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학술지의 전개 방향과 『역사와 현실』 김기덕(중세사 1분과) 1. 학술지 등재작업 2000년대 들어 본격화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학술지 평가작업과, 그 결과로 나타난 등재·등재후보지 선정작업은 이제 거슬릴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필자가 2008년 하반기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지 심사에 참여했을 때, 우리 팀에 주어진 총 14종류의 학술지 중에서 학회 발행은 단 한 종뿐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이 각 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인문과학논총』류의 것이었고, 개별 대학 사학과에서 발행하는 학술지가 소수 있었다. 이제 완전 신생학회가 아니라면 거의 전부 최소한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지가 되어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학회 차원이 아니라 각 대학교 혹은 학과 차원의 학술지들이 등재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어느 대학교라도, 문과대학 차원에서는 의례적으로 ‘인문과학연구소’와 같은 것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일년에 몇 차례 『인문과학논총』과 같은 것을 발간해 왔다. 그러나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듯이, 몇몇 우수한 학교를 제외하고는 ‘인문과학연구소’는 다분히 형식적일뿐이며, 『인문과학논총』은 수준낮은 학교용 논문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킨 것은 무엇보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각종 지원사업이었다. BK21, 수도권특성화지원사업, 인문한국(HK)지원사업, 중점연구소지원사업 등등 거의 모든 중대형 지원사업에서는 연구자가 속한 연구소의 업적을 평가하며, 그 안에는 연구소 발행 학술지의 수준도 평가항목에 포함되었다. 이제 그동안 대부분의 대학에서 형식적으로 존재하던 『인문과학논총』류의 학술지들도 그냥 방치해서는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출처>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 () 당분간 각 대학은 『인문과학논총』류의 학술지를 등재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문과학논총』류의 학술지가 전부 등재되면, 다음으로는 학과 차원의 학술지의 등재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각 대학 사학과에서는 의례적으로 『중대사론』, 『건대사학』처럼 자체 학술지를 발행해왔다. 그러나 학진 등재작업과 맞물리면서 사정이 열악한 사학과 차원의 학술지는 대부분 발행이 중지된 상태이다. 다만 이러한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학과 차원의 학술지를 발행해올 수 있었던 학과에서는, 발 빠르게 이미 등재(후보)학술지로 만들었거나, 앞으로 등재시키고자 하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앞으로 5년 안에 신생 학술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학술지가 등재(후보)지가 될 것이다. 학술지는 처음 등재후보지가 되면 2년에 한 번하는 심사를 연속 두 번 패스하면 등재지가 된다. 비록 등재지가 관리를 잘못하여 다시 등재후보지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등재후보지도 역시 관리를 잘못하여 정기적인 심사에서 떨어지면 등재후보지에서 탈락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사례는 많지 않다. 학진의 학술지 등재준비를 해 보았거나 아니면 등재 심사를 해 본 연구자라면 잘 알겠지만, 현재의 평가 시스템에서 학진의 학술지 등재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학술지 등재의 핵심은 무엇보다 학술지에 싣는 논문의 양이다. 논문만 많이 있어 정기적으로 발행하는 데에 문제가 없다면, 사실상 나머지의 조건들은 책임있는 학술지 관리자가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더욱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은 학술지 발행 주체가 수행한 자체 심사를 통과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학술지 등재심사에 있어서 논문의 질은 문제삼지 않는다. 논문의 질은 이미 자체 학술지 발행과정에서 심사를 통해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한 학술지 평가작업에서 실제 논문의 질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 SCI급 논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모든 학술지의 등재지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새롭게 ‘SCI급 논문’이라는 것이 회자되고 있다. 아직 인문학 연구자들은 자신들과 ‘SCI급 논문’은 크게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SCI급 논문’ 운운하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지 등재작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출처> 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 () ‘SCI급’이란 SCI, SCIE, SSCI, A&HCI 저널을 말한다. SCI(Science Citation Index)는 과학기술 저널 인용색인이며, SCIE(Science Citation Index Expanded)도 과학기술 저널 인용색인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SCI가 SCIE보다 영향력 지수 (Impact Factor)가 더 높다. Impact Factor가 높다는 것은 그 저널에 실린 논문들이 연구자들에 의해 많은 인용이 됨으로써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좀더 과도하게 SCIE에 비해 SCI를 높게 보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그 결과 많은 대학에서는 논문 평가에서 SCIE는 ‘SCI급’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SCI급’에는 이공계 저널만 있는 것은 아니다.