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성 가는 길 2 : 장연사 터

BoardLang.text_date 2006.12.21 작성자 하일식

부산성 가는 길 2 : 장연사 터


유천에서 부산성 아래까지 차를 타고 곧장 가면 답사의 재미가 없을 것이다. 가는 길목에 들러볼 유적지가 있는지 알아보니, 못가본 곳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2군데를 고르고나서, 나머지 고인돌 등은 시간을 보아가며 들러기로 하였다.


  장연사 터의 쌍탑
  먼저 찾은 곳이 청도군 매전면(買田面) 장연리에 있는 장연사 터이다. 매전면은 조선시대에 매전역이 있던 곳이다.
면 소재지를 지나 조금 더 가서, 매전초등학교 못미쳐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장연사 터가 있다. 제법 잘 생긴 쌍탑이 감나무 과수원 한 가운데 서 있다.

원래 절 이름이 장연사여서 마을 이름으로 옮겨진 것인지, 이름 모를 절터에 마을 이름이 옮겨 불려지는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서탑은 무너져서 개울 아래에 흩어져 있던 석재들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고, 동탑은 1984년에 해체복원한 것이다. 이 때 동탑 안에서 나무로 만들어 금칠을 한 사리함이 발견되었다.


▲ 장연사 터 쌍탑

   두 탑을 복원한 솜씨는 썩 좋지 않다. 부분부분 콘크리트를 썼고, 몸돌과 지붕돌의 균형도 조금 어색한 느낌이다. 또 석재의 일부는 후대 사람들이 기계로 깍은 듯, 조금씩 자르고 무늬를 새긴 흔적도 남아 있다.
어쨌든, 이 정도 모습으로 보아도, 절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규모가 제법 되었으리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금당이 있었을 듯한 곳 주변을 서성거려보니 기와 조각들은 더러 눈에 띄지만 무늬 있는 것을 찾기는 어렵다.
또 석탑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는 다른 석재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흩어져 있었다.


▲ 장연사 터 당간지주 : 오른쪽이 이씨 문중 재실 안에 있는 것으로, 부러진 당간지주의
윗부분이다. 두 개를 비교하면 무늬가 딱 맞는다. 당간지주 자체가 제법 키가 컸다는 이
야기이다.

석탑 남쪽의 작은 개울을 건넌 곳에 있는 과수원 한 복판에는 부러진 당간지주가 서 있다. 가서 보니 하나는 파손상태가 심하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좀 상태가 나은데, 옆의 무늬가 특이하다.
사진을 찍고나서, 5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이씨 집안의 재실(齋室)을 들여다보니 석조(石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다만, 집안에는 평소 사람이 지키지는 않는 듯, 문이 잠겨 있음에랴. 그러나 여기서 그냥 돌아서면 역사학도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을 지도 모른다(?)

기어이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갔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석조만이 아니라 당간지주의 윗부분, 그리고 석등을 꽂았음직한 아랫받침이었다.


▲ 장연사 터 석조 : 마침 집을 수리하느라고 나무조각들을 곁에다 모아두어서 보기가 흉
하다.

이쯤 둘러보고 다시 담장을 뛰어 넘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있다던 배례석(拜禮石)을 찾았다. 흔히 시골마을 입구에 "○○마을"이라고 세워놓은 돌과 같다. 그러나 한 가운데에 뚜렷한 연꽃무늬가 남아 있다. 화강암 중에서도 하얀 색깔은 물론 석질도 아주 좋은 편이다.
천만다행이 아니랴 ! 혹시라도 마을 사람들이 연꽃을 갈아버리고 마을 이름을 새겼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말이다. 이곳 마을 사람들이 이 돌을 줏어다 이렇게 세워놓고, 아무런 손질을 가하지 않은 데 감사할 뿐이다.


▲ 장연사 터 배례석

   이 절터에 있던 석불상은 반쯤 땅에 묻힌 채 매전초등학교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차를 몰고 나오다가 깜박 잊고서는 지나치고 말았다. 언제 다시 여길 들럴 수 있을 것인가... 아쉽기는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버린 것을...
가는 길에 모 기도원 뒷산에 있다던 고인돌을 보려고 차를 멈추고 조금 찾아보았으나 실패하고 돌아섰다. 시간 문제도 있었고...

  불령사의 전탑
장연사 터에서 조금 더 가면 불령사(佛靈寺)라고 하는 조그만 절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서 제법 꼬불꼬불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절은 아주 작고, 가파른 절벽에 의지하여 자리잡았다.


