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初에 말이 아니라 行爲가 있었다.

BoardLang.text_date 2006.08.28 작성자 진도이세영
太初에 말이 아니라 行爲가 있었다.

이세영 (한신대학교)


  이 글은 브라이언 더글라스 팔머(Bryan Douglas Palmer)의 Descent into DiscourseTHE REIFICATION OF LANGUAGE AND THE WRITING OF SOCIAL HISTORY(Temple University Press, Philadelphia, 1990; 『역사적 유물론을 위한 변명』,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4)을 번역하고 쓴 역자 후기를 다시 정리한 것이다.



언제부턴가 외국 유학과 외국 학문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외국의 문화계와 학계의 변화는 우리에게 거의 여과 없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1990년 이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우리가 그 동안 온통 맑스주의에 매달려 있었기라도 했던 양 너나 할 것 없이 도처에서 ‘맑스주의의 위기’를 유행병처럼 말하고 있었다. 진보적인 이론과 실천 진영에서도 심지어 청산주의적 경향이 급격히 확산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과 언어와 담론 이론이 마치 구세주나 된 것처럼 등장하였다. 양철냄비 같은 우리 학계가 또 다시 달구어지고 있었다. 우리 역사학계에는 유럽 역사학계에서 이미 1960년대 이래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사학’이 비로소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무렵 나는 ‘이론 동인’(1992-1997)에 들어갔다. 그것은 진보적 이론진영의 청산주의 경향에 맞서고자 20여 명의 연구자들이 동인을 결성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론과 이데올로기의 보수화와 반동화 국면을 반전시키고 진보적 이론과 학문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지를 고민하였다. 주로는 맑스주의의 역사를 다시 읽고, 맑스주의를 새로 이해해서 그것을 더욱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나로서는 ‘역사적 유물론’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었다.