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는 사회과학 저널 인용색인을 말하며, A&HCI(Arts and Humanities Citation Index)는 인문 및 예술 저널 인용색인을 말한다. 그러므로 역사학은 A&HCI에 해당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SSCI나 A&HCI에 속하는 저널에 투고하는 연구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흔히 ‘SCI급’ 운운하더라도 그것은 SCI로 대표되는 이공계 연구자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2009년 3월 현재 학진의 연구자 논문 등록 DB에서 ‘SCI급’ 논문을 검색해 보면, SCI 16688편, SSCI 67편, A&HCI 23편, SCIE 95편이 나오고 있다. 1990년 국민의 정부 시절 BK21 사업을 전개하면서 SCI급 게재논문이 중요한 평가기준이 되면서, SCI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 후 교수 임용 및 교수 평가의 기준으로도 자리잡게 되었다. 예를 들어 주요 대학들은 이미 자연계나 경영계, 의학계의 교수평가에서 SCI 게재논문을 기본으로 요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왠만한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박사학위 논문 제출을 위한 조건으로 역시 SCI급 논문을 전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이후 학진의 각종 연구지원사업 및 대학교간 평가와 관련된 경쟁과 관련하여, SCI 저널 논문편수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논문편수가 보여주듯이 SSCI, A&HCI 관련 학문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아직 ‘SCI급’은 무풍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SCI급’이라고 하여 결코 수준이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SCI급’ 저널에는 JCR 지수가 있기 때문이다. JCR(Joural Citation Report)은 전세계 저널에 발표된 논문의 인용빈도를 조사하고 그것을 토대로 계량서지학적으로 분석하여 주제분야별 저널의 비교 순위를 평가한 것이다. JCR의 핵심요소이자 각 저널들을 평가하는 잣대가 바로 Impact Factor이다. 즉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이 수록된 저널이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JCR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학술지 평가자료집으로 인정받고 있다. JCR은 매년 업그레이드되는데, 최근에는 2009년 2월에 업그레이드되었다. JCR의 핵심요소인 Impact Factor는 보통 지난 2년간의 피인용횟수에 근거해서 값이 산정되는데, 이번 2009년도에서는 지난 5년간의 피인용횟수에 근거한 항목이 새로 추가되어, 장기적 관점에서 저널의 영향력을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생명과학분야는 논문 발표 후에 빠르게 인용이 이루어지는 반면, 수학이나 경제학 분야는 느리고 완만하게 인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분야별 인용특성을 고려한 5년치의 Impact Factor를 추가한 것은 보다 진일보한 합리적인 조치라고 생각된다. ‘SCI급’ 인용색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社인데, 저널 평가의 핵심인 JCR의 Impact Factor에 대한 공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잣대를 마련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단일학문의 성격이 강한 것과 복합학의 성격을 갖는 학문 분야도 Impact Factor에 기본적인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출처> 톰슨 로이터 홈페이지 () 또한 자기이용률(self-citation rate)도 변수가 된다. 자기 인용이란 과거 논문을 자신의 논문에 인용하는 것을 말한다. 피인용이라는 것은 남들이 자신의 논문을 얼마나 인용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얼밀하게는 피인용에서 자신이 인용한 자기인용은 공제해야 정확한 Impact Factor 값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수도 고려하여 저널의 Impact Factor를 산정해야 한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학술지 등재작업을 진행하면서 SCI급 저널의 Impact Factor에 주목하였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앞 장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제 모든 학술지가 등재화되는 현실에서 다음 단계의 차별화를 SCI급 저널의 JCR과 같은 것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2007년 11월에 한국학술지 인용색인 KCI(Korea Citation Index) 정보 서비스 공개 발표회를 가졌고, 이후 KCI 정보서비스(www.kci.go.kr)를 개통하였다. 한국학술지 인용색인 KCI의 핵심은 역시 Impact Factor이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은 나름의 연구를 통하여, 국내 학술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한국형 학술지 평가지표 Kor-Factor를 개발하였다. Kor-Factor는 크게 ①자기인용횟수에 의해 전체 피인용횟수가 과장되는 현상을 통제하고, ②학술지 논문의 피인용도의 표준편차를 활용하여 특정 우수논문에 의해 지수의 결과가 영향받는 것을 방지하며, ③학문적 의사소통에 대한 해당 학술지의 기여도를 반영하기 위하여 총논문수를 산출식에 반영한다는 세 가지 요소를 고려한 지표이다. 