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를 헤치고 밤늦게 도착한 베를린의 인상은 어둡다. 늦은 저녁을 먹자 하고 나서서 마침 숙소 근처에 있는 빌헬름(Wilhelm) 황제 교회를 보았다. 1943년 11월 23일 폭격을 맞았다. 지금 저것은 무너지다 만채로 있는 모습을 보존한 것이고, 곁에 현대식 건물을 새로 지었다. 전쟁의 폐해를 역설하며 평화를 호소하고자 그대로 둔다는 설명인데... 왜 내게는 전쟁 피해를 호소하는 억지로도 보일까? 밤에는 그 안에서 연주회도 하고 파티도 하고 그런다. 우연히 그 틈에 들어가 본 내부에는 옛 모습이 한켠에 붙어 있다. 새벽에 다시 찾아가 보아도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뭐 달라질 것 없이 쓸쓸하다. 베를린은 본래 유적이 적어서인지, 아니면 전쟁 통에 많이 망가진 탓인지, 파리나 다른 역사 도시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옛 것이 적다. 신구가 마구 뒤섞여 있다는 인상이다. 궁궐이라는 것도 중앙집권적 전통의 우리 것과는 사뭇 다른 위상을 갖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베를린에 남아 있는 궁궐, Schloss Charlottenburg도 크기는 크나,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하긴 시간과 독촉에 쫓겨 속에는 들어가 보도 못하고, 겉에서만 휘리릭 보다 만 터에 무슨 깊은 이야기를 하랴. 주마간산의 주관적인 인상이지만, 베를린은 전체적으로 착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인데, 유독 광고만은 꽤 강하다. 중년 여인들도홀딱 벗고 거리바닥에 나앉아 있다. 비누 선전이란다. 하긴 그렇지... 중년 여인이라고 아름답지 않겠나? 아름답고 싶지 않겠나? 이건 젊은 여성이라고 해야 하나, 남성이라고 해야 하나? 보석인지 캬바레인지 듣고도 잊어먹어 뭘 선전하려는 건지 모르겠으나, 아무러나 시선을 끌었다는 점에서는 성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