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 『일제하 조선의 노동정책 연구』 이상의 (근대 2분과) 『일제하 조선의 노동정책 연구』(혜안, 2006)는 강점기 일제의 조선 지배정책의 성격을 노동정책을 중심으로 살펴 본 연구이다. 필자는 일제 강점기의 사회 성격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노동문제에 대한 검토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우선 노동정책 입안의 기반이 되었던 이데올로기와 노동정책의 실상에 주목하였다. 아울러 노동정책의 변화 양상에 따른 조선인 노동자의 현실 인식과 대응이 정책 변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필자는 노동자의 존재형태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노동정책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勞動’하지 못하고 근로자로서 ‘勤勞’해야 하는 한국 노동 현실의 연원에 대한 궁금증이 그 관심의 단초였다. 그런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제하의 노동정책은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아 필자를 곤혹스럽게 하였다. 노동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자료 속에서 노동자와 노동법, 노사관계를 찾아다녔던 필자의 접근 방식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의 정책에서 더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에서 노동자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고, 인적 자원으로서의 노동력만이 의미가 있었다. 노동자는 없고 노동력만이 존재했던 것이 일제 강점기 노동정책의 본질이었음을 깨달은 이후, 노동정책을 고찰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 그리고 노동력 동원의 문제를 살펴보아야 했다. 노동정책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변화와 더불어 그에 대한 노동자의 저항으로 인하여 논의와 입안, 실현의 과정을 거듭하면서 변화되었다. 그러므로 그 위치와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이 책의 서술에서는 노동정책 입안의 배경으로서 일본자본주의의 단계별 변화에 따른 경제정책과 지배 이데올로기의 변화 과정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게 살펴본 일제하의 노동정책은 지배정책의 전체적인 틀 속에서 추진되었으며, 특히 대공황 이래의 노동정책은 이 시기 지배정책의 핵심으로서, 그 본질이 그대로 반영된 체제적이고 구조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경영해야 했던 필요성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하겠다. 정책사 연구에서는 정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 성격을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제하의 노동정책은, 태평양전쟁기에 이르기까지 ‘노동’ 문제 담당부서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을 지닌다. 당시 일제가 지닌 조선의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자체 내의 생산력의 면에서 일제는 조선에서 자본주의 사회 일반의 노동정책을 시행할 의도와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곧 일제하의 노동정책은 자본의 축적이 가능하도록 노동력의 수급을 조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더욱이 대공황 이후는 파시즘 체제하에서 창출된 노동력의 동원과 배치를 중심으로 운용되었다. 사회정책이 아닌 경제정책으로서의 노동시장정책이 골자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단계별로 보면, 일제하의 노동정책은 강점 전반기 조선에 농업 위주의 식민지배구조와 저임금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사회통제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되던 것에서, 대공황기 ‘日鮮滿 블록’ 체제의 구상 위에서 農工竝進 정책의 시행을 위해 자본을 통해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장악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나아가 중일전쟁 이후부터는 조선을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고자 총독부가 노동자 개개인을 직접 파악하고 법망과 경찰망을 동원하여 이들을 국내외 각지로 강제로 동원하고 배치하는 체제로 점차 변화되었다. 통제와 동원이 중심이 된 노동정책의 시행 과정에서 노동력 동원의 내용은 양적인 면에서 질적인 면으로까지 강화되어 갔다. 일제의 노동정책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조선인은 노동자가 아닌 노동력으로서 일본자본주의의 발달을 위해 소모되는 식민지 인적자원의 역할을 요구받았다. 일제하에는 공업이 성장해감에 따라 노동자계급도 증가하고 성장해갔다. 그러나 그 성장은 일제의 파시즘적 노동정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동자들은 식민지 체제하에서 왜곡된 노자관계를 경험하면서 끊임없이 저항하였다. 그 저항은 노동자에게 질곡으로 다가갔던 당시 자본과 ‘국가’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즉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운동의 지향으로 나타났으며, 그것이 점차 조직화하는 가운데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국가수립운동으로도 나타났다. 이러한 저항의 과정에서 일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이 성장해 갔으며,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은 자신에게 가중되던 이중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한 근대적 의식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는 비록 수치상으로는 적었을지라도 일본자본주의와 직접 대면하고 그에 저항해 간 계급이라는 면에서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았다. 일제하의 노동문제는 단지 그 기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일제 파시즘 체제 하에서의 노동정책과 자본주의의 경험은 해방 후 신국가건설 과정에서 국가정책이나 자본가들을 통해 유효한 資産의 일부로 흡수되었고, 노동력의 소진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노동정책 이데올로기나 하향적인 노사관계의 형태로 재현되었다. 또한 개발독재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와 ‘성장’의 길을 찾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는 근로자로서 존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문화의 특성이나 노사관계의 특질이 일제 파시즘체제 하에서의 노동정책과 자본주의의 경험에 연원을 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금의 한국 사회의 노동문제와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극복의 전망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한 분석 속에서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20대였던 석사과정 시절, 정책사 연구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선생님들은 만류하셨다. 정책사 연구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정책 연구, 특히 식민지 정책을 연구할 때 방대한 자료 속에 함몰되거나 자료에서 표방하는 미명에 빠져들지 않도록, 그리하여 역사 인식이 흐려지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으로 새겨들었다. 노동문제를 연구하면서 정책사에 먼저 천착하게 된 것은 한동안 진행되던 노동운동사 연구가 더 이상 진전되기 어려운 한계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정작 바라는 것을 뒤로 미루고자 하는 심성도 자리해 있었던 듯하다. 그렇게 시작한 식민지의 정책사 연구는 연구자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였고 때로는 바짝 긴장시키기도 하였다. 스스로는 황무지를 개간하고 있다고 힘겨워 하는데 주변에서는 결론이 자명하다고 일축할 때, 혹은 일본 파시즘의 앞뒤가 연결되는 명쾌한 고리를 찾아냈을 때 일희일비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 책에는 노동정책의 대상 세력인 노동자의 모습이 희미하다. 앞서 말했듯이 일제하 노동정책의 대상은 노동자가 아닌 노동력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선인 노동자의 일상, 그들의 ‘문화상’과 ‘야만상’이 어떠했는지는 다음 작업으로 미루고자 필자가 애써 외면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와 노동정책을 아우른 한국노동사를 서술하는 것은 그 다음 작업이 될 것이다. 한국의 근현대를 살면서 삶, 관계, 심지어 죽음까지도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었던 사람들, 특히 일제지배 말기 남의 나라 전쟁에 휩쓸리고 해방 후에는 이국 땅에서 일본인 전범의 위치로 스러진 이들에게도 마음의 빚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