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책을 말한다 -『개경의 생활사』

BoardLang.text_date 2007.06.15 작성자 정요근

우리 책을 말한다
- 『
개경의 생활사』(2007, 휴머니스트) -


정요근(중세사 1분과)


  고려왕조의 도읍이었던 개경은 고려의 모든 사람이 모여들고, 고려의 모든 이야기가 흘러드는 곳이었다. 개경사연구반에서 개경과 개경 사람에 대해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웹진에 글을 연재하면서 책을 내보자는 논의는 지난 2005년 가을 연구반의 연구발표회를 마친 후에 구체화되었다.

  우리 연구반에서는 개경의 모습과 개경 사람들의 삶을 통해 고려시대 사람들의 삶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1년 반여의 짧지 않은 작업기간을 거쳐 드디어 지난 달 출간된 결과물이 바로 『개경의 생활사』(휴머니스트)라는 책이다.



  작업 초기 개인적인 일을 핑계로 연구반 모임에 빠진 적이 다반사였던 필자가 어느덧 연구반의 반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12명의 반원을 대표해서 이 공간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이 책은 당초부터 대중용으로 기획되었다. 굳이 따지자면 몇 년 전에 발간된 『고려의 황도 개경』(2002, 창비)의 후속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내용 구성에 있어서는 전체적인 체제를 엄격하게 고려하지도 않았다.

  구중궁궐 깊은 곳에서부터 활력 넘치는 개경 사람들의 활동공간인 시내의 저자거리까지, 그리고 지존의 몸이신 국왕부터 최하층의 노비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 개경의 모습 그 자체와 개경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스케치하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따라서 개인, 혹은 몇 명의 공동연구자들이 수년간의 엄청난 열정과 공력을 기울여 발간한 단행본의 연구수준과 깊이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하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집필에 참여한 우리 연구반원들은 10여 년에 걸친 연구반 활동을 통하여 개경의 자연지세나 도시구조, 생활풍습, 신앙생활, 궁궐건축, 주거와 경제활동, 국가의례, 행정체계, 교통·통신체계 등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개경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축적하였다.

  이 책은 바로 그렇게 축적된 반원들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되었다. 각 꼭지의 서술은 철저히 개인별로 분담하였지만, 일단 완성된 원고는 반원 전체의 공동 검토를 거쳐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을 거쳤다.

  이 책의 구성은 개경의 자연지세와 풍경, 개경에 살았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개경 여성들의 삶, 개경 사람들의 일상생활, 여가와 풍속, 신앙생활 등 전체 여섯 테마로 이루어졌다. 각 테마별로 4∼8개의 꼭지가 실렸으며, 책의 서두에는 개경의 역사적 성격에 관한 글을, 마지막에는 개성답사기를 실었다.

  그러나 『개경의 생활사』라는 제목만 믿고 이 책의 내용을 통하여 개경 사람들의 생활 전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만큼 거창한 제목에 걸맞는 내용을 채우는 데에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꼭지가 문헌자료를 위주로 서술된 만큼, 고려인의 삶을 생동감 있게 그리는 데에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개경이라는 공간적 배경 속에 보이는 고려와 고려인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이해가 조금이라도 심화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출간은 의미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근래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남북교류, 특히 경의선의 연결과 개성공단의 건설은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을 아무나 갈 수 없는 땅에서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가까운 장래에 개성관광의 문이 열릴 것이고 개성공단 사업도 더욱 확장되어 남한의 더 많은 사람들이 왕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개성 일대의 많은 고려시대 유물과 유적에 대한 관심도 확대될 것이다. 따라서 고려 500년의 도읍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또한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확장될 것이다.


△ 만월대 터와 송악산

  이 책의 기획도 이렇게 높아가는 개성에 대한 관심을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하였다. 비록 연구반원들이 개경 연구라는 공통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개경과 개경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책으로 구성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 책의 출간을 통하여 우리 연구반은 지난 10여 년 간의 활동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개경 연구에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적 남북통일이라는 과제는 단기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개경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동북아의 평화정착과 남북교류가 안정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하루빨리 개성 방문과 답사가 자유롭게 이루어져 남북 공동으로 유적지의 조사와 학술 연구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 된다면 문헌자료에 기초한 우리의 개경연구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책을 출간한 의미도 더욱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