현재는 이전 2년간 학술지에 수록되었던 논문이 당해 연도 논문에 인용된 수를 가지고 산출하지만, 향후에는 이 범위를 4년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은 Kor-Factor를 중심으로 등재 학술지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학술지간의 우열을 다시 평가하는 효과를 유도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학술진흥재단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 학술지 가운데 우수한 학술지가 ‘SCI급’ 저널에 등재되도록 후원하고자 하였다. 학진의 지원으로 2008년 4월 14일 국제학술지협의회(회장 문용린 서울대교수)가 창립되었다. 국제학술지협의회는 외국어로 학술지를 발행하는 국내 학회 등 학술단체들이 상호간의 정보공유와 협력을 통해 해당 학술지를 SCI DB 등에 등재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학술지로 도약하는 데에 초석을 마련코자 구성된 것이다. 현재 69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으며, 인문학 분야는 계명대 한국학연구원, 국제불교문화사상사학회, 성공회대 신학연구원,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 유네스코한국위원회의 여섯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2009년 현재 1435종의 학진(후보)지 중 SCI 등재지는 10종, SCIE 등재지는 67종, SSCI 5종, A&HCI 2종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런데 국내학회들이 개별적으로 SCI급 등재를 추진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제학술지협의회는 학진의 지원을 받아 이러한 작업을 위한 학회 상호간의 정보공유와 협력을 위한 것이다. 국제학술지협의회 창립 직후, 학진은 2008년 4월 28일 과학 분야의 SCI를 비롯하여 SSCI, A&HCI 등의 인용색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톰슨로이터 본사(미국 필라델피아 소재)를 방문하여 SCI DB와 학진의 KCI DB 연계방안을 논의하였다. 이 자리에서 톰슨로이터사는 한국에서 국가 차원에서 학술지를 평가하고 KCI라는 자체 인용색인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과 한국형 인용분석 지표인 Kor-Factor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①국제학술지협의회 학술지 중에서 학진에서 평가하여 추천한 학술지, ②KCI에 수록된 학술지 중 각 학문분야별로 추천된 대표 학술지, ③지역학 분야 중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학진이 추천한 학술지 등에 대하여 SCI 수록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로 했다고, 한국학술진흥재단은 보도한 바 있다. 3. 학술지 평가 및 등재 논쟁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학술지 평가 및 등재작업이 시작되면서 일찍부터 비판적인 의견들이 나온 바 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학술지를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라는 것에서부터, 학술지 등재작업은 연구자의 다양한 글쓰기, 풍부한 글쓰기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그 결과 대작이 나오지 않으며 주제를 잘게 쪼개고 형식에 맞추어 찍어 내는 논문들만이 양산된다는 점, 논문 한 편과 학술서 한 권의 평가 점수가 같다는 점(부분적으로 학교별로 평가 점수에 차이가 있기도 함. 참고로 학진 기준은 학술서의 경우 등재논문의 200%임)에서 시대를 통찰하는 단행본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 등의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더욱이 각 대학에서 교수업적평가에 반영하는 학진 등재지 논문편수의 증가가 곁들여지고, 학진의 다양한 지원사업에서 등재지 논문 편수가 중요한 변수가 되면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심사 및 게재가 까다로운 학술지를 피하고, 보다 손쉬운 등재 학술지를 찾아가는 연구자들의 부정적인 풍조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논문의 양적인 부풀리기를 위한 이중게재, 자기표절 등의 현상도 종종 나타남으로써, 학진의 요청에 의해 2008년에는 모든 학술지가 <연구윤리 규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에 더해, 이제 ‘SCI급’ 운운하는 최근의 경향은 연구자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진보적 학술운동을 전개하는 일부 연구자들의 경우에는 ‘SCI급’ 운운은 신자유주의적 지식생산 규칙과 기준, 즉 미국적 지식생산 기제라고 비판하며, 이것은 진보적 학술운동의 기반을 취약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우려하기도 한다. 『교수신문』2008년 6월 7일자에 게재된 「SCI의 욕망」이라는 기사는 작금의 SCI 관련 논쟁을 잘 보여주고 있다. 「SCI의 욕망」이라는 비판적 기사는 앞에서 소개한 바 있는 국제학술지협의회 구성, 학진의 톰슨로이터 본사 방문 등을 언급한 후, 한국 학술지가 SCI급 저널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대학·학진·학회 욕망에 SCI만 가득하고 '좋은 논문을 쓰자'는 욕망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SCI 등재는 '협상'이 아닌 논문의 질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였다. <출처> 교수신문 홈페이지 () 지면관계상 이제 학술지 평가 및 등재 논쟁과 관련하여,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학진의 학술지 등재작업, 교수평가에 있어 논문편수의 증가, ‘SCI급’ 운운의 경향 등을 부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논문의 객관적 평가 기준을 계속 높여간다는 점에서 아직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학술지 등재작업은 크게 보아 연구수준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다. 