  이 무렵, 피터 쉐틀러(Peter Schottler)의 논문 Historians and Discourse Analysis, History Workshop Journal, Spring 1989, pp. 37-65(『한국사 연구와 과학성』, 205-255쪽에 번역되어 게재됨)와 팔머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팔머에 의하면, 1980년대에 이르러 유럽과 미국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그때까지 ‘역사적 유물론’의 신봉자들이었던 노동-계급사가들과 사회사가들이 이제는 ‘역사적 유물론’의 시각과 분석적 전제들을 폐기하고 언어와 담론 분석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지 이거스는 이미 1960년대 이래 많은 역사가들은 역사는 과학보다는 문학과 더욱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근대역사학의 세 가지 기본 전제, 즉 (1) 인식과 객관적 실재는 일치한다는 진리대응설에 입각하여 과거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던 대로” 구성한다는 것, 즉 역사 서술은 과거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과 실제로 일어났던 행위를 그려낸다는 것, (2) 인간의 행위는 행위자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고, 역사가의 작업은 그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여 일관된 역사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 (3) 일차원적이고 통시적인 시간관을 전제로 나중에 일어난 사건과 그 이전에 발생한 사건 간에 일관된 인과관계를 이끌어 낸다는 것(단선적 시간성)등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항상 그가 사고하고 있는 세계 안에 감금되어 있는 포로이며, 그의 사고와 인식은 그가 작동시키는 언어의 범주들에 의해 주어지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그 자체가 실재를 형성하는 것이지 실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고까지 주장되고 있다. 이러한 관념은 1960년 이래 언어학과 문학이론에서 대두된 것이었다. 모든 역사적 작업이란 궁극적으로 문학비평의 범주에서 판단되어야 하는 문학적 작업이라는 것이다. 헤이든 화이트는 “역사적 담론은 언어적 허구이며, 그 내용은 ‘발견되기 found’보다는 ‘발명되고 invented’, 그 형식은 과학보다는 문학과 더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국 ‘텍스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으며’, ‘역사는 담론으로 추락 descent into discourse’한 것이다. 그렇다면 허구 속에서 어떻게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언어와 담론이 특별한 인식론적 지위를 얻은 것은 1960년대 초 푸코에 의해서였다. 푸코에 의하면, 과거가 남겨 준 모든 기록물은 하나의 담론(‘권력의 효과를 갖는 말하기/쓰기의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양식’)이다. 사실 역사가들 앞에 놓인 것은 지난 ‘과거의 實在’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코드화된, 허구적인, 혹은 어쩌면 진실일 수도 있는 언어와 담론뿐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말하자면 ‘實在’의 시뮬라크라이며, 나아가서는 이미 ‘現存性’을 상실한 ‘起源의 不在’로서 실재와는 별개의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는 텍스트이기조차 하다. 따라서 그 텍스트들은 이제 우리가 과거의 실재와 그것의 운동원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장애물이며, 역사가의 분석과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 역사학계에는 ‘언어와 담론의 분석’이라는 문제의식은 없었다. 실증해야 할 실재와 주체도 없이 실증을 위한 실증만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은 ‘史實’(‘기록된 事實’)을 곧바로 ‘事實’과 일치시키고, 그 의미를 주체(개인, 집단과 계급, 국가와 사회)와 주체의 의도와 경험으로 환원시켜 버렸다. 거기에는 경험주의적이고 관념론적인 인식론이 깔려 있을 뿐이며, 언어와 담론은 실재를 단순히 중개하고 반영하는 수동적 매체 이상의 것이 아니다. 장애물을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어느덧 자기 관념 속의 목적지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텍스트에 따라 실재의 역사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비유해 보자. 어느 날 오후에 한 월급쟁이가 증권가의 고층빌딩의 사무실 안에 앉아서 우유 빛 유리창문을 통해서 해를 바라본다고 해보자.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얼마나 높은 곳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 창문을 의심하지도 않은 채 우유 빛 유리창문을 통해 그의 눈에 들어 온 해를 창문 너머 저 멀리 하늘에서 빛나는 해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자기를 속이고 있으며, 그 빛나고 있는 해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이미 텍스트 밖에 실재하고 있으며, 해는 이미 우유 빛 유리창문 너머 창공에서 빛나고 있는 것이다. 진실은 암호화되고, 코드화되고, 비틀려진 텍스트에 의해서 가려져 있으며, 저 빛나는 해는 우유 빛 유리에 의해서 굴절되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와 담론(텍스트)의 분석으로 빠진 포스트모더니즘 역사가들은 언어의 비지시성(非指示性)과 결정 능력, 언어와 담론의 자율적인 의미체계임을 강조하면서 언어와 담론을 ‘事物化함 reification’으로써 ‘실재’를 말하고자 한다. 물론 암호와 코드의 풀이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 자체가 진실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형식주의’를 비판하면서 “형식주의자들은 빨리 믿는다. 그들은 성 요한의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태초에 말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는 것을 믿는다. 말은 그것(행위)의 음성 그림자로서 따라 나왔다.” 사람의 그림자는 결코 그 사람을 말해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사학’은 근대역사학의 세 가지 전제(실재성, 의도성, 시간적 계기성)에 갇혀 있던 주체들을 해체시키는 한편, 그 경계나 밖에 있던 여러 주체들을 새로 끌어들임으로써 인식과 연구의 대상과 주제를 넓혀서 역사의 내용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하고, 또 서술할 수 있게 하는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그것은 비서구사회의 경우 그들이 근대사회로 ‘이끌려오면서’ 잃어버리거나 미처 모르고 있었던 자기 역사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새로 발견하고 세울 수 있게 됨으로써 장차 서구문명을 극복하고 자신의 독자적 전망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실천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점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미사회의 자기반성의 산물이라는 것, 따라서 우리가 처한 현 상황, 미완의 근대, 과거사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것의 인식론과 방법론을 그대로 인용할 수 없다는 것, 역사를 역사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되는 담론수준으로 떨어뜨렸다는 것, 거시적 관점을 접고 미시적・세속적(일상적)인 관점에서 다분히 흥미위주의 역사서술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등이다. 때문에 어떤 통합의 틀 없이 지나치게 다양성을 강조하거나 무조건적으로 해체하려는 경향, 편향된 ‘문화’위주의 글쓰기 등이 (의도는 없더라도) 가져 올 또 다른 정치・사회적 측면의 배제 등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 역사의 텍스트성과 언어의 자율성을 강조한 나머지 ‘언어 결정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점, 극단적인 ‘언어로의 전환’은 역사학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팔머는 “포스트모더니즘사학은 역사적 유물론의 대체물이 아니다. 언어는 삶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것의 ‘언어로의 전환 linguistic turn’을 ‘담론으로의 추락’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한다. 팔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담론의 추락’ 속에서 해매고 있지는 않는지 저의기 의심스럽다(2006. 8.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