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질투의 변주곡, 「쌍화점」 김인호(중세사 1분과) 「쌍화점」은 정통 사극영화가 아니다. 단지 고려말 공민왕 시대에 우리 인간의 한 단면을 옮겨 놓을 뿐이다. 이 영화의 드라마적 요소는 셰익스피어의 「맥베드」와 닿아 있다. 그래서 비극이다. 나는 운 좋게도 영화평론가를 알고 있다는 죄 때문에(?) 「쌍화점」의 첫 언론 시사회에 공짜로 갈 수 있었다. 공짜라는 점이 중요하다, 왜 나는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니까. 그래서 학기말 성적 처리 등으로 남들은 다 바쁘다는 와중에, 나는 한가하게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인 조인성과 주진모, 그리고 유하 감독의 얼굴까지 본 것은 차라리 덤이었다. 쌍화점이 만두가게이고, 이것이 고려 충렬왕 때 지어진 노래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만두를 사러간 여인의 손을 잡는 회회아비, 그 남녀간의 ‘상열지사’에서 우리는 인간의 사랑과 육체 관계(왜 ‘섹스’란 용어를 쓰면 사람들이 천박하게 보는지 잘 이해는 안되지만, 학회 홈페이지 올리는 것이니까 점잖은 용어를 써보자)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영화 제목이다. 당연히 우리는 이 영화가 지향하는 인간의 문제를 여기서 출발할 수 있다. 영화는 공민왕(주진모)과 부인 노국공주(송지효), 그리고 공민왕의 총애를 받는 건룡위 대장인 홍림(조인성) 등의 세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질투의 변주곡이다.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정략 결혼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애정이 약하고, 형식적 사이처럼 보인다. 공민왕이 먼저 알았던 사람은 홍림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두 사람만이 알 뿐이라는 신윤복 그림의 화제(畵題)처럼, 이 둘의 관계가 상식 밖이다. 홍림은 공민왕이 젊은 시절에 자신을 호위하기 위해 만든 건룡위에서 처음 만났다. 공민왕은 홍림과 같이 무술을 수련했는데, 같이 했다기 보다 가르쳤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 점은 영화 끝의 두 사람의 대결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두 사람 사이는 동성애 관계다. 그러나 공민왕이 홍림에 대한 사랑이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애정이라면, 홍림의 공민왕에 대한 사랑은 충성을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좀 다르다. 이 점은 영화 후반부 홍림의 고백에서 드러난다. 공민왕 역시 홍림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충성의 일환으로 본다. 이 둘을 이어지는 매개가 등장한다. 그것이 공민왕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다. 이 그림은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것인데,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같이 말을 달리며 활을 쏘아야 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이 말의 뜻이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화의 ‘천산대렵도’ 그림에는 공민왕 한 사람 만이 활을 쏘고 있고, 그 옆의 홍림은 나란히 말을 달리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두 사람의 파국을 예고한다. 파국의 계기는 원나라 사신의 도착이다. 원나라 사신은 공민왕이 자식이 없음을 이유로 후계자를 지정하고자 한다. 자신의 위치가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공민왕. 그가 생각한 방법이 홍림과 노국공주 사이에서 아이를 낳게 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국왕의 명령으로 시작한 잠자리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진정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육체적 관계가 남녀 사랑의 근간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이것은 분명 공민왕과 홍림의 동성애와 대비된다. 노국공주가 홍림을 사랑하는 정표는 두 가지다. 직접 만들어준 두건과 만두였다. 이렇게 노국공주와 홍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공민왕과 홍림의 관계는 멀어지는 쌍곡선이 그려진다. 그럴수록 홍림에게 더욱 집착하는 공민왕. 질투의 변주곡이 시작되는 것이다. 비극은 잉태되고, 여기에 더해 공민왕을 제거하는 음모와 공민왕의 반격이 이어진다.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를 다 얘기하면 혹 나중에 보실 분들이 재미 없을 것 같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영화 쌍화점은 분명히 사극이 아닐 수 있다(역사적 사실과 드라마가 결합된 팩션의 장르다). 역사적 사실은 뒤 섞이고, 등장 인물 역시 공민왕 노국공주 만이 실존 인물이다. 이는 의도적이다. 자제위의 이름이 건룡위로 바뀌고, 만들어진 시기 역시 맞지 않는다. 심지어 공민왕을 죽인 홍림은 실제 홍륜이란 인물이고, 유명한 시중(요즘의 수상격) 홍언박의 손자란 점도 고려시대를 조금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더구나 그 유명한 신돈은 영화에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다. 특히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지극한 사랑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더 많다. 이런 통념들 때문에 감독은 이름을 바꾸고, 역사적 사실에서 모티브만을 따왔을지 모른다. 나는 역사학자들이 이런 점을 가지고 열을 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양보할 수는 없다. 역사학자로서가 아니라 관객의 입장에서 나는 원나라 사신의 후계자 지정으로 인한 파국의 시작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원나라의 입장에서 후계자 지정을 서둘러야 할 당위성이 영화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대한 반원 개혁의 선봉자였다는 역사적 관념이 강하게 깔여 있다고 나는 느낀다. 공민왕이 원나라 제도를 고려식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렇다고 공민왕이 원나라에 반대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반원 개혁 후에도 원나라와 외교관계도 다시 맺었다. 공민왕은 자신의 권력 유지에 집착했던 인물이다. 삼수 끝에 왕위에 오른 공민왕은 즉위해서 충정왕을 독살했다(자기 손으로 직접 죽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 할 말은 없다). 이후로도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수 많은 쿠데타 속에서도. 그러면서 공민왕은 어떤 세력도 끝까지 믿지 않았다. 그는 단지 사람들을 권력 유지에 이용했을 뿐이다. 나는 심지어 역사 속에서 노국공주와의 사랑도 때로 의심이 간다. 혹 공민왕이 공주 추모사업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은 것은 아니었는지 말이다. 흥분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공민왕을 ‘인간’이란 차원에서 보았을 때의 한 시각일 뿐이다. 오히려 영화 속에서 공민왕의 질투와 광기는 좀 미약했다. 그가 홍림을 소유하고 싶어할수록, 이 소유욕이 권력욕과 변주를 이루었다면 나는 더욱 웅장하게 이 영화를 보았을 것 같다. 이 영화가 「맥베드」와 같은 비극이지만, 이 비극은 어딘가 허전하다. 그 이유는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포스터는 영화 <쌍화점> 홈페이지(http://www.ssanghwa.co.kr/)에서 자유롭게 내려받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