교수에게 요구하는 논문편수의 증가 역시 부분적인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학문에 근거하지 않는 사이비 교수들을 퇴출시킴으로써 대학 전반의 학술적 분위기 조성에 기여할 것이다. 학진의 KCI 정보서비스는 장기적으로 연구활성화를 촉진하고 연구의 질적 수준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본다. 특히 새로운 한국형 인용지수(KF)의 개발은 단순한 SCI급 따라하기의 차원이 아니라, 분명히 진일보한 자체 노력의 소산이라고 평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차후 모든 학술지의 등재지화에서 다시금 KF 비교에 의해 우열이 드러남으로써, 학술지의 서열화가 이루어지고 수준 낮은 등재지는 퇴출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예상을 할 수 있다. 지금도 SCI급 저널은 영향력지수(IF)값에 의해 서열화되어 평가되고 있는 바, 차후 IF(KCI의 경우 KF)값이 높은 학술지 게재는 그렇지 못한 학술지 게재의 2배 혹은 3배의 업적을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 논문편수의 증가가 아니더라도, 질 좋은 논문을 수준 높은 학술지에 게재하는 방향으로 논문 편수의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끝으로 한국의 연구자 특히 인문학 연구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논문을 SCI급 저널에 발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사실 SCI급 저널 논문이 반드시 질이 높은 것은 아니다. 특히 인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논문 글쓰기가 우리와는 다소 다르며, 또한 그 연구결과가 과연 학문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 회의가 드는 논문도 많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문제점으로 SCI급 논문 게재 및 한국 학술지의 SCI급 등재 시도를 비판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끼리만 쓰고 읽는 글쓰기가 아니라, 한국의 학문축적과 주장을 전 세계에 알리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학문적 사대나 종속 차원이 아니라, 21세기 글로벌시대에는 그것이 더 이상 쇄국 차원에 머무를 수는 없는 시대적 흐름 미국적 흐름이 아닌 세계사적 흐름 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앞서가는 학회들이 자신의 학술지를 SCI급 저널에 등재하려는 시도 또한 결코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학문의 객관적인 인용색인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물론 지금의 SCI급 저널의 기준이 반드시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분히 미국적 요소가 강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연구업적을 세계에 알리는 통로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 그것은 세계사적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 연구자의 책무이기도 하다. SCI급 저널에 논문을 쓰거나, 한국의 학술지를 SCI급 저널로 만드는 노력을 등한시 한다면, 결코 세계는 우리 학자의 지식축적과 주장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아시아에서 최근 수 년동안 세계적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투고하는 대표적 국가는 중국계(중국, 대만, 홍콩 등)와 일본이며, 이들의 연구성과를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역사 한국문학 등 한국학 연구자는 이 점을 유념하여, 세계적 학자들이 한국학을 많이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확대시켜 주어야 한다. 4.『역사와 현실』의 발전 방향 한국역사연구회의 『역사와 현실』은 역사학 학술지 가운데 가장 먼저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재지가 되었다. 그리고 정기 평가에서도 계속하여 가장 좋은 점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현시점에서 냉정하게 『역사와 현실』의 발전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① 『역사와 현실』의 글로벌화, ② 『역사와 현실』의 내실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발전 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하일식) 먼저 『역사와 현실』의 글로벌화의 문제이다. 이것을 『역사와 현실』의 SCI급(역사학이므로 A&HCI) 저널 등재를 목표로 삼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질문이다. 정말이지 SCI급 저널 등재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노력의 10배 정도는 기울여야 한다. 필자가 제시하는 글로벌화는 최소한 한국사 연구를 우리끼리만 읽고, 우리끼리만 쓰고, 우리끼리만 심사하고, 우리끼리만 어울리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국사 연구를 왜소화시키기 때문이다. 흔히 외국의 한국사 연구자들은 한국어 논문을 읽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한국어 논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한국에서 한국사 논문을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만이 참고하는 것인가? 한국사 전공자만 보면 되는 것인가? 