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이야기] 담배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BoardLang.text_date 2004.08.02 작성자 이영학
담배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 수 있었다.(제6회)

재배하면 ‘큰돈’되는 담배

담배는 전래되자마자 급속히 보급되었다. 그리하여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담배를 피웠다. 그리하여 전래 초기에는 담배의 가격이 비쌌으며, 심지어는 은(銀)의 중량으로 담배를 거래할 정도로 비쌌다. 그에 따라 많은 농민들이 담배를 재배하였다. 농민들은 담배를 재배하여 수확하고, 그 수확물을 장시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을 수 있었다.
담배 재배는 투기적 성격이 강하였다. 농민들이 담배를 많이 재배하여 수확물이 다수 수확되면 담배가격이 떨어져 재배농민이 손해를 볼 수도 있었고, 또는 담배농사가 흉년이 들거나 홍수가 남으로써 수확이 격감하면 재배농민이 곤란을 겪을 수도 있었다. 담배가 아닌 곡물인 경우에는 흉년이 들면 약간이라도 수확하여 식량에 보탤 수 있었을 텐데, 담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체로 담배를 재배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풍년이건 흉년이건 간에 농민은 담배를 재배하여 이익을 얻었다. 농민은 담배를 재배하여 수확하고, 그 수확물을 장시에 내다 판매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다산 정약용도 『경세유표』에서 “관서지방의 담배밭은 비옥한 논에서 생기는 이익보다 10배나 많다”라고 적고 있다. 그럴 정도로 담배를 재배하면 얻는 이익이 컸던 것이다.


담배는 어떻게 소비되었을까

당시 담배는 두 가지 방법으로 소비되었다. 하나는 담배잎을 찢거나 잎을 대충 썰어서 담뱃대에 담아 피우는 방법이었고, 다른 하나는 담배잎을 잘게 썰어 담뱃대에 넣어 피우는 방법이었다. 담배잎을 잘고 정교하게 썰은 것을 ‘지삼(枝三)’이라고 불렀다. 양반이나 돈이 많은 부호들은 담배잎을 정교하게 썰은 지삼을 피웠으며, 평민이나 노비들은 담배잎을 찢거나 대충 썰은 것을 피웠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담뱃대, 쌈지, 재떨이, 부싯돌 등이 필요하였다. 담뱃대는 긴 것과 짧은 것이 있었고, 긴 것을 ‘장죽’이라 하였고 짧은 것을 ‘곰방대’라고 하였다. 긴 것은 대체로 양반들이 사용하였고, 짧은 것은 평민 이하의 계층에서 사용하였다. 쌈지는 잎담배나 썰은 담배를 담는 것이었다. 쌈지에서 썰은 담배를 꺼내어 담뱃대에 꼭꼭 쟁여서 불을 붙여 피웠던 것이다. 쌈지는 허리에 차고 다니는 주머니 모양의 ‘찰쌈지’와 가죽이나 유지로 두세 번 접게 만들어 옷소매나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쥘쌈지’의 두 종류가 있었다. 또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는 담뱃불을 붙이기 위한 부싯돌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실내에서 담뱃대의 재를 털어내는 재떨이가 필요하였다.

담배는 어떻게 판매하였을까

담배는 누가 어떻게 판매하였을까. 대도시에서는 엽초전이 시민들에게 담배를 판매하였고, 향촌에서는 보부상 등이 담배를 판매하였다. 담배는 많은 사람들이 피웠기 때문에 잘 팔렸다. 농민들은 자신이 담배를 재배해서 피우기도 하였지만, 대체로 사람들은 담배를 사서 피웠다. 그리하여 도시에서는 상인들이 담배를 쌓아두기만 하면 다 팔렸다.
조선왕조의 수도인 서울에서는 성문 안의 종로거리에 시전(市廛)이 물품판매를 독점하고 있었다. 조선 전기부터 조선왕조는 종로 거리에 시전을 지어 주고, 그 시전만이 서울 시민에게 물품을 판매하도록 하였다. 시전은 정부로부터 물품판매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은 대가로, 정부에 큰 일이 있을 때 그 비용을 부담하였다. 즉 관청을 수리하거나, 정부에서 사신을 파견하는 등의 일이 있을 때 그 비용을 시전상인이 부담하였다.
담배가 전래된 이후에 담배 매매가 활발해지고 대외적인 관계에서 담배가 필요하게 되었다. 조선왕조는 대외적인 측면에서 왜지삼(倭枝三)과 국내산의 담배를 수집하는 기능을 가진 기관이 필요하였고, 아울러 서울의 거주민에게 담배를 파는 소매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조선 정부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도록 하기 위해 종로에 엽초전(葉草廛)을 지어 주었다.

