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세상읽기

[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한국역사연구회 분과, 연구반 학술적인 것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던 곳

BoardLang.text_date 2018.09.24 작성자 김태윤
 

한국역사연구회 30년사


한국역사연구회 분과 연구반


학술적인 것, 그 이상을 얻을 수 있던 곳



김태윤(현대사분과)


 

한국역사연구회는 나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잘 놀고 꾸준하게 쓰자”라는 모토를 가지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현재까지도 공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곳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원에 진학한 후 석사과정 1,2학기 동안은 연구자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채워가느라 정신없이 1년을 보냈다. 이 때문에 석사학위논문주제는 정작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연구실의 다른 석사과정생들이 논문주제를 잡고 사료들과 씨름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고 초조해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당시 당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미군정기로 논문을 써야하는데 미군정기 전공자가 학교 내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틈틈이 근대사전공 선배들과 세미나를 했지만, 현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현대사 공부에 대한 갈증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국역사연구회에 가면 각 학교의 현대사 전공자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는 반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석사 3학기가 개강하자마자 연구회에 가입하고 분과총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번이었지만, 현대사 분과 선생님들의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그동안의 갈증이 해소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논문주제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아니었다. 분과총회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논문발표를 들으며 사료를 찾는 법, 해석하는 법 등등을 배웠지만, 정작 주제에 대한 고민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러한 나를 안타깝게 여긴 학교 내 유일한 현대사 전공자였던 선배가 함께 북한사반 세미나라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다. 북한사라는 주제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 생소한 주제였고, 내 관심사 자체가 정치사도 아니었기 때문에 북한사연구반인원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일단 연구반에 들어가 함께 공부하기로 결정하였다. 누가 나에게 20대에 제일 잘한 결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북한사연구반에 들어간 것”이라고 할 정도로 이후 연구적으로나 연구 이외 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연구반에서는 주로 현대사 박사학위논문이나 단행본을 읽었고 논문에 활용된 사료에 대하여 논평하였으며, 현재 관련연구들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국내학계 뿐만 아니라 해외학계의 성과도 함께 공유하였다. 이렇게 몇 시간씩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뒷풀이 또한 열심히·재미있게 즐기고 헤어졌다. 논문주제에 대한 고민을 선배들과 나눈 자리도 이 뒷풀이 자리였다. 모든 역사연구자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내가 제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은 연구하고 싶은 주제에 마땅한 사료가 없는 것이었다. 내 고민을 듣고 있던 선배가 내 문제의식에 맞는 사료가 북한자료에는 있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고, 다음날 메일을 확인해보니 선배가 보내준 사료파일이 수신되어있었다.

 

하루 종일 자료를 읽으면서 논문을 구상하니 어느 정도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그려졌다. 이것이 내가 ‘연구적 월북’을 하게 된 이유였다. 석사학위논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선배들은 지도교수님만큼 많은 도움을 주었다. 중간심사와 본 심사 전에는 세미나 반에서 내 석사학위논문 초고를 읽는 세미나자리를 가졌고 그 과정에서 보완해야할 점이나 추가로 봐야할 자료들에 대해 조언해주셨다. 내 석사학위논문의 팔할은 선배들의 도움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고 졸업할 수 있었고, 박사과정에 진학해 무사히 수료까지 하게 되었다. 박사과정 진학을 결정할 때에도 연구회에 있는 여러 선배들에게 상담을 했고 덕분에 현재의 시점에서 되돌아 봤을 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박사학위논문 주제를 정하고, 개별 연구논문들을 계속 생산해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도 북한사연구반은 매달 세미나를 통해서 월례발표회 형식으로 논문에 대해 토론하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선배들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겠지만 나는 매번 세미나를 갈 때, 세미나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 잘 먹고 잘 노는 북한반의 뒷풀이 자리에 참여할 때마다 이렇게 좋은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음이 늘 벅차다. 후배에게 마음써주는 좋은 학교선배를 만났고, 서로서로 공부를 나누려고 하는 연구반에 들어간 나는 운이 참 좋다고도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에게 한국역사연구회는 애정이 가는 공간이다. 그래서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대사분과 분과총무를 할 만큼 연구회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편이었다. 번거롭다면 번거로울 수 있는 일이었지만, 1년 동안 많은 현대사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연구회활동을 하면서 타 시대, 타 학교 과정생들과의 친분도 쌓을 수 있었다. 석사 2학기를 마치고 학회에 가입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주변에서 “왜 벌써 그런 곳에 나가느냐”, “논문도 없이 학회에 나가면 안 된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다. 나 또한 이러한 우려를 가지고 연구회에 나가기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연구회에 나갔기 때문에 연구자로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역사연구회는 시대별로 분과가 분리되어있고, 분과 내에서도 연구반이 세분화 되어있기 때문에 비슷한 연구주제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세미나를 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그리고 회원의 층위와 나이, 소속 등이 다양하게 분포되어있어 전공시대를 불문하고 여러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연구자들에게 내 의견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주제를 정하는 과정에서도 북한반·현대사분과 뿐만 아니라 타 분과 선생님들에게 여러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글이 ‘연구회 30주년 글’이기 때문에 칭찬일색을 적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나는 연구회에서 주로 연구반 세미나에 집중해 활동을 진행했다. 분과총무로서 연구회의 행사에 참여했지만, 늘 간사님들과 운영위원 선생님들께서 준비한 행사에 참여만 한 정도이기 때문에 연구회에서의 모든 일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기회를 통해 연구회에서 늘 수고해주시는 간사·운영위원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향후 연구회의 활동과 방향성을 위해 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을 이야기 하고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20대 회원들이 적다는 것이다. 나는 20대 중반부터 연구회활동을 시작했는데 간간히 연구회에서 또래의 연구자를 만나면 서로 신기해하면서 금방 친해졌던 기억이 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북한사반도 현재 모든 반원이 박사과정을 수료한 상태이고, 각 분과도 총회 때마다 석사과정생의 연구회 가입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 이 문제에 대한 뾰족한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극적인 홍보가 아직까지는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오면 “나가도 될까?” 라는 걱정 때문에 선뜻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석사과정생들을 위해 진입장벽을 낮추는 홍보활동이 각 학교별로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이런 경험담이 젊은 연구자들의 유입에 일말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나에게 한국역사연구회는 학교에서는 배우지 못한 여러 가지를 배운 곳이다. 역사학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고, 토론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배웠다. 그리고 사료와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역사연구와 현실문제에 대한 고민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연구회에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언제나 내 연구를 함께 걱정해주는 선배들을 만났고, 그들을 통해 성장하는 나 자신을 봤기 때문이다. 연구회가 30주년을 맞이한 현재, 이후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석·박사과정생들이 늘어가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