▲ 불령사. 절에 이르는 산길 곳곳에는 이 절 뒤에 들어선다는 골프장을 반대하는 펼침막
들이 현란하게 걸려 있었다. 오늘날 국토 한 두 군데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절 건물 뒤의 언덕 위에 날씬한 벽돌탑이 하나 서 있다. 경북 지역에서 곧잘 볼 수 있는 벽돌탑이려니 하고 가서 직접 보면, 모양이 영~ 딴판이다. 원래 3층 탑이었으나 무너져 내린 것을 1968년에 7층으로 다시 쌓았다고 한다.
또 경상북도의 모 사이트에서는 장연사 터에 있던 벽돌들을 신도들이 하나씩 날라서 여기다 탑을 세웠다고도 했다. 그래서 장연사 터에서 혹시라도 벽돌편이 있나를 유심히 살폈었는데... 그 정도로 눈에 띈다면야...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은 확인하기 어렵다.


▲ 불령사 전탑

   전탑은 절 뒤의 가파른 바위 절벽 위에 세웠다. 원래 층수보다 늘려서 쌓다보니 벽돌이 모자라서 태반은 시멘트가 대신하고 있다. 탑이라고는 하지만, 생긴 모양은 조잡하기 짝이 없다.
유심히 살펴보면, 벽돌의 문양은 3종류가 있다. 불상과 탑을 사이사이에 넣은 것, 화려한 기와집(절집인 듯)과 구름을 찍은 것, 인동문을 새긴 것 등이다.
그러나 불상과 탑을 찍은 것도, 불상 5구가 있는 것과 7구가 있는 것이 있다. 또 양쪽에 문양이 있는 벽돌과 한쪽에만 있는 것도 구분된다. 모서리에 쓸 것과 가운데 쓸 것을 구분하여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7층탑을 다시 만든 사람들은 당체 이런 구분을 알아채지 못하고 마구 끼워넣은 것같다.  심지어는 기와집이 찍힌 벽돌은 거꾸로 뒤집어서 끼워넣은 경우도 있다.


▲ 불령사 전탑의 무늬 벽돌


   벽돌의 문양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불상과 불탑을 사이사이에 넣은 벽돌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3층 탑과 상륜부까지 선명하게 표현된 탑, 그리고 연화좌에 앉아 있는 불상이 얼굴은 비록 섬세하게 조각되지는 않았지만, 빛을 잘 받으면 표정이 드러날 것만도 같다.


▲ 불상과 탑을 새긴 벽돌


▲ 기와집을 새긴 벽돌

이쯤 사진을 살펴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어라 ~! 박물관에 있는 것과 좀 닮았네...
좀  닮은 정도가 아니다. 거의 꼭같다. 박물관의 벽돌 실물사진을 제시하니 비교해보시라.

▲ 국립 경주박물관 소장 벽돌

통도사 성보박물관에도 비슷한 벽돌이 소장되어 있다. 나는 아직 경주박물관의 벽돌과 불령사 벽돌 중 선명한 사진으로 담은 것을 꼼꼼히 대조해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엇비슷한 모양임은 분명하다. 농소면 출토의 벽돌에도 비슷한 것들이 있다.
박물관에 있는 것 중에는, 불상과 탑을 섞어가며 배치한 벽돌들도 약간씩 무늬를 달리하면서 거의 비슷한 종류가 몇 있다.

어느 한 곳에서 구워서 공급하였거나, 아니면 이런 문양이 통일신라기의 어떤 때 유행을 타면서 모델그림이나 규격이 퍼져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경주박물관 소장 벽돌의 일부가 바로 이곳 불령사에서 가져온 것인지도...(나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 조만간 사진을 대조해보고 수정한 글을 올리겠다)

이번 답사길에서 얻은 수확이 있다면, 박물관에서 흥미롭게 본 벽돌이 실제 사용된 곳을 직접 확인했다는 것. 그 장소를 찾아가보았다는 것인 듯하다.

그러나 다른 의심이 남는다.
불령사 전탑의 그 벽돌들이 과연 처음부터 탑을 쌓으려고 만든 것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건축물에 쓰이다가, 후대 사람들이 수습하여 탑으로 만들었을까?
불령사 탑 한 켠에는 같은 크기의 무늬없는 벽돌들이, 1968년에 탑을 만들 때 시멘트 속에 섞여 들어가지 않은 채 몇 조각 뒹굴고 있었다.                                   (하일식 : 고대사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