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답사 후기 - “남한산성에 요상한 옹성이 있다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대대적인 수리와 재건축이 시작된다. 이때 새롭게 도입된 것이 옹성과 외성이다(외성은 다음기회로 미루자. 사실 남한산성은 찬찬히 보면 하루가 부족하다. 그리고 연주봉 옹성은 병자호란 전에 만들어졌다). 사전적으로 옹성(甕城)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이나 방형으로 쌓은 작은 성이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조금 요상하다. 아니 아주 많이 요상하다.
남한산성을 동문 쪽에서 바라본 사진을 보면 5개의 옹성이 잘 보인다. 정 가운데가 연주봉 옹성, 우측이 장경사신지 옹성, 좌측부터 1, 2, 3남 옹성이다. 이들 옹성은 성문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능선에 있는 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수원 화성과 비교해보면 용도와 비슷하다). 그래서 능성을 타고 오는 적을 공격하기 위해 포대가 설치되어 있다. 각각 1개, 2개, 8개, 9개, 5개이다. 특히 검단산과 산세가 이어지는 남쪽 부분에는 특별히 3개의 옹성과 22개의 포대를 두었다. 옹성은 모두 원성에 출입을 위한 암문이 있는데 3남 옹성은 좌우로 암문을 끼고 있다. 그리고 장경사신지 옹성을 제외하면 모두 성벽에서 돌출된 치성을 갖고 있는데 2남 옹성이 제일 돌출되어 있다. 장경사신지 옹성은 성벽에 잇대어 만들어서 인지 암문도 곧바로 연결된다.
가장 많은 포대를 갖고 있는 1남 옹성과 2남 옹성은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1남 옹성은 부채꼴로 넓게 퍼진 포대를 갖고 그 뒤에 지휘소로 쓰였을 높은 돈대를 갖추고 있다. 2남 옹성은 직사각형으로 동ㆍ서ㆍ남 3방향으로 3개씩 포대를 갖추었다. 게다가 중간에 홍예문을 두었는데 그 중간에 축성책임자들이 새겨진 각석이 있다.
이들 옹성은 포대는 이후 숙종대 강화도에 만들어지는 돈대의 포대의 원형이다. 그리고 정조대 화성에 만들어지는 포루와 공심돈의 먼 조상이다. 날 좋은 날 찬찬히 시간 내서 둘러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