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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지하세계 이야기, 현대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

BoardLang.text_date 2018.11.16 작성자 yjoon35@naver.com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


 지하세계 이야기, 현대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


 

 

한국역사연구회 근대도시공간연구반은 <Redian>에 ‘근현대 동아시아 도시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서준석 선생님의 기고글입니다.(www.redian.org/archive/122079 )


 

서준석(현대사분과)


 

오늘도 나는 지하공간을 경험한다

흔히 도시를 상상할 때 지상 위에 건설된 모습만을 상상하곤 한다. 특히 현대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고층빌딩들의 숲과 사방으로 뻗어있는 도로와 철도 그리고 그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기차, 끊임없이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복잡함에 혀를 내두른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우리는 도시의 장면에서 상당히 많은 지하에서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다. 일상이 시작되는 아침부터 도시인들은 지하공간에서 하루를 시작하곤 한다. 도심으로 나온 사람들은 쉽게 지하보도를 통해 자신들의 목적지로 향하고, 때로는 지하에 건설된 지하상가를 거닐며 물건을 구매하곤 한다. 물론 버스나 택시와 같은 지상의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상점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현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지하공간을 전혀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하공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초창기 인류는 더위와 추위와 같은 기후변화에서부터 사납고 재빠른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천연동굴을 찾거나 땅을 파고 움집을 지어 생활했다. 지상에 집을 짓기 시작한 이후에도 사람들은 잘 상하는 음식이나 얼음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서 꾸준히 지하공간을 활용해왔다. 고대 로마에서 물을 이용하기 위해 장거리의 수로와 하수도를 건설한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기계문명이 고도화되기 이전까지 지하공간의 이용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철도가 놓이기 시작한 이래 인류는 본격적으로 지하공간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될수록 지하공간의 수요는 크게 늘어났다. 도심 내에서 자동차의 원활한 소통을 보장하기 위해서 지하철과 지하도가 건설되었고, 지하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하상가가 생겨났다. 또한 높아지는 건물들의 주요 기계설비들과 상하수도, 통신‧전력선 등 도시민의 생활을 지탱하는 다양한 인프라가 지하에 건설되었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살고 관심을 갖고 있는 서울시를 중심으로 현대 도시의 지하공간이 어떻게 건설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지하공간이란 무엇인가?

서울의 지하공간에 대해 살펴보기에 앞서 이 글에서 다루는 ‘지하공간’이란 무엇인지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다.『문명과 지하공간』을 집필한 김재성에 따르면 땅 속의 공간을 가리키는 용어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즉 동굴, 공동, 터널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동굴’은 땅속에 자연적으로 생긴 커다란 지하공간을 말하며, 크기가 좀 작은 것은 ‘동혈洞穴’이라고도 한다. 공동이나 터널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지하공간을 일컫는 개념으로, 공동은 널찍한 형태를 가리키고 터널은 좁고 긴 형태로 파놓은 것을 의미한다. ‘지하공간’이란 개념은 크게는 위의 세부개념을 포괄하기도 하지만, 좁게는 터널에 비해 저장이나 주거를 위해 확장된 공간을 일컫는다. 영어로는 ‘케이브(Cave)’와 ‘케번(Caven)’이라는 용어가 주로 쓰이는데, 규모가 작고 긴 형태를 ‘케이브’라 하고 규모가 크고 넓은 형태는 ‘케번’으로 표현한다.

이상에서 본 것과 같은 용어들은 매우 큰 범주에서 ‘지하공간’을 지칭하는 용어들로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한 ‘지하공간’들을 표현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이는 아직까지 지하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부족한데 기인할 것이다.

