다. 30년 동안 같이 살아온 부부간의 정리와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사랑의 산물인 자식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안 될 말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결정한 손변도 한편으로 심적 갈등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어쨌든 손변은 출세 대신에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선택했다. 사랑을 위해 출세를 포기한 손변에게 관료로서의 출세를 의미하는 습경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름을 바꾸어야만 하였다. 그럼 어떤 이름으로 바꿀까? 그래서 선택한 이름이 ‘손뼉치다’는 의미의 ‘변’이다. 손뼉을 치기 위해서는 항상 두 손을 필요로 하고, 두 손이 마주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는 부부를 상징하고 부부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내의 사랑을 택한 손변은 그 사랑의 의지를 굳게 하기 위해, 그리고 아내와 가족들에게 그 사랑의 증표를 내보이기 위해,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들과 고려 사회에 표명하기 위해, 자신을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으로 표현하는 이름을 바꾸어 보여준 것이다. 손쉽게 사랑을 나누고 손쉽게 이혼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름을 바꾸어 아내와의 사랑을 표현한 손변의 다소 낭만적인 일화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