한국사 논문에 담긴 주장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도 지식과 교훈을 줄 수 있다. 한국사 연구자 역시 한국사 논문만을 읽지는 않는다. 이러한 점은 한국사 연구는 모름지기 한국이 메카이기 때문에 더욱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한국사 연구의 메카인 한국 역사연구자의 성과를 알리기 위해, 더욱 한국사관련 학술지는 글로벌화되어야 한다. 한국역사연구회는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을 지향하는 연구회이다. 그리고 그러한 지향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학술지 『역사와 현실』을 통해 구현시키는 연구적 실천 단체이다. 그러므로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을 담보코자 하는 우리 연구회의 연구축적과 주장을 구현시키기 위해서도, 더더욱 『역사와 현실』은 글로벌화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인식의 전환을 갖고서,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실행할 수 있는 것부터 『역사와 현실』의 글로벌화를 추구해야 한다. 필자는 그러한 것으로 먼저 『역사와 현실』에서 ‘해외편집위원’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히 지위와 명성만 갖고 이름만 걸어두는 ‘해외편집위원’이 아니라,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을 지향하는 연구회의 활동을 이해하고 동참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연구자를 선택하고 영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역사와 현실』 투고자의 전세계 영역으로의 확대, 연구회를 중심으로 한 전세계 한국사 연구자와의 교류 확대, 해외 학술기관과의 학술지 교류 및 배포 등도 사정이 허락하는 한 적극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와 현실』의 영문초록도 집필자의 자유영역으로 남겨두어서는 안된다. 일정한 원칙과 기준, 분량, 서술원칙 등을 준수하고, 가능한 수준높은 영어번역을 지속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세계 연구자들은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을 지향하는 연구회의 주장을 『역사와 현실』의 영문초록을 통해 접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역사와 현실』의 내실화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제 거의 모든 학술지들이 학진 등재(후보)지가 되어 가는 현실은, 가장 우수한 역사 학술지로 평가받는 『역사와 현실』에게도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이미 한국사와 관련하여 학진에 등록된 등재지, 등재후보지는 5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술지 한 호에 10편의 논문이 실리고, 일 년에 4번 발행한다면 한 해에 2000편의 한국사논문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이 계산을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최소 1000편은 필요할 것이다. 그 결과 『역사와 현실』에 투고되는 논문 편수가 해마다 저조해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특별히 호황을 누리는 분야를 제외한다면, 현재 한국의 모든 등재 학술지가 그 속 내부를 들여다 보면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연구회의 경우에는 근현대 연구자들의 다수가 각종 위원회 등에 진출하였고, 또한 그 동안 근현대 관련 학술지가 많이 늘어난 관계로, 최근에는 『역사와 현실』에 투고하는 근현대사 논문이 격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근현대사 논문을 포함하여 전반적인 논문 투고량의 하락은 당연히 『역사와 현실』의 질적 하락을 가져오는 법이다. 실제 『역사와 현실』을 냉정히 분석하면, 이미 그러한 요소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논문투고의 양적·질적 증가, 심사과정의 합리화, 연구동향 및 쟁점의 차별화, 서평의 활성화 등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아울러 수 십년 세월동안 그야말로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논문 글쓰기의 형식이나, 전통적인 각주 처리 방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고자 하는 창조적인 실험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 글의 전개방식에 있어서도 한 편의 논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 논문 한 편 안에서 끝나지 않는 글쓰기를 태연히 반복함으로써, 그야말로 그쪽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불친절하고 마치 암호와도 같은 논문 전개 방식 또한 이제 새로운 개혁이 필요하다. 논점이 분명하지 않으면서 중언부언하는 글쓰기 역시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제반 실험은 다른 곳에서는 할 수 없다.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바로 한국역사연구회의 『역사와 현실』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세계적 저널에서 요구하는 글쓰기는 ‘저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문연구자들만 이해하는 문장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쓰기, 정확한 글쓰기를 요구한다는 점을 받아 들여, 우리 역시 창조적 관점에서 논문 글쓰기의 재창조가 시도되어야 한다. 한국역사연구회는 다른 연구회의 종신회비 수준을 일년마다 자동이체로 납부하는 감동적인 연구회이다. 