지하공간과 관련된 학회나 연구논문 등을 보면 인공적으로 조성된 ‘지하공간’의 개념은 ‘터널’의 확장된 형태로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지구적 측면에서 볼 때 1960년대 이후 NATM공법이나 쉴드 TBM공법에서와 같이 대형 굴착장비를 활용한 터널 굴착기술이 발달하면서 지하공간의 개발과 활용은 ‘터널’ 건설을 통해 본격화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첨단장비와 최신공법은 ‘터널’이 그저 교통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정적인 안정감을 주는 확장된 ‘공간’으로서 지하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NATM공법: 1956년 오스트리아에서 개발된 터널굴착공법으로, 굴착한 공동의 안쪽에서 지표와의 사이에 있는 지반을 향해 2∼3m 길이의 강제봉(로크볼트)을 일정 간격으로 박아 놓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뿜어 입혀서 지산의 압력을 막아내는 공법이다. 터널의 내구성이 높고 예전처럼 H형 빔 등의 지지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성이 높은 공법으로 평가된다. 지질이 나쁜 산악터널에서부터 도시의 지하터널까지 그 활용범위가 넓다.

쉴드 TBM공법: 대형 원통형 굴착기가 땅을 파는 것과 동시에 콘크리트 터널을 조립하는 공법이다. 쉴드 TBM공법실드 TBM 공법은 기존의 공법과 달리 지반 침하나 터널 붕괴 위험성이 낮고 지상에 있는 구조물이나 매설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공사비는 일반 공법의 2배 정도다.)

한국의 경우, 1970년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착공할 당시에만 하더라도 터널 건축기술은 크게 뒤떨어졌으나 이후 꾸준히 도시철도를 비롯한 각종 토목공사를 본격화하면서 터널 건축기술에 대한 경험을 쌓아 나갔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앞서 본 기술과 같은 선진공법을 해외로부터 받아들이면서 한층 더 지하공간을 적극적으로 개발해나가기 시작하였다.

좌: NATM공법으로 터널을 굴착하는 모습 (김재성,『문명과 지하공간』, 글항아리, 2016) 우 : 쉴드 TBM공법에 쓰이는 대형원통형굴착장비 (김재성,『문명과 지하공간』, 글항아리, 2016)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현황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과정을 보기에 앞서 오늘날 서울에는 과연 어떤 형태의 지하공간이 건설되어 있을까? 국내에서 지하공간에 대한 전반적인 통계자료는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주로 철도나 지하철, 수도 등 도시기반시설로서 지어진 터널의 연장이나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지하철역, 지하도상가 등에 대한 면적 정도만 통계를 찾아볼 수 있다. 달리 말해 개별 기업의 빌딩이나 아파트, 상가건물 등 수없이 많은 건축물 아래에 지어진 지하시설물들에 대한 종합적인 통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지하공간 개발현황

그러나 지하공간에 대한 개발은 주로 지상에서 사용가능한 토지가 부족해지고, 인구의 과밀과 교통 혼잡 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이해가능한 수준에서나마 살펴볼 방법이 없지는 않다. 즉, 지상에서처럼 기능에 따라 상업, 교통, 저장, 주거, 기반시설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방법이다.

기능별로 살펴보면, 우선적으로 저장시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지하공간은 온·습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얼음이나 상하는 음식물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지하의 이러한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목적의 저장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전국적 규모로 살펴보면, 유류나 가스비축시설을 비롯해서 농수산물저장시설, 원자력폐기물 저장시설, 군사적 용도의 탄약저장시설 등 매우 엄중한 주의가 요구되는 물질들을 지하에 저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구가 밀집한 서울과 수도권의 경우 이 같은 위험물을 대규모로 저장한 지하시설은 없다고 볼 수 있으나, 주유소나 가스충전소와 같이 도시 내에도 실용적인 목적에서 유류나 가스를 저장하고 있는 시설들이 있다. 이외에 문화재를 보관하는 박물관 수장고도 주로 지하에 건설한다.

상업시설로는 지하철역이나 지하도, 일반 빌딩에 마련된 다양한 종류의 지하상가가 있다. 이는 소규모 점포에서부터 대형마트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 예로, 서울시설공단에서 시민통행을 목적으로 만든 지하도상가는 모두 25개소이며, 여기에는 2,788개의 점포가 있다. 또한 지하철 역사 내에 수익을 목적으로 조성한 상가는 모두 1,954개소에 달한다.