엽초전과 절초전의 치열한 경쟁

조선 정부는 엽초전을 지어 주고 성문 안에서 엽초전만이 서울 시민에게 담배를 팔도록 하였다. 엽초전에서 담배잎을 팔거나, 담배잎을 투박하게 썰어서 서울 시민에게 판매하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자 담배 판매에 따른 이익이 커지고 담배 매매가 활발해지자, 엽초전에서 담배잎을 구입하여 그것을 잘게 써는 등 가공을 하여 다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절초인(折草人)들이 생기게 되었다. 엽초전과 절초인들 사이에 담배의 판매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그 후 절초인들은 절초전(折草廛)을 만들어 정부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고, 이에 엽초전과 절초전은 담배의 판매를 둘러싸고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여갔다. 1711년에는 절초전인(折草廛人) 3백명이 성안의 부역을 자원하면서 절초뿐만 아니라 엽초를 엽초전과 함께 판매하는 상소를 비변사에 올렸다. 이에 정부로부터 엽초전과 절초전은 담배를 같이 판매하도록 허락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절초전이 생긴 후 절초의 판매를 독점함으로써, 절초를 팔아 살아가는 시민의 생계를 막는 폐단이 생긴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었기 때문에 절초전은 1742년에 폐지되었다.
그 후 연초전(煙草廛)이 엽초와 절초의 판매를 담당하게 되었다가, 1791년에 정부는 육의전이 취급하는 물품을 제외하고 모든 물품은 누구나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담배의 판매는 개방되었다.

향촌에서는 객주 여각 보부상 등이 담배를 판매하였다

지방의 대도시나 향촌의 장시에서는 보부상을 비롯하여 객주 ․ 여각 등이 담배를 판매하였다. 담배의 판매이익은 매우 컸다. 지역, 품질, 가공정도에 따라 담배의 가격이 달라 판매에 의한 이윤이 컸던 것이다. 대도시나 장시 또는 광업촌락이나 수공업촌락 등 담배의 소비자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당시 담배의 판매가 활발하였음은 정상기(鄭尙驥)의 『농포문답』이라는 저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정상기는 우리나라 최초로 백리척을 만들어 ‘팔도지리도’라는 축적지도를 만들었던 사람이다.

“산과 들의 비옥한 토지에 모두 담배를 심고 그것을 배와 마차로 날라서 대도읍 가운데 쌓아 놓으며 길을 따라 줄지어 담배를 팔지 않는 가게가 없다. 아침에 산같이 쌓아 놓아도 저녁에는 다 팔리니, 세상에 담배의 귀함이 차와 술과 비교해도 백배나 된다.”
이와 같이 담배는 매우 잘 팔렸고, 상인들은 담배를 팔아서 큰 이익을 얻고 있었다.

담배를 판매하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담배를 판매하는 상인은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서울 등의 대도시에서는 담배의 판매에 따른 이익이 많게 되자 엽초전과 절초전이 다툼을 벌이게 되었고, 심지어는 소상인들이 불법으로 담배를 몰래 가져다가 성내의 도시민에게 판매하여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또한 지방의 도시나 향촌의 장시에서도 객주나 여각은 물론 보부상들도 담배를 판매하여 이익을 얻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담배를 아침에 산같이 쌓아 놓아도 저녁에는 다 팔릴 정도로 담배의 거래가 활발하였으며, 심지어는 그 담배 매매가 활발하고 액수가 커서 엽전이 모자랄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이와 같이 상인들은 담배 판매를 통하여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당시의 한문단편소설에 중요한 소재거리가 되었다. 조선후기에는 한문으로 쓰여진 단편소설들이 많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 담배를 판매하여 돈을 모으는 일은 중요한 소재거리로 등장하였다. 그 중에 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즉,『차산필담(此山筆談)』이라는 책에 ‘수은식화(受恩殖貨 :은혜를 입어서 돈을 벌다)’라는 제목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 이야기는 박지원의 ‘허생전’처럼, 주인공인 평민의 여자가 담배 장사를 하여 큰 돈을 벌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이다.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헐벗고 굶주린 여인이 몰락한 양반으로부터 엽전 두 꿰미를 적선을 받았다. 그녀는 담배를 싸게 사서 비싼 시기에 내다 팔아 돈을 벌고, 나아가 10년 동안 장사를 하여 수만 냥이나 벌게 되었다. 그 여자는 평민의 딸로 태어나 양민에게 출가하였다가, 거듭 든 흉년에 남편은 굶어 죽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걸식을 하던 여자였다. 그녀는 돈을 벌자 남대문밖에 이사하여 은혜를 베푼 양반을 찾았는데, 드디어 거지가 된 그 양반을 만나 평생을 화락하게 지냈다”는 줄거리다.

당시에 담배를 재배하거나 판매하여 돈을 버는 것을 소재로 한 소설은 다수 있었다. 그 만큼 담배 재배와 담배 판매는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