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한국사 교육을 정쟁의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사태를 우려한다 여기 모인 우리는 그동안 길게는 50년이 넘게 한국사를 연구하고 교육하다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이들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함께 이 자리에 선 것은 최근 한국사 교육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를 걱정하던 끝에 정부 당국과 국민 여러분에 고언을 드리고자 함입니다. 이른바‘한국현대사학회’인사가 주도하여 만든‘교학사판 한국사교과서’는 교과서로서의 기본 요건과 수준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당국은 검인정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행태로 감싸면서 급기야 한국사 교육 자체를 파탄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폭로된 바대로 검정과정에서 교학사판은 다른 저자들 것에 비해 2〜3배의 부실한 점이 드러났고 검정을 통과한 뒤에도 300개 이상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오류들이 지적되었습니다. 말썽이 일자 교육부는 또다시 다른 교과서보다 2~3배에 이르는 많은 수정지시를 했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교육부 또한 일제식민통치·친일·독재를 미화하고 정당화한 왜곡된 기술에 대해서는 사실상 추인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는 역사를 왜곡한 교학사판 교과서를 검인정에서 마땅히 탈락시켜야 함에도 무리하게 감싸면서 옹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 사태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정부여당, 보수언론, 뉴라이트 집단이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펼치는 이념공세입니다. 이는 한국사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다름 아닌 위험스러운 전체주의적 통제를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그동안 보수언론, 수구세력과 뉴라이트 집단은 다른 한국사 교과서에 맹목적으로 좌편향이라는 낙인을 찍으면서 한국사 교육을 이념대립의 장으로 내몰았습니다. 낡은 시대의 냉전적 논리로 한국사학계를 결딴내려는 듯이‘역사전쟁’운운하면서 횡포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역사적 사실을 사실대로 서술하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평가하고 독재와 인권탄압을 비판하는 것을 좌경·용공·종북으로 매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이제는 정부 여당이 앞장서 한국사 교육을 이념공세의 도구로 활용하겠다고 나서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역사교육이 이념통제를 위한 수단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잘못을 시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번 파동이 검정제도 때문에 발생된 문제인 것처럼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유신 독재하에서 강제로 시행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정부가 강요한 전체주의적 획일화 교육이 초래한 역사교육의 황폐화를 일선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했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국정교과서를 통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역사해석만을 획일적으로 주입시키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입니다. 검정제도를 자유발행제로 바꾸기 위한 논의를 전개해야 할 시점에 거꾸로 검정제도 마저 국정화하겠다는 것은 백년대계의 교육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국가 장래를 위한 교육이 한낱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임의적으로 유린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진국이 왜 국정교과서 제도를 채택하지 않는지 마땅히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정부는 이번 검정 교과서 파동뿐만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장과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의 주요 역사관련 학술기관의 수장으로 역사관에 문제가 많은 어용인사들을 임용함으로써 논란을 초래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지금처럼 이념논쟁, 정치논쟁의 한복판에 놓인 적은 없습니다. 이들 기관은 정권 교체에 영향 받지 않고 무관하게, 정권의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국가의 근간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학술기관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직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여 시류에 영합한 인사들을 들러리 세워 선전홍보기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잘못된 인사를 시급히 바로잡아 이 학술기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한국사 교육의 정쟁화를 더 이상 자행해서는 안 됩니다. 자라나는 세대가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할 한국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를 성찰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식민통치·친일·독재의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는 교육을 통해 장차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인가요. 한국사 교육은 학생들에게 민주주의, 자유, 평등, 인권, 평화, 공생과 같은 인류사회가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를 가르치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을 올바르게 담고 있지 못한 교과서를 정부정책으로 교육 현장에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정부 당국과 국민 여러분에게 다음의 몇 가지 고언을 드립니다. 하나, 교학사 교과서의 무리한 검정통과로 인해 야기된 사태를 정부가 조기에 현명하게 수습하기를 요구합니다. 둘, 정부는 국정교과서 제도로의 전환 등 한국사 연구와 교육을 이념대립의 도구로 악용하려는 올바르지 못한 정책들을 곧 바로 철회하기 바랍니다. 셋, 국민 여러분께서도 역사교육이 바람직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진지한 관심을 갖고 지혜를 모아 정성을 다해 대처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바랍니다. 2013년 11월 12일 강만길(前 고려대학교 교수), 김정기(前 제주대학교 교수), 노중국(前 계명대학교 교수), 박현서(前 한양대학교 교수), 서중석(前 성균관대학교 교수), 성대경(前 성균관대학교 교수), 안병욱(前 가톨릭대학교 교수), 유승원(前 가톨릭대학교 교수), 윤경로(前 한성대학교 교수), 이만열(前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이병휴(前 경북대학교 교수), 이연복(前 서울교육대학교 교수), 이이화(前 서원대학교 석좌교수), 전형택(前 전남대학교 교수), 조광(前 고려대학교 교수), 조동걸(前 국민대학교 교수) 성명서 낭독 동영상 http://www.mediatoday.co.kr/tv/view.html?idxno=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