좌: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모습(서울시) 우: 잠실지하쇼핑타운 모습(서울시)




다음으로 도로·교통시설을 들 수 있다. 서울 시내에 건설된 도로시설물로는 지하철 터널, 지하차도나 보도, 반지하도(언더패스) 등이 있으며, 2017년 현재 총 연장이 약 229km에 이르고 있다. 지금도 지하철 5·8·9호선 등을 연장하면서 터널의 길이는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도로시설 외에 지하주차장 등도 교통시설의 범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러한 도로·교통시설은 긴급상황 시 대피시설로 활용될 수 있다. 기타 대피시설로는 지하 방공호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2017년에 개방된 여의도 환승센터 밑에 있는 방공호이다. 여의도환승센터에 있는 방공호는 1970년대에 남북 긴장이 고조되었을 당시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상·하수도를 비롯해서 송전선로, 통신케이블 등 다양한 도시기반시설이 지하에 매설되어 있으며, 아파트나 고층 빌딩 등 다중이용시설이 경우 개별 시설의 전력과 통신, 수도 공급을 위한 각종 시설을 제어하는 기계실 등이 주로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서울 서편에 위치한 당인리화력발전소의 경우 최근 지하에 액화천연가스를 이용한 복합화력 방식의 발전시설을 건설하고 지상에는 기존의 시설들을 재활용하여 문화전시공간으로 재활용하는 작업이 전개되고 있다.

끝으로 주거시설과 사무학습시설 그리고 문화시설을 들 수 있다. 지하의 경우 온·습도 조절이 용이하다고는 하나, 햇빛이 들지 않기 때문에 주거시설로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서울과 같이 인구가 급증한 도시에서 지하공간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과 같은 공동주택에는 지하에 사람이 거주할 수 있도록 반지하 형태의 방을 만들어 세를 놓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최근에 지어진 공동주택들은 지상 1층조차도 필로티 등을 세우는 등 주거공간으로서의 지하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한편 문화시설과 사무학습공간으로서의 지하공간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문화체육시설로는 시청 지하의 군기시 유적과 같이 도심 개발과정에서 드러난 지하유적에 대한 보존시설에서부터 공연장과 체육시설 등 다양하다.

시민청 지하 군기시 유적(서울시)




사무학습시설의 경우 서울 시내에 있는 여러 대학들은 부족한 강의실과 주차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2000년대에 들어 대대적으로 지하캠퍼스를 건설하였다. 고려대는 2002년에 지하캠퍼스 ‘중앙광장’을 완공한데 이어 2006년에는 자연계 캠퍼스에도 ‘하나스퀘어’라는 지하공간을 건설하였고, 서강대 역시 2008년 ‘곤자가 플라자’라는 이름의 지하캠퍼스를 지었다. 경원대와 한국외대 또한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대규모의 지하캠퍼스를 건설하였다. 2008년에 완공된 이화여대 지하캠퍼스인 ‘이화캠퍼스복합단지(ECC)’의 경우 본래 운동장이 있던 지하를 파서 중앙에는 지상과 연결되는 거대한 통행로를 만들고 그 양쪽으로 6개 층 높이의 캠퍼스를 만들었다. ECC는 연면적이 7만㎡이며, 950석의 독서실과 41개의 세미나실, 5개의 유비쿼터스 강의실과 함께 272석의 영화관과 670석의 공연극장이 들어서 있다. 또한 지하 5, 6층에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750여 대의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다. 이처럼 이미 서울 시내 곳곳에 수없이 많은 지하공간이 건설되어 있고, 지금도 건설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의 지하공간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일까?

