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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발표회 후기 - 한국 역사학의 위기; 진단과 모색

BoardLang.text_date 2016.04.28 작성자 임현채



[역사와현실 100호 기념 발표회 참관후기]


 

한국역사학의 위기; 진단과 모색


임현채(중세2분과)


□ 일시: 2016년 3월 19일 토요일 1시
□ 장소: 서울시립대학교 자연과학관 국제회의실
□ 주최: 한국역사연구회 편집위원회


 

1.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
발표 : 송호정(한국교원대학교)


2.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몇 가지 고민
발표 : 최종석(동덕여자대학교)


3. 역사 대중화와 역사학: 역사의 향유와 모독 사이
발표: 오항녕(전주대학교)

4. 19C 말~20C 초 동아시아 세력 재편기 경험의 산출과 미래읽기: 중립화론을 통해 본 ‘균형외교’의 허상
발표: 신주백(연세대학교)

5. 한국근현대사 연구 위기의 심층: 정치의 위기인가, 역사학의 위기인가?
발표: 이신철(성균관대학교)


  100호 기념 기획발표회는 『한국 역사학의 위기; 진단과 모색』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기획의도>에 따르면 본 발표회는 국정교과서 문제, 이른바 ‘재야사학’계와 정치권이 연합하여 연구자들을 공격하는 양상, 대중매체와 역사학계의 괴리 현상에 대해 문제를 삼고, 한국역사학계가 당면한 제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보려는 뜻을 밝혔다. 학문적으로는 내재적발전론이 힘을 잃은 가운데, 그를 대체할 역사이론을 찾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를 드러내었다. <기획의도>는 역사학자들의 현안을 밝혀주었던 만큼, 몹시 흥미로운 발표회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제1발표는 「최근 한국상고사 논쟁의 본질과 그 대응」(송호정)이라는 제목을 통해, 유사역사학(재야사학)의 등장과 그들의 논쟁점을 짚어내었다. 유사역사학자들은 1970년대 말부터 등장하였으며, 『환단고기』나 『규원사화』를 바탕으로 단군조선이 만주에서 활동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고조선이 한반도가 아닌 遼寧을 중심지로 두었다고 주장하였으며, 한사군(특히 낙랑군)이 한반도가 아닌 遼東에 설치되었다고 주장한다. 유사역사학자들은 현행 한국상고사를 식민사학의 일부라고 규탄하고 있으며, 정계에서도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사료와 맞지 않는 점이 상당히 많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발표자는 유사역사학자들의 주장이 갖는 본질을 넷으로 정리하였다. 첫째, 유사역사학자들의 시각은 역사의 발전 단계와 괴리되어 있어, 신석기~청동기 초기에 고조선이 제국을 세웠다는 주장이 되고 말았다. 둘째, 단군조선의 웅대함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 국수주의의 다른 표현이며, 과거의 영광이 식민 경험을 없애지 못한다는 점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고 보았다. 셋째, 전문학계에 대한 공격은 자신들을 애국으로 포장하고 학계를 매국으로 몰아세워, 기존 연구성과에 부정적인 인식을 남겨줄 우려가 있다고 여겼다. 넷째, 유사역사학자들의 근저에 깔려있는 국수주의와 애국주의는 전체주의로의 방향성을 지향한다는 문제가 있음을 짚어내었다.



제2발표자(최종석)는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몇 가지 고민」을 통해, 내재적발전론의 문제를 살피고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드러내었다. 발표자는 내재적 발전론은 비록 식민사학(타율, 정체)을 극복(주체, 발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이론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식민사학과 동일한 인식론적 기반 하에 있는 역설적 이론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런데도 내재적 발전론을 극복하려는 학계 내의 노력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말았다.



발표자는 그 까닭으로 기존 연구자들이 내재적 발전론을 완전히 파기하는 데 따르는 거부감, 신진학자들이 근대로의 발전 가능성을 굳이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문제의식의 상이함을 밝혔다. 기존 내재적 발전론을 수정·보완하고자 하는 흐름에 대해,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신진학자들이 동조하지 않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발표자는 학문적 경쟁력 강화를 대안으로 내세웠고, 그 방법으로는 익숙하게 여겨진 것들을 낯설게 보는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고 글을 마무리하였다.



제3발표는 오항녕의 「역사 대중화와 역사학: 역사의 향유와 모독 사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발표자는 주로 대중(특히 역사를 다루는 대중매체)과 역사학계의 괴리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역사학자들은 1990년대부터는 대중서 편찬을 통해 대중과 접촉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각종 영상매체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사료상으로 보면 거짓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역사학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 것인가? 발표자는 역사학에서는 추론은 존재할 수 있지만 허구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물론 매체에서 다루는 역사에서 허구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추론과 허구의 경계를 혼동하고 ‘허구’를 바탕으로 ‘추론의 역사학’이 오류라고 지적하는 현상은 잘못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발표자는 역사학은 냉정한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마치 勝敗, 正否, 善惡을 다루는 이분법의 학문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점을 짚어내었다. 마지막에는 당쟁론이나 타율성론이 선악구도의 이분법적인 성격을 지닌 이론이기도 하지만, 역사학자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임에 주의할 필요를 언급해 주었다.



제4발표는 「19C 말~20C 초 동아시아 세력 재편기 경험의 산출과 미래읽기: 중립화론을 통해 본 ‘균형외교’의 허상」(신주백)라는 제목으로, 삼국간섭(1895)~러일전쟁(1904) 사이에 일어난 중립화론과 참여정부 · 박근혜 정부의 외교정책을 비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발표자는 대한제국기의 중립화론은 러시아 · 미국 · 일본 · 유럽 등 열강의 의도와는 관계없는 비현실적인 것이었고, 결국 중립화론은 실현될 수 없었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그는 오늘날의 외교정책도 대한제국기의 중립화론과 유사하여, 미국이나 중국의 정책 방향성과는 무관한 균형외교론을 내세웠다가 스스로 파기하는 문제를 드러내었음을 언급하였다. 연구방법론으로는 세계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한 지역사(동아시아사)를 추구하였다.



제5발표는 이신철의 「한국근현대사 연구 위기의 심층: 정치의 위기인가, 역사학의 위기인가?」로 이루어질 계획이었으나, 발표자가 참석하지 못하여 비교적 소략하게 이루어졌다. 발표자는 역사의 위기는 정치적 의도에 종속되는 순간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결국 학술적인 규명으로 정치권력에 휩쓸리지 않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세웠다.



발표와 종합토론을 거치면서, 발표자들은 각자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국가주의 및 전체주의에는 동조하지 않는 방향성을 밝혔다. 특히 유사역사학자들의 ‘애국’적인 태도가 불러일으킬 국가주의 및 전체주의의 경향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역사이론으로서의 대안에 대해서는 각자의 견해가 다른 만큼 여러 가지 방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존 연구성과를 인정하고 그를 가져가야 한다는 데서부터 현대의 가치 수용, 더 나아가서는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견해까지 드러났다.



식민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사람들은 한민족이라는 이름 하에 뭉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듯이, 한국인에게 식민지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군내 비리, 남녀 차별, 가정 폭력 문제, 외국인노동자 문제 등 각종 ‘갑을관계’의 문제가 식민지 시절의 기억보다 더 가까이 다가오고, 이러한 문제들을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짓누르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발표는 역사학자들의 솔직한 고민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더 나아가서 역사학이 현재와 호흡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드러낼 필요를 느꼈다. 일기장에 아무리 많은 고민을 적어놓더라도, 정작 그 일기장을 숨겨버리면 아무도 일기장에 쓴 내용을 알 수도 없고 고민을 나눌 수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