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對중국 관계사 연구의 변수들

BoardLang.text_date 2010.08.28 작성자 김창수


조선시대 對중국 관계사 연구의 변수들



김창수(중세2분과)


  조선, 중국 두 나라간의 관계를 연구하면 자신의 활동 공간도 두 배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공부를 시작한 이후, 아직도 관계사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관계사라기보다, 조선지식인의 對중국인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의식을 키워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존의 연구에서 묘사하고 있는 조선상은 대단히 특수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동아시아적 차원에서 파악해야하는 문제들을 조선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향들이 상당히 강하다고 느끼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라는 타자를 연구의 변수로 삼는 것은 ‘자아=조선’의 모습을 조금은 객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와 연관시켜 보면, “보편성”의 문제를 중국이라는 창을 통해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글의 전개에 앞서,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대외관계사는 정치, 경제, 문화교류의 총칭은 아니다. 양국의 관계를 규정하는 제도 및 그것에 대한 인식으로 제한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기존의 대외관계사를 연구하는 기본적인 틀은 대체로 형세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힘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대외관계사는 힘의 역학 작용이 강하게 일어난 시기, 즉 조선 초기, 임진왜란시기, 병자호란시기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15~16세기의 경우, 중종대의 대외인식과 관련하여 몇 편의 논문이 제출되었을 뿐이고, 병자호란 이후 조선과 청의 관계가 안정기로 접어든 시기에 대한 연구 역시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약 50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선과 중국의 관계는 힘의 갈등관계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이외의 기간 동안 지속되었던 양자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여기에서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다양한 연구서들과 사료를 읽으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의 변수를 고려해야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나는 儀禮에 기초한 예제적 관계이다. 明代에 확립된 것으로 보이는 중국적 질서에 조선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조선이 왜 적극성을 가졌는가에 대해 아직 충분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조선과 중국은 예제의 원리를 지켜야한다는 점에서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후 양국의 관계는 갈등, 유지, 변동 등 다양한 국면에서 禮적 언어가 사용되었고, 양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예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전개했다. 그 밑바탕에는 분명 힘의 우열이 존재했지만, 언어의 표현과 행동 양식 그리고 사고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것은 또한 禮였다. 따라서 예제 및 예적 언설들의 시기별 형태와 변화상을 통해, 대외관계의 또 다른 측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두 번째 변수는 상대국에 대한 정보의 부족이다. 현대 국제정치이론에서도 타국에 대한 이미지는 항상 과장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물며 수백 년 전의 조선과 중국은 어떠했겠는가? 정보의 수집능력, 전달에 걸리는 소요시간, 정보의 분석 등 양국 사이에는 다양한 예측불허의 요인들이 존재했다. 조선의 使臣들은 중국 국내에 상주할 수 없었으며, 使行路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 가는 것도 금지되었다.이들은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만 북경에 체제할 수 있었고, 그 기간에조차 이동은 제한되었다. 물리적 여건뿐만 아니라 사상적인 문제도 존재했다. 예를 들어 병자호란 직후 상당기간 동안, 조선은 청의 지배를 정신세계에서나마 인정하지 않았고, 이 같은 완고한 사상은 정보에 대한 수집과 분석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보다 흥미로운 것은 청에 대한 왜곡된 형태의 이미지는, 그것이 또다시 하나의 역사상이 되어 후대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대외관계사의 연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특히 중국적 질서에 포섭되어 있던 점을 주목하지하지 않은 것은, 사실상 조선이 중국에 대해 종속적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필자 나름대로 추측한다. 그다지 자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역사일지 모르지만, 중국의 존재는 현실적인 실체로서건 문명의 상징으로서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그 자체로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 내부의 변화들을 해석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을 덧붙이면, 일본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관계를 자국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려는 데에 활용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근세, 근대, 심지어 현대 일본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추적하는 데에도 중요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다.일본보다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한국, 그리고 조선의 지식인에게는 중국의 존재는 어떠한 영향을 주었을까? 분명히 이 부분에 대해서 대외관계사 연구가 앞으로 연구해야 할 지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