이화여자대학교 ECC 캠퍼스 전경(이화여자대학교)


 


자동차시대의 개막과 지하공간 개발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하공간’에 대한 개발이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였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지하공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었다. 서울지역에도 그러한 흔적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지명으로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서빙고’나 일제 말기 서울 곳곳에 지어진 방공호를 들 수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에 들어 일제는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에 방공호를 지었는데, 서울에도 도심지인 광화문과 남산자락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방공호 시설이 바로 도심지역인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뒤편에 있는 ‘경희궁 방공호’이다. 현재 ‘경희궁 방공호’가 자리한 지역 일대는 본래 조선시대에 경희궁 일대로서, 이미 대한제국 말기에 경희궁의 전각들은 헐려서 이곳저곳으로 팔려나갔고 한일병합이 된 1910년에는 경성중학교가 들어섰다. 이후 1944년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양상이 일제에 불리해짐에 따라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해 경성중학교 인근인 현 위치에 방공호가 들어선 것이다.

일제가 과연 ‘경희궁 방공호’를 어떤 목적에서 활용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설이 구구하다. 다만 방공호 내부의 규모와 위치 등 여러 조건을 보았을 때 당시 방공호 인근에 위치했던 전신국에서 비상시에 활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방 이후 ‘경희궁 방공호’는 경성중학교 부지의 소유권 이동에 따라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그 사이에 방공호 내부도 이용자들의 목적에 따라 공간을 활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의 구석에 그 입구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암반 굴착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기 이전에도 지하공간을 활용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도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지하공간이 전면적으로 나타날 만큼 적극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경희궁 방공호(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이라는 도시의 개발과 건설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가히 혁명적인 시기였다고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당시 서울의 인구는 이미 350만 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지만, 종로와 중구 등 도심과 그 주변을 제외한 서울의 대부분 지역은 논과 밭이 주를 이루는 한적한 농촌에 불과했다. 그런 서울의 도시공간을 확 뒤집어 놓기 시작한 것이 이른바 ‘불도저’라고 불렸던 김현옥 서울시장이었다.

김현옥 시장 재임 때인 1968년 시내 고가도로 건설조감도와 아현고가도로 개통장면(서울역사박물관)




손정목에 따르면 김현옥은 ‘도로에 미친 사람’이었다. 육군 수송장교 출신이었던 김현옥은 ‘자동차시대’를 열기 위해서 서울의 곳곳에 10여 개의 지하도, 144개의 보도육교와 청계고가도로, 용산 삼각지 고가로터리 등을 건설하였다. 모두 차량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그는 서울 시내에 자동차를 위한 길을 조성하기 위해서 약 70년간 서울 도심교통의 주요수단이었던 전차까지 운행을 정지시켰다. 공교롭게도 전차사업을 폐지하게 된 계기는 서울시의 광화문 지하도 건설이었다.

1967년 광화문 지하도 건설 직후의 모습(서울시)




하지만 김현옥 시장 때에 시작된 지하도 건설은 인구의 과밀과 교통 혼잡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비록 전차의 속도가 느리고 출퇴근 시간 등 러시아워 때 진통이 심각하다고는 하나, 아직 버스를 비롯한 자동차의 수송능력으로는 충분히 전차를 대체할 수 없던 시기였다. 오히려 버스 같이 자동차가 필요한 사람들은 전차가 다니는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김현옥 시정기 정책적으로 시 외곽으로 밀려난 철거민들이었다.