상근하는 상임간사가 있으며, 『역사와 현실』도 다른 연구회와 비교할 수 없는 헌신적인 편집간사가 있어, 지금까지는 최고의 역사분야 학술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학술진흥재단이 시범 서비스하고 있는 KCI의 한국형 인용지수(Kor-Factor)로 학술지를 평가한 결과, 역사학 분야에서 『역사와 현실』은 『중국사연구』, 『역사비평』에 이어 3위로 랭크되어 있다. 2007년 전체 『역사와 현실』 논문편수는 56편이었는데, 2007년 모든 연구자가 그 56편의 논문을 인용한 횟수는 115회였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모든 학술지의 등재지화 추세에서 KCI Kor-Factor 지수산출에 입각한 학술지 평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남보다 앞서 1등해야 하다는 치졸한 차원에서가 아니라,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논지를 제대로 알리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역사와 현실』의 글로벌화와 내실화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2008년은 한국역사연구회 창립 20주년이었다. 20년 연구회의 실질적인 구현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역사와 현실』이다. 만약 『역사와 현실』이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그야말로 평범한 수준의 학술지가 되는 순간, 연구회는 해체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5. 영원한 이중모순의 과제 필자는 처음 역사를 공부할 때에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 근대시기에 당면한 개혁과 자주의 이중모순이라는 역사적 과제에 그야말로 필(feel)이 꽂쳤었다. ‘그렇구나, 우리 역사는 항상 문제가 이중(겹)으로 오는구나’, 그러한 인식은 필자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최우선 전제가 되었다. 비록 필자는 고려시대를 전공했지만, 개혁과 자주의 이중모순이라는 과제는 필자에게 필생의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고려 태조의 통일정책, 공민왕의 개혁정치를 연구할 때에도 적용되었으며, 필자가 연구주제를 확산하여 한국의 풍수연구나 최근의 ‘영상역사학’, ‘문화콘텐츠’ 등의 주제를 연구할 때에도, 항상 이중모순의 과제라는 것으로 그러한 주제의 연구필요성을 도출하였었다. 지금까지 필자가 제시한 학술지의 문제에도 그러한 이중모순의 과제는 적용된다고 본다. 우리 역사는 항상 이중모순을 헤쳐나가야 하는 과제가 중첩되어 있다. 물론 이러한 측면은 우리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그리고 어떤 것도 그러할 것이나, 우리처럼 자주적 근대화를 이룩하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항상 예전부터 지속되어 오는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새롭게 주어지는 과제 역시 동시에 헤쳐나가야 하는 이중모순의 과제, 즉 항상 문제해결을 위해 ‘두발당수’를 시도해야 하는 것이다. 외람되지만, 필자가 가장 안타까우면서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한국사연구자들의 습성이 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이 제시되면 ‘네가 먼저 해봐라, 그리고 그것이 검증되어 문제가 없으면 그때 가서 내가 시도해 보겠다’라는 식의 인식과 대처방식이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무조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사연구자는 다분히 두발당수가 아니라 한발만을 사용하려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근대사 시대상황에서는 자주와 개혁의 이중과제를 고려했어야 한다고 피를 토한다. 그런 점에서 위정척사운동과 개화파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지금 이 땅의 현실에서 이중과제를 무시하고 하나만 생각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1세기는 제3의 혁명의 시기라고 평가되고 있다. 필자라고 왜 글로벌시대의 모순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글로벌시대의 대처는 두발당수로 해야 한다. 이중의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려고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주제로 삼은 학술지 전개 방향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 부분적으로 학진의 학술지 등재평가나 SCI급 투고나 등재 시도는 문제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금의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 과연 이중모순의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균형잡힌 의식과 시도는 진정으로 있었는가? SCI급 저널을 관리하는 톰슨로이터사가 밝힌 바에 의하면, SCI급 저널에 등재되기 위하여 반드시 전문이 영문으로 기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①학술지 정시발행을 위시한 제반 발간 규정의 준수 ②내용의 최신성과 확장성 ③국제적 다양성 ④인용분석 정보의 네 가지 기준에 근거하여 평가한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현실은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당장의 시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된다. 방향성이 옳다면, 먼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 당장은 미래의 변화를 위한 場을 놓아 준다는 인식의 전환도 대단히 진보적인 것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한국사의 메카는 한국이며, ‘과학적 실천적 역사학’의 학문적 실천을 담보한 『역사와 현실』은 내실을 기하면서도 더욱 글로벌화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연구회가 지향하는 목표에 부합되는 것이며,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