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보현사를 찾아(1)

BoardLang.text_date 2005.10.04 작성자 하일식
▣ 청천강을 따라서

묘향산을 찾은 것은 2005년 7월 26일. 9시 좀 넘어 평양 고려호텔을 출발했다.

섭씨 30도를 넘는 날씨에,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소형버스를 타고 2시간 넘는 거리를 간다는 것. 남한 생활에 젖은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 사실 우리 스스로에게 “언제부터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닥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연배가 높은 분들은, 에어컨이 안나오는 것보다도 시속 80Km의 속도에 창문을 열고 달렸을 때 들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을 힘들어 했다. 주석단이 타는 소형 벤츠야 그렇지 않지만, 소형버스들은 에어컨이 달려 있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또 오래된 것들이라 기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시속 80Km를 넘지 않게 운전한다는 것이 기사의 설명이다.



▲ 청천강 : 며칠 전에 비가 와서 물이 좀 흐렸고, 덕분에 수량이 평소보다 좀 많은 편이라 했다.



평양에서 묘향산에 이르는 고속도로는 아주 잘 닦여 있었다. ‘관광도로’라고 했는데, 평소 통행량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아스팔트 색깔과 상태가 말해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런데 서울의 강변북로처럼 산 아래를 끼고 다리를 놓아 건설한 구간이 많았다. “왜 저쪽에 평지가 이어지는 데 이렇게 건설했나?”는 물음에, “그래야 농경지를 침범하지 않는다”는 대답 - 사실 딱히 그 목적이 1차적이었던가를 검증할 수는 없지만.

차창 밖으로 보이며 쭉 이어지는 강 이름을 묻자 들려온 대답에 나는 도착할 때까지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청천강이었다. ‘살수대첩’이다, ‘명도전과 미송리형 토기의 대략적인 남한계(南限界)다’ 말은 많이 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던가.

북한 사람들은 남한 방문객들이 몰래 사진을 찍어가서 비난하는 데 이용하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기에, 차창 밖 사진을 찍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금지한다. 청천강 사진을 얻고 싶어서 달리는 차 안에서라도 1컷 찍을 것을 부탁했더니 “하선생만 몰래 찍어시라”는 대답. 농담같은 허락이다. 그래서 최대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셔터 속도를 높이고 연사 모드로 찍어보았으나 대부분 신통찮았다.



▲ 묘향산 : 국제친선전람관에서 멀리 찍은 일부. 묘향산 역시 가을 단풍 때이라야 제격이라고 했다.



묘향산에 이르는 동안, 강물에 허리까지 담그고 물고기를 잡는 사람들, 강가에 나와 멱을 감는 어린이들이 간간히 보이는, 우리네 여느 강가와 다름없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렇게 2시간 가량을 달렸다.

▣ 묘향산 보현사

묘향산에 도착한 것은 11시가 좀 넘는 시간. 북한 사람들이 ‘보여주고 싶어 하는’곳인 「국제친선전람관」을 보았다. 김일성 주석이 받은 선물들을 전시한 곳을 먼저 보고,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것들을 전시한 곳을 나중에 보았다.

 

▲ 국제친선전시관 : 이 건물은 국방위원장이 받은 것들을 전시한 곳이다. 주석이 받은 것을 전시한 곳은 붐비는 인파로 인해 사진 찍을 의욕을 잃었었다.



보현사는 점심을 먹기 전에 보았고, “그래도 묘향산에 오르는 시늉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점심 후에 짧은 등산을 통해 맛만 보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역시 여름은 남과 북이 차이가 없고, 산하(山河) 풍경도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좁은 땅인데도 이렇게 잘라져 있으니…



 



▲묘향산 무릉폭포 :

산에서는 꽤 부지런한 편인 나도 “더 올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어차피 제대로 못 볼 바에야(덥기도 하고).

 

 

 

 

보현사는 기대를 하고 갔던 곳이다. 경치 좋은 다른 곳들이야 그렇다손 치고, 역사 공부하는 이에게 문헌기록을 통해 알고 있는 유적지를 처음 가본다는 것이 주는 설레임이야 새삼 말할 게 있으리오. 특히 유명한 김부식이 쓴 「보현사비」가 있는 곳이며, 서산대사가 입적한 곳이기도 한 곳이다. 나중에 다시 사진을 보여드리겠지만, 「보현사비」의 제액(題額)은 고려 인종의 친필 행서가 아닌가.

 

 

▲ 조계문 : 원래는 이 문을 시작으로 천왕문, 해탈문을 지나 법당에 닿았겠지만, 지금은 경내 오른쪽 옆으로 입구를 내어 관람객을 받고 있다. 옆구리를 터서 드나드는 것처럼 좀 어색하다고 할까.



어쨌든, 옆구리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범종각이다. 그러나 이 속에 들어 있는 종은 원래 보현사의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금강산 유점사의 종을 옮겨다 놓은 것이라 한다. 종의 제작 연도는 1469년(예종1). 높이 2.1m, 무게 7.2t.

 

▲ 범종각

 

 

▲ 유점사 종

 

절 안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선택적이긴 했겠지만, 해방 이후 문화유산 보존에 대한 관심은 남한보다 북한이 먼저 기울이지 않았던가. 이에 대한 관심도 최고 지도자의 입을 빌어 드러내고 있는 것이 우리네 정서와 약간 다른 것일 뿐. 그래서 이런 문구가 자꾸 눈에 특이하게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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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식(고대사분과,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