김현옥은 지하도뿐만 아니라 지하상가를 건설하는 데에도 선구적이었다. 이미 1967년 12월에 시청 앞 을지로1가의 새서울지하상가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고, 뒤이어 1970년 9월에는 인현지하상가가, 1971년 9월에는 성동구 왕십리중앙시장 지하상가가 건설되었다. 모두 김현옥 시장 때 허가를 받아 건설된 것들이었다. 지하도가 자동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보행자의 통행을 보장하는 것이라면, 지하상가는 시민통행과 함께 지하도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보전하고 수익을 내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었다. 물론 당시 서울시의 열악한 재정으로는 지하도 건설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다, 따라서 민자로 유치할 수밖에 없었기에 민간자본의 이익을 보장할 필요가 있었기에 상가건설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의도가 어찌되었든 김현옥의 주도 하에 서울에서의 지하공간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옥 시장 때부터 촉발된 서울시의 지하공간 개발은 뒤이은 양택식 시장의 지하철 건설을 계기로 크게 확대되었다. 지하철, 즉 ‘도시철도’가 건설되기 전에 도시 내 빌딩의 지하공간은 기계실이나 창고 또는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도시철도가 건설된 이후로는 지하의 도시철도 정거장과 건물의 지하층이 연결되면서 음식점, 상가, 위락시설 등 고효율의 생활공간으로 지하공간의 쓰임이 크게 넓어졌다. 이러한 활용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청에서부터 을지로6가까지 연결하는 대규모 지하보도이다.

구자춘 시장 때 안보를 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나, 이후 지하철 2호선과 연결되면서 이들 지하보도는 상가이자 문화공간으로서 도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또한 도시철도 건설 과정에서 안전을 위해 전력·통신·수도·가스 등의 도시기반시설들을 공동구로 만들어 지하에 함께 매설함으로써 가로변에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전선들도 도심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민간 건축업자들도 지하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서 지하공간을 단순히 기계실이나 주차장으로만 활용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쇼핑센터나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을지로지하상가 모습(서울시)




오늘날 서울시에는 수많은 노선의 도시철도가 지하를 누비고 있다. 그리고 도심과 연결되는 지하철역에는 지하상가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인근의 주요 빌딩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도 자신의 용무를 충분히 볼 수 있다. 게다가 현행법상 상업지구 내에서 건축물의 용적률은 1200%, 건폐율은 60%로 제한되어 있지만, 지하건축물은 인접건물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대지면적의 90%까지 활용할 수 있다. 나아가 그 깊이는 기술적 여건이 허락하는 한 무제한으로 개발이 가능하다. 조금 지나친 상상을 해본다면, 현실적으로 도시의 미래는 지하공간에서 찾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하공간은 지상의 도시를 대체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지하공간의 주요 장점은 외부의 기후변화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 조절에 매우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이미 수만년 전부터 인류는 지하공간을 저장공간으로 혹은 은신처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두껍고 단단한 암반을 부숴야 할 뿐만 아니라, 붕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지하공간의 이용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1960년대 후반에 들어 첨단 기술공법과 장비가 개발되면서 지하공간은 저장이나 터널로부터 확장되어 인간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고효율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빈번하게 발생한 싱크홀과 지진 등은 지하공간이 과밀화된 지상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인지에 의구심을 제공한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지하도시 미래비전’이라는 기획전시를 돈의문박물관 도시건축센터에 열었다. 광화문, 시청, 동대문, 서울역, 남산공원 등 도심의 주요 공간들에 대한 건축가들의 제안이 담긴 전시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지하공간을 활용한 건축프로젝트이다. 특히 9개의 건축프로젝트 팀들이 각각 제안한 이 전시물들은 장소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지만 공통되는 특징들이 있다. 그것은 지상과 지하를 가능한 자연스러우면서도 효율적으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점과 지하공간에 대한 개발은 대상 지구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속에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지하도시 미래비전>전에 전시된 프로젝트 작품들




서울시의 ‘지하도시 미래비전’의 전시들이 제안하는 내용들은 역설적으로 서울의 도심에 개발된 지하공간들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즉 현재의 지하공간들은 개별 주체들이 이익과 필요에 따라 공간을 개발하면서 각각의 공간들이 불연속적이고 단절되어 있어 도시의 흐름을 연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지하공간이 지상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밀화된 지상을 보완함으로써 인간의 활동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 이처럼 지하공간이 도시의 미래 속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상 공간과의 흐름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하는데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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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방공호‧신설동 유령역 21일부터 공개」,『이데일리』 2017년 10월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