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호모 히스토리쿠스』(2016, 개마고원)오항녕(중세2분과) 이 책은, 첫째, 역사공부가 인생에 도움이 된다고 설득하기 위해 썼고, 둘째, 역사학에 입문하는 초학자를 위해 썼다. 10년 가까이 학과에서 역사학개론을 강의하면서 가진 생각을 담았는데, 앞으로 쓸 ‘역사학개론’의 얼개를 잡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호리고메 요조의 《역사를 보는 눈》(박시종 역, 2003)를 간행한 적이 있는 개마고원에서 역사입문서를 업데이트 하고 싶은데 집필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이 와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였다. ‘역사학 개론’을 담당하는 교수로서 나의 목표는 역사학이 흥미로운 학문이고 인생에 도움 되는 공부라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남을 설득하려면 우선 나의 견해를 스스로 철썩 같이 확신해야 한다. 실제로 나는 역사가 재미있고 역사 공부는 보람 있으며 다시 태어나도 역사공부를 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러한 경험이 어떻게 보편성을 띠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책에 남들이 이미 한 이야기보다, 그간 덜 강조되어온 중요한 사실과 지금 역사학에 대한 의문을 담았다. 역사학은 사실로부터 출발하는데, 사실이란 무엇인가, 역사는 보기 나름인가, 여러 층위의 역사 중 왜 우리는 국사만 주로 배우나, 왜 20세기 초기에 무너진 진보사관이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아직도 횡행하나, 역사공부는 왜 하나, 역사는 어떤 것을 대상과 영역으로 삼나, 같은 질문을 뽑아서 다루었다. 이 책의 큰 목차는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 나로부터의 역사 1부 내 발길이 만드는 역사
2부 역사의 영역
3부 기억, 기록, 그리고 시간의 존재
4부 오해와 이해의 갈림길
에필로그 역사의 힘 익히 알 듯이 역사학은 사실을 다루는 학문이다. 그런데 막상 ‘사실’이 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모든 사건(사실)은 구조, 의지, 우연이 다 들어있다’는 명제를 얻었다. 사실의 세 요소는 벤느(Paul Veyne)나 카아(E. H. Carr)도 언급한 것인데, 조금 수정했다. 사건마다 세 요소의 비율이 각각 다르고, 인간사는 의지에 의한 선택이 나중에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사실을 다루는 훈련이란 곧 이 세 요소를 가늠하는 훈련이다. 인생 자체가 사건의 연속이므로 이 훈련은 인생을 잘 사는 데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구조(조건)만 보면 결정론에 빠지고, 의지만 보면 목적론에 빠지며, 우연만 보면 상대주의나 불가지론에 빠진다. 구조를 놓치면 변혁을 잃고, 의지를 놓치면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우연을 놓치면 비극을 모른다. 우연이란, 내가 보기에, ‘서로 목적이 다른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가 만나거나, 서로 목적이 같은 두 개 이상의 행위(사실)이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역사는 해석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심지어 역사학자조차 그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역사학자들은 왜 그렇게 고생하며 사료를 읽겠는가. 한두 가지 사료를 가지고 상상으로 쓰지 말이다. 해석을 앞세우는 이러한 편견은 ‘역사는 보기 나름’이라든지, ‘역사는 관점의 문제’라는 말로 변신하기도 한다. 정말 무식한 말이다. 해석이 없어도 사실은 존재하지만, 사실 없이는 애당초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 편견은 역사 공부의 출발점을 종착점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원래 사람은 제 각각 다르게 본다. 이게 출발이다. 경험 또는 역사를 함께 읽어가면서 차츰 다른 관점을 조정해나가고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게 역사공부의 힘이다. 다음으로 영역과 대상을 살펴보았다. 인간은 ‘국민’만이 아니다. 가족이나 가문의 일원, 종교․회사․학교의 일원이기도 하고, 지역사회의 일원, 나아가 인류의 일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대학의 사학과는 (한)국사학과만 있을까? 오히려 (역)사학과가 맞는 거 아닐까? 다양한 차원의 ‘역사’를 방치하고 국가주의적 역사학, 국민 국가사에 포섭된 ‘국사’만 부여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일 내 진단이 일리가 있다면, 지금의 역사공부는 인간에게 줄 수 있는 100의 즐거움 대신 20정도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정교과서’ 책동은 이런 토양에서 배태된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언제든지 ‘국정교과서’가 고개를 쳐들 토양을 현재 (한)국사학과가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불행하게도 국정교과서 저지투쟁에서도 ‘국민국가사’ 중심의 학과 편제에 대한 반성은 (한)국사학계에서 미미하게 제기되었다. 국사와 함께 역사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관념도 검토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사라지지 않는 이데올로기, ‘진보(Progress)’ 바이러스. 헤겔(W. G. Hegel)이 무식한 언어로 ‘고대 아시아는 한 사람만 자유로웠고,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는 몇 사람만 자유로웠으며, 근대 게르만 사회에 이르러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졌다’고 선언한 이래 후쿠야마(F. Y. Fukuyama)까지, 좌-우,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믿는 비-역사적 신념 말이다. 이 의문이 《호모 히스토리쿠스》에 깔린 또 다른 문제의식이다. 봉건시대를 ‘암흑시대’로 규정했던 이 오만한 유럽 계몽주의의 무비판적 수용은 역사학의 가치를 발밑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진보’한 현재를 놓아두고, ‘야만적인’ 과거를 진지하게 공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언제까지 이 낡은 근대주의를 한국 역사학은 고집하고 있을 것인가. 사마천의 《사기》, 투키디데스의 《역사》, 유지기의 《사통》, 조선의 《실록》부터 … 한국역사연구회의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까지. 역사란, 살아간 경험이고-그 경험을 전하고-이야기하는 것이다. 살면 흔적이 남고, 전하려면 기억해야 한다. 또 논문을 쓰든, 드라마를 만들든, 증조부 제삿날 집안 어른에게 독립운동 중 돌아가신 얘기를 듣든, 이야기한다. 시간과 기억이 덧없기 때문에 그 시공적(時空的) 유한성(有限性)을 잡아두기 위해서 기념, 기억, 기록한다. 거기에는 호기심에서 교훈까지 다 담길 수 있다. 결국 역사학은 기록하고(Recording)-전달하고(Archiving)-이야기하는(story) 일이고, 그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오랜 역사학의 전통과 현재의 한국 역사학 사이에 괴리가 있다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하는 역사학이 인간의 삶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고, 그 괴리만큼 우리가 하는 역사학의 사회적 기여는 반비례하면서 적어진다는 뜻이 될 것이다. 이 괴리를 해소, 극복하는 첫걸음은 현재의 (한)국사학과를 ‘기록하고-전달하고-이야기하는’ 역사학과로 바꾸는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역사적 진전은 결단에서 나왔다. 처음에 말했듯이 이 책은 학생들에게 역사공부가 인생에 도움이 되고, 일러주는 대로 하면 역사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설득하려고 쓴 글이다. 동료 역사학자들에게 더 정확히 고백하자면. 역사공부에 뜻을 두고 있지만 망설이던 둘째 아이를 역사학과로 보내서 계속 역사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쓴 책이다. 목표한 대로 그는 역사학과에 갔고, 이 책이 재미있다는 말도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책이 성공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