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 역사(교육)논쟁을 넘어서기 위해서

BoardLang.text_date 2016.12.06 작성자 이신철

한국 근현대사 역사(교육)논쟁을 넘어서기 위해서


 

이신철(현대사분과)



※ 이 글은 『역사와 현실』 100호에 실린 이신철 선생님 특집논문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함정을 넘어서’를 칼럼 형식으로 재정리한 것입니다. 원문은 웹진 ‘간행물’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15년 한국사회를 충격에 빠트렸던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2016년 말 다시 한 번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뉴라이트 세력의 역사인식을 날것 그대로 담고 있다. 거센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의 관심은 어떤 사실 오류가 있는가에 몰려 있다. 대중의 관심이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입시를 치러야 할 자식이 있는 학부모들은 그게 중요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더 많은 학부모들은 내 자식이 편향된 역사인식을 가지게 될까봐 걱정한다. 부모들이 경계하는 역사인식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하는 역사인식, 물질중심주의 또는 배금주의 역사인식,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사인식과 같은 것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5·16쿠데타보다는 경제성장의 성공에 주목하는 역사인식,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운동보다는 경제성장의 역사가 더 중요한 역사인식, 친일의 역사보다는 근대화 중심의 역사인식과 같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쟁의 사회적 지형은 그 같은 본원적인 문제보다는 표피적인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 줄어들고 정치공세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은 현재의 시국 상황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은 편향된 정치적 주장이나 이념적 공격은 다만 잠복해 있을 뿐 시국의 향배에 따라 그 불씨는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현재의 한계는 학술적 논의를 통해 극복해 나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권들어 국정화 논쟁에 묻혀 버린 역사(교육)논쟁은 사실상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의 문제 전반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그것은 자유주의(자본주의 발전사)와 민족주의(반식민주의), 또는 냉전사관과 민중사관 같은 이론·사관의 문제로부터 임시정부의 법통론과 대한민국 건국 시점 문제, 이승만과 김성수에 대한 평가, 국가폭력에 대한 해석, 5・16과 박정희 독재, 그리고 산업화에 대한 평가, 기업가에 대한 평가와 같은 구체적 역사사실의 해석문제, 그리고 북한사 서술을 둘러싼 국가사와 민족사의 문제 등 거의 근현대사 전 분야에 걸친 충돌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제기된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먼저 국정교과서 논쟁을 통해 제기된 국가와 역사·역사교육과의 관계문제가 부각이다.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발표 이후에 나타난 국가기관의 집필 개입문제는 그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근현대 100년을 자본주의 발달사를 중심으로 볼 것인지, 정치와 시민사회의 발전을 중심으로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첫 번째 문제와 관련한 쟁점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역사교육이 가능한가, 국가의 개입을 허용한다면 얼마만큼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 어떠한 제도로 그것을 실현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집필자들을 대신해 원고의 상당부분을 수정하거나 집필한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또 그 원고의 심의위원회 위원에 국가기관의 수장들이 들어간 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같은 문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역사관련 기관 전체의 존재이유나 운영방식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국정교과서가 다시 등장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 제정과 함께 역사관련 기관의 존폐나 역할 재규정 논의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학술논쟁의 부족이 중요 요인인 두 번째 문제는 학계의 자기반성을 전제로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가장 첨예한 대립점 중 하나인 임시정부 법통론은 그 한계가 명확한 논란이다. 기실 진보 역사학계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독립운동세력의 하나로 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임시정부하의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보수파의 목소리에 대항해 법적인 최고 권위를 가진 헌법의 가치를 방패삼아 임시정부의 법통을 과도하게 주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논리는 통일이후 정부의 법통성과 함께, 여타 독립운동 세력을 고려하면서 논리적으로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아직 그것에 대한 연구 성과는 미미하다.

보수파의 주장은 지나치게 반북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유엔총회의 ‘한반도내 유일정부’ 인정과 같은 잘못된 해석에 매몰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유엔의 권위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것도 이상하지만, 무엇보다 유엔 관할 하에 선거가 진행된 지역에 권위를 부여하려는 유엔의 의도를 아전인수로 확대·왜곡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한국 정부도 북한에서 유엔 감시하의 총선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UN 동시 가입 이후 북을 여전히 국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설명하기고 어렵다.

이밖에 보수파는 현재의 자본주의 발달의 근원을 개항기 이래의 특정 개인이나 기업가들이 식민지기 내내 ‘훈련’을 받았고, 그 바탕위에 해방 후 박정희와 재벌들에 의해 꽃피워졌다는 인식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역사인식은 현재의 경제성장을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현재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반공 자본주의 체제’에 불과하고 이승만,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기 위한 수단에 그치고 있지만 그조차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진보 진영에서 현재의 사회적 성숙과 경제성장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임시정부로 표상되는 공화주의적 근대 정치학습 또는 근대이후 시민사회(또는 민중사회)의 자발적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들이 해방이후 민주주의 성장과 어떤 상관관계에 있는지, 민주주의 운동이 산업화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관한 연구가 태부족이다.

게다가 진보든 보수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라는 강력한 흐름과 애매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대사에 대한 지나친 과장이나 무비판적인 반일정서를 정면에서 응시하지 못하고 적절한 선에서 얼버무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다행히 최근 역사학계 일부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북한에 관한 논의의 실종이다. 북한사는 민족사의 범주에서 이해하고 집필하고 가르친다는 것이 기존의 방침이었는데, 공개된 현장검토본에서는 민족사는커녕 보론의 지위로 밀려나고, 적으로 인식하라는 강요만이 가득하다. 게다가 그러한 서술에 관한 비판조차 실종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연구자는 물론이고 언론과 시민사회마저 ‘빨갱이’를 대신한 ‘종북’이라는 덫에 걸릴까봐 전전긍정하게 된 것이다.

현재까지 격렬히 진행되고 있는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을 둘러싼 논쟁은 본질적인 해결책 모색과는 아직 거리가 먼 듯하다. 국정이 다행히 폐기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대한 논쟁과 연구가 더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소모적이고 정치적인 논쟁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학술적 고민과 토론의 장이 펼쳐져야하고, 국가와 역사(교육)의 관계, 그리고 그 한계를 명확히 규정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권, 평화, 민주주의 같은 미래지향적 개념을 어떻게 역사인식에 접목시키고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이 지루하고 불필요한 논쟁의 출구로 다가가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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