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책을 말한다 - 『조선 최고의 명저들』
신병주(중세 2분과)
※ 장면1.
「조선인은 책을 좋아한다. 사신의 입공(入貢)은 50인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옛 책 또는 새 책, 혹은 패관소설로 조선에 없는 것들을 날마다 시장에 나가 각각 서목(書目)을 베껴들고 만나는 사람마다 두루 물어보고 비싼 값을 아끼지 않고 구입해 간다. 그래서 조선에 도리어 기이한 책들이 많이 소장되어 있다」
- 강소서(姜紹書:명나라의 문인), 『운석재필담(韻石齋筆談)』에서 -
※ 장면2.
「이곳에서 감탄하면서 볼 수밖에 없고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또 한 가지는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어디든지 책이 있는 것이다.」
- 1866년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르.
위의 장면들과 같이 조선시대에 책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읽는 모습은 외국인들에 의해 자주 목격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망의 눈으로 조선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어린시절 반짝하던 독서 열기는 입시 지옥에 파묻힌 중고 시절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 대학교 시절에 사회과학 서적을 읽던 흐름도 먼 옛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취직을 위한 실용서가 독서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성인들 역시 일부 실용서나 소설 등에 약간의 관심을 기울일 뿐 책을 사랑하고 열심히 읽던 선조들의 전통은 단절되고 있다.
명나라 지식인의 부러움이 대상이 되고,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큼 책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한 민족. 조선시대 뛰어난 민족문화를 꽃 피울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기록물의 편찬이라고 필자는 감히 말할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의궤와 같은 국가적 사업으로 편찬된 기록물부터 개인의 일기나 문집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에는 글을 좀 읽는다는 사람 치고 자신의 기록물을 남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기록 유산들. 이 속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 추구한 삶의 가치와 함께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물의 내용과 함께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사상 등을 파헤쳐 보노라면 선조들의 삶과 생각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이끌어간 문화와 사상의 깊이까지 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조선시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필자는 조선을 대표하는 명저들을 쉽고 의미 있게 소개하는 작업을 시도하였고, 『조선 최고의 명저들』(2006, 휴머니스트)로 작은 결실을 보았다. 선정 기준은 기록물로서의 가치와 함께,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작품들. 고전은 과거의 사람이 쓴 박제화된 기록으로 치부할 때는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지만, 고전을 음미하고 대화할 때는 현재에 되살아나서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주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4편의 글들은 그 저술이 편찬된 시대 순으로 정리하였다. 시대에 따른 명저들의 특징과 함께 명저들이 시대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 지도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명저들 대부분의 원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로, 규장각에서 연구하고 있는 필자는 이 책들의 진가를 직접 접할 수 있는 행운을 가지고 있다. 이들 명저들을 통하여 조선시대를 살아갔던 우리 선조들의 생각과 바람, 그리고 명저들에 투영된 선조들의 문화 역량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와 같이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방대한 기록물을 통해서 역사에 절대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어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읽어볼 수 있고, 『지봉유설』이나 『열하일기』에 나타난 이수광과 박지원의 진취적인 세계주의 사상은 세계화와 정보화의 과제를 안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새로운 지혜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의궤에 그려진 화려한 반차도들은 그 높은 그림 수준과 함께 우리의 시대에도 당대의 삶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얼마나 적절하게 전해주어야 할 것이냐는 과제를 제시한다. 『해동제국기』나 『표해록」에 보이는 신숙주나 최부의 축적된 지적 역량과 해외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전통에 바탕을 둔 세계인식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조선의 헌법 『경국대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 시대 사람들의 합리성이나, 국가적인 토목공사의 추진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한 『준천사실』을 통해서는 조선시대 왕들의 국가 경영 의지를 읽어볼 수 있고, 『홍길동전』에서는 자신의 꿈을 투영시킨 허균의 모습을 통해 변화와 개혁을 갈망하는 지식인의 궤적을 추적해 볼 수 있다. 『한중록」에 나타난 궁중 생활의 다양한 양상, 당쟁의 피해 속에서도 실학을 완성한 이익의 학문이 함축된 『성호사설』을 접하면서 조선시대에 관한 지식의 폭을 확대하고, 18세기 우리 국토를 답사하면서 산천, 풍수, 인심을 논한 『택리지』를 읽고 현재 우리 국토를 답사해보는 것은 어떨까? 『난중일기』를 접하면서 장군 이순신의 위상에 가려졌던 인간 이순신의 진솔